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48화
어느 기관이 되었든 막내는 존재한다.
그리고 막내들이 많은 실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다.
아덴카의 장로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로원의 막내는 신입 장로 테일린이었다.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던 그에게 한 가지 전갈이 전해졌다.
“붉은 요새의 3급 생도가 장로원을 찾았다고?”
“예. 쫓아낼까요?”
안 그래도 테일린은 일이 많았다.
생도의 일처럼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 쓰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평소라면 들어보지도 않고 쫓아냈을 것이었다.
‘잠깐.’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이유가 뭐라던가?”
“빈첸 공자님께서 뭔가를 보냈답니다.”
테일린은 잠시 고민했다.
‘임무는 아직 수행 중일 테고.’
보고서라면 마법전달소를 통해 보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을 직접 보냈단 말인가.
“어떻게 할까요?”
“들여보내.”
신입 장로 테일린은 장로원을 찾아온 3급 생도 케시언과 만났다.
“3급 생도 케시언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본론만 간단하게 말하도록.”
“알겠습니다.”
케시언은 아덴카의 장로인 테일린 앞에서 바짝 긴장했다.
그는 아공간에서 나무상자를 꺼냈다.
나무상자를 보자마자 테일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테일린은 코를 막았다.
그는 불쾌한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져왔다?”
“예. 빈첸 생도가 꼭 장로원에 전달하라 하였습니다.”
“3급 생도쯤 되면 장난과 장난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은 있을 터인데.”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어봐.”
“알겠습니다.”
테일린의 예상대로 나무상자 안에는 머리가 들어 있었다.
그는 이 머리의 주인이 누군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자는, 내가 아는 그 테이머가 맞느냐?”
“대니얼 레오프리오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군. 이 머리를 장로원에 보내라 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알겠다.”
테일린은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빈첸,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가 물었다.
“시간이 좀 있느냐?”
“물론입니다.”
“빈첸이 수행한 임무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아라.”
케시언은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테일린에게 털어놓았다.
케시언의 말을 토대로 테일린은 많은 것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대니얼과 장로원의 결탁이 있었고, 빈첸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빈첸은 오히려 대니얼을 죽여서 장로원에 보낸 것이군.’
테일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보통 배짱이 아니군.’
그는 곧바로 장로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는 대신, 그 나름대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끌어모았다.
그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린 뒤 장로들에게 해당 상황을 전했다.
“빈첸이 보내온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장로원은 시끄러워졌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장로원에 사람의 목을 보내오다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생도라면, 이런 짓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장로원을 모욕하는 행위가 아니면 뭐란 말이오?”
“가문의 규율과 법도에 따라 빈첸 공자를 엄히 문책해야할 것입니다.”
대부분이 그와 같은 뜻이었다.
테일린은 4대 장로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들 또한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군.’
저 장로들 중에는 빈첸이 왜 이렇게 했는지 아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처럼 몰랐던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4대 장로쯤 되는 자들이라면 대니얼의 목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변호해 주기도 글러먹었어.’
그는 가타부타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미 빈첸은 장로원을 도발한 품격 없는 애송이가 되어 있었다.
‘정말로 품격 없는 애송이라고 생각들 하십니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장로원은 이미 빈첸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빈첸의 선택은 합당한 선택이다. 빈첸의 선택은 합리적인 도발로 해석해야 맞을 것이다.’
도발이라는 사실 자체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품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려 10대 테이머 중 한 명이라 불리는 대니얼 레오프리오의 목 아닌가.
빈첸은 수만가지 말보다, 한 가지 행동으로 자신의 격을 증명해 보였다.
이것은 지극히 아덴카의 무인다운 방식이었으며 더 젊은 날 테일린이 꿈꾸었던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장로원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동경했던 장로들의 모습은 없었다.
그가 본 장로들은, 권력과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승냥이무리였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다. 무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낱 애송이의 치기 어린 도발로만 해석하고 있구나.’
빈첸의 도발을 접한 장로들 중 몇은 생각을 고쳐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빈첸은 품격을 보여주었으나 장로들은 한심함을 보였다.
“가이아 신전에 출장을 좀 다녀오겠습니다.”
막내 장로이니 만큼 출장이 잦았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찾아간 곳은 가이아 신전이었다.
그곳에서 둘란과 만났다.
“장로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테일린은 빈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속마음을 내보인 것은 아니었으나, 둘란과 손을 잡고 싶다는 뜻만큼은 명확하게 내비췄다.
“흐음, 저는 빈첸 공자의 친구가 맞기는 합니다만, 사실 제 입장에서는 장로분들을 무턱대고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해합니다. 장로원은 빈첸 공자를 이미 쳐내야 할 싹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제 대신 다른 분과 만나보시겠습니까?”
“혹시 멀린 경입니까?”
멀린은 전대 아덴카의 12검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현재 둘란을 섬기는 성기사단장이기도 했고.
“아닙니다.”
“그러면…….”
“아이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관입니다.”
아이만.
그는 과거, 넬리우크를 보좌했던 6명의 보좌신관 중 한 명으로써, 대외적으로는 행방불명된 신관이었다.
“이름이 낯이 익군요.”
“예, 아마도 장로원과도 연결고리가 있었을 겁니다. 넬리우크 신관의 보좌신관 중 한 명으로써 장로들과 만남을 가졌었으니까요.”
“……아, 알 것 같습니다. 예전 베르사 부인에 의해 델백 장로님의 팔이 잘렸던 그때 함께 했었던 보좌신관들 중 한 명으로 기억합니다. 유일하게 목을 걸지 않았었다고…….”
“맞습니다.”
