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로키는 환영 뒤에서 웃는다. (3)
용사여, 그대는 다시 한번 적이 되는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루시퍼는 자신을 이 세상에 불러낸 소환사라고 할 수 있던 카이네의 생명을 쥐어 짜내다시피 했다.
대기 중에 있는 모든 마나를 불러들여 위대한 대악마로서의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단테를 향해 하늘을 전부 덮을 정도의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단테를 향해, 푸른 마력의 검을 뽑아들으며 전투 준비에 들어섰다.
[!WARNING!]
[!WARNING!]
[신령 루시퍼.
힘 : 10 마력 : 18 민첩 : 7
내구 : 10 지능 : 9 매력 : 8
약점 없음?
플레이버 텍스트 : 신에게 반란을 꾀한 타락 천사의 심볼이자, 모든 타락천사들의 원형. 수많은 악마들과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타천사들과 함께, 신이 만들어낸 시스템 그 자체에 반역한 반역자.
지금은 어째서인지, 반쪽 날개가 뜯겨져 나간 상태로 완벽하게 신성을 발휘할 수는 없으나, 신의 힘을 받은 미카에리스와 동등하게 싸운 최강의 천사이자, 악령이다.]
주요 기술 : 불명.]
[레인저 : 터보 파이어.]
[루시퍼 : 새벽의 어둠이 도래했노니.]
단테는 레인저를 소환하여 중화기의 포격을 루시퍼를 향해 쏟아부었다. 인간형 레인저의 민첩 스탯은 8, 아슬아슬하게 루시퍼의 민첩 스탯 7을 뛰어넘기 때문이었다.
민첩을 위시한 서번트를 장비하고 있었던 만큼, 단테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아닌, 피해내야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양손에 M1911과 M4A1을 쥐고 옆으로 달리며 루시퍼에게 모든 탄을 쏟아냈다.
그러나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자신을 소환한 소환사를 지킬 겸. 루시퍼는 손짓 하나로 단테가 쏜 모든 탄환, 레인저가 쏟아낸 [터보 파이어]를 가볍게 염동력으로 막아내더니, 이를 전부 단테에게 역으로 돌려주었다.
일종의 서번트의 스킬인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루시퍼의 스킬이 아직 '발동조차'하지 않았음을 눈치채고, 거대한 루시퍼의 날개를 올려다보았다.
[나의 날개는 광명을 부정한다. 오라, 깊은 어둠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죄 깊은 자들의 진흙이여.]
루시퍼의 스킬이 발동되자, 대지를 비추던 빛이 전부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자 어둠이 마그놀리아 전역을 뒤덮었으며, 저 지평선 너머에 루시퍼가 비추는 새벽의 광명만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어두워지는 거? 그건 딱히 상관 없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더라도, 이 정도 지근거리에서 싸운다면 총알이 빗나가는 일이 있긴 해도, 마법이 빗나가는 일은 없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레드 그레이브 황무지의 '환경'이었다. 이 저주받은 땅에 새벽의 어둠이 드리우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단테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 황무지를 배회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갔으니까. '그것'에 대한 공포는 이미 단순한 인지를 넘어,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야! 날개 치워!! 어두워지면..."
단테가 당황한 나머지 루시퍼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심연 저 편에서 기어나온 정체불명의 '그림자', '섀도'가 지면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단테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총탄을 쏟아부어도, 섀도는 아파하는 기색 하나 없이 꾸물꾸물 기어 나와선 '살아있는 존재'인 단테에게 느리지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레인저 : 사냥의 시간.]
[루시퍼 :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반역의 칼날.]
방금 총탄이 단 하나도 박히지 않는 걸 확인한 단테는 화력을 늘리기 위해, 랭크 업 기술을 사용하며 회피에 전념. 동시에 양 손에 든 권총과 소총의 탄창을 갈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소환사를 포함하여 모든 '화기'와 '폭발물'의 공격력을 올리는 '사냥의 시간' 기술은 레인저가 사용하는 기술들 뿐만 아니라, 단테 자신의 화력 또한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킬이었다.
이걸로 화력을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 바로 다음 턴 [터보 파이어]나 [인챈트 애로우]를 사용하면 방금처럼 허무하게 막히는 일은 없을 거다.
품 안에는 세열 수류탄도 있으니, 그것까지 동원해서 모든 화력을 때려부으면 제아무리 신령이라 하더라도,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을 터다.
그렇게 판단한 단테는 루시퍼의 기술을 피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성검이 발하는 붉은 빛 하나에 의지해 눈을 빛내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어둠 저 편으로, '루시퍼'는 사라졌다.
