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20화 (120/186)

이탈의 장(2)

2.

마르의 협조에 놀란 것은 도움 받은 장본인인 빅터나 로이드가 아닌, 마르 그 자신이었다.

‘나는 왜 이 생물체들을 살린 거지?’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조금 전까지 감정을 교류하던 개체가 죽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나친 개입이었다.

‘어차피 머지않아 멸종할 것이 정해진 종인데···.’

본래 마르가 가진 생명의 관점은 인간의 것과 크게 달랐다.

그녀의 입장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이미 과거의 존재.

처음부터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특별한 마음이 생길 리도 만무했다.

빅터와 로이드가 엑조틱이라 부르는 외래종들은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엿보는 자들.

철저한 관찰자이며 이방인···.

그렇기에 지금까지 실험장에서 어떤 생물이 죽던지 간에 크게 개의치 않고 지켜봐왔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라.

불과 몇 시간 정도 소통한 것만으로···.

마르는 인간들에게서 자기 종족과 닮은 부분을 찾아내고 말았다.

‘고작해야 피와 살을 가진 불완전한 동물들··· 그런데 왜 우리만큼이나 감정이 발달한 거지?’

마르는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 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자신의 착각.

과하게 투영한 결과가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최소한의 흥밋거리는 되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탐구하는 정도와 흡사한 수준···.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못할 지도 몰랐다.

인간도 가끔 곤충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봐.

사람이 흙 위를 기어 다니는 것들을 내려다보면서, 하늘 위에서 지켜보는 절대자의 존재를 상상하듯이···.

신이 보기에 인간도 벌레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특히 군집을 가지는 개미나 벌에게서도 공통점을 애써 찾아낸다.

협동.

질서.

모두가 하나 되어 무리를 위해 헌신하는 본능.

모두가 희생하며, 그것은 지도자도 예외는 아니다.

생식 능력을 잃어버린 모체가 다수에게 씹어 먹히는 꼴은 개미 사회에서 썩 흔한 일.

존속을 위해서라면 왕국의 초석이 된 개체인 여왕마저 내친다.

그리고 전쟁···.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미도 전쟁을 한다.

오직 살상만을 위해 태어난 병정Major 개체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이 곤충은 호전적인 성질을 지녔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출신만 다른 같은 종족과 대규모 살육전을 벌인다.

즉,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인류가 이러한 사실을 상식처럼 알게 되는 것은 빅터가 태어난 시대로부터 한참이나 먼 미래의 일이 될 터였지만···.

그럼에도 이 시대의 몇몇 사람들은 눈치 채고 있다.

수면을 거울삼아 자신의 얼굴을 파악하는 것처럼, 자연의 생태도 인간에겐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는 것을.

마르의 경우도 같았다.

지적 생물체란, 너무도 매력적인 샘플.

더욱이 생태학자라는 직업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더욱 더 내버려두기 아까운 소재였을 것이리라.

거기다 그녀가 이 단절된 시간 사이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테마 또한 일치하고 있었기에.

‘오치 범위내의 예상 대로였다면, 아마 앞으로 십 억년 정도가 더 걸렸을 지도···.’

방사선이 넘치는 고립된 생태계.

지속적으로 기온과 산소 농도를 조절해가며 환경압에 노출 시킨다.

그리하면 만년 단위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

외골격을 가진 절지동물은 거대한 덩치를 유지한 채로 세력권을 불려간다.

개체 수가 늘어나는 만큼 다양한 세대가 분포할 터.

그리하면 남은 것은 지켜보는 것뿐이다.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를 방문해 종의 분화를 확인···.

마르는 이 과정을 반복하면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값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마르가 도달하고 싶었던 결과란,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지성체의 관측···.

자신과 대화가 가능한 수준을 가진 다른 종족의 발현이었다.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 것.

바로 고독 때문이었다.

‘외로워? 나는 이들이랑 접촉한 게 그렇게까지 기뻤던 거야?’

하지만 그게 감찰 집행관을 거스르기에 충분한 대답이란 말인가?

머지않아 마르의 우수한 사고능력이 문제점을 찾아냈다.

치명적 실수.

스스로가 벌인 심각한 과오에 대해서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납득이 가. 나는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왔으니.’

사실 마르는 태어난 이례로 자신의 동족과 직접 마주한 경험이 매우 적었다.

긴 수명.

완벽한 면역 체계를 갖춘 구조.

생존 보조 장치만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서 인간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돌봐줘야 할 부모의 책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한층 더 나아가, 이 에너지 생물체들은 스스로를 성숙하다고 여기는 만큼이나 자율화된 독자적 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긴 역사만큼이나 누적된 데이터를 단 기간에 주입.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익히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현저히 짧다.

