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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44화 (45/49)

제 44화

로키는 환영 뒤에서 웃는다. (5)

쓰러진 에리스를 챙겨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던 단테는 성검 리버레이터를 바닥에 꽂아놓고 바로 그녀의 어깨를 부축해주었다.

마법을 쓰면 쓸 수록, 수명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본래 받아들여야 했던 영체와는 정반대, 성질과 파장이 지나치게 다른 영체를 체내에 받아들인 탓에 수명이 줄어들었으며.

앞으로 '새벽'의 마법을 쓸 때마다 그 수명은 더더욱 줄게 될 것이다. 홀리의 기술부서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말이니, 거짓은 아닐 터이다.

마법을 한 번에 많이 쓴 탓인지, 엔지니어가 말했던 한계가 찾아온 것인지, 에리스의 피부 여기저기에 푸른 마력을 띈 균열이 곳곳에 생겨,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연약한 몸이 깨질 것처럼 흔들렸다.

몰려오는 정체 불명의, '인간형'을 한 그림자들.

에리스의 불빛이 사라지자마자 몰려오기 시작한 섀도들을 보고 이를 꽉 깨문 단테는 비장의 수가 있다고 큰 소리를 쳐댄 버질 쪽을 바라보았다.

현재, 홀리의 연구 부서에서 소환 고정기를 가동한 건지, 버질 주변에 루시퍼의 마력도, 버질 자신의 마력도 아닌 전혀 다른 황금빛의 마력이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점차 모여들기 시작한 신성한 빛을 바라본 루시퍼의 머리에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작 해봤자 성가신 마법 능력자가 1명에서 4명으로 늘어난 것뿐, 원래라면 마그놀리아를 지키는 용사 파티에게 승산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모여드는 저 황금의 마력. 저 황금의 마력을 '검' 삼아 휘두르는 서번트를, 루시퍼는 알고 있었다. 200년 전, 자신의 목을 떨어뜨렸던 그 찬란하면서도 잔혹한, 선택받은 이의 칼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 저건...!]

당황한 루시퍼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잡으려 했지만,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테는 [화염 마스터리]의 랭크업이 남아있는 동안, 스카디는 [니블하임의 한기]의 랭크업이 남아있는 동안, 동시에 루시퍼가 탈로스의 주먹 앞에서 나자빠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잭 오 랜턴 : 소각.]

[스카디 : 얼음 창.]

먼저 화염 기술이 작렬하고, 그 뒤를 극한의 한기가 에워싼다.

열화의 지옥과, 살을 에는 한기가 동시에 덮쳐지자, 루시퍼는 자신의 강건한 내구와 타락 천사의 권능조차 뚫고 들어오는 용사와 그의 마법사의 최대 화력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만. 그마아안...!!!]

"좋아. 거의... 다 됐어!"

버질은 소환기가 장착된 왼팔을 하늘 위로 뻗으며 외쳤다.

"와라! 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선정의 검을 뽑은. 모든 용사의 '오리진'이자, 그 '프로토타입'! [영령형 아서]! 나의 곁으로 와, 나의 적을 이 대지에서 묻어버리도록 하여라!"

"길고 장엄한 연설은 필요 없으니까. 빨리 뭐 좀 해봐...!"

그 정도로 화력을 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징그럽게 다시 일어서려는 루시퍼를 보고 경악한 단테가 외친 바로 그때였다.

버질 바로 옆에, 어떤 '인간의 모습'을 한 영체가 실체화되었다.

양손에 검을 쥔,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검은 머리에, 희망과 이상으로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를 품고 있었다.

소환사였던 단테는 알 수 있었다. 그 영체가 얼마 정도의 힘을 품고 있는지. 그 영체가, 얼마나 고결했는지. 그 영체가, 생전에 어떠한 수라장을 넘어 이 자리에 서 있는지.

그리고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타천사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거라면 희망이 있겠다고 생각한 단테는 빨리 버질이 소환 고정기를 통해 나타난 서번트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버질! 빨리 그 영체에게 '명령'을 내려. 그 영체가 가진 힘이면 루시퍼를 죽일 수 있을 거야. 빨리!"

베아트리체 또한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기대의 눈빛을 버질에게 보냈다.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드는 성기사긴 했지만, 그가 소환 고정기를 통해 이 자리에 불러낸 '아서'야 말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자... 잠깐. 이게 왜... 왜 이러지...?"

