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47화
빈첸의 방문이 열렸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너군.”
“나를 알아보았나?”
“1층에서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데.”
1층에서 3급 생도들과 만났을 때, 이쪽을 주시하던 눈이 있었다.
사실 빈첸은 그자에게 미리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그것뿐인가?”
“상당한 양의 마나가 느껴지는데 단련된 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법력을 담은 고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지.”
테이머.
생명체와 교감하여 그들을 길들이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들.
“극독 전갈은 어떻게 알았지?”
빈첸이 피식 웃었다.
입고 있던 셔츠의 팔목을 살짝 걷었다.
팔뚝 부근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제법 따끔하더라고.”
극독전갈은 무인처럼 마나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빈첸도 찔리기 전까지는 극독전갈이 있는지 몰랐다.
찔리고 나서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이 체 내에 침투했다는 것을 알았다.
“말도 안 된다.”
“그런 말 자주 듣는다.”
“극독전갈의 독은 상급 거인종 마물조차도 쉽사리 녹여 버리는 맹독인데.”
빈첸이 피식 웃었다.
저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극독전갈은 1급으로 분류되는 아주 위험한 마물이니까.
“내 스승님이 나를 많이 아꼈거든.”
빈첸이 언급한 ‘스승’은 아넬린이었다.
아넬린은 오랜시간이 걸쳐 빈첸에게 용혈을 선물했고, 빈첸은 그 힘을 몸에 받아들인 상태.
용혈을 머금은 그의 몸은 독을 중화시켰고, 잔여 독은 뇌기로 태워버렸다.
빈첸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언제까지 시간 끌래?”
“뭐?”
“순순히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보통 테이머는 전면에 잘 나서지 않는다.
암습이 들킨 상황이면 더더욱.
그런데 이자는 직접 나섰다.
빈첸이 피식 웃었다.
“왜? 개미군단이라도 부르려고?”
빈첸은 귀에 마나를 집중하여 청력을 잔뜩 높인 상태.
사사삭-
벌레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군단’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빈첸이 다시 말했다.
“네 이름은?”
“대니얼 레오프리오다.”
율리안이 찔끔 놀랐다.
-대니얼 레오프리오요?
‘아는 이름이냐?’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테이머인데요.
테이머 계열의 능력자들 중에서 최상위의 능력을 가진 자라는 소리였다.
과연,
무인 앞에 대놓고 모습을 드러낼 정도의 실력자였다.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테이머가 겨우 나 같은 애송이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군.”
“그러게나 말이다.”
그는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약점을 잡혔나?”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빈첸이 또 씨익 웃었다.
“누군가 시킨 것은 확실하군.”
“…….”
대니얼은 인상을 찡그렸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겨버렸다.
“장로원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해 주지 않겠지?”
“…….”
“극독전갈을 미리 준비한 걸 보면 내통자가 더 있을 텐데. 그것도 말 안 해줄 테고?”
“…….”
대니얼은 침묵을 선택했다.
그저 마나를 일으켜 불개미 군단을 불러냈다.
마리엘은 찔끔 놀라 빈첸의 뒤에 섰다.
“비, 빈첸…… 괜찮은 거야?”
“3급 충왕종 푸른 불개미. 소리에 민감해. 소리를 내는 순간 온몸을 갉아먹을 거야.”
그 말에 마리엘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은 분명 공포였다.
대니얼이 말했다.
“별로 당황하지 않는군.”
어느새 방 안은 푸른 불개미로 가득찼다.
성인의 중지손가락 정도 되는 개미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은, 마치 지옥이 소환된 것만 같았다.
“급수는 낮고, 각 개체의 힘과 독은 약하지만, 군단을 이루기에 무서운 마물들인가.”
“마물에 대한 공부가 무척 잘 선행되어 있는 것 같군.”
다른 검술가들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의 검술가들은 이토록 상세하게 공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검술을 익히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래서 보통은 길잡이 등을 따로 고용하는 편이었다.