어떻게 그 덩치의 신령이 완전히 기척을 지울 수가 있는 것인가. 단테는 순간 당황했지만,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지만, 발을 조금이라도 쉬는 그 순간, 신령급의 공격이 자신을 강타해올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때, 아주 찰나의 순간, 시야 끝에 어렴풋이 모였던 푸른 광자를 본 단테는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미래.'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라. 무지몽매한 자여. 인간과 악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까마귀여. 이 몸을 강림시킨 가련한 한 소녀의 부탁이다. 언제나 나의 앞을 막아서는 용사여.]
* * *
"저. 저건...!"
통신 설비가 마비된 탓에 보고를 늦게 받은 베아트리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장은 심연에 물들어 있었다.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마법을 통해, 시야를 확장시켜 내다보자, 그 심연 가운데에선 단테가 성검을 들고, 심연에서 기어나온 이들과 세상을 새벽의 어둠으로 물들인 대악마와 싸우고 있었다.
"루시퍼... 분명히 봉인했을 터인데. 어째서...!"
베아트리체는 크게 당황하며 단테를 구하기 위해, 마그놀리아의 성벽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서번트'를 쿠훌린으로 바꿔 전장을 향해 단숨에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녀의 소매를 잡은 이가 있었다.
"주인님...이. 위험해요."
에리스, 용사의 요정.
그녀는 필사적인 얼굴로 붉은빛을 휘두르며 푸른 새벽의 광명, 인간을 멸망시키는 의지 그 자체와 싸우는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가 싸우는 건 분명, 인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악마가 증오스럽기 때문이기도 아닐 것이다. 그가 그곳에서 싸우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유다.
그렇기에 그는 더 빛나보였다.
그 어떠한 대의도 품지 않은 칼날이었기에.
"알았어. 에리스. 네 대천사 미카에리스의 힘이라면, 저 루시퍼의 약점을 분명 찌를 수 있을 거야. 가자."
"... 네!"
* * *
키이이이이이잉!!!
키기기기긱!!!
치지지직!!
[이건...]
[성검 : 리버레이터. 적합자의 생명의 위기를 감지. 자동 방어 시스템 가동.]
거대한 푸른 빛의 칼날이 어둠 속에서 단테의 목을 베어 가르기 바로 그 직전, 단테는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등 뒤의 검에 손을 뻗고 그걸 낚아채어 루시퍼의 칼날을 받아냈다.
"으그... 그으윽!!!!"
어마어마한 격통이 단테의 전신을 휘감았다. '서번트'를 소환해두었음에도 격통이 내달린 걸 보면, 분명 원래 소환해두고 있던 서번트는 방금 공격을 '방어'해낸 탓에 데미지를 받아 퇴장한 모양이었다.
[성검 덕분에 목숨을 건졌구나.]
루시퍼가 전개한 마력의 칼날이 사그러들고, 단테는 재빨리 서번트가 없는 틈을 메우기 위해 소환기를 조작했다. 그러나
[소환 : 환수형 리바이어던.]
"리바... 이어던!"
지면을 부수고 거대한 해룡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그가 무엇보다 신뢰하는 고내구형 서번트를 소환해내자, 루시퍼는 코웃음을 치며 비장의 수처럼 꺼내보인 리바이어던을 향해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시위를 당겼다.
[루시퍼 : 샛별의 화살비여. 이 땅을 멸해라.]
수백 개는 되는 푸른 화살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하자, 단테는 루시퍼를 노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땀을 뻘뻘 흘렸다.
뭘 꾸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 없다.
아무리 고내구형 서번트로 교체한들 하더라도 자신의 마력은 현존하는 그 모든 서번트를 뛰어넘는다. 아무리 내구가 높은 리바이어던이라고 할 지어도, 화살비에 꿰뚫리는 그 순간 퇴장당할 것이다.
루시퍼가 '오만'에 빠져 그렇게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
소환되었던 '리바이어던'의 모습에 갑자기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공간이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루시퍼의 손에 들려있던 마력의 활과 화살이 흐려졌다. 자신을 소환한 소환사에게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공간이 일그러진 게 아니다.
이건...
고도의 '환술'이었다.
[뭐... 설마...!]
리바이어던이 소환되었어야할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던 건, 가면을 쓴 어느 마법사... 아니. '신'이었다.
음흉한 동시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정체가, 자신과 똑같은 '신령'이라는 걸 알아챈 루시퍼는 경악하며 순간 뒤로 물러났다.
