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장(3)
3.
우리는 마차에 빌헬미나의 시신을 실었다.
생기를 잃은 그녀의 몸은 생각 이상으로 가벼웠다.
그것은 단지 피를 많이 흘려보냈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잘록한 허리와 가느다란 팔에는 오래된 상처가 보인다.
작고 아담한 손은 굳은살과 자잘한 생채기들로 가득하다.
그녀가 다루던 채찍 표면에도 흠집이 많아, 오랜 세월이 엿보였다.
어째서일까?
죽은 몸에 닿은 것만으로도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야, 나는 그 모습에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단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이 사람은 분명 오래도록 싸워왔겠지.
내가 클라라스와 어울리며 아무것도 모른 채 유린당하는 사이에도, 빌헬미나는 필사적으로 마물들과 대치했을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이상 마녀에게 희생되는 무고한 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매 순간마다 전력을 다해서···.
‘불과 열흘 사이, 나는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마녀가 범람하던 시기, 임무에 투입될 때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던 치열하고 격렬한 시대에 대해서였다.
마모된 감정은 되돌아오지 않아, 이윽고 아군의 생사에조차 감흥이 사라지고만다고 했었지.
남는 건 짜증과 나른함···.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빌헬미나는 언제나 나른하고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빌헬미나는 나에게 쓴 소리를 자주 건넸다.
사실은 아예 첫 만남에서부터 내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선언했었지.
허나 그건 그녀의 본심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빌헬미나의 본질은 겁쟁이였다.
‘동료가 죽는 걸, 그 어느 것보다 두려워했던 거지.’
떠올려보면, 그녀는 언제나 로이를 함부로 대하며 나에 대해 물으면서도 은근히 거리를 뒀어.
조금이라도 친해지려고 성질을 긁는 질문하는 로이드와 다르게, 민감하고 결정적인 부분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거친 말투 속에는 항상 배려심이 숨겨져 있었지.
사실은 과할만큼 정이 넘쳤던 것이다.
결국 빌헬미나는 후배를 돌보고 지켜주려고 했던, 다정한 선배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 로이드가 보이는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는 사실이었다.
“일어나십셔, 누님··· 왜 그러고 있는 겁니까? 당신은 이런 곳에서 쓰러질 위인이 아니잖아요?”
로이드는 빌헬미나의 손을 붙잡고 오래도록 매달렸다.
그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걸 뻔히 알았을 텐데도···.
“평소처럼 짜증내라고요. 항상 하듯이 절 갈구고 불평하시란 말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나는 그를 어리석다고 나무랄 수 없었다.
소중한 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미 알았기에.
나또한 그랬으니까.
이미 숨이 끊어진 아델을 품에 안았을 때도, 나는 계속해서 현실을 외면했었지.
그걸 애써 직면하도록 만드는 건··· 너무도 잔혹한 짓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마주하기에, 진실은 잔인할 정도로 비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했다.
“일어서라, 로이드.”
“큭, 흐윽!”
“우린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알아, 알고 있어. 그래도 조금만 더 누님에게···.”
“아니, 벌써 우리 위치가 노출되었을 거다. 강물에 젖은 부츠 때문에 발자국이 남았으니까.”
“조금만이라고 했잖아!”
가능하면 대화로 풀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이 주먹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컥!”
녀석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후려갈기자, 로이드는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아프겠지.
하지만 빌헬미나는 지금 그 조차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제아무리 간절한 목소리나 오열도, 그녀에겐 닿지 않는 것이다.
“이 새끼, 너···.”
로이드가 노려본다.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진심어린 시선을 보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격해오지 않는다.
곤란하군.
녀석에겐 나에게 얻어맞은 분노보다, 아직 빌헬미나에 대한 슬픔이 더 큰 모양이었다.
나는 좀 더 로이드를 도발할 수밖에 없었다.
“궁상은 나중에 충분히 떨 수 있다.”
“뭐라고?!”
“선배라며? 그렇다면 이럴 때 일수록 더 정신 차려라. 나에게 어디까지 얕보이고 싶은 거지?”
“네가··· 내 기분을 알기나 해?”
모른다.
사람의 마음 따윈 눈에 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은 어둠을 꿰뚫는 이 정안으로도 볼 수 없지.
