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21화 (121/186)

이탈의 장(3)

3.

상황은 촉박했다.

100자(약 30미터)의 높이라고 할지라도, 지면에 닿는 시간은 채 3초도 걸리지 않는다.

거기다 바닥은 날 선 석창石槍들로 가득해, 팔자 좋게 낙법이 허용되는 상태도 아니었다.

‘어서 그림자를···!’

상처가 난 상태로 가루를 쓰는 건 위험하지만···.

당장 그에겐 고민할 틈조차 없었다.

빅터는 급히 이븐 가지의 분말을 흩뿌렸다.

“···크윽!”

날카로운 감각이 가슴이 퍼진다.

빅터의 배를 뚫고 종유석의 끝이 하늘로 솟구쳤다.

하나, 다행히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일 뿐.

상처는 없어.

파고든 구멍은 연기와 아지랑이로 머지않아 메꾸어졌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군.’

쿨럭!

그러나 완전히 충격을 무효화시키진 못했는지, 원래의 육체로 돌아옴과 동시에 그는 각혈을 내뱉었다.

‘···역시 대스승 크레이그처럼은 안 되나?’

원래대로라면 치명적인 일격을 한 순간 피하기 위한 방어기술.

그것은 대스승 크레이그의 주특기답게, 그림자를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심心의 유파에게 특화된 능력이었다.

그래도 낙하의 충격은 거의 없다.

내장이 약간 상한 정도라면, 위험천만한 불시착의 대가로 아주 적은 것에 불과했다.

‘그보다··· 로이드, 마르는?’

빅터는 고개를 든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넓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뭔가가 보였다.

‘급격히 떨어지진 않는군. 마르 녀석, 저 꼴이 되도 죽지는 않는단 말인가?’

몸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마르의 몸체.

그럼에도 외래종의 생명력은 만만치가 않아.

마르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뭔데?! 야, 마르? 나한텐 아무 것도 안보이니까 뭐라고 설명 좀 해줘!”

“조용··· 조용히 해, 로이드라는 개체. 지금은 네 대화에 어울려 줄 여유가 없어.”

“설마, 너 다친 거냐?”

“괜찮아. 너 같은 하등생물에게 걱정 받을 수준은 아니니까. 우리는 근원이 되는 세포핵만 무사하다면 어떻게든 연명할 수 있으니.”

고통의 파장은 느껴지지만, 그 이상으로 자기 품속의 생명을 놓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 또한 전해져왔다.

마르는 로이드를 안전한 장소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사하다곤 말할 수 없지만, 둘 다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빅터는 그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 했다.

하나, 지금은 마음을 놓을 상황이 아니었다.

“···무의미한 도주는 거기까지다. 이물질, 그리고 일족의 배신자여.”

울퉁불퉁한 바닥과 뻥 뚫린 허공에 수많은 파문이 인다.

잠수하고 있던 생물체가 수면 위로 올라오듯, 여러 마리의 추적자가 그 흉측한 얼굴을 내밀었다.

하나같이 속이 내비치지 않는 검은색 두상.

가시가 가득 찬 촉수로 바글거리는 하복부.

감찰 집행관들의 등장이었다.

“···서라. 이 앞을 통과하려면 나부터 죽이고 가시지.”

빅터는 도끼를 들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조금이라도 마르와 로이드가 몸을 숨길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흐음!”

부웅!

그는 당장 왼팔의 사슬을 휘둘렀다.

로이드가 써먹을 수법을 다시 한 번 실행해볼 생각이야.

화승총의 흑색화약과 뒤섞인 그림자를 흘려 넣은 채, 동료의 기술을 흉내내려했다.

같은 수법이지만, 분명 통할 것이리라.

산소가 넘쳐나는 이 동굴 속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작은 양의 불꽃이라 해도···.

“소용없다. 대기의 조정은 이미 2431초 전에 마쳤다.”

터지지 않아.

바닥을 향해 내리친 빅터의 사실에는 아주 잠깐 스파크가 튀었을 뿐이었다.

“약삭빠르군. 네놈들은 공기도 조종할 수 있나?”

“미개한 포유류 놈···. 너희의 쓸데없는 발악 덕분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만 낭비 됐다.”

무의미.

쓸데없다.

그 말투에 빅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간의 노력이···.

