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장(2)
2.
시체의 상태는 비참했다.
썩은 지 일주일은 넘어 보이는 상반신···.
사타구니는 악어에게라도 베어 물린 듯 통째로 날아가 있다.
방치된 채 산짐승들과 벌레에게 뜯어 먹혔어, 남은 것은 구멍이 뚫린 몸통과 그 위를 덮은 인피뿐이었다.
나는 부디 그가 산채로 이런 처우를 받지 않았기만을 빌었다.
“제리온, 네가··· 너 정도의 실력자가 어째서?”
빌헬미나는 현실을 믿을 수 없는 듯 했다.
제리온이란 사내는 그렇게나 강했단 말인가?
“누님, 좀 진정 하십셔!”
“나도 알아.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어. 저 녀석, 제리온은 10년간 무패를 자랑하는 베테랑이었다고! 대스승 베누다가 그 자식을 후계자로 점찍었을 정도로···.”
“평소의 누님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그보다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요? 저 시체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슴다!”
“아니, 나는 알 수 있어. 저건 틀림없는 제리온이다. 왼쪽어깨에서 가슴 중앙까지 나 있는 저 흉터는··· 예전에 날 지켜주다가 생긴 상처란 말이야! 그걸 내가 착각할 것 같아?”
빌헬미나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우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나오는 통곡이었다.
분명 매달린 남자와 생전에 꽤나 가까운 사이였을 테지.
예전의 연인이란 걸 감안해도, 아직까지 그 감정이 깊게 남겨져 있었던 것이라.
“어떻게 된 거지? 마기도, 결계도 없는데 무엇이 제리온을··· 윽!”
순간, 빌헬미나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리고 나와 로이드도 곧 같은 움직임을 해야만 했지.
왜냐하면 갑자기 이마 양옆을 통해 어떤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편두통과 비슷하면서도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눌러오는 압박감···.
이건 처음 겪어보는 현상이다.
하지만 빌헬미나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로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지령Befehlsgewalt이 이때···.”
“으··· 가까이에 다른 동료가 있기라도 한 겁니까?”
“이 마을엔 제리온과 함께 온 파트너가 있을 거야. 아마 3년 전에 이식을 받았던 애송이 녀석이.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론 사념파를 보낼 수 없을 텐데···.”
“할 수 있었나 보죠. 그런데 그 양반은 무사할까요?”
“그러길 바라야지. 어느 쪽이든 상황이 좋은 것 같진 않아. 제기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우리들 중에 가장 강한 베테랑인 빌헬미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니···.
평온한 여행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어디를 가든 흉흉한 일만 벌어지는군.
그 정도로 이 세계의 구석구석에 어둠이 암약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빌헬미나, 이제 우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대기해. 당장은 상부에 연락을 취하는 게 우선이야.”
“그 지령Befehlsgewalt이라는 걸로 말입니까?”
“설명은 나중이다. 어차피 알아봐야 넌 못쓰니까 의미도 없고.”
하지만 자꾸만 일이 꼬인다.
빌헬미나는 뭔가가 잘못된 것인지, 이마를 한참이나 누르다 역정을 냈다.
“망할, 틀렸어. 집중이 안 돼.”
“예? 누님, 이 주변엔 결계가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아무리 쥐어짜도 사념이 나온지 않아.”
어쩌면 그녀의 컨디션이 나쁜 것은 제리온이란 사내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로이드도 나와 같은 생각인 눈치다. 하지만 경솔하게 입을 놀리진 않는다.
의외로 녀석에게도 말을 뱉어낼 시기를 살필 정도의 눈치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옛 연인이자 동료를 잃고, 한 사람 구실도 못하는 나와 로이드까지 챙겨야할 입장이란···.
지금 가장 힘든 것은 그 누구보다 빌헬미나일 테니까.
“둘 다 정신 똑바로 차려. 잘은 몰라도 이미 마녀의 결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해라.”
“빌헬미나,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를 노리는 뭔가가 있다고 한다면, 특히 이 주변은 숨을 곳이 많아서 위험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이동하죠.”
