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56화 (156/186)

조침의 장(3)

3.

신화에 나올 법한 존재.

마녀가 만들어낸 거대 해저 괴물의 위장 속은 과연 어떤 형태로서 존재하는가?

물렁한 내장의 표면에 착지한 일행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마르였다.

그녀는 자신의 흥미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해설을 이어갔다.

“이거 놀라운 걸. 조잡한 인공생물치곤 완성도가 꽤 높구나. 바깥에서 봤을 땐 무척추동물의 모습이었는데, 내부는 또 골격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니···.”

“하, 완성도는 얼어 죽을. 마녀의 사악한 작당을 칭찬하는 거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서로 다른 계통의 생물을 이어 붙여서 이만한 결과물을 내는 건 아무나 못해. 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대상이야.”

“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

“로이드란 개체, 투덜거릴 심적 여유가 있다면 저기 튀어나온 돌기에 좀 더 다가가 줄래? 가능하면 표본을 채취하고 싶어.”

“미안하지만 거절이야. 난 비위가 약해. 이렇게 비리고 흐물흐물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걸랑.”

“···너란 개체는 일일이 강제성을 부여해야 말을 듣는 걸까?”

“이봐요, 마르 여사. 호기심도 좋고 연구도 좋은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거드으으으으은?!”

축축한 진홍빛 격벽 사이로 로이드의 비명이 울렸다.

그가 불만 가득한 소리로 울부짖은 까닭은, 여섯 명이 닻에서 이탈하자마자 벌어진 돌발 상황 때문이었다.

“쉴 틈이 없잖아, 제기랄!”

중합체의 위액이 역류해온다.

강산으로 추정되는 걸쭉한 진물이 범람하기 시작했어.

내부에 들어온 이물질을 그대로 녹여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사냥꾼들의 침입을 허용한 이 시점에서, 중합체의 방어기제는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덩치 큰 사냥꾼은 자신의 손에 들려진 도끼자루에 힘을 실었다.

퍼벅!

체액과 함께 측면의 살점이 으깨지며 또 다른 입구를 드러냈다.

내부에 꽤나 넓은 공간이 보인다.

소화기관 말고도 마녀가 오고가는 통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빅터 일행은 그 곳으로 들어가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앙리, 놈의 위치는?”

“가까워요. 직선거리로 약 이백 오십 걸음 정도···. 아니, 살짝 이동하고 있네요.”

“겁을 먹었나보지.”

“네. 박동이 있는 뭔가를 방패삼아 후퇴하고 있어요. 얼굴 보기가 쉽진 않겠는데요?”

중합체의 주인이 자신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침입자들의 동향을 모를 리 없어.

빅터 일행의 돌입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잡졸인가? 얼마나 있지?”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많다기보다는 커요. 반응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네요.”

과거, 그녀가 표류자에게 얻은 재능은 ‘지령’의 강화만은 아니었다.

빅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신감응능력이 한계까지 증폭되었다면···.

사냥꾼들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감지능력의 소유자인 앙리에겐 다른 방향의 개화가 이뤄졌다.

뇌의 구조가 변한 덕분에 생명의 기척까지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어떤 가능성의 개화···.

어쩌면 먼 훗날 사람이라는 종이 진화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나, 당장 앙리는 자신의 힘에 확신이 없었다.

전투요원으로 활동한 게 오래 전인 것과 별개로, 특유의 유순한 마음씨가 무의식에 거부감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스승 베누다의 곁을 지키는 것이 익숙해.

상황을 파악할 순 있어도, 통솔하거나 주도하는 일 따윈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앙리는 의견을 묻는다.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온전하게 써먹을 수 있는 대장에게.

“이제 어떻게 할까요?”

“끌어내줘야지.”

빅터가 단호히 답했다.

그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든 간에 정면으로 돌파할 셈이었다.

“하, 뭘 해도 간단히 일이 풀리진 않는구만? 꼬맹이들아, 너희도 긴장을 풀지 마. 지금부터가 본격적이니까.”

제자들에게 경고하며, 로이드는 마르를 닦달해서 손가락의 재생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마침 저 멀리서 마녀가 보내온 것들의 접근해오고 있었기에···.

