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침의 장(5)
5.
살의를 품고 다가오는 잿빛 그림자.
그리고 주변을 가득 매운 채 내려다보는 다수의 시선들···.
그 흉포한 기세에 마녀는 잊고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또 유린당할 거야. 남자들의 장난감이 되어서, 부당한 힘에 억눌린 채 망가질 때까지···.’
세상은 어찌 이토록 잔혹하단 말인가?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했건만, 괴로운 과거로부터 달아나려고 발악했음에도 돌고 돌아 제자리라니?
“걱정마라.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그거야말로 빅터가 건넬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였다.
부웅!
묵직한 압력이 마녀의 목을 향해 내리박힌다.
해초처럼 덩어리진 머리칼이 새빨간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마녀의 심상 세계에서는 쭉 지나간 악몽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끔찍한 편린은 현실을 집어삼키고, 이성마저 흐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였을까?
일순간, 그녀의 정신은 잠깐이나마 육체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 몸뚱이는 그렇게 재설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녀가 인간에게서 멀어진 형상을 가진 그 순간부터···.
“아아아아아아!”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를 훨씬 넘어선 비명과 함께, 머리를 잃은 몸이 빅터에게 달려들었다.
양팔과 8개의 다리를 이용해서 그의 몸을 막아 세운 것이다.
“···부족해! 한참 모자라! 나는 앞으로도 증오할 거야! 계속 미워할 거야! 더··· 더욱 죽일 거야!”
한때 사랑이 넘쳤던 자는,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그만큼의 증오도 함께 얻게 되는 것인가?
그 감정의 공명은 우수한 정신 감능력을 가진 빅터의 머릿속을 더욱 크게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약간의 틈을 만들고 말았다.
하나, 빅터는 동요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예지를 통해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있었기에···.
“허튼 짓을···.”
퍼엉!
빅터는 완력만으로 그 저항을 완벽히 제압했다.
오른팔로 촉수를 찢고, 주먹 쥔 왼손이 가공할 위력의 파쇄권을 적중시키는 것으로.
그런데, 이번엔 잘려나간 목 아래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머리카락이라고 여겼던 기관은 사실 문어나 오징어의 촉각이었어.
두상을 덮고 있던 속살 아래에 빨판이 존재했던 것이다.
뒤집어진 시야에도 아랑곳 않고, 마녀는 머리만 남은 육신을 물컹한 지면에서 튕겼다.
‘마기··· 이 몸을 회복시킬 마기만 있다면, 나는 다시 부활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서!’
궁지에 몰린 마녀가 본능적으로 바란 것은 순도 높은 마기의 결정체인 맘몬의 적석이었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처음부터 이를 목적으로 사냥꾼들이 탄 배를 쫓았던 거야.
그리하면 한 동안 수면 위로 떠오를 필요 없이 중합체를 가동시키기에 충분한 양을 얻을 수 있기에.
그리고 당장 그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 이는 아랑이었으니···.
“마기를 내··· 놔아아아!”
그나마 형체라도 남아있던 인간의 껍질이 벗겨지고, 아귀처럼 크게 벌어진 입이 소년을 향해 뛰어든다.
당연하게도 아랑은 반응하지 못한다.
다른 사냥꾼들이 막아내기엔, 마녀의 머리가 날아간 궤도 또한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런 돌발 상황에서도, 빅터는 여전히 침착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이것도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어리석긴. 그건 너에게 최악의 선택지였다.’
마녀가 짜낸 결사의 시도로도 빅터의 고차원 확률 예측을 넘어설 수 없었다.
화염의 확산, 번개가 내리치는 영향권까지 계산할 수 있는 그의 능력 앞에선··· 마녀의 발악따윈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아.”
공격을 감행하던 마녀는, 끝내 소년을 해코지 하지 못했다.
날카롭게 곤두세운 촉수와 송곳니가 닿기 직전, 그녀는 스스로의 행동을 멈추었기에.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다.
‘어째서야? 아이가··· 왜 이런 곳에 어린 애를?’
아랑의 앳된 얼굴을 마주본 시점에서···.
뭉개지는 육신을 보충하고자 마기를 갈망하던 마녀의 정신이 순식간에 제정신을 찾았다.
과거, 행복하던 시절 속에서 그려진 자신의 아이의 모습이···.
