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밀림 속으로 [13] >
시엔이 급히 머리를 굴렸다.
늑대인간의 제조를 확인하려다 얼떨결에 제국의 잔당을 발견한 상황이다.
성급하게 송곳니를 드러내다 벌레 한 마리라도 새면 속이 쓰리다.
시엔이 일단 둘러대 보았다.
“죄송합니다. 부잣집 도련님과 사제라서.”
“위장 때문이라 이거지?”
나림이 인상을 구겼다.
궁색한 변명이었다.
손가락 가득 반지를 끼고 있으니 개중 하나 인장 반지라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물론 보아하니 전부 값진 보석을 박은 것들이라, 그 사이에서 수수한 인장 반지가 눈에 띄기는 하겠지만.
여인 쪽이야 뭐.
사제복을 훔쳐 입기야 의회가 아니라도 신분 위장에 있어 최고의 수법이었다.
걸리면 교단의 철퇴가 날아들기는 하겠지만.
사제의 성복만으로 세상이 얼마나 친절하게 변하는지는 나림 역시 해 보아서 알았다.
“쓰잘데없는 소리 말고 바로 끼워. 계속 깜박할 것 같으면 차라리 줄에 꿰어서 목에 걸던가.”
“예. 그런데 그. 의사분은.”
시엔이 품에 안긴 뷔아를 내려다보고 다시 나림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시킨 대로 하고 싶으나 두 손이 모두 묶였다 말하는 모양으로.
“별채에. 저쪽, 보이지? 진료 끝나면 곧장 방을 내어줄 테니까 찾아오고. 저기 작은 건물이 내가 쓰는 집이니까. 그러고 보니 다른 짐은? 몸뚱이만 덜렁 왔어?”
“오던 중에 거대한 괴물을 만나는 바람에…….”
“제 짐도 못 챙겨? 하여간 멍청하기는. 어디 떨궜는지 위치는 알고? 뭐. 나중에 찾으러 가면 되지. 일단 부상자부터 맡기고 와.”
* * *
의사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노인이었다.
칼이나 제대로 잡을 수 있겠나 싶을 노인이었으니 나림이 오지라 사람이 안 온다 말했던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대개 의사가 환자가 들면 어찌 왔냐고 진료부터 해야 할 텐데, 진료실에 들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자네, 반지는?”
대체 인장 반지가 뭐라고 이리들 찾는지.
시엔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이미 욕 좀 먹었습니다.”
“걸렸구만? 흐흐.”
늙은 의사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오마자마 욕을 먹은 셈이군? 그래도 나쁜 감정 가지지는 말게나. 나림 님이 표현이 세서 그렇지, 좋으신 분일세.”
“그래요?”
“그럼. 입이 좀 험해서 그렇지. 게다가 원래 인상이 세긴 하잖나. 그래서 오해를 좀 받으시긴 하는데. 저만한 상관도 별로 없어. 자네도 지내보면 알아. 잔정이 많고 따뜻하신 분이야.”
“흠. 그렇군요.”
트리예와 비슷한 부류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통 늑대인간을 개조해 대주기를 일으킨 인물을 잔정이 많고 따뜻하다고 표현하나?
시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에 의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야말로 한 성깔 하는 모양인데. 하기야 젊다 이거지. 됐고. 환자는 어떤가?”
“그냥 탈진일 겁니다. 좀 무리를 해서.”
“탈진도 여럿인데, 몸도 못 가눠서 들려올 정도면 보통은 아닐 걸세. 이쪽에 눕히게나.”
진료실 한편에 뷔아를 눕히고, 시엔이 말했다.
“안정을 좀 취하면 됩니다. 잘 먹고 푹 쉬면 금방 나을 테니 따로 처방하실 필요는 없어요.”
“내가 의사지 자네가 의사인가?”
“저도 의술로야 어디 빠지지는 않아서요.”
“아. 그런가. 요즘 유달리 눈이 침침하니 진료를 보기 힘들다 했더니. 새로 의사를 보냈나 보이. 꽤 젊은데, 수습은 뗐나?”
“어려운 외과 수술도 몇 번이나 성공했고, 역병의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만.”
거짓말이 아니라도 사람은 속는 법이었다.
특히나 같은 소속이라 철석같이 믿는 상황에서는.
“호오.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래, 그만큼이나 실력이 따르는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 당장 내일부터 진료를 보세나.”
“예. 그럼, 시설의 인원은 얼마나 되지요?”
“경비대가 열, 연구원이 열 명. 그리고 의사와 요리사가 한 명씩이니까. 자네랑 해서 둘을 합하면 스물넷이 되는구만.”
대답이 술술 튀어나온다.
시엔이 신이 나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인원이 많지는 않네요?”
“많아 봐야 무얼 하겠나?”
“대수림이잖아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밖으로 나갈 일도 없고, 여기는 괴물이 나오는 장소도 아닐세. 괴물이 몰려와도 늑대인간 좀 내보내면 그만이고.”
“늑대인간이요?”
의사가 씩 웃었다.
“자네도 조만간 알게 될 걸세.”
“흠. 그런데 수인들도 있나요? 수인을 진료해 본 경험은 없는데.”
“수인? 웬 수인? 수인이 있을 리가 있나?”