“마녀 놈, 우리가 들어와서 마음이 급해졌나?”

썩은 내가 진동하는 마물의 뱃속이 요동진다.

그것은 사냥꾼이 아닌 니엘이나 아랑조차 기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가자, 로이드.”

“오우.”

적이 채 보이기도 전에, 그들은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두꺼운 육벽의 너머에서 암약하고 있을 마녀를 처단하기 위해서.

“빅터 씨, 로이드 씨. 심장소리는 저 앞에서 들리고 있어요.”

피로 칠갑이 된 새빨간 원통의 입구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파앗!

빅터가 조금 더 앞장서 다가가자, 그 사이에서 흰색의 무수한 다발이 튀어나왔다.

놈들은 마치 고래회충의 몸집을 사람의 크기만큼 키운 듯 보이는 형상이었다.

“흠!”

접근과 동시에 난도질.

밧줄의 모습을 마물들은 빅터가 내지르는 도끼에 여지없이 쪼개졌다.

“하아앗!”

그에 질세라, 로이드의 은사도 예리한 궤적으로 무수한 적을 튕겨낸다.

연달아 회충이 한데 뭉쳐서 무지막지한 기세로 뻗어 나왔지만, 이들 둘을 정면에서 막아내기에 역부족으로 보였다.

더욱이, 이들에겐 엄호사격을 해주는 아군도 존재했으니.

철컥!

타아아앙!

격철을 당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긴 총신이 불을 뿜는다.

엽총을 든 아랑이 빅터와 로이드의 배후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족족 요격한 것이다.

아군이 맞지 않도록 최대한 집중.

빠르게 방아쇠를 당기지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였다.

가히 신동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솜씨야.

그 활약에 옆에서 보고 있던 니엘이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뭐야, 이 동양인 꼬마? 엄청난 명사수였잖아?”

서양의 언어이기에 잘은 몰라도 유난 떠는 표정만은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소년은 속으로 담담하게 생각했다.

자만에 빠지기는커녕, 당장의 급박한 싸움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부단히 발악하면서.

‘아직 멀었어. 이제 겨우 연습의 성과가 조금 나오는 정도에 불과해. 더 분발해서 사부님들께 도움을 드려야···.’

그 모습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일까?

드디어 니엘이 등에 맨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이런 어린애도 제대로 싸우는데, 전직 용병인 내가 아무것도 못하면 가오가 안 살지!”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의 검신이 번쩍이자, 바닥을 통해 접근한 편충의 무리가 뭉텅이채로 절단되었다.

거칠게 칼집에서 뽑아든 것치곤,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궤적이 깔끔해.

그녀의 검술은 스스로 자부하는 수준만큼은 되는 듯 보였다.

니엘은 빅터와 로이드의 바로 뒤에 붙어 위치를 잡았다.

“좋아, 이대로 전진한다.”

네 사람의 활약으로 회충의 무리는 좀처럼 포위망을 좁히지 못했다.

그래도 빈틈은 있었다.

교묘하게 천장과 옆면을 우회해서 안쪽으로 몇 마리가 파고든 것이다.

“···앗?!”

오지의 강가에 사는 식인 물고기들이 떼 지어 먹잇감을 급습하듯이···.

놈들은 사방에서 아랑에게 뛰어들었다.

이어서 흉측한 이빨이 소년의 목덜미를 노렸다.

하지만, 빅터는 등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예지를 통해서 누군가가 아랑을 보호해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예에에!”

링 블레이드.

유려한 곡선의 날붙이가 허공을 가른다.

동방의 무희가 추는 칼춤이 소년의 목숨을 살렸다.

“아랑! 너, 나한테 빚진 거다?”

“어, 고마워. 리리 누나.”

“히히. 알면 됐어! 그럼 이따 돌아가면 네 간식 사탕 절반은 나한테 주는 거다?”

“뭐? 그런 게 어디 있···.”

“리리 리, 철없이 굴지 마렴. 지금은 전투 중이잖니?”

“어?”

“아랑도 넋을 놓지 마. 계속 손을 움직이렴.”

“네! 앙리 사부!”

소녀와 소년은 끝내 눈치 채지 못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몇 번이나 자신들이 위험에 빠졌단 사실을.

