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화
로키는 환영 뒤에서 웃는다. (2)
사흘 후 정오.
아직 케르베로스에게서 당한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버질은 꾸역꾸역 병상에서 일어나 용사의 갑옷을 착용하였다.
조금씩 그가 움직일 때마다, 찢어진 상처로부터 피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온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강철과도 같은 의지로 온 몸을 짓이기는 통각을 이겨내면서 일어났다.
그는 디바이너 교단이 자랑하는 기사단, 홀리의 단장이었다. 그에게는 설령 목숨을 맞바꿔서라도, 이 마그놀리아를 지켜내야만 하는 이유와 책임이 있었다.
"크흑...!"
아직 수리가 완료되지 않은 에너지 실드와 총검이 달린 샷건을 챙긴 그는 분노 섞인 얼굴로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직 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가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교단 내부의 인간이 홀리, 마그놀리아를 배신하고, 적에게 팔아넘겼다.
"버질님! 기... 긴급한 보고입니다. 지금 막, 마그놀리아의 통신 관제탑의 기능이 완전 상실되었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터미널에 시스템 회로를 망가뜨리는 테이프를 발견하였습니다!"
"버질님. 베아트리체 님으로부터 긴급한 보고 입니다! 현재 RBCF(레인브릿지 교도소.)에서 와일드 헌트의 움직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레일로드 8 구획을 경유해 현재 교단 기사들을 마도 아머의 성능으로 찍어 누르며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두 개가 버질이 받은 '보고'였다.
대체 어떤 녀석이 무슨 이유로 홀리를 배신한 걸까. 그런 걸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베아트리체의 말에 따르면, 그 데이터 칩 안에 있는 영체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것'. 서번트화해도 충분히 강할 지언데 적은 아마 간단히 그걸 서번트화하는 데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소환기를 이용해 그 데이터 칩 안에 있는 영체를 이쪽 세계에 불러들이고,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해당 영체는 소환사의 말이나, 명령은 듣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야생 영체들이 인간에게 '적대적'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병기가 된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쓸어버리는 병기 말이다. 그런게 마그놀리아에 떨어지게 된다면... 그 이후의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막아야만 했다. 통신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탓에, 이미 지금 가도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서둘러 막으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씨... 발...!!"
* * *
"그 용병. 약속을 지켰군. 정말로 우리 쪽에 붙을 생각인 모양이야."
카이네를 비롯한 와일드 헌트 소대는 마그놀리아 내부의 통신 시스템이 다운된 걸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까지 마그놀리아 본부까지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응도 취하지 않는 걸 보면 내부에서 상당한 혼란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아니면, 통신 시스템이 무너진 탓에 대응 속도가 늦어졌든가.
마도 아머에 몸을 싣고 있던 카이네는 소환해두고 있던 자신의 서번트 '악령형 엘리고르'의 소환을 해제했다.
소환사가 한 번에 소환하거나 사역할 수 있는 영체는 딱 하나뿐. 새로운 영체를 이 자리에 강림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에 소환해둔 영체를 집어넣어야만 했다.
"반인반마의 배달부. 그대 덕에 무사히 오만한 인간에게, 신벌을 내릴 수 있게 되었군. 어디 붙을지 모르는 박쥐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녀석에 대한 평가를 철회할 수밖에 없겠군.
자... 이제 이 곳에 종말을 내리자. 오만한 인간들을 멸망시킨 건, 악마도 영체도, 섀도도 아니다. 그들이 차별한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하여, 그들은 종말을 맞는 것이다!"
카이네는 자신의 뒤에 있던 소대원들을 격려하는 말과 함께 데이터 칩을 소환기에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렇게까지 황무지의 온도가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면에 갑작스럽게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아지랑이의 빈 틈 사이로, 검은 방탄 코트를 어깨에 걸친 '반인반마'의 사내가 공간을 찢고 나온 것처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거대한 대물 저격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그는 정확하게 데이터 칩을 소환기 속에 밀어 넣는 카이네의 오른손을 이 이상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저격'했다.
타아아아아아아앙!!!!!!
"뭐...!!"
순간적인 상황 변화에 카이네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머리에 순간, 어차피 자신이 받을 데미지는 '서번트'가 대신 받으니 상관없다,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카이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잊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칩 안에 들어있는 강력한 영체를 불러들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악령형 엘리고르'의 소환을 해제해두었던 사실이었다.
소환사에게 있어서 가장 '무방비'한 타이밍은 크게 두 개다.
모종의 사정이 있어서 소환해둔 서번트를 '교체'해야만 할 때.
혹은 자신의 서번트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소환기 안으로 돌아왔을 때.
