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침의 장(2)
2.
“···대체 뭘 하는 거야, 저 형씨들?”
키를 잡고 있던 니엘이 미심쩍은 눈으로 어깨너머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본다.
그녀의 왼쪽 눈동자에 비춰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이 그 자체.
마녀 사냥꾼들이 신묘한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건 익히 알았던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너무나···.
“자, 빅터! 이거면 되냐?”
“충분하다. 너도 할 때는 하는군.”
“하하! 이게 다 미인 분께서 지시를 잘 내려준 덕분이지.”
“어머나, 로이드 씨도 참···.”
“아뇨아뇨. 칭찬을 사양하실 필요 없습니다, 앙리 누님. 눈썰미가 좋으신 걸요? 제 독단으로 그냥 설치했다면 지금쯤 선체가 튕겨져서 날아갔을 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실실거리며 앙리에게 떠들어대는 로이드.
그 경박한 웃음에, 마르는 다른 이에겐 들리지 않게 귓속말을 건넸다.
“···로이드란 개체, 너 방금 저 암컷한테 윙크한 거?”
“엉? 그게 왜?”
“감히! 하필이면 내가 의태한 시각 기관을 써서 추파나 던지다니!”
“어쭈, 너 설마 질투라도 하···.”
“저급해! 천박한 짓이야!”
“우, 우악! 그만! 파직파직은 이따가 하라고! 나 지금 이거 잡고 있는 거 안보이냐?! 놓치면 큰일 난단 말이다!”
“잘 됐네. 이걸로 네 육체에 전하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 확인해볼까?”
“아, 아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무튼 내가 나빴어! 그러니까 용서 해줘, 마르 님!”
“마르, 로이드. 장난은 적당히 쳐라.”
“그치만 빅터란 개체, 로이드란 개체는 내가 선택한 지적생물체라기엔 너무 행동이 경박하단 말이야. 동거하는 입장에서 내버려둘 수가 없어.”
“네가 이해해줘라. 인간이 하등한 생물인 만큼, 너희 기준에서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빅터, 너 언제부터 그쪽 편이 된 거냐아아아!?”
심각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만담.
마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니엘로서는 더욱 사냥꾼들의 대화가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불과 수 분 사이에 저 일행이 뚝딱 만들어낸 어떤 장치는 보통이 아니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웃음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
장장 100피트(30미터)에 달하는 길이를 자랑하는 포르투나의 시작과 끝.
그 중앙에 위치한 여러 개의 돛과 뱃머리 사이를 뭔가가 대각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것은 양쪽에 단단하게 휘감긴 수 십, 수 백 겹의 은사···.
바로 로이드가 그림자에 한계까지 흘려 넣어 늘어뜨린 것을 감고, 또 감아 만들어낸 투명한 밧줄이었다.
한 눈에도 가공할 장력이 담겨있을 게 틀림없다.
니엘이 보기엔 그 용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그건 폭풍에 맞서는 와중에 그 작업을 도와야만 했던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놀라는 것은 지금부터였으니···.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무뚝뚝한 한 마디와 함께 빅터가 뭔가를 들어올렸다.
그 행동에 주변의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덩치 큰 사내의 양팔에 들린 물건이···.
무지막지한 크기와 더불어, 수 톤에 육박하는 갈고리 모양의 금속 덩어리였기 때문에.
그것은 배를 고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
바로 닻이었다.
“잠깐 빌리도록 하지.”
“사, 사냥꾼 나으리?! 그건 어떻게···.”
“미안하군. 하층에 박힌 캡스턴Capstan에서 떼어냈다.”
“아니, 그보다 어디에 쓰실 셈입니까?”
“조침釣針(낚시 바늘) 대용이다.”
“예에에에?!”
경악하는 선원을 뒤로 한 채, 빅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닻을 은사가 휘감긴 장치 앞으로 옮겨왔다.
“어이쿠, 조심! 빅터, 네가 아무리 장사여도 이거 자칫하면 선체가 뒤집어지겠는데? 지금 막 무게 중심이 변한 게 느껴졌다고.”
“음, 서두르지. 모두들 올라타도록.”
“이, 이 미친 형씨들 같으니라고오오오!”
니엘은 그제야 이들이 선박을 이용해 무슨 작당을 하려는지 눈치 챘다.
빅터가 지시하자 로이드와 앙리, 리리 리와 아랑이 측면으로 기울인 닻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으니···.
이들은 저지를 셈이었다.
갑판과 수직으로 우뚝 솟은 돛의 기둥과 뱃머리를 이용해서···.
이 선박을 하나의 거대한 활시위로 써먹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앙리, 감지는 계속하고 있나?”
“물론이죠. 아까부터 계속 대기 중이었답니다.”
“마르, 너는 앙리가 신호하면 바로 로이드에게 전달해라.”
“응, 들었지? 로이드란 개체? 멍하니 있으면 안 돼?”
“나 참, 이 몸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나거든?”