“나한테 누님은 은인이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 수레였던 나를, 만사를 속임수만으로도 살아가던 이 쓰레기 같은 놈에게 새 인생을 선사해준 스승이었어! 그런 그녀를, 애도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그래.”
“너는 피도 눈물도 없는 거냐!?”
거기서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마녀 사냥꾼이다!”
처음부터 해야 할 일은 정해져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서 없애 것이다.
빌헬미나의 복수는 그 곁다리로 붙은 덤에 불과하다.
나라고 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불과 열흘 남짓 어울렸을 뿐인 그녀의 죽음에 나조차도 치가 떨리지만···.
그 외엔 방법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빌헬미나를 애도할 도리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로이드, 나는 네놈이 싫다. 입을 열 때마다 생각 없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신경에 거슬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걸 즐기지 않는 나와 너는 상극이다. 그래서 지금도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으, 크윽!”
“네 기분이 어떤 지 아냐고? 모른다. 짐작조차 되지 않아, 그딴 건 알고 싶지도 않다!”
절반은 진심이다.
당장 대스승이나 레이가 죽는단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온다.
심지어 로이드는 나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을 동료가 눈앞에서 죽었지.
녀석의 깊은 슬픔을, 고작 나 같은 놈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같은 일을 겪는다면 나는 로이드보다 더욱 미쳐 날뛰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만 했다.
애써 외면하며 로이드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이것만은 알지. 빌헬미나가 우리한테 생명을 맡겼다는 걸.”
“···뭐?”
“생각해라. 네 기억 속의 빌헬미나는 그렇게 약한 자였나?”
“···.”
“아니겠지. 얼핏 차분해 보이던 그녀의 걸음걸이는··· 언제라도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불가사의한 공격이라 할지라도, 빌헬미나 수준의 실력자가 그걸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단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피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피한 거다.”
나는 보았다.
빌헬미나의 몸이 꿰뚫리던 그 직후의 순간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뭔가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
궤도를 눈으로 쫓았었지.
몇 초 뒤, 자신의 급소에 구멍이 뚫릴 거란 것도 알았을 것이다.
심지어 직후 무릎을 튕겨 옆으로 빠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빌헬미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바로 자신의 뒤에 로이드와 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릴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문제였지.
그게 그녀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누···님.”
로이드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빌어먹을, 여기서 더 울면 어쩌냐고.
이래선 내가 뭣 때문에 진실을 알려준 건가 싶어서 속이 탔다.
하지만 그 정도로 녀석은 약한 사내가 아니었다.
그 잠깐 사이, 로이드는 뭔가를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아가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녀석도 깨달은 것이다.
당장은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사실을.
“빅터, 넌 개자식이다. 솔직히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
“그래도,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
예전에 클라리스에게 들었다.
인간의 진가는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된다고.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로이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한 울상으로 훌쩍거려도, 비록 잠깐이나마 슬픔에 이성이 져버렸다고 해도···.
그는 일어날 수 있는 자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식을 통과해낸 동지였던 것이다.
“정신이 들었으면 당장 무기부터 챙겨라, 로이드.”
“선배한테 명령하지마라, 후배 자식이. 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니까.”
어련하실까?
허나 그래도 녀석은 꼼꼼히 마차에 실린 도구들을 꺼냈다.
대스승이 맡긴 화승총과 투척용 단검을 장비하고, 사슬갑옷을 껴입는 것으로 마무리···.
혹시나 싶어 흑색 화약이 든 뭉치도 함께 챙겼지.
“···가자, 후배. 누님의 복수, 그리고 이 정체모를 동네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곳인지 밝히러.”
나는 기합이 들어간 로이드의 등짝을 때렸다.
당연한 소리는 굳이 입 밖에 내는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준 것이다.
허나 녀석은 아직 멀었다.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다.
하지만 녀석은 같은 마녀 사냥꾼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술했다.
”···누님, 금방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처럼, 굳이 낯뜨거운 소리를 해야 할 정도로 감정적인 자식이었다.
여전히 얼간이 자식이다.
하지만 징징거리던 조금 전보다는 훨씬 났군.
결국 우리는 빌헬미나를 뒤로 한 채, 보이지 않는 마굴의 입구로 들어섰다.