이 때만큼은 소환사도 일반적인 사람과 똑같다. 총을 맞거나, 나이트 워커에 물리면 죽는, 그런 연약한 한 명의 생명체에 불과하다.
대물 저격총의 50 BMG탄은 정확하게 소환기에 틀어박혔고, 섬세한 마법공학 기술의 정수를 끌어모아 만든 기계는 장갑차의 장갑조차 꿰뚫는 강력한 탄환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끄... 헉!?"
붉은 바이저가 달린 방독면을 쓰고 있던 검은 코트의 남자는 손에 있던 저격총을 냅다 버리곤, 그대로 카이네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일반적인 사람을 초월한 그 달리기 속도는 그가 '서번트 보정'을 받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서번트 보정을 받지 못해 굼뜬 마도 아머의 어깨를 가볍게 밟고, 도약한 그는 저격에 맞고 날아간 데이터 칩을 공중에서 낚아채며, 지면을 쭉 미끄러졌다.
"네... 노오옴...!!!"
카이네는 분노 섞인 눈빛으로 반인반마의 배달부를, 단테를 노려보았다. 등 뒤에 거대한 성검을 짊어지고 있던 그는 여유롭게 손에 든 데이터 칩을 코트 안 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으로는 성검을 뽑아 들었다.
"배신했구나! 우리들을!! 유니온과 와일드 헌트를! 이것도 홀리로부터, 그 망할 기사단이 시켜서 한 일이냐! 대답해라! 대답해라아아!! 단테!"
"아니?"
단테는 왼손으로는 권총을 들어 카이네를 조준하며 대답했다.
"나는... 유니온도. 디바이너 소속도 아니야. 굳이 소속이 있다면, 나는 레이븐즈 로지스틱스 소속이지. 이 마소로 물든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람. 그게 바로 레이븐. 나다.
내게는 어느 세력의 이상이 '맞다'라고 결론 내릴 권리는 없어.
나도 지금까지 비즈니스를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니까. 하지만, 이런 불한당에 불과한 나는 단 한 번도. 무기를 들지 않은 인간을 쏜 적이 없어.
총을 잡아 쏠 수 있는 사람은, 총에 맞을 각오가 된 사람 뿐이야. 나는 되어있다. 너도 분명 그렇겠지. 하지만, 저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총에 맞을 각오가 되어있지 않기에, 총을 들지 않았어.
그런 사람들을 싸잡아서 몰살시키려는 네놈을 미안하지만, 가만히 둘 수는 없었어. 미안하지만 여기서 끝이다. 소환기는 내가 저격으로 고장 냈으니까. 네가 믿을 건 마도 아머 하나뿐이야.
얌전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 그렇게 한다면, 디바이너에게 인도당하는 꼴 만큼은 피하게 해 주지."
"잘난 듯이 말하지 마!!!"
카이네는 마도 아머를 몰고 거칠게 단테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단테는 뒤로 백덤블링하며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서번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레인저!"
[레인저 : 터보 파이어.]
그의 등 뒤에서 서번트의 모습으로 몸을 드러낸 용사 파티의 일원은 순식간에 자신 앞에 거대한 중화기들. 개틀링 건 두 자루와 유탄발사기, 로켓 런처 등을 꺼내 보이더니 광역 포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이네의 마도 아머에 집중된 포격은 서번트 보정을 받지 못 하고 있던 카이네의 마도 아머의 장갑을 박살 냈다.
화염과 철조각에 둘러싸인 카이네가 고통 섞인 비명을 토해내고, 더는 공격을 받아낼 수 없던 마도 아머의 해치가 강제로 열린 그때, 단테는 다른 소대원들이 탄환을 자신에게 집중하는 걸 무시하고, 곧장 카이네에게 내달려가 그녀를 마도 아머로부터 빼내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끄허으... 억!!"
"마그놀리아의 인간들을 묻어버릴 각오가 되어있다면. 네놈의 목숨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는 거겠지?"
단테는 성검의 칼날을 카이네의 목에 들이대며 물었다. 당연하지만, 그는 그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검을 한 손으로 잡고, 단테는 카이네의 목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칼날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순간.
파아아앙!!!!
"끄억?!"
카이네의 내뻗은 오른손에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단테의 명치에 작렬했다. 칼날이 그 목을 지나가기 직전에, 내질러진 '마법'의 일격은 성검을 지닌 단테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뭐...!"
"말했잖아...? 망할 마소병에 걸린 이후로... 나는...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그 '까마귀를 다루는 마녀'와는 다르게, 단순한 '염동력'에 불과하지만!"