머리가 좋은 개체일수록 의무교육이라 할 수 있는 유년기가 빨리 지나 가.

마르의 경우 우수함을 인정받아 더욱 어린 나이에 독립할 수 있었다.

‘단독 연구 허가를 받은 것이 200년 전··· 나도 모르게 고립상황에서 우울증이 발생한 건가? 아니면 내가 맡기에 이 임무가 너무 이른 것이었던 걸까?’

마르는 슬쩍 자신의 촉수가 잡은 두 생물체에게로 고개를 향했다.

양쪽 모두 부상을 입었어.

특히 로이드는 응급처치가 급한 상황···.

“로이드라는 개체, 힘든 건 알지만 조금만 참아 줘. 안전한 장소를 찾으면 바로 상처를 치료해줄 테니···.”

“하, 말뿐이라도 고마운 걸.”

“우리 종족은 언제나 진지해. 저급한 농담은 하지 않아. 왜냐면 그렇게 배웠으니까. 나에겐 우수한 종으로서 반드시 이행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거 참, 딱딱한 소리만 하네.”

“뭐어?”

“우릴 구해준 거 고맙다고. 외래종은 끔찍하게 싫지만, 넌 예외로 좋은 녀석이야.”

“···.”

“눈이 이 꼴이라 더 이상 네 모습은 안보이지만··· 대충 알겠어. 부끄러워서 몸이 빨갛게 변한 거 아니냐?”

정답이었다.

마르의 외피가 은은한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이, 인간 주제에 이 몸을 놀리다니!”

“그럼 슬슬 감사를 받아들이는 게 어때?”

“흥, 멋대로 생각해. 너희에게 그런 소릴 듣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니까. 이 모든 건 미개지성체보호조약에 의한 지극히 당연한 행동절차···.”

“또, 또 그런다. 우리 마르 아가씨는 어지간히도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시구만. 안 그러냐, 빅터?”

“그쯤 해, 로이드. 어린 애를 너무 놀리지 마라.”

“아가···씨? 어, 어린···.”

“알았어, 알겠다고. 아니, 그보다 나 방금 신기한 걸 발견했는데.”

“뭐가 말이지?”

“괴물의 모습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으니까 묘하게 더 귀엽게 느껴지는 게···.”

“떨어뜨려버린다!”

“우왓?!”

마르의 증폭된 목소리가 울렸다.

난동.

빅터와 로이드를 쥔 촉수를 거칠게 휘둘러,

자칫하면 두 사람이 날아갈 뻔 했다.

“진정해라, 마르! 로이드의 무례는 내가 사과하마! 그러니까 그만 좀 날뛰···.”

“너도 똑같아, 빅터라는 개체! 아까부터 자꾸만 나를 아이처럼 대하고!”

어째서 이렇게까지 흥분하는가?

그 원인은 마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해.

냉정하게 보면, 깊은 사정도 모르는 영장류가 멋대로 지껄인 발언 따위에 일일이 열 받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그녀는 실험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담지 않도록 훈련된 학자다.

평정심, 그리고 냉정과 침착이 미덕일 것을···.

“구해주는 게 아니었어! 집행관들이 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뒀어야 했어! 이 은혜도 모르는 포유류 놈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마즈는 그들을 내팽겨 치지 않았다.

“크으··· 차라리 소통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하하, 어쩌겠냐? 벌써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거.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잖아?”

“할 수 있거든?!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어! 시간대를 옮기기만 하면···.”

“아, 맞다. 너희는 그게 가능하다고 했었지. ···아니, 잠깐만. 그럼 당장이라도 거슬러 올라가면 되지 않냐?”

“무지한 발언이야! 시대의 이동은 오직 우리 종족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고!”

“아, 그러셔? 그럼 우린 뭔데?”

“큭! 그건 예외 상황에 불과해! 아주, 아주아주 드문 일이란 말이야! ···거, 거기다 이미 감찰관들이 이 시대의 출구를 봉쇄했어. 허가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이곳에 머무를 수밖에···.”

돌이켜보면, 애초에 로이드에게 흥미를 가진 것이 잘못이었다.

녀석은 입담이 뛰어나.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으면서 주의를 끈다.

번역기를 통해 절묘하게 치환된 어휘들이 재미난 이야기를 구성한 탓에, 마르는 그만 그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그 결과, 로이드란 사람이 가진 독특한 개성의 존재까지 깨닫고 말았다.

“마르, 네 말을 미뤄볼 때··· 아직 그 새카만 놈들이 죽지 않았다는 의미같군.”

“맞아. 그들의 생명반응은 아직 있어. 불규칙한 파편들 때문에 아직 탈출 좌표를 찾아내진 못한 모양이지만.”

“골치 아프군. 결국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안심하긴 일러. 우리가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니까.”