4.
오후, 태양이 슬슬 산 너머로 기울어져간다.
그동안 로이드와 나는 숲 속을 헤매며 마을로 들어설 빈틈을 탐색했다.
어째서 곧바로 진입하지 않았는가 하면,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그건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로이드가 낸 의견 때문이었다.
“이 마을은 이미 끝장이 났을 가능성이 높아. 아까 그 여우 가죽을 쓴 계집··· 역시 그건 마녀일 거야. 그게 아니라면, 그딴 게 마을 방향에서 유유자적 걸어 나왔을 리 없어.”
그렇다면 일망타진을 하면 어떻겠는가?
나는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로이드는 질겁부터 했다.
“덩치만큼이나 무식한 접근이구만. 사역마가 대기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일단 말해두는데, 내가 전력이 될 거란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둬. 내 특기는 속임수다. 나는 항상 미리 준비하고 확실히 이기는 싸움만 하지.”
다시 말해서 겁쟁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도망을 치겠다는 식의 비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지.
겁이 많다는 것은 신중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비도 없이 무작정 쳐들어가는 게 무모한 짓거리인 게 당연하다.
로이드는 내 생각보다 훨씬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
그 덕분에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지.
로이드는 가져온 짐 속에서 기다란 원통형의 나무와 급속이 결합된 어떤 도구를 꺼내들었다.
양쪽 끄트머리에 볼록한 유리가 끼어있어,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녀석이 말하기에, 그것의 이름은 ‘망원경Teleskop’이라고 했다.
“이게 있으면 오백 걸음 바깥까지도 제대로 볼 수 있지.”
정말이었다.
이식을 하면서 시력이 대폭 강화되었음에도 보이지 않던 먼 광경이, 마치 코앞에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어떤 원리인지, 나는 한동안 감탄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놀라움도 잠시였다.
곧이어, 망원경으로 바위산 주변의 마을을 살피던 로이드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제, 젠장.”
“왜 그러지?”
“역시 그랬어. 저 마을은 이미 마녀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하지만 마기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지?”
“오거Ogre급 중합체가 두 마리 있었어. 그럼 말 다한 거지, 마녀가 꽤나 많은 양의 재료를 구했다는 이야기니까.”
“그렇군. 그렇다면 이제···.”
“야, 임마? 아직도 처 들어갈 셈이냐? 대체 뭔 깡으로 덤벼드는 건데?”
“괜찮다. 중합체인지 뭔지는 전에도 쓰러뜨려 봤고.”
“허··· 그래, 잊고 있었다. 너는 그 소문의 신입이었지.”
그땐 가루의 힘을 빌렸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식을 끝마친 뒤부터 힘이 넘치고, 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븐 가지의 분말을 쓰지 않아도 어떻게든 맞붙을 수 있겠지.
하지만 로이드는 극구 반대했다.
“멍청한 자식··· 그건 네가 아직 진짜와 마주한 적이 없어서 그래.”
“진짜라고? 그런 것도 있나?”
“잘 들어. 둘 이상의 사역마가 합쳐지거나 비슷한 부피의 재료를 써서 덩치가 커진 놈을··· 일단 우리는 싸잡아서 중합체라고 부르고 있지. 하지만 거기에서도 급이 나눠진다.”
“뭐라고?”
“네가 죽인 건 아마 열 명 이상을 재료로 들여서 만든 걸 거야. 넉넉하게 잡아서 많아봐야 스무 구겠지. 고작해야 브루트brute급에 불과해. 하지만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저건··· 그딴 거랑 수준이 달라. 오거Ogre급이라니까?!”
“이름만 거창하군. 얼마나 차이가 있다고 호들갑이지?”
“···직접 봐.”
로이드는 내게 망원경을 내밀었다.
나는 곧장 아래를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나는 얼어붙었다.
유리 너머로 확대된 바위산 아래 동굴 속에는, 그것이 있었다.
최소한 백 명 이상의 주검으로 쌓아올려진 마물.
자신의 무게조차 지탱하지 못하는 역겨운 살덩이가 두 마리···.
엎드린 채 여러 개의 발로 기어 다니는 그 모습은, 흡사 거대한 둥지를 튼 거미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