“리리 리, 너는 아랑의 손을 놓치지 마라.”
“응! 걱정 말아요! 내 동생은 내가 지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랑···.”
“네, 빅터 사부.”
“정말로 괜찮겠나? 애써 괴물 뱃속까지 우리와 동행할 필요는 없는데.”
각오를 시험한다.
소년은 빅터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품속의 붉은 돌을 내게 다오. 너까지 위험을 감수할 일은 아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바다 괴물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맘몬의 적석···.
이것이 미끼 역할이라면 돌 자체를 빅터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아랑까지 따라나설 이유가 있는가?
하나, 소년은 자신의 선택을 고집스레 밀어붙였다.
“···데려가주세요.”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리라.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 아랑은 가장 약해.
경험이 많은 앙리는 물론, 나이 차가 제일 작은 리리 리에게조차 완력으로도 이기지 못한다.
탄환이 넉넉한 엽총을 쥐고 있다곤 하나, 이게 선박보다 거대한 중합체에게 어디까지 먹힐지···.
불안과 초조함이 빅터의 정신감응 능력을 통해 전해진다.
그럼에도, 아랑의 결의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층 굳센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배우겠어요. 사부님들의 싸움을···.”
“···그래. 그렇다면 긴 말은 않겠다. 곁에서 똑똑히 지켜보도록.”
“네, 네에!”
기쁘게 대답하는 아랑을 마주하며, 빅터는 사뭇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가까운 시일 내의 미래를 예지하는 그의 능력으로도, 이 싸움의 결과가 앞으로 소년에게 무슨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용기 있는 아랑의 동행으로, 당장 또 다른 이에게도 투지가 전해졌으니.
“하, 하하··· 댁들은 여전히 정신 나간 짓거릴 눈 하나 깜빡 않고 저지르시네?”
“왜 그러지, 니엘? 키를 잡지 않아도 괜찮나?”
“이쪽이 더 흥미로워 보여서 말이야!”
타륜을 내팽개친 채, 어느새 니엘이 다가왔다.
그녀가 비운 자리에는 허겁지겁 조타를 하는 선장만이 남아있었다.
“한 자리 남았지? 그럼 나도 데려가 줘. 간만에 몸 좀 풀자고.”
“우리가 놀러가는 것처럼 보이나?”
“아니! 그치만 형씨들이랑 함께라면 재미있을 지도?”
“야, 빅터! 저 애꾸 아가씨 못 오게 막아!”
“에이, 왜 그러셔? 백병전은 머릿수가 많을수록 좋잖아?”
“우리가 싸울 적은 해적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그렇겠지. 마녀의 피조물들이랑 싸우는 게 장난이 아니란 거··· 나도 전에 붙어봐서 잘 알거든.”
빅터는 니엘이 괜한 고집을 피우는 것임을 직감했다.
사실, 그녀는 5년 전의 악몽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야.
마계나 다름없던 심록의 결계에서 무서운 일을 겪은 탓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의 죽음.
왼쪽 눈의 상실.
용병단에서 배제된 마음의 상처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투는 니엘이 가슴 속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잠시 실례!”
“뭐 하냐, 빅터?! 저 애꾸 아가씨 못 올라오게 막지 않고?”
로이드의 만류에도 불구, 니엘은 뻔뻔하게도 리리 리와 아랑의 어깨를 잡고 사냥꾼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라, 어라라? 이 언니야도 가는 거예요?”
“안녕, 동방에서 온 꼬마들. 너희랑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지?”
“···.”
“음, 말이 달라서 못 알아듣나? 뭐, 좋아. 거기 소년, 우리 얼굴에 칼빵 맞은 사이끼리 잘 해보자고.”
그녀는 슬쩍 미소와 함께 코와 뺨에 그어진 흉터를 드러내보였다.
험하게 살아온 걸 숨기지 않아.
어쩐지 정감이 느껴져서 자기도 모르게 아랑도 따라 웃어버렸다.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몸은 악명높은 대용병단 고블린즈의 대검 니엘 님이시라고. 그런 건 살아생전 해본 적도 없거든?”
“멋지군. 그럼··· 간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여섯 명이 커다란 닻 위에 오른 것을 확인하자마자, 빅터는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는 흘러나오는 이븐 가지의 분말을 한 움큼 쥔 채···.
다시 한 번, 배 위에 땅 거미의 거인을 불러냈다.
“후우우···."
이어서 거대한 손아귀가 내려와, 일행이 서 있는 닻을 서서히 들어올린다.
그것은 마신이 겨눈 화살처럼, 저 멀리에서 추격해오는 레비아탄 급 중합체에게로 날카로운 끝을 향했다.
“큭!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압력이 퍼져온다.
은사가 팽팽해지자 로이드의 손가락 끝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앙리 누님! 아직 멀었습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로이드 씨! 이제 곧···.”
앙리가 두 눈을 크게 순간, 그녀의 감각이 영역을 넓혔다.