“그래. 말 잘 했다, 덩치. 이젠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우리는 급히 마차에서 중요한 짐만 챙기곤, 급히 비교적 시야확보가 용의한 장소까지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조금 걸은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강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쪽은 숲을 등지고 있지만, 적어도 지형 상 습격을 당할 문제는 없어보였다.
“누님, 이 개울이 마을의 식수인 모양인데요?”
“그 정도는 지리만 봐도 알잖아? 그래서 그게 뭐?”
“아니, 그런 것치곤 마기의 잔향이 코빼기도 안보여서 말입죠?”
강물.
마기.
나는 어떤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로이드, 식수와 마기에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는 건가?”
“뭐야? 넌 그것도 모르는 거야? 아무튼 소문의 신입도 아는 것 하나 없다니까. 역시 세태에 맞는 절차를 거쳐서 성장하는 게 좋아. 나는 누님 밑에서 순서대로 하나하나···.”
“로이드.”
말장난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 딴엔 가라앉은 분위기를 좀 풀어보고자 지껄인 거겠지만, 당장은 불필요한 시간낭비다.
“그냥 말해다오.”
“흠···. 어쩔 수 없구만. 이 선배님이 알려주지.”
내가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단 걸 깨닫고 나서야, 로이드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마녀가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마을 단위를 집어 삼킬 계획을 짜는 경우엔 맨 먼저 식수부터 오염시킨다고 하더라. 물속에 가라앉은 상태로 끝없이 수은 같은 걸 뿜어내는 뭔가를 미리 뿌려두는 거지. 잘은 몰라도 그건 마기의 결정체 같은 거야.”
“···그렇군.”
“너, 뭔가 짐작 가는 거라도 있냐?”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하, 싱거운 자식··· 지금이 여유부릴 때냐?”
하지만 이걸로 우리 마을을 서서히 좀먹어가던 기이한 현상의 수수께끼가 일부 풀렸다.
너였던 거로구나, 클라리스.
너는 정말로 처음부터 내 고향을 날려버릴 셈으로···.
“잠깐, 둘 다 입 닥치고 있어!”
갑자기 빌헬미나가 우리를 제지했다.
그녀는 서둘러서 수풀 쪽에 몸을 숨기라고 손짓을 했다.
내가 겨우 몸을 낮추었을 때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뭔가가 있었다.
주홍빛의 색채를 가진 엎드린 무언가가···.
“여, 여자애?”
“쉿!”
“이상한 걸 뒤집어쓰고 있는뎁쇼?”
그랬다.
로이드의 말처럼 시냇가에는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의 소녀···.
미묘하게 색기를 풍기면서도, 어쩐지 덜 성숙한 인상을 느끼게끔 만드는 여체가 물가로 내려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물의 요정Naiad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게 지독한 착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좀 더 거리가 가까워지자, 로이드가 언급했던 ‘소녀가 뒤집어 쓴 이상한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어떤 작은 짐승의 머리였다.
붉은 털을 가진 여우의 두상 아래로 새하얀 피부의 두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저건 마녀···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지.
우리의 목적은 마녀를 찾아내 죽이는 거다.
애초에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이 멀고 먼 외지까지 파견된 것이다.
나는 손아귀에 도끼자루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빌헬미나가 내 옷자락을 잡더니.
“잠깐···.”
어째서인지 나를 만류한다.
그녀는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섣부른 짓 하지 마. 잘 보라고. 저 여자애한테선 마기가 흘러나오지 않잖아?”
물론 내 눈에는 안 보인다.
아니, 빌헬미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마녀는커녕 사역마 조차 아니라고?
하지만 저 흉물스런 꼬라지를 보라.
여우의 대가리를 쓰고 있는 여자 아이가 멀쩡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에는 굳이 마기 따위와는 별개로 매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엄연히 사교도의 수작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니, 넓적한 돌 위에 자그마한 자갈을 순차적으로 쌓은 장식이 엿보였다.
한 두개가 아니다.
사방에 수십개가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사악한 의식의 흔적이 아닐까?
“있어봐. 저 아이, 지금 뭘 하는 거지?”