마르의 희생까지 싸잡아 뭉개는 것만 같아.

발버둥 친다는 생명의 본질마저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기에.

빅터는 도끼를 쥔 손으로 상대를 가리켰다.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최대한 거드름을 피우면서.

“시간낭비란 발언이 네놈들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군. 시대를 초월해 오갈 수 있는 너희에게도 조급함이란 개념이 존재하는가?”

“···미개한 원숭이에 불과한 너희에게 설명해봐야, 어차피 이해조차 못할 것이다. 그러니 죽어라. 순순히 우리의 집행을 받아들이도록.”

“꽤나 바쁘신 모양이군. 그런데 남을 깔보는 그 특유의 태도··· 딱히 너나 우리나 다를 건 없지 않나?”

“무슨 의미지?”

“인간에게도 있거든. 그 같잖고 추악한 우월감이란 녀석이···.”

파직.

아주 잠깐이었지만, 검은 외래종의 몸이 하얗게 점멸했다.

“감히··· 위대한 종족인 우리를 네깟 것들이랑 같은 수준으로 여길 셈이냐?”

경멸과 혐오를 숨기지 않는 말투.

다소 얕보고 있었긴 해도, 어느 정도 유순한 지적 호기심을 보이던 마르의 것과는 완전히 달라.

그것은 인간이 바퀴벌레 따위를 식당에서 발견했을 때 가질 법한 감정이었다.

“우쭐대지 마라! 내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너희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깊고 고차원적인 은유가 담겨있으니! 지금 네놈이란 개체가 우리와 소통하는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아! 저 아둔한 생태학자 계집이 멋대로 켜둔 통역장치란 변수가 있을 뿐이지. 이 목소리는 네가 이해하기 쉽도록 바뀌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것에 불과하다. 대화하는 상태의 지적 수준에 맞춰줬더니, 어딜 분수도 모르고 기어올라!”

그런 이유였단 말인가?

마르의 말투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기 편해졌던 것이?

“그거 멋지군. 그 번역 장치의 성능만큼은 나도 인정하지.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해도 그 저급한 본질을 있는 그대로 내게 전달해주고 있으니 말이야. 빡 돌아서 주체 못하는 네 태도가 적나라하게 전부 다 보일 정도로.”

“이 이상 나를 화나게 했다간···.”

“했다간? 뭐지? 곱게 죽이지 않겠다는 뻔한 소리라도 할 텐가?”

빅터가 정신감응능력으로 사고를 읽은 걸 그대로 뱉어내자, 검은 엑조틱은 순간 입을 닫았다.

생각하는 걸 그대로 간파당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불쾌하다. 더할 나위 없이 분노가 치밀어. 네까짓 하등생물에게 이런 모멸감을 느낄 줄이야.”

“닥쳐라.”

“이노오오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정말 화를 내야할 건 내 쪽이다!”

외래종이 감정을 터트리기 직전, 빅터는 선수를 쳤다.

“영문도 모른 채 내 친구는 눈을 잃었다. 그 다음은 우릴 잡아 죽이려고 뒤쫓아 왔어. 심지어 누가 봐도 어린 아이인 마르에게 손까지 대가면서···. 자, 이제 어디 한 번 말해 봐라. 이 부조리를 내가 어디까지 참아줘야 할지를!”

빅터는 격분을 통해 증명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명분을 가진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 걸.

마기가 폭발적으로 끌어올라.

흑색화약이 통하지 않았다곤 해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이 일대를 붕괴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빅터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기세였다.

감찰관 무리도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일까?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주 조금이지만 검은 엑조틱의 감정이 차분해진 것이다.

“그렇군. 듣고 보니 너희가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데, 어디 한 번 털어놓아 봐라. 내가 납득시켜주지. 우리에게 반드시 수행해야할 사명이 있다는 걸.”

“사명 좋아하시네. 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우리를 왜 이토록 원수처럼 여기는 거냐? 설마 이 눈 때문에?”

“···그것에 대해선 아까부터 묻고 싶었다. 너희가 어떻게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 매우 궁금했거든. 하지만 이젠 충분히 알았다. 하위종을 끌어들여 기생시켰던 거군. 외과적 수술을 거쳤나? 무슨 수를 썼는진 몰라도 꽤 안정화되어 있군. 그래서 그 생태학자 계집과도 접촉이 가능했던 건가?”