눈앞의 소년과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에.
“···아랑!”
마녀가 망설인 것은 불과 수초, 그러나 사냥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조금 빨랐다.
앙리가 아랑을 품속에 안고 뒤로 이탈하는 사이···.
로이드가 은사로 마녀의 머리를 봉쇄.
이윽고 리리 리가 이도류로 쪼개든 링 블레이드로 촉수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의외로 결정타의 기회는 가장 늦게 끼어든 니엘에게 주어졌으니···.
“하아아앗!”
콰직!
두개골이 연골화되어 흐물흐물한 머리통에 대검이 묵직하게 박혔다.
그것은 마녀의 뇌 일부와 시신경을 파고들어 완전히 회생불능으로 만들어버렸다.
단,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마녀는 즉사만큼은 피할 수 있었어.
심해의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개수한 육체가 죽음을 최대한 지연시켜준 덕분이었다.
“겍··· 케헥, 그··· 가긱!”
“칫, 아직도 살아있다고? 진짜 끈질기네, 이 괴물···!”
“잠깐, 니엘. 물러서라.”
“어? 덩치 큰 형씨, 왜 말리는 건데?”
“네가 나설 차례가 아니다.”
“그럼?”
“내 제자에게 양보해라.”
빅터가 말한 제자란, 방금 마녀의 움직임을 제지시킨 소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랑은 상대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 괜찮을까요, 빅터 사부?”
“음.”
“제 생각은··· 이미 알고 계시죠?”
“그래.”
빅터는 순순히 앞을 비켜주었다.
징그럽게 녹아가는 마녀의 두상에게 다가면서도, 소년은 겨냥조차 하지 않았다.
등에 걸쳐 맨 엽총의 총구는 위로 향한 지 오래였다.
“···아까 당신이 했던 말을 들었어요. 나쁜 사람들에게 남편 분이랑, 아이까지 잃어버렸다고.”
“가그··· 극!”
“그래서 마녀가 된 거군요. 소중한 걸 빼앗아간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때, 아랑의 목소리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잔뜩 떨리고 있었으니···.
“그래도··· 그건 잘못되었어요.”
이때, 그 광경을 지켜보면 니엘이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동방의 말만을 하던 아랑이, 어찌된 영문인지 서양의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어? 저 동방인 꼬마, 우리 말 할 줄 알았던 거야? 그럼 왜 여태 내 말을 무시하고···.”
“쉿. 조용히 좀 하셔, 애꾸 아가씨. 한창 중요한 장면인데.”
로이드는 알고 있었다.
인간의 뇌 구조를 극한까지 파고든 마르 덕분에, 그가 가진 통역의 능력이 좀 더 넓은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걸···.
즉, 아랑은 이 중합체의 몸속에 들어온 시점부터 쭉, 마녀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고 있었다.
“갸아···.”
마녀는 뭉개진 성대와 녹아버린 목구멍에서 부글거리는 소리만 낼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년의 말에 의문을 표하고 있음은 명백해보였다.
그 증거로 남은 눈깔을 필사 위로 치켜뜨고 있었으니.
이어서 아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빅터 사부께서 그러셨어요. 당신은 인간을 너무 많이 죽였다고··· 지나칠 만치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요.”
“기긱···.”
“하지만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선 저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죠. 누군가를 찢어발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단 걸요. 그 슬픔을 멈추려면 달리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저도··· 저도 동생을 잃었을 때 그랬어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되었던 거예요. 왜냐면···.”
소년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속에 담긴 진심을 토해내며, 마녀에게 거의 비는 것처럼 말했다.
“그런 짓을 하면, 제 동생 아유처럼 또 다른 비극이 생기고 마니까!”
증오는 전염된다.
인과를 거쳐서 증폭된 미움이 확산되어 이윽고 불행이라는 형태로 불특정다수에게 흩뿌려진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
그렇기에 쉽사리 막을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년은 슬픔을 알았다.
간절히 껴안은 작은 생명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감각은 물론, 지키고자 했던 사소한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까지···.
“괴로운 건 우리로 충분해요. 힘든 건 나뿐이면 되는데··· 왜 모두들 더욱 불행한 선택을 하는 거죠? 빼앗긴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이젠 신물이 나. 그런 건 싫어요. 더는 참을 수가 없다고요!”