빌헬미나는 눈을 찌푸리며 수풀 바깥의 광경에 집중했다.
마침 소녀는 오른손에 뭔가를 쥔 채 물이 무릎까지 잠기는 수면까지 걸어나왔다.
개울에서 물장난을 하는가 싶더니···.
“미친!”
로이드가 입을 막은 채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빌헬미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도 그럴 게, 소녀는 물가에서 자신의 배를 가르고 있었기 때문에···.
끔찍해서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저 여자아이가 손에 들고 있었던 건 날카로운 돌칼이었던 것이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뱃속의 창자를 길게 끄집어내선 장난치듯 빙빙 돌리더니, 그것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강에다 내팽겨 친다.
“더는 못 봐 주겠네.”
오래도록 마녀 사냥을 해왔을 빌헬미나조차, 소녀의 잔인한 유희는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몸을 감추지 않아, 수풀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무기를 전개했다.
채찍.
그것은 물소 가죽에 짐승 기름으로 절여진 절편이었다.
“꼼짝 마. 그 자리에서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이걸로 살가죽을 도려내줄 테니까.”
빌헬미나는 채찍을 허공에다 한 번 튕겼다.
그것만으로도 소리가 폭발했다.
마치 공기가 터지는 듯 오싹한 파공음이었다.
저걸 맨 몸으로 받아낸다면··· 빌헬미나의 경고는 절대 허풍이 아니리라.
“아···.”
여우의 머리가 이쪽으로 기운다.
빌헬미나를 주시하며, 소녀는 어깨를 들썩였다.
손가락으로 빌헬미나에게 삿대질을 하더니.
“야, 움직이지 말랬···.”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 아주 날카로운 외마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끔찍하고 듣기 싫은 울림이야, 나는 그때 인상마저 썼을 것이다.
“···누님!”
그런데 여기서 로이드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무슨 경솔한 짓인가 싶어서 뒤늦게 고개를 들자, 뭔가가 기울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럴 수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뒤돌아선 빌헬미나의 코트에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었다.
그 위치는 본디 중요한 장기가 밀집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털썩.
빌헬미나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시점에서, 나는 이미 개울에 몸을 날리고 있었다.
착지와 동시에 도끼를 휘둘렀다.
“아아아··· 으!”
콰직!
여자아이의 오른팔이 하늘로 튀어 오른다.
그것은 강물에 빠지자마자 급류를 타고 저 멀리까지 사라져버렸다.
“그르···.”
여우 머리를 쓴 소녀는 자세를 낮춘 채 나를 경계했다.
팔이 날아갔음에도 아픈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고통보다도 나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커 보일 지경이다.
이 녀석, 진짜 사람이긴 한 건가?
‘하지만 방심할 순 없어. 뭔진 몰라도 방금 빌헬미나가 당했으니···.’
망설일 여유가 없다.
상대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끝장을 내야만 했다.
나는 뒷걸음질 치려는 소녀에게로 다시 한 번 도끼날을 처박아 넣었다.
하지만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을 노렸기 때문이었을까?
잠깐의 망설임 탓에 내 조준이 빗나가기라도 한 것일까?
수직으로 내리 찍었음에도, 도끼날이 벤 것은 겨우 여우의 가죽뿐이었다.
역시나 덮어쓴 물건에 불과해, 그 안에는 갈색머리칼을 가진 자그마한 얼굴이 들어있었다.
예쁘장한 생김새다.
녹안에 눈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낸 것만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평범한 십칠 새 소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대로, 그것은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다.
“카악!”
소녀는 고양잇과 동물의 위협 같은 소리를 내더니, 당장 뒤돌아서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달아났다.
‘빌어먹을, 놓칠 것 같으냐?’
그러나···.
“멈춰! 쫒아가지 마!”
로이드가 필사적인 고함을 쳤다.
나는 그가 이정도로 간절한 외침을 뱉어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녀석은 그럴 만 했다.
“그보다 누님을···.”
“···.”
로이드는 울상을 한 얼굴로 빌헬미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가슴과 배 아래의 상처에서 지혈을 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이미 그녀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으니까.
축 늘어진 빌헬미나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