그리고 그 모든 걸 막아내 준 이가 바로 배후의 선 여인이었다는 것을···.

‘모자란 내가 애들에게 사부라 불리다니, 대스승께서 보셨다면 얼마나 놀리셨을지···.’

차분한 목소리가 울리는 와중에 앙리의 실루엣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린다.

어느새 그녀가 신은 가죽 부츠 아래에 선혈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허공에는 육편이 날리고 찢겨진 껍질이 흩뿌려졌다.

찰나의 순간, 눈 깜박할 사이에 무언가를 걷어찬 것인가?

신묘한 보법과 체술···.

그것은 빅터가 보인 움직임보다 더욱 빠르고 신출귀몰해.

정안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겐 그저 잔상이 살짝 일렁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그래. 너는 도망칠 수 없다.”

눈에 띠게 움츠려들기 시작한 괴물의 위장을 노려보며, 빅터가 읊조렸다.

그의 암안이 마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공포의 감정을 포착했다.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나?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렇다면 오산이군. 네 년의 운명은 우리가 탄 배를 건드린 순간부터 정해졌다.”

이빨을 세운 십 수 마리의 다발이 어깨와 팔에 들러붙었지만, 빅터는 이형의 도끼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해결해버렸다.

이윽고 막다른 길.

제아무리 큰 중합체라 해도, 인간의 걸음걸이가 몇 분정도 이어지면 끝에 도달하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이제 궁지에 몰린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그늘에 가려져있었지만, 당혹한 낌새가 역력해보였다.

“오, 오지 마!”

부욱, 부우욱!

입구의 크기가 점차 줄어든다.

장기가 수축하고 있었다.

마녀는 최후의 발악으로 중합체의 내부를 조여서 사냥꾼들의 접근을 차단할 셈이었지만···.

“어딜!”

그조차 빅터의 거침없는 돌파를 막아낼 순 없었다.

덩치 큰 사냥꾼이 손을 뻗는다.

그는 가루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수한 완력만으로 조여든 피와 살의 격벽을 뚫어버렸다.

빅터의 오른손엔 그 너머에 숨어있던 누군가 목이 쥐여져 있었다.

“···커, 커헉!”

“마지막까지 번거롭게 만들어주는군.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잠시··· 잠깐만, 대화··· 대화를 하자! 부탁이야! 내 이야기를 들어 주···.”

빅터는 발길질로 눈앞의 고기 벽을 걷어찼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마녀의 몸을 강제로 바깥까지 끌어냈다.

기분 나쁜 온기가 남은 미끈한 바닥에 상대를 강하게 내팽개치며, 빅터는 매서운 눈길을 보냈다.

“꼬라지가 참 가관이군. 아예 인간이길 포기했나?”

“으, 으우···.”

“짐승만도 못한 낯짝이다.”

인상을 찌푸린 빅터의 표정에 적나라한 혐오가 드러난다.

마녀의 외견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단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해.

그 생김새가 어지간한 사역마나 마의 존재들보다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혀, 형씨들!? 이거 인어지? 전설 속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물러서, 애꾸 아가씨. 너무 다가가지 마! ···야, 빅터. 이거 마녀가 맞기는 한 거냐?”

“그래.”

“그 뭐시기, 프라이케르 가이스트같이 자아를 가진 사역마가 아니라?”

“틀림없다. 이것에게선 마녀 특유의 역겨운 사고방식이 느껴지니까.”

“그건 것치곤 생긴 게···.”

잠시 후, 마르가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이질적이야. 자기 몸을 수중생태에 맞춰 개조하다니, 이렇게 무모할 수가!”

그랬다.

그 형태는 마르의 설명처럼 육지가 아닌 물속에 어울리는 것으로···.

사정을 모른다면 니엘의 말마따나 인어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피부엔 물고기의 비늘이 보인다.

다리엔 이족보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8개의 연체촉수가, 겨드랑이 아래에는 아가미로 추정되는 갈라진 틈이 간헐적으로 들썩였다.

양쪽 손가락 사이에 넓게 자리 잡은 물갈퀴 정도는 애교 수준이야.

해초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머리칼 밑으로 드러난 눈동자는 마치 심해어의 안구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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