제 23화 나는 가시드래곤을 씹어먹는다.
'음....날이 밝았군.'
나는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애완동물이 보관된 우리는 널찍널찍하게 서로 떨어져 있으며 칸마다 검은 벽이 있어 어떤 마물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감을 펼쳐봐도 대충 생물이 있다는 것만 알겠고, 정확히 그 양과 농도를 알 수가 없어...탐지방해 마법이 걸려 있나 보네.'
아마도 지능이 높은 마물이 미리 준비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취했으리라.
'으음...그나저나 어제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카니지는 검은촉수와의 전투로 상당히 지친 상태라 깊이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어떠한 생물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너무 피곤해서 잘못 들은 거겠지.'
나는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 냈다.
'지금은 쉬는 게 제일 중요해. 경기 시작까지 아직 몇 시간 남은 것 같으니 그때까지 편히 쉬고 있자.'
생각을 마친 나는 똬리를 틀며 머리를 몸속에 구겨넣었다.
.
.
.
와아아아아아아!
나는 환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시작했나 보군.'
경기장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했던 터라 라디오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들었다.
나는 어느새 소리만으로 전투를 분석하고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호오....끝났나보네.'
이내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전투 소리가 들리지 않고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두 번의 경기가 더 진행되는 듯했고,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우리의 입구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그림자가 보였다.
'기다리느라 지쳤는데 이제 몸 좀 풀어볼까.'
새로운 전투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자 잔뜩 흥분이 되며 몸이 저절로 들썩거렸다.
"어어... 얘 왜 떠냐."
사육사가 흥분에 젖어 몸을 주체하지 못 하는 나를 보자 당황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우리 문을 열고는 어제처럼 나를 먹이로 유인하기 시작했다.
사육사는 긴장이 되는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떨면서 나를 유인했다.
"하 씨....어제 이 새끼 존나 살벌하게 먹던데....나도 먹히진 않겠지?"
사념으로 녀석에게 난 지성이 있으니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다가 놈이 날 보며 벌벌떠는 모습이 나쁘지 않아 관두었다.
사육사는 그렇게 계속 떨면서 뭐라 중얼중얼 떠들더니 대기실로 날 안내했다.
"에이 씨...존나 무서웠네...빨리 나가야지."
안내를 마친 사육사는 재빨리 자리를 뜨며 대기실 문을 잠갔다.
그때 밖에서 진행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마지막 경기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환마 레이븐 공작의 공허의 괴물, 카니지! 그리고 화마(火魔) 파슈다 공작의 가시 드래곤, 다둠!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철창이 위로 올라가며 열렸다.
쿠드드드드드
나는 거대한 몸을 천천히 이끌며 경기장 안으로 나섰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가시를 두른 마물이 보였다.
'..가시..드래...곤?'
녀석의 외형은 내가 알고 있던 가시드래곤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녀석의 근육과 꼬리는 비정상적으로 컸으며 가시의 크기와 뾰족함이 일반적인 가시드래곤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 쌍의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는 모습을 본 카니지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체장은 나보다 짧지만 온몸에 덮인 가시로 인해 체고와 덩치는 나보다 훨씬 커 보였다.
'아니....가시 드래곤은....저렇게 안 큰데?'
내가 만나는 드래곤들마다 뭐 전부 천년 동안 산 고룡이라도 되는 걸까.
'저번에 봤던 스웜프 드래곤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왜 하나 같이 평범한 놈이 없지?'
과거 가시드래곤을 본 적이 있는 몇몇 관중과 진행자도 크게 당황했다.
"어어...파슈다 공작의 가시드래곤의 상태가...조금 이상하군요...네..제가 알던 가시 드래곤보다 훨씬 거대하고 강력해 보이는군요."
진행자가 떨떠름하게 가시드래곤을 보며 진행을 이어 나갔다.
"음...어쨌든! 지금 바로 경기 시작합니다!"
나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입에 목구멍을 달구며 붉은 겁화를 머금었다.
'누가 봐도 저놈은 가까이 붙어서 싸울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무식할 정도로 뾰족하며 무수히 많은 가시들은 근접한 모든 적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 분명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녀석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내게 달려오자 나는 재빨리 놈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키아아아오!
녀석은 상당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내게 달려왔다.
나는 놈이 내 근처에 다다르자 재빨리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놈은 이내 몸을 웅크리더니 가시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두두
녀석의 몸에서 가시가 뽑아져 내게 날아온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가시들을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비교적 연약한 내 배에 수많은 가시가 박혔다.
크르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서둘러 녀석으로부터 더욱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놈은 그런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에서 거대한 가시를 뽑아내더니 내게 던졌다.
그것은 마치 작살과도 같이 생겨서 녀석의 손바닥과 가시 사이를 잇는 얇은 줄이 있었다.
쐐애애애액
뾰족한 가시가 내 공격성 외피질을 부수며 깊숙이 박힌다.
퍼석!
나는 재빨리 가시를 뽑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내 외피에 박힌 가시는 순식간에 모습을 변형시키더니 이내 갈고리처럼 변하여 내 몸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가시 드래곤은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작살처럼 생긴 가시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젠장...완전히 놈의 페이스에 말려들었잖아.'
나는 전투의 흐름을 내 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놈에게 산성 브레스를 뿜었다.
키아아아아오!
놈은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끈질기게 날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때
툭
나와 녀석을 이어 준 줄이 녹아 끊어졌다.
'좋았어!'
나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높은 상공에서 산성을 계속해서 뿜어냈다.
'녀석이 상공으로 올라오는 순간 나는 놈을 끈적한 촉수로 붙잡아서 땅으로 추락시킨다!'
예상대로 가시 드래곤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내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난 브레스를 끊고 양손에서 지난 경기에서 흡수한 검은촉수들을 꺼내었다.