“그래서, 그게 불만이었나?”

빅터는 정안을 부릅뜨며 빛나게 만들었다.

“내 오른쪽 눈에 들어있는 네 동족이 그렇게 못마땅하나? 그래서 우릴 죽이려고?”

“동족? 그건 무슨 농담인가, 호모 사피엔스?”

아니, 이번만큼은 빅터가 잘못 짚었다.

검은 엑조틱은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두 발로 걷는 영장류야. 혹시 너희는 근연종인 원숭이를 같은 ‘동족’으로 여기나?”

“···뭐라고?”

“나는 너에게 침팬지를 친구, 고릴라를 또 다른 인종으로 취급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거다.”

“아니. 그것들은 다른 동물이다. 아무리 사람을 닮았어도 인간과는···.”

“바로 그거다.”

“···.”

“네 눈구멍에 박혀 융합된 그 작은 하위종은, 엄연히 우리와 구분되는 다른 종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호모 사피엔스와 피그미마모셋 수준의 차이가 있지.”

상대의 냉정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건네는 질문이었지만···.

의외로 상대는 진중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어찌 보면 쓸데없는 친절.

기습까지 하면서 죽이려던 상대에게 보통 이렇게까지 답을 해주나?

‘그러고 보니 5년 전의 마공작 올비우스도 그랬다. 오늘 만난 마르도 마찬가지···. 설마?’

순간, 빅터의 뇌리에 뭔가가 번뜩였다.

어쩌면 이 엑조틱이란 놈들은···.

‘수다쟁이. ···아니, 그마저도 훨씬 넘어 주고받는 토론을 즐기는 특성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빅터는 그걸로 도박수를 걸 생각이었다.

‘이대로 싸워봐야 불리한 건 우리 쪽이다. 유일한 전력은 나 혼자뿐. 로이드는 적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무리고, 마르는 이 이상 도망치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니···.’

물론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어.

빅터는 이 상황을 역전하기에 충분한 큰 기술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이라면 차원을 뒤틀어 버리는 기묘한 수법조차 깨뜨리는 게 가능해.

단, 문제는 그걸 실행하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나도 가능한 저 녀석들과 맞붙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의 편견과는 달리···.

마르의 사례를 보면, 엑조틱은 그렇게까지 꽉 막힌 종족이 아니었다.

고도의 지적 생물체를 자처하는 등.

다소 오만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감도 동반하고 있다.

반대로 의식이 높은 편···.

연구 윤리를 준수한다는 목적을 지키려는 마르.

자신의 임무 수행을 위해 필사 추적을 감행하는 집행관들···.

빅터가 느끼기에, 양쪽 다 자부심에 걸 맞는 성숙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만 조심스럽게 대우한다면 오히려 심도 높은 대화가 가능할 지도 몰랐다.

“왜 우리를 없애려고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지?”

“질리지도 않고 또 그 질문이군. 그것만 이해한 다면 만족한텐가?”

“그건 대답 나름이지. 너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놈으로 보인다. 말투로 보아, 사심을 가지고 움직일 자식이 아니야. 즉, 개인적인 원한은 없을 텐데. 그렇지 않나?”

마주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상대를 섬멸하려는 건 누가보아도 비정상···.

틀림없이 그들에게도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

엑조틱 종족에게 닥친 한층 더 불확실해진 미래란?

감찰관이란 자가 빅터와 로이드를 가리켜 ‘이물질’이라 지칭하며 처리하려는 원인은?

갈수록 궁금증만 증폭이 되는 상태에서, 빅터의 무의식은 자신도 모르게 학자의 재능을 그들에게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외래종들이 태생부터 가진 어떤 본능을 자극했다.

“···어이없는 개체로군. 미친건가? 아니면 영악한 것인가? 이 와중에 내게 질의質疑를 걸다니? 어딜 봐도 지식의 탐구자 같진 않는데···.”

사실, 이들에겐 특수한 문화가 있었다.

종족 전체가 철학적인 난제를 즐기는 성향을 가졌어.

호기심의 충족.

새로운 정보의 습득.

기본적으로 그런 가치들에 최우선하도록 정신세계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좋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일방적으로 목을 베는 행위가 유쾌하지만은 않지. 최소한 판결 정도는 내려주도록 하마.”