“뭔가 다른 수가 없나?”

“혹시 나한테 해답을 요구하는 거야?”

“이 상황에서 우수한 종인 네가 아니면, 우리가 달리 누구한테 의지하겠나?”

“···날 칭찬하는 걸로 이 사태가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야.”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군.”

반면, 마르가 느끼기에 빅터는 무뚝뚝한 인간.

로이드보다 점잖고 주의 깊은 것은 틀림없으나.

표정변화가 거의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만 봐서는 마르가 관심을 가질 요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

하나, 로이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빅터가 보인 반응만큼은 달랐다.

예상 밖의 어리석음.

비상식적인 판단.

자연계였다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멍청한 짓거리···.

하지만 자신의 신변을 걱정하지 않는 움직임이란.

다시 말해, 그 어떤 실득 계산도 없는 지극히 고결한 행위.

마르의 종족 중에서도 일부 고위 상류 계급에서 보이는 숭고한 가치이기도 했다.

또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목숨을 맡기는 상호작용까지···.

마르는 어느새, 자신조차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인간이라는 종에게 경의를 품게 되었다.

이들에겐 매우 농밀한 감정이 있어.

긍지는 물론.

굳건한 신념···.

개체간의 유대.

사뭇 사이가 나빠 보일 정도로 차별되는 개성까지.

단순한 사고 체계와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던 절지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마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지적 생물체의 우월한 특징이 전부 담겨 있었기에.

‘맞아. 나는 이 두 사람이 사라지는 걸 아깝다고 생각했어. 이대로 죽어버리기엔, 그들의 경험이나 가치가 너무 허무하게 소모되는 것이라고···.’

그런 놀라운 지성체를 영문 모를 이유로, 자기네 사정에 맞춰 멋대로 처리하다니?

용납할 수 없어.

그것은 콧대 높은 초월종을 자처하는 마르로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부조리였다.

‘흥, 됐어. 이 영장류들이 날 어떻게 불러도 이젠 아무래도 좋아. 어느 쪽이든··· 나는 나만의 윤리강령을 따르겠어. 여긴 연구소야. 외부인의 참견은 허락 안 해. 한낱 인간들조차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는데,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인 우리가 그 가치를 훼손하는 건 말이 안 돼. 그러니··· 나도 지켜주겠어!’

마르는 끝내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가 빅터나 로이드에게 가진 마음의 정체는 더 이상 우월감 따위가 아니야.

그저 단순한 호의.

종족을 넘어서 친구가 되었단 사실을 혼자서만 인정하지 못했을 뿐···.

“결단을 내린 모양이군. 훌륭하다, 마르.”

“빅터라는 개체, 그런 말투는 그만두라고 말했을 텐데? 나는 너보다 100배나 더 오래 살았단 말이야!”

그 감정을 읽고서, 빅터의 입가가 살짝 휘어졌다.

마치 대견한 아이를 지켜보는 것만 같은 흐뭇한 미소였다.

“···그렇군. 마르, 내 실례를 용서해다오. 너는 결코 어린애가 아니야. 네게선 책임에 대한 경건함이 느껴진다. 그 정의감은 귀족으로서 충분히 존경받을만한 자세다.”

“···흥,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

“핫하, 이번에도 내가 맞춰볼까? 마르 녀석, 또 색깔이 붉게···.”

“넌 제발 닥치고 있어 줘, 로이드라는 개체! 이 이상 내 인내심을 실험하지 말라고!”

이 시덥잖은 만담을 듣고서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에는 빅터 마저도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한 힘이 있었다.

추격 받는 입장임을 망각한 채.

날아서 도주 중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의 여유···.

“둘 다 잘 들어! 내 몸의 색이 변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단지 빛의 파장이 너희 시각 기관의 감지 능률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이상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란 말이···.”

그러나.

“찾았···다!”

음습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파앗!

그리고 동시에. 마르의 반신이 갈라졌다.

“마르!”

“어, 어라?”

예리하고 교묘한 대각선 각도의 절삭···.

무서우리만큼 깔끔하게 등분된 그 모습에, 빅터와 로이드는 경악을 금지 못했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급습이라니?

이것은 바람이 만든 조화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칼날?

‘아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르가 지나친 공간자체가 일그러졌다.’

어느 쪽이든 빅터를 지탱하고 있던 촉수는 이미 힘을 잃었어.

그대로 그의 몸은 지상으로 곤두박질 쳤다.

그 높이는 어지간한 성벽보다 높다.

최소 5층 건물 이상의 종탑 수준의 간격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바닥은 온통 이빨처럼 돋아난 것들로 가득해.

하나하나가 전부 거꾸로 된 석순 투성이···.

빅터는 가혹한 착지를 각오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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