빈첸은 음성에 마나를 담아 은밀하게 전달했다.
-장로원이냐고 묻지는 않겠다. 약점이 잡혀 있는 것이 맞다면 눈을 빠르게 세 번 깜빡여.
그리고 육성으로 말했다.
“극독전갈로 나를 찌른 시점부터, 나는 너를 살려둘 수 없어.”
사정이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마리엘과 자신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용혈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네 억울함을 이용할 쓰레기들을 처리해 줄 용의는 있거든.
빈첸이 홍련으로 대니얼을 겨누었다.
홍련의 검날에 푸른 뇌기가 서렸다.
마나를 끌어올려 마력회로에 투과시켰다.
-형님 뭘 쓰려는 거예요?
‘신장검무.’
아덴카 정검의 9식이자 최종식.
신장검무를 펼칠 생각이었다.
-이, 이 비좁은 공간에서요?
정검의 최종식인 신장검무는 정검의 단 하나 존재하는 광역기술이었다.
그 광역기를 뇌력과 연환하려 사용하려 했다.
뇌력 연환.
신장검무(神將劍舞).
빈첸의 검에 뇌력이 깃들었고, 아덴카 검식이 펼쳐졌다.
뇌력을 머금은 그의 검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생성되었다.
마리엘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빠르다!’
빈첸의 움직임은 가히 신속이라 부를 만했다.
그녀의 눈으로는 빈첸의 동작을 읽어낼 수조차 없었다.
그는 푸른 궤적을 남기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 하나하나가 검격에 가공할 만한 뇌력이 담겨 있어.’
저 폭발력을 받쳐주는 신체.
검격을 받아주는 명검.
그리고 아덴카 최종검식을 펼치는 빈첸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과도 같았다.
군단과도 같았던 푸른 불개미들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숙소의 벽이 갈라지고, 천장이 뜯겨나갔다.
빈첸의 주변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저, 저런 건 본 적도 없다고.’
빈첸의 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빈첸의 검과 맞닿은 푸른 불개미들 수백 마리가 단 일 검에 녹아내렸다.
그러면서도 빈첸의 검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저 강맹한 모든 공격이 개미군단을 도륙했다.
‘보통 저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면 섬세함은 떨어져야 하는 게 정상 아냐?’
마리엘의 상식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대니얼의 상식도 함께 파괴되었다.
대니얼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일부러 저런 힘을 꺼내 쓰고 있구나.’
빈첸은 지금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푸른 불개미의 군단정도는 검무 한 번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힘을.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정도 속도라면 나를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터.’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다.
테이머를 잃은 군단은 이리저리 흩어져 버릴 테니까.
물론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낳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 방법이 지금의 저 방법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효율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거겠지.’
빈첸은 일부러 비효율을 선택했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개미군단을 전멸시키려고 했다면 진작에 전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일검에 모조리 녹여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을.
그의 등줄기와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게 시간을 주기 위함이구나.’
일부러 시간을 주었다.
조금 더 상황을 정확히 보라는 빈첸의 배려였다.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게 이런 거였나.’
그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세 번 빠르게 깜빡였다.
깜빡.
깜빡.
깜빡.
차라리 속이 후련해졌다.
‘네게 맡기마.’
푸욱!
가슴팍에 무언가가 꽂혔다.
뇌력을 머금은 홍련이었다.
대니얼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대니얼을 향한 마지막 배려였다.
‘고맙군.’
즉사였다.
빈첸의 강맹한 기운이 대니얼의 의식을 순식간에 끊어냈다.
빈첸이 검을 회수했다.
검날 끝에 작은 쪽지가 있었고, 빈첸은 아무도 모르게 그 쪽지를 회수했다.
* * *
한바탕 난리가 났다.
빈첸이 머물던 숙소는 아수라장이 됐다.