“물러날 생각은 없나?”

“너희의 처분이 달라질 거란 생각은 말도록. 규율에 예외란 없다.”

“그럼 들어보실까? 우리가 무조건 죽어야만 하는 까닭을?”

검은 엑조틱 무리 중 선두에 선 녀석이 앞으로 다가왔다.

인간이었다면 한 걸음 내딛은 격···.

잠시 후, 녀석은 중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너희가 우리의 존재를 인식해버린 사실에 있다.”

“마르와 만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거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과거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선주민족, 호모 사이엔스와 접촉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만?”

“그건 너희가 계몽된 개체이기 때문이다.”

“뭐?”

“영특한 지혜와 당대의 평균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육체의 소유자. 특별하게 재련된 정신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검은 엑조틱의 반응은 묘했다.

조금 전까지 미개하다느니 저열하다느니 무장적 까대더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계몽’이라는 어휘까지 사용하며 대접해주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맥락이 이상하다.

앞서 그가 이유로 제시한 내용은, 빅터와 로이드의 죽음의 요인이 아니었던가?

“이해 못할 소리만 하는군. 우리가 우수하기 때문에 죽어야만 한다?”

“그래야 다른 호모 사피엔스에게 우리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지 않을 테니까.”

“세어나가면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 설마하니 두려운 거냐? 우리 인간이 너희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

“···기어오르지 마라. 내 종족이 바라보기에, 너흰 옛날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다름없다. 피할 수 없는 종말을 향해 나아갈 뿐인 실패한 종이지.”

“그럼 자비를 좀 베풀어 주시지.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그냥 우릴 풀어주면 그만 아닌가?”

“그럴 수 없다. 위험부담이 커. 너흴 내버려두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확실해진다.”

“그건 왜지?”

“뛰어난 지적능력을 가진 영웅적 개체에 의해 우리 종족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것만으로도 역사의 개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너희가 인류에 큰 공헌을 하면 자연스럽게 미래도 달라지지. 사소한 변화가 뭉쳐서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가 생기고 마는 거다. 자칫하면 우리가 이 별에 나타나는 기반마저도 뒤틀릴 수 있지.”

“그딴 가당찮은 이유로···?”

빅터는 헛웃음이 다 나왔다.

결국 자기네들이 시간에 개입한 대가를 스스로 치루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엑조틱에겐 나름대로 필사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생태학자 계집에게 들었을 텐데? 우리는 너희가 사라진 뒤에서야 이 별에서 태어날 수 있는 종이라는 걸.”

“하지만 그건 영겁의 세월이 지난 다음이 아닌가? 뭐라고 했었지? 태양이 별들을 집어삼킬 쯤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

쿡, 쿡쿡···.

웃음소리가 들려.

사방에서 들썩이며 조소가 울려 퍼졌다.

다른 감찰관들이 빅터의 무식함을 비웃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그 여자, 중요한 이야긴 전혀 안 해준 모양이군.”

“중요한 이야기?”

마르가 뭔가를 놓치거나 숨긴 채 설명했단 말인가?

“너희가 멸종하는 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나?”

“알 턱이 있나.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건방지군. 그게 가르침을 받는 태도인가?”

“숙청할 놈에게 부연설명을 해주는 네놈도 보통은 아니겠지.”

“···말은 잘 하는군. 마음에 들어. 그 오기만큼은 높게 쳐주마. 그렇다면 알려주지. 너희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을 말이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미래에 벌어질 사건을 읊조렸다.

“앞으로 불과 수십 세기 후, 너희는 스스로의 손으로 자멸한다. 전쟁을 멈추지 않지. 그 싸움은 지상의 대륙이 모조리 가라앉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씩이고 계속 이어진다. 끝내는 이 별의 부피는 7할만 남고, 뒤틀린 지축과 드러난 지각 때문에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고 말 것이다.”

“헛소리···. 그런 악몽같은 힘이 세상 어디에 있나?”

“물론 지금은 없지. 하지만 언젠가 너희는 반드시 도달한다.”

경악하는 빅터에게, 검은 엑조틱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원자 단위의 분열과 융합··· 결코 생물체가 손대선 안되는 금단의 영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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