둘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여, 덧붙여 설명하자면 아이만 경은 결국 넬리우크 신관을 배신하였고 제 편에 서게 되었지요. 부랑자 수용소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어 빈첸 공자가 큰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운 자이기도 합니다.”
“아이만 신관님이라면 저를 조금 더 정확한 눈으로 판단해 줄 수 있겠군요.”
테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만은 넬리우크를 배신하여 빈첸의 편에 섰다.
자신은 장로원을 배신하여 빈첸의 편에 서려 한다.
말하자면 아이만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시험해 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분 나빠하지 않으시는군요.”
“충분히 생각했던 바입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둘란은 잠시 침묵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명예와 권력과 돈을 모두 거머쥘 수 있으실 텐데요. 왜 굳이 험하고 어려운 길로 가려는 것입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는 잠시 고민했다.
여러 가지 많은 말들이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행동으로 보이겠습니다.”
빈첸처럼 말이다.
* * *
빈첸이 말했다.
“아주 거대한 표범을 봤다고 했어. 마물도감에도 기록되지 않은 흑표범. 테이머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으니 야생성이 되살아났겠지.”
마리엘은 표범의 모습이 생각난 듯 몸이 경직되었다.
그녀는 표범의 황금색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표범이 마리엘 선배를 먹잇감으로 생각했다고 했지?”
“그랬던 것 같아.”
“혀를 핥아서 체액을 선배에게 묻혔다고 했고.”
“……응.”
그녀는 으-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섭다며 빈첸의 옆에 바짝 섰다.
그녀는 빈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려 했다.
‘응?’
분명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도, 빈첸의 몸에 닿지 못했다.
그녀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신체의 움직임과 보법에서도 한참 차이가 나는구나.’
그녀로서는 빈첸의 움직임을 읽어낼 재간이 없었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선배를 저장한 먹잇감으로 생각했다면 결국 선배를 사냥하려들 확률이 높아.”
“무, 무서워.”
“한심한 소리는 거기까지만하면 좋겠는데.”
“……보통 무섭다고하면 막 위로해 주던데.”
“3급 생도들의 해이해진 기강을 알 만하군.”
“히잉, 너무해.”
“우리의 임무는 이 마을의 마법결계가 복구될 때까지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니, 선배가 미끼가 되어주어야겠어.”
“……응?”
“마을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흑표범의 먹잇감이 되라고?”
“죽지는 않게 해줄게.”
“그, 그래도 빈첸, 네가 그 흑표범을 못 봐서 그래. 진짜 엄청엄청 거대해. 그 압도감이 장난 아니었어.”
그녀는 한참 엄살을 부리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네가 더 엄청난 거 같기는 해. 까짓거 할게. 미끼.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돼?”
“생도가 생도의 일을 하는데 조건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래도. 나도 나름 목숨 걸고 하는 건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약간은 투정을 부리는 듯한 모습에 율리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투정을 부리는데도 저렇게 예쁘면 반칙 아니에요?
‘시끄럽다.’
-형님은 고자가 틀림없어요. 아, 아니, 아니지, 내 몸, 아니 이제 내 몸은 아니지만, 아무튼 고자는 아닐 거예요. 아니어야 해요.
마리엘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냐. 응? 그럼 내가 미끼 역할 열심히 할게. 힘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잖아.”
“뭔데?”
“그냥 나랑 하루만 데이트하면 안…….”
그런데 그때,
마을 경계 쪽에 소란이 일었다.
“쳇.”
마리엘은 혀를 찼다.
경비병들 중 몇몇이 마물이 나타났다 소리쳤고 사람들이 대피하기 시작했다.
“혼비백산이네.”
빈첸과 마리엘이 마을 경계 쪽으로 뛰었다.
방벽 바깥쪽, 거대한 머리가 하나 보였다.
-진짜, 엄청나게 거대하긴 하네요.
‘자연적으로 저렇게 거대한 마물이 존재할 수는 없겠지.’
했다면,
이미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제 생각도 그래요. 키메라일 확률이 높아요.
키메라.
마법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생명체였다.
“방벽을 부수고 침입하기 전에 토벌한다.”
빈첸은 표범에게서 느껴지는 인위적인 기운들을 느꼈다.
자연에 존재하는 마물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게다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사념과 사기마저 느껴진다.’
아직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흑마법이 동원된 것 같기도 했다.
흑마법이 동원되려면 제물이 필수다.
그리고 저 정도 마물을 만들어내려면, 아마도 상당히 많은 수의 제물이 필요했을 것이고, 보통 흑마법사들은 인간을 제물로 한다.
빈첸은 설상걸음을 펼쳐 거대 흑표범과 거리를 좁혔다.
마리엘은 빈첸의 뒤를 쫓지 못했다.
“비, 빈첸?”
너무 빨랐다.
빈첸은 그대로 방벽을 타고 올랐다.
마치 공기를 밟고 하늘로 향하는 것 같았다.
빈첸의 몸이 하늘 높이 떴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붉은 빛을 내는 홍련이 들려 있었다.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게 되었구나.”
마나를 끌어올렸다.
자연의 마물에게서 존재하지 않는 인위적인 향이 느껴졌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저 인위적인 생명체에게 안식을 주어야 했다.
방벽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입을 쩍 벌리고 빈첸을 바라보고 있었다.
빈첸은 음성에 마나를 담았다.
방벽 구석구석, 이곳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이 검의 이름은 초월검격이며.”
이능을 베는 검격.
이 검의 이름은 그의 스승이 정해주었다.
그 스승의 이름을 기록해야 했다.
“경외하는 나의 스승, 아넬린에 의하여 명명된 검격이다.”
빈첸이 ‘초월검격’을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