눈물.
흑발흑안의 이국적 외모를 가진 소년이 한탄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그 흐느낌에는 타인의 비극을 자신의 것처럼 여길 정도의 순수한 공감이 담겨있었다.
“뭐야? 아랑, 혹시 우니? 너 울보야?”
“···시끄러, 리리 누나. 잠깐이라도 내버려 두면 안 돼?”
“어쭈, 이게 건방진 소릴 하네? 그런데 너 참 별나다. 이깟 마녀가 대체 뭐가 불쌍하다고.”
“···.”
“자자, 꼬마 아가씨. 그리고 내 자랑스런 애제자 아랑이여, 이제 슬슬 물러나. 떨어지라고.”
“로이드 사부···.”
“전부 끝났어. 저 마녀는 곧 죽어. 우리가 이긴 거야.”
그의 말마 따라, 빅터의 도끼에 당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녀의 잘려나간 목이, 절단부가 이미 굳어가는 중이었다.
‘아, 나는 지금껏 무엇을···.’
사람에겐 돌이킬 수 없는 길이 있다.
저편의 존재에게 혼을 팔고, 그 대가로 상궤에서 벗어난 응징을 원수들에게 내린 시점에서···.
마녀는 언제까지로 빠져들 뿐인 심연 속 수렁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 그랬었구나. 나의 복수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을 것을.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과오를 저지르기만 했어. 어느새 해적들의 악행보다 더욱 잔악한 짓까지···.’
어째서인가?
그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 깨달은 거지?
죽음의 경계에 직면한 상태였건만, 인어의 얼굴을 한 마녀는 실로 오랜만에 맑아진 의식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어느새 마녀의 의식을 지배하던 아스트랄의 주박이 풀려났어.
이는 기적인가?
마녀가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겨 육체를 버리고 말았는가?
아니, 어쩌면··· 그 진짜 이유는 인간을 부정한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한 소년의 존재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떤 교육을 받으면 저렇게 착한 아이로 자랄 수 있는 걸까? 어떻게 키우면 나 같이 사악한 여자에게까지 손을 건넬 정도로···.’
의식이 멀어져, 마녀는 곧 자신의 종말을 예감했다.
‘안 돼. 아직이야. 지금은 곤란해. 조금만··· 아아, 제발! 신이시여!’
하지만 이대로 사라질 순 없어.
석화되어 문드러져가는 와중에도, 마녀의 하나 남은 눈동자는 소년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제가 저지른 죄의 대가는 얼마든지 지겠어요! 지옥에 가서 얼마든지 고통받아도 좋아요. ···하나, 저 아이만큼은 안 됩니다. 저들을 돌려보내야··· 태양이 비치는 세계로 내보내야 해요! 저 다정한 아이를··· 아들과 같은 또래인 저 소년이 내가 만든 이 흉측한 고깃덩어리와 함께 가라앉힐 순 없어! 그것만큼은 결코!’
그때, 레비아탄 급 중합체의 내부가 움직였다.
“으, 어아아아! 이봐, 형씨들!? 또 무슨 일이야? 대체 뭔데에에에?!”
“칫, 마녀가 죽어서 통제권이 벗어난 건가?”
“로이드 씨!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해주세요!”
“아, 물론이죠! 앙리 누님은 저만 믿으십셔. 실은··· 언제든지 귀환할 수 있게 굵은 은사 하나를 포르투나 호의 뱃거리에다 걸어놨걸랑요. 이렇게 살짝 손끝만 튕기면···.”
뚝.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바로 옆에서 들은 니엘은 하나뿐인 눈을 크게 뜨더니.
“이··· 이봐, 멀대 형씨? 지금 그거 설마?!”
“하, 하하. 아하하하. 이거 큰일 났네.”
사역마의 위액을 계산에 넣지 못한 모양이야.
로이드는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혀 실소를 터뜨렸다.
니엘이 참다못해 그의 멱살을 낚아챘다.
“뭘 쪼게고 자빠졌어?! 그거 생명줄이지? 방금 끊어진 거 우리 목숨 아니냐고!?”
“워워, 진정해. 너무 열 내지 말라고, 애꾸 아가씨야.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법이라고. 특히 우리 임무에서 예상대로 안 돌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야. 멀리 갈 것도 없이 저번만 해도···.”