수많은 촉수다발들이 가시 드래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은 당황했는지 촉수들을 향해 가시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촉수 결합 재생능력으로 인해 그런 공격은 오히려 너만 피해볼꺼다.'
나는 잔혹하게 웃어 보이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놈이 공격한 촉수들은 꿰뚫려 나가며 구멍이 숭숭 생겨났지만, 빠른 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재생이 되는 순간 나오는 수많은 작은 촉수들이 더욱 집요하게 가시 드래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촉수들은 태우거나 녹이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지.'
그렇게 승리에 가까워졌다고 자만한순간
녀석이 내게 몸을 날려 빠른 속도로 근접하기 시작했다.
나도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내 거대하면서도 무거운 몸은 상공에서 빠른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결국 제시간에 도망치지 못한 나는 놈과 몸이 부딪치고 말았다.
크르르르르륵!
'제기랄!!'
수많은 가시들이 내 몸을 그대로 꿰뚫어 송장처럼 만들어 버렸다.
재생을 하고 싶어도 놈의 가시가 박혀 있는 터라 촉수가 꾸물꾸물 거리기만 할 뿐 살덩이가 메워지진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레이븐 공작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파슈다 공작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으하하핫! 아무래도 귀공의 공허의 괴물은 여기서 끝난 듯 하군요! 하핫!"
레이븐 공작은 대꾸도 하지 않고 더욱 경기에 집중하였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요."
"예 아무렴요~ 크흐흐"
가시 드래곤, 다둠은 내 몸을 거세게 부여잡고 놔주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놈을 내 몸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양손으로 놈의 머리를 잡았다.
당연하게도 내 양손은 수많은 가시에 꿰뚫려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고, 하얀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아아아아아
{좀...떨어져라 이 고슴도치 같은 새끼야!!!!}
나는 가시 드래곤의 머리를 손톱을 박아넣어 밀어 내려 했지만,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내 손톱은 그저 놈의 딱딱한 외피에 흠집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몸 곳곳에서 터져 나온 피는 경기장 바닥을 붉고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크읔...눈이 흐릿해진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일까...의식이 점점 몽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성 '촉수 결합 재생능력'의 회복력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너무도 많은 가시가 내 몸을 후벼 파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푸른 화염을 머금었다.
목구멍에 달궈진 칼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며, 입 속의 혓바닥과 이빨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폐부에 살을 태우는 열기가 가득 메워져 고기 굽는 냄새가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너무 뜨거워!... 이래서 이건 진짜 안 쓰려 했던 건데!!'
나는 오랫동안 머금을 수 없는 푸른 화염을 놈에게 뿜어냈다.
퐈아아아아아아아아
가시 드래곤은 갑작스러운 푸른 겁화에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키아아아아오!
푸른 화염의 뜨거운 열기가 관중석에 보호막을 뚫고 전해졌는지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윽! 엄청난 열기군!"
"이런 걸 뿜었다간 아무리 공허의 괴물이라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공작과 대공이 펼친 방어막으로도 온전히 막을 수 없는 열기라니...!"
타닥 타다닥 타닥
푸른 화염의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은 탓에 놈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거대한 한 쌍의 날개는 재를 흩뿌리며 반쯤 녹아내렸다.
가시들 또한 대부분 녹아서 끝이 뭉툭해지거나 아예 형태를 잃어버려 흐물흐물거리는 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빠르게 몸을 피한 탓에 꼬리의 가시들은 온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 역시 몸 여기저기에 난 구멍에 뿜어져 나온 피로 범벅이 되어 끔찍한 비주얼을 선사했다.
녀석 또한 수많은 가시와 날개가 녹아내리고 재를 흩뿌리는 모습을 보이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한 번의 공격이라도 허용하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두 몬스터는 서로의 숨통을 끊기 위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나는 땅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땅에 수많은 촉수들을 박아넣어 녀석쪽으로 이동하게 했다.
크르르르르르르
내가 가만히 있자 놈은 발을 구르며 내게 도약할 준비를 하였다.
'자...내게 달려들어라!'
키아아아아아아!
나는 녀석을 향해 포효했고, 그에 응하듯 놈은 엄청난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 즉시 나는 땅속에 숨겨뒀던 수많은 촉수들을 뾰족한 가시로 형태를 변환시켜 지면에 솟아나게 했다.
콰드드드드드득
수많은 촉수가 달려오는 놈을 향해 바라봤고, 이는 마치 가시밭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가시 드래곤은 뾰족한 검은촉수 밭을 보고 급히 멈추려 했지만,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달려온 탓에 멈출 수가 없었다.
푹 푸부북 푹 푹
수많은 촉수들이 꼬챙이처럼 녀석의 몸을 꿰어냈다.
'이걸로 끝이다!'
나는 거기다 화룡정점으로 놈에게 산성 브레스를 뿜어냈다.
퐈아아아아아아
키아아오....
녀석은 녹아내리는 몸을 어떻게든 촉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이내 그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침을 흘리며 가시 드래곤에게 천천히 다가 갔다.
크르르르르르
내가 녀석의 앞에서 내려다보자, 놈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덜덜 떨며 나를 바라봤다.
아마도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삶의 끝에 도달했음을 알아차렸으리라.
나는 잔혹하게 웃으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콰직
놈의 머리가 박살 나며 내 입속으로 들어갔고, 통제를 벗어난 몸은 가시촉수에 박제된 채 축 늘어졌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이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넋을 놓고 지켜보던 진행자는 이내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려 손을 들고 소리쳤다.
"엄청납니다!!! 이번에도 뛰어난 전략으로 상대를 공략한 공허의 괴물!! 카니지가 승리하였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나는 이번에도 관중들의 환호에 힘입어 포효로 호응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