반경 수 백 미터, 원의 형태를 한 공간지각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그것은 선박의 위에 한정되지 않아, 바다 깊숙한 곳까지 퍼져나가 모든 것을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전송할게요! 제가 지금 보는 모든 걸 지령Befehlsgewalt으로 전달할 테니 받아주세요!”
“들었지, 마르? 이제 우리 차례라고 하신다!”
로이드와 육체를 공유하는 동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는 이미 이 시점에서 앙리가 보내온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팟!
섬광과도 같은 파동이 로이드의 뇌리를 스쳤다.
‘보인다! 또렷하게 보여!’
이는 일종의 음파 탐지.
태풍과 거센 파도라는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고서, 앙리의 날카로운 집중력은 기어이 물 아래에 존재하는 마기의 위치를 찾아냈다.
“우오오오오오!”
로이드의 양팔이 교차한다.
이때, 거의 같은 타이밍에 땅 거미 거인은 시위를 놓았다.
부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6인이 탄 닻이 배를 떠났다.
그것은 마치 고래잡이 작살처럼 날아올랐다.
가공할 속도.
은사가 끊어지기 직전까지 견뎌낸 탄성이 최단거리로 사냥꾼들을 바다 괴물의 코앞까지 인도해주었다.
그런데···.
“어? 어어? 형씨들? 이거 좀 지나친 거 아니야?”
“혀를 깨물고 싶나? 입 닫아라, 니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지나쳤잖아? 한참이나 지나갔잖아?”
그랬다.
사냥꾼들이 오른 쇳덩이 창은 중합체가 있는 위치를 넘어 더 먼 곳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니엘은 혼란스러웠다.
괴물의 몸통에 작살을 처박을 생각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 다음은 배로 끌어 당겨서 어떻게든 해보려던 계획이 아니었던가?
니엘의 짧은 생각을 읽었는지, 빅터가 고개를 저었다.
“멍청하긴. 그럴 거였으면 우리가 올라탈 이유가 없다.”
“아, 그··· 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러면 왜?
니엘이 질문을 입에 올리기도 전에 궁금증은 바로 풀어졌다.
바다 괴물의 그림자가, 반대 방향으로 주둥이를 선회하기 시작했기에.
붉은 돌에 반응해서 진행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오우, 당연하다는 듯이 이쪽을 보는구만! 맘몬의 적석이 그렇게 탐이 나나?”
“아직 멀었다, 로이드! 지금 제동을 걸어라!”
“알아, 안다고!”
로이드의 손가락이 절도 있는 움직임을 그렸다.
그러자 포르투나호와 이어진 한 가닥의 고강도 은사로부터, 무시무시한 반동이 되돌아왔다.
로이드는 이를 악물며, 자신들이 탄 발판의 비행을 공중에서 멈춰 세웠다.
산산조각 나는 걸 각오한 괴뢰술이었다.
충격이 컸는지, 그의 모든 손가락에 상흔이 나타났다.
“크··· 하, 제대로 성공했지?”
“오냐. 역시 넌 대단한 놈이다, 로이드.”
그러나 직행하던 화살을 잡아당기면 급격한 속도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자연의 이치.
닻의 각도가 기울어지고, 일행은 여지없이 바다에 빠질 위기에 직면했다.
전부 빅터의 노림수대로였다.
“놈이 온다! 모두 꽉 잡아라!”
“야야, 난 손이 이 모양이라 아무 것도 못 잡는데?”
“아하하, 멀대같은 형씨! 그 농담 되게 웃기다!”
“농담 아니거든, 임마?”
굵직한 외침이 낙하의 압력에 흩어지는 사이, 아래에선 이형의 형상이 물위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징그럽게 돋아난 무수한 촉수 사이로 위아래가 갈라진 마물의 아가리가 보인다.
흡사 새의 부리를 닮은 검고 뾰족한 입이었다.
이것은 오징어나 문어 같은 생물군의 구강구조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아무래도 이 중합체의 본판은 거대 두족류의 것을 모방한 모양이었다.
하나, 한 가지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빅터어어어어, 이거 계획대로 되고 있는 거 맞냐?!”
입 속의 입.
쩍 벌어진 균열 곳곳에 무수한 돌기가 나있다.
이대로라면 그냥 삼켜지는 걸로 끝나지 않아.
닿자마자 그대로 갈려서 저민 고기가 될 뿐이다.
빅터는 여기서 다소 무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흡!”
허공에서 그림자를 내뿜자, 그의 오른팔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땅거미 거인의 일부만을 형상화시킨 것이었다.
“어디 씹을 수 있다면 씹어봐라···!”
파아아앗!
거인이 휘두른 팔이 닻의 끄트머리를 투창처럼 잡고 매다 꽂는다.
거대한 강철의 작살은 한껏 가속해서 중합체의 입이 채 닫히기도 전에 식도 안까지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빅터 일행은 심연의 입구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