그때, 카이네는 염동력으로 단테의 코트를 강하게 끌어당기더니, 그가 안쪽 주머니에 틀어넣은 '데이터 칩'을 그대로 자신의 손에 낚아챘다.
칩을 빼앗기게 놔둘 수 없었던 단테는 바로 권총을 꺼내 들어 정확하게 카이네를 향해 총탄을 쏟아냈지만, 카이네 휘하에 있던 소대원들이 사선 상에 바로 끼어들었다.
그녀가 이루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져도 상관 없다.
종족은 악마와 인간으로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디바이너를 향한 '증오'만큼은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했던 그들은 기꺼이 마소병에 걸린 단 한 명의 인간을 위해 단테의 앞을 막았다.
"좀... 비켜!"
성검을 뽑아들어 닥치는 대로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가로막으며 전진했지만 그때 '카이네'는 자신이 지닌 마법 능력을 믿고, 데이터 칩이 부서질 기세로 꽉 쥐고는 외쳤다.
"인간의 멸망을 그 누구보다 꿈 꾸었던 마왕의 영체여!!! 나의 목소리가 그대의 귀에 닿는다면. 인간을 정화할 새벽녘의 위광을 내게 내려주소서!"
"이런 씨..."
아무리 마법 능력자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데이터 단말 없이 데이터 칩 안에 봉인된 영체를 꺼내서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그럴 가능성'이 남아있던 만큼, 단테는 '레인저'의 민첩 보정을 등에 얹고, 성검으로 카이네의 팔을 잘라내기 위해 있는 힘껏 도약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났다.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카이네의 '마력'에 반응한 건지, 아니면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의 편린이 지금 그 대가리를 들이민 건지. 데이터 칩에 봉인되어있던 '영체'의 기운이 스멀스멀 튀어나와서는 카이네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것은 카이네의 '마나'를 바탕으로 점차 자신의 모습을 이 땅에 구현화시키기 시작했다.
왼쪽에 뻗은 시커먼 날개, 허리춤에 찬 칼. 진한 마력을 품은 푸른 빛의 눈동자,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진하게 흘러나오는 '악령' 특유의 짙고, 칙칙하며, 어두운 기척.
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검을 고쳐 쥐었다.
[200년. 자그마치 200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인간은 무엇 하나 변한 게 하나도 없군. 인간들에게는 과연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학습의 개념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뼈 아픈 상처로부터 그저 눈을 돌리고 있는 것뿐인 것인가.]
단테는 기척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영체의 '급'은 신령급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서번트화도 거치지 않아, 거의 '순수한' 신령 상태에 가까웠다.
단테나 스카디가 보유한 '신령급' 서번트인 로키나 스카디는 서번트화를 거쳤기 때문에, 다른 서번트들보다 조금 더 특수한 마법을 쓸 수 있거나, 스테이터스가 다소 높은 것에 불과하다.
이 녀석은 '원본 그 자체'에 가까운 영체다. 진짜 대기 중에 흩뿌려진 마나를 전부 이용한다면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
일반적인 소환사로는 거의 맞상대가 불가능할 정도의 격이 느껴지자, 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이를 악물었다.
[세대가 지나, 종족이 바뀌고. 한 번 멸망했을 세계에서도, 성검을 지닌 용사여. 그대는 또 '나'의, '악마'의 적이 되는가!]
새벽의 천사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영기 앞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단테는 어째서 이 데이터 칩의 회수를 그렇게나 바랬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환기를 통한 정식 소환도 아니고, 마법 능력자에 의한 열화된 소환이었음에도 이 정도라면...
'진짜'는 얼마나 강한 거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여기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에게서 '완전히' 도망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카이네에게 잘난 듯이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여기서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그 의미가 없다.
단테는 성검을 치켜들어 대악마, '루시퍼'를 향해 그 칼 끝을 겨누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눈빛만으로 그는 적의를 드러냈다.
인간을 멸망시키려자 하는 악마의 의지 그 자체.
그 앞에 선 단테는 검을 바로 잡았다.
* * *
단테 장비 일람.
성검 : 리버레이터.
M1911, M4A1.
세열 수류탄 3개.
펄스 수류탄 2개.
서번트 엔트리.
1. 인간형 레인저.
(민첩 특화)
2. 신령형 로키.
(매력/마력 특화)
3. 악령형 잭 오 랜턴.
(마력 특화)
4. 환수형 리바이어던
(힘/내구 특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씨 전작 완결 냈는데도 선작을 천을 못 넘어봤는데 공모전 버프로 살면서 천을 넘겨보네.
오늘은 하나 더 올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