“아니, 헛소리는 그만하고! 그럼 무슨 수라도 있어?”
“그야, 뭐··· 나머진 우리 대장한테 맡겨야지.”
“누가 대장인데? 저 형씨?”
“달리 있겠냐?”
쿠궁!
다시 한 번 사방이 진동한다.
몸체의 각도가 순식간에 위로 향해, 일행은 각자 자신이 가진 무기를 바닥에 찔러 넣고 몸을 지탱해야만 했다.
“으아아아, 빅터! 이젠 우리 어쩌면 좋냐?”
모두가 비틀거리며 이 상황에 놀랐지만, 빅터만은 의연한 태도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내장에 박힌 도끼를 잡은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 중합체는 머지않아 알아서 부상할 테니.”
“엥? 뜬금없이?”
“바다의 마녀가 우릴 풀어준 거다.”
“뭐라고? 왜?”
“죽기 직전에 변심했더군. 아이의 순수한 호소에 넘어가서.”
“설마···.”
“가끔은 기적 비슷한 게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이지.”
로이드는 아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소년은 눈물을 지운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황당하네. 야, 빅터. 이것도 네 예지가 점지해준 미래란 거냐? 이걸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어?”
“아니,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였을 뿐이다.”
빅터는 확신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선 수많은 변수가 일어나.
멋대로 그려지는 예지의 장면들을 지우기 위해 애써 능력을 억누르고 있었다.
쿠우우웅!
빅터가 말했던 대로, 곧 중합체는 미약하게 남은 마기를 전부 소진하여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리 같은 입이 벌어지자마자 맹렬히 파도가 스며들어왔지만, 휩쓸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이! 선장님! 이쪽이야! 여기라고!”
니엘이 맨 먼저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며 크게 소리쳤다.
마침 그녀가 가리키는 곳 저 멀리에 포르투나 호의 돛이 펄럭이고 있었다.
하늘은 어느새 정돈된 상태.
지평선 너머로 황혼이 진다.
암운이 흩어지고, 바다의 풍랑도 서서히 얌전해지고 있었다.
마녀의 결계가 사라진 시점에서 바다가 잔잔해진 것이었다.
철퍽!
여울의 잔물결에 중합체의 몸이 붕괴된다.
촉각이 바닷물에 녹아들어, 이 거대한 마수가 소멸되는 데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 보였다.
다행히 포르투나 호가 선회한다.
이쪽의 존재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갑판 위의 선원들이 다급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랑은 슬쩍 자신의 사부 곁으로 다가갔다.
“왜 그러지, 아랑?”
“하나만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음.”
“결국 저희를 구해준 건··· 그 누나였던 거죠?”
“그래. 살라키아가 마지막 속죄의 의미로 우릴 돌려보내주었지.”
“그럼, 그러면··· 최후의 순간만큼은 그 누나도 인간으로 돌아온 거 맞죠?”
“멍청한 소리 하지마라, 아랑.”
빅터가 손을 들어 올리자, 아랑은 반사적으로 눈부터 질끈 감았다.
차마 마녀 사냥꾼의 앞에서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인간이었다. 언제나 인간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
“네?”
“잘 기억해 두거라. 이 별에서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를 넘어서 저주까지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뿐이란 걸.”
“···.”
“하지만 그것만이 사람을 정의하는 건 아니지.”
투박하고 커다란 손이 소년의 어깨를 토닥인다.
이는 빅터가 건네는 나름의 격려였다.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에 반성하며, 미래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또한 우리의 본모습이다.”
“빅터 사부···.”
“아랑, 우리가 지금껏 무찌른 모든 마녀··· 그리고 앞으로 싸울 마녀들도 전부 인간이다. 그녀들이 제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하려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지. 너도 이제 충분히 알았을 거다. 그렇기에 같은 인간인 우리가 놈들을 저지해야 한다는 걸.”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비극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앞으로 너는 강해질 거다, 아랑. 어른이 되어도 그 올곧은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
빅터의 손이 떠남과 동시에 포르투나의 뱃머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선원들이 던진 밧줄을 로이드가 받아들이고···.
아랑은 물속으로 중합체의 잔해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선풍이 불어오는 가운데, 사냥꾼의 무리는 다음 전장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