그러나 그 희망도 잠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황금의 마력은 부서져, 흩어지고 말았다. 루시퍼가 뭘 한 것도 아니다. 영체를 유지하기 위한 마나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소환 마법 그 자체에 결함이 있는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 영체.

[영령형 아서]는, 한 차례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그 자리에서 '자기 스스로 소환되기를 포기했다.' 그 어이없는 광경을 본 단테는 기가 차서 욕을 뱉었다.

"씨발...? 야 버질!! 이게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대체 왜야... 왜!! '아서'여! 어찌하여 나의 소환에 거부하는 것이냐! 왜!! 대체 왜애!! 나는... 나는 그 '용사'의 핏줄을 이은. 성스러운... 성스러운 용사의 후손이란 말이다! 대체 어째... 어째서!"

당황한 버질이 어쩔 줄 모르며 뒤로 물러난 그때, 루시퍼는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시퍼런 새벽의 마력을 띈 마법의 활을 소환해선 자신에게 도전해온 용사 파티를 향해 겨누었다.

[순간 진짜 '용사'가 사용했던 서번트를 소환하길래. 조금 긴장했지만. 역시 너희들 따위가 그 서번트를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위대한 용사조차도, 자의적으로 협력하지 않았던 그 서번트를 다루기 위해, 강제적인 맹약을 걸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200년이 지나 열화된 너희들 따위가 다룰 수 있을 리 없지 않느냐!

자, 네놈들에게 선택지를 주도록 하마.

존재를 잃은 자들. 그림자들에게 먹혀 죽을 것인가.

아니면 하늘을 뒤덮는 나의, 샛별의 위광에 감싸여 죽을 것인가.

선택하거라. 어리석은 이들이여!]

선택이고 자시고, 이미 에리스의 빛이 없어진 탓에 이미 섀도는 산 자들의 몸을 탐하여 단테와 버질, 베아트리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버질의 경우, 이미 하반신과 왼쪽 반신이 먹혔고, 베아트리체 역시 저항은 하고 있지만 오른쪽 팔에 그림자가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나마, 에리스가 가까이 있던 덕에 왼쪽 발목만 먹힌 단테는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 루시퍼... 씨... 발... 그렇게... 봉인이... 되었...었.는...데."

베아트리체는 사라져 가는 도중에 단테가 쥔 성검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곤, 그 보랏빛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남은 힘을 쥐어짜 내 말했다.

"단테... 버질. 은... 실패. 했지만. 너라면. 너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불러. '그 녀석'을. 불러. '아서'를... 아직 남아. 있는. 마력의 실을. 쫓아. 불러내는...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베아트리체는 어둠 저편으로 조금씩 먹혀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던 단테는 땅에 틀어박아놓은 성검을 지지대 삼아 잡고 일어난 다음 루시퍼를 올려다보았다.

[호오. 그림자에게 먹히는 결말보다는. 새벽의 위광 아래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는 걸 택한 것인가.]

"입 닥쳐 이 씨발 새끼야."

단테는 섀도에게 먹혀가는 그 순간까지 땅에 박힌 성검을 놓지 않은 채 외쳤다.

"나는 용사도 뭣도 아니야. 그냥 운 좋게. 아니면 버그 때문에. 성검을 뽑은 용병일 뿐이야.

내게는 버질처럼 용사의 피도 흐르지 않고.

마그놀리아를 지키는 홀리의 기사들처럼 인류를 수호하려는 의지도 없거니와.

악마의 군단인 와일드 헌트의 병사들처럼, 오만한 인간들을 벌하려는 의지도 없어.

하지만 내게는 이곳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나의 어린 시절에 내게 처음으로 음악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여기 있어. 내게 이 세상이 절망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걸 알려준 연인이 있어. 서큐버스가 운영하는 창관의 뒷골목에 버려진 채 울고 있던 내게 손을 뻗어주었던 영웅이 있어.

사람을 죽이는 걸 업으로 삼는 부랑아인 나와 함께 모험을 함께 기꺼이 해주겠다고 맹세한 요정이 있어. 내가 무슨 부탁을 해도 군소리 하나 없이 들어준 동료가 있어. 마법을 한 번 쓸 때마다, 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 지키기 위해 싸워준 성자가 여기 있어.

그 녀석들을 여기에 내버려 둔 채, 얌전히 죽을까 보냐! 좆까라고 해 씨발! 그 어떤 대의도, 그 어떤 정의도, 논리도 필요 없어!