"로키는 최초로 '소환'될 때, 자신의 모습을 다른 서번트로 속일 수 있어. 그리고 그 상태로 '환술'도 정상적으로 걸 수 있지. 신령 그 자체니. 반역의 천사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반인반마한테 속아 넘어간 기분은 어때?"
설마.
이 상황에서.
자신이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서.
공격을 버티기 위한 고내구 서번트가 아니라.
내구도 약하고, 민첩도 약한. '매력' 스탯이 많이 뛰어날 뿐인 신령인 로키로 교체했다고?
바로 눈 앞에 있는 남자의 담력에 깜짝 놀란 루시퍼가 충격에 휩싸였던 그때. 단테는 성검에 마탄을 때려 넣으며, 환영술 마법을 통해 선공을 다시 도로 휘어잡은 단테는 로키에게 명령을 내렸다.
"로키이이이!!"
[로키 : 변신술=터보 파이어.]
순식간에 서번트 '인간형 레인저'로 변신, 바로 그의 주력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터보 파이어.]를 날렸다. 아직 레인저가 사용했던 [사냥의 시간.]의 랭크 업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휘몰아치는 중화기의 포격.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단테는 세열 수류탄의 안전핀을 죄다 이빨로 뺀 다음 루시퍼를 향해 던졌다.
처음에는 염동력으로 이를 틀어막으려 했던 루시퍼였으나, 화력의 랭크가 올라간 만큼, 막기가 이전보다는 버거웠는지 모든 공격을 틀어막진 못 했다.
[용... 사...!!!]
루시퍼는 괴성을 내지르며 분노를 토했다.
그러나 상황이 마냥 단테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단테나, 루시퍼가 주고받은 그 모든 공격에 아예, 전혀, 마치 아예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영향을 받지 않은 '섀도'는 벌써 단테의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윽...!"
섀도를 떨쳐내기 위해 발로 이를 걷어찼지만, 그의 발길질은 그저 허공을 허무하게 갈랐을 뿐이었다.
섀도에게 먹혀버린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단테는 있는 힘껏 섀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렸지만, 이미 다리에 달라붙은 섀도는 그의 몸을 천천히 기어오르며, 그의 '존재' 그 자체를 이 세상에서 소실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씨발...!! 어떻게 틀어넣은 추격타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단테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 없는 존재의 소멸'에 두려워하고 있던 때였다.
"주... 인니이이임!!!"
[에리스 : 새벽의 대화살.]
에리스가 발한 마력의 빛이 한 번 지면을 비추자, 단테의 몸을 절반 이상 먹어치운 섀도는 그대로 강렬한 빛 아래에서 움츠러들었다.
그러자, 루시퍼는 다시 한 번 경악하며 날카롭게 외쳤다.
[이 어둠 안에서, 진흙을 걷어낼 수 있을 정도의 빛을 비출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의 새벽의 광명뿐. 대체 어떤 녀석이. 새벽의 광명을 다룰 수 있다는 거냐!]
"새벽의 광명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천사 미카에리스의 빛을 삼킬 수 있는 어둠은 없어요!"
에리스는 겁도 없이 루시퍼 앞에서 응수하며 손에 마법의 궁을 소환하며 외쳤다.
그녀가 손에 쥔 '활'이 품은 새벽의 광채를 확인한 신령 루시퍼는 그 순간. 어째서인지 할 말을 잃은 채 공격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요정 에리스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고맙다. 에리스. 너 아니었으면 진짜 죽을 뻔했다."
"저... 이번에는 열차 때와는 달리. 도움된 거겠죠?"
'까마귀의 마법'을 이용해 거의 반쯤 하늘을 날아서 온 베아트리체에게 매달려있던 에리스가 싱긋 미소를 짓자, 단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쿨하게 농담을 던졌다.
"오늘 저녁은 스팸에 콜라다 새꺄. 도와주러 와서 고마워. 마지막 최후가 섀도에게 집어삼켜지는 거라니.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농담 따먹기할 시간 없어 단테."
베아트리체는 새벽의 어둠을 내린 타천사를 노려보며 리볼버를 겨누었다.
"대악마 루시퍼를 죽이려면. 지금 우리 마법 화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마법 능력자 여럿이 모이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야..."
"아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때.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법 능력자가 한 명 있었다.
아직 수리 중이었던, 반파된 상태의 용사의 갑옷을 억지로 껴입고, 산탄총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파티 멤버는...
그렇게 단테가 싫어하는. '버질'이었다.
"방법은 있다. 딱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