숙소는 마치 케이크처럼 여섯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율리안이 허허- 웃었다.
-그 와중에 사상자는 한 명도 안 낸 거 실화인가요?
빈첸이 보여주었던 그 경이로운 무위조차도, 사실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주변을 충분히 신경 쓰면 검무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빈첸은 여유로운 상태였다.
다만,
대니얼을 제외한 사망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브릭!”
3급 생도 중 한 명, 브릭이었다.
그의 몸이 시꺼멓게 물들어 있었다.
또 다른 3급 생도 케시언은 브릭의 몸을 껴안고 절규했다.
케시언은 빈첸을 발견하고서 버럭 소리 질렀다.
“이 개자식이, 브릭을 죽여?”
그는 곧바로 검을 뽑아 빈첸을 향해 달려들었다.
빈첸은 검을 뽑지도 않고 슬쩍 몸을 틀어 검을 피해낸 뒤, 발을 걸어 케시언을 넘어뜨렸다.
“동료가 죽었을 때, 사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안 배웠습니까?”
“닥쳐!”
케시언은 몸을 벌떡 일으켜 다시금 빈첸에게 달려들었다.
빈첸은 간결한 손동작으로 케시언의 검을 툭 쳐내어 땅에 떨어뜨린 뒤, 다른 손으로 케시언의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이 개 같은……!”
짝!
다시금 뺨을 때렸다.
그제야 케시언은 제정신을 차렸다.
“가슴팍에 저 마정석을 봐.”
마정석에서 시꺼먼 벌레들이 꾸물꾸물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대니얼의 마정석일 것이다.
테이머로서의 능력을 발현하기 위한 도구일 확률이 높았다.
“마리엘 선배는 증거품으로 저거 수집해.”
“아, 아, 알겠어.”
마리엘은 허둥지둥 움직였다.
사실 그녀도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빈첸이 검기를 쏘아내 마정석 주변의 독벌레들을 모두 죽여주고 나서야 마리엘도 정신을 차렸다.
‘그냥 손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물론 테이머가 있을 때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분명한 마물들이었다.
그녀는 보호장갑을 착용하고서 마정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검을 꺼내 위험한 마물들을 골라 사살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 마리엘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방을 배정 받기도 전에 극독전갈이 숨어 있었어. 미행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디서 묵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내통자가 있었다는 뜻이지.”
그 내통자가 브릭이었다.
대니얼의 마정석을 지니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었다.
그러니까 장로원은 마리엘 한 명으로 모자라 대니얼과 브릭에게까지 손을 써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빈첸에게 불손한 의도가 없었던 사람은 빈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케시언뿐이었다.
-혀, 형님, 케시언 자식이 다가오는데요?
하루아침에 친구를 잃은 그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빈첸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케시언은 빈첸 앞에 털썩! 무릎 꿇고 앉았다.
“미안하다.”
검 손잡이를 빈첸 쪽으로 향하여 두었다.
무인으로서 상대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였다.
“친구의 일탈도 전혀 알지 못했고, 사인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애꿎은 네게 성질머리를 부렸다.”
말을 하는 그는 무척 슬퍼 보였다.
빈첸의 눈으로 본 그는 무능하기는 했지만, 동료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진짜인 것 같았다.
“케시언 선배는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빈첸은 케시언을 데리고 자신이 머물던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목이 없는 시체가 한 구 있었다.
“서, 설마……!”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겠어?”
빈첸의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대, 대, 대니얼 레, 레오프리오?”
“맞아. 정확히 봤어.”
“이, 이, 이자가 어떻게……!”
빈첸은 윌슨을 시켜 작은 나무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나무 상자 안에, 빈첸의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담았다.
나무 상자가 붉게 물들었다.
“이걸 아덴카의 장로원에 전달해.”
“모, 목을 전달하라는 말이냐?”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빈첸 아덴카가 보내는 것이라고 하면 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