나는 너를.... 죽인다!"

바로 그 순간.

소환 고정기를 통해 전장에 흩뿌러져있던 황금빛의 광자가 단테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윽고, 땅에 박혀있던 성검에 집중되었다.

[잠... 깐만.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루시퍼는 순간 경악하며 단테를 바라보았다.

[인간. 조차 아닌. 악마의 피가 섞여 들어간. 천박한 박쥐 같은 녀석이... 인류를 수호하는 용사를... 다룰 수 있을 리 없다. 진짜 '용사'조차 제대로 다룰 수 없었던 영령을 네놈이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없을 터이다.]

투확!!!

단테가 성검 : 리버레이터를 지면에서 거칠게 뽑아내자, 지면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지반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위광과 함께, '그것'이 나타났다.

[단테, 소환 : 영령형 아서.]

단테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머리의 '기사'는 단테와 완벽하게 똑같은 자세로, 마치 '선정의 검'을 처음 뽑았을 때의 그 자세 그대로 서, '악' 그 자체를 상징하는 타천사 앞에 용감히 섰다.

마치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달라는 듯.

아니, 같은 전장을 헤쳐나가는 '전우'로서 싸워보자는 듯.

신뢰의 눈빛을 단테에게 보냈다.

단테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환기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 또한 성검에 마탄을 장전. 검을 쥔 두 손에 자신의 모든 염원과 기도를 담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황금의 빛에 휩싸인 '두 명의 용사'는 각자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의 '성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영령형 단테 : 성검 엑스칼리버.]

[영령형 아서 : 성검 엑스칼리버.]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루시퍼는 타천사의 권능으로 순간 검은 날개를 펼쳐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성검에게 선택받은 두 명의 용사의 성검 앞에서 그건 소용없었다.

하늘 위로 용감히 도약한 단테와 아서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성검 엑스칼리버'의 일격을, 문자 그대로 '용사의 일격'을 모든 악령의 정점에 선, '신령'을 향해 내질렀다.

[끄. 오. 으... 으아아... 으아아아아악!!!]

두 용사가 교차해서 베자 X자의 거대한 황금의 참격이 루시퍼의 날개를 찢고, 그의 가슴을, 심장을 찢어발겼다. 루시퍼가 내린 어둠은 그 날개가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날개 너머를 비추는 따스한 태양의 빛에 의해 사라져 갔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애애!! 나의 반신. 나의 날개 반 쪽을. 두고... 봉인. 봉인될까 보냐!!! 네 이놈 용사여!!! 용사!!! 크오. 우아아악!!!!]

[루시퍼 :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반역의 칼날.]

마지막까지 저항할 셈인지 루시퍼는 사라지기 직전,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푸른빛의 칼날을 단테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단테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영령형 아서]와 함께 자신의 성검 : 리버레이터로 그걸 받아넘겼다. 자신의 회심의, 마지막 일격이 어이없이 막히자 루시퍼는 경악하며 단테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영령형 단테 : 브레이버.]

[지옥으로 떨어져어어!!]

루시퍼의 얼굴을 내려 베면서 지면에 착지하자, 거대한 타천사의 몸이 황금빛의 균열과 함께 그대로 양 옆으로 갈라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아주 순간적이지만 '영령'으로 변한 단테를 향해 손을 뻗었던 루시퍼였지만, 녀석은 그대로 저주의 말을 뱉으며 사라져 갔다.

[저주할 테다. 저주할 테다 용사. 나의 저주를 받고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 으아아악!!]

루시퍼는 사라지면서 저주의 말을 토해내곤 그대로 자신의 신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데이터 칩'에 봉인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엑스칼리버'의 힘을 받아들이느라 지나치게 과부하가 걸린 탓이었을까.

쩌적...

쩌저적...

콰아아아아앙!!!!

단테의 손에 들려있던 성검 : 리버레이터는 단테가 쥐고 있던 그 손잡이를 제외하고, 완전히 박살 나 바닥에 흩어지고 말았다.

"후우."

손잡이 밖에 남지 않게 된 성검을 바라보며, 그는 씁쓸한 얼굴로 다시금 되찾은 따스한 태양을 올려다보며 깊게, 그리고 상쾌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만나서 좆같았고. 다신 만나지 말자. 새끼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용사로써 단테가 완전한 각성을 이룬 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검이 부서지면서 단테가 용사의 자격을 잃게 된 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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