“헤맬 때 사자 수인이 안내해 줬는데요.”
“아아. 히예브 말이군. 그는 외부인일세.”
“외부인이요?”
“석 달 전쯤인가, 넉 달 전쯤인가? 대뜸 나타나서 나림 님께 반했다며 쫓아다니고 있네.”
“외부인이 시설에 드나든다구요?”
“흠흠. 남녀가 눈이 맞으면 어쩔 수 있겠나. 나림 님도 틱틱거리지만 마음이 가니 있도록 둔 거지. 뭐, 어디서 그리 잡아 오는지 사냥의 명수야, 아주. 덕분에 고기 먹는 일이 많으니.”
수인과는 관련이 없다 이건가.
그렇다 쳐도 상당히 허술한 시설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쉬이 들어온 것도 그렇고, 의사의 말대로라면 제 마음에 든다고 외부인이 제멋대로 드나든다는 뜻이 아니던가.
“음? 그런데, 저건 뭔가?”
“예?”
“환자 머리에 말일세.”
시엔이 침상에 누운 뷔아를 바라보았다.
머리맡에 희미하게 어리는 광휘. 미약한 것이나 누가 보아도 신성하다 할 것이었다.
신성을 전부 소모해 자취를 감췄던 헤일로였다.
이전에 비하면 광채가 많이 흐리긴 했지만.
시엔도 아차 싶었다.
헤일로가 없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우니 지금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니.
시엔과 의사가 동시에 바라보니,
뷔아의 헤일로가 빠르게 점멸했다. 광량이 워낙에 적어 이전과 같이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저거, 당황하면 반짝거리는 구조였던가.
시엔이 하나 눈치챘다.
“어, 제 머리가, 왜요?”
“헤일로가 돌아왔군요, 뷔아.”
“헤일로요? 헤일로가 왜요? 언제는 없었어요?”
“탈진한 때에 벌레가 꼬이지 않지 않았습니까.”
“아. 맞네.”
의사가 둘의 대화에 따라가지 못해 끼어들었다.
“그, 무슨 말인가? 헤일로라니?”
“좀 더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어.”
“자네?”
시엔이 의사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래 봐야 조금 더 사나 못 사나 차이긴 한데, 뭐. 어차피 살 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지?”
“자네, 이게 무슨 짓이엑.”
유언치고는 상당히 웃긴 소리가 아닌가.
시엔이 키득거리며 손을 뗐다.
의사가 의자에서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머리가 기울다 못해 어깨를 넘어 빗장뼈까지 돌아가면, 인간이 이미 살아있을 수가 없는 법이었다.
뷔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료실에 있던 사람이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든 순간이었으니까.
“무, 무슨 짓이에요?”
“죽어야 마땅한 이가 죽었습니다. 문제라도?”
“다, 당연히 문제가 있죠!”
“쉿. 뷔아. 목소리가 큽니다.”
뷔아가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시 의사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처연한 표정이 되어 팔을 늘어뜨렸다.
“……설명해 봐요.”
“뷔아도 들었겠지만, 이 자들이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을 제조했습니다. 그 숫자가 사천에 이르르니 두 왕국이 이미 화를 입는 중이 아닙니까. 목숨을 잃는 자는 그 수 배에 이를 터이니, 죽어 마땅한 이가 아닙니까?”
“좋아요. 이 자의 죽음을 위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알겠어요.”
그리고는 뷔아가 눈을 마주쳐 온다.
“그런데, 말고도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죠?”
“하지 않은 말이야 무궁무진합니다만.”
“아, 씨. 지금이 말장난할 때에요? 대수림 한복판에 사람이 사는 것도 이상한데, 분명 시엔은 자연스럽게 대처했죠. 미리 알고 있었나요?”
“의외로 머리가 좋으십니다.”
“의외로?”
뷔아의 눈꼬리가 치솟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뷔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말 돌리지 말구요. 나 진지해요.”
“알고 숨겼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그럼요?”
“음. 일단 자리를 피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어쩔 셈이죠?”
“후광이 돌아온 것을 보니, 뷔아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은데. 목책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성인 키의 두 배쯤 되는 높이의 목책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뷔아도 쉬이 매달려 넘을 높이였으나, 지금의 상태를 알 수가 있어야지.
“문제없을 거예요. 아마.”
“그럼 일단 창문으로 나가, 목책을 넘겠습니다.”
시엔이 창을 가리켰다.
건물 뒤편으로 난 창문이었다.
창밖으로 가까이에 목책이 있으니 창을 틔워 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왜 굳이 창문을 틔워 놓았나 싶으나, 창이란 방에 하나라도 있어서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은 법이니.
이렇게 몰래 빠져나가기에도 좋고.
시엔과 뷔아가 창으로 나가 목책을 넘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 들킬 염려도 없었다.
혹여 몰라 뷔아가 먼저 넘는 것을 지켜보았으나, 애초에 가로대를 박아넣고 거기에 가로줄까지 엮은 목책의 안쪽이었다.
나무 좀 탄다 싶은 아이라도 오르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꼭대기에서 반대편으로 뛰어내리고 나서도 멀쩡하진 않겠지마는.
목책 밖으로 나와 의사의 시신을 적당히 수풀로 덮어두고, 시엔이 제국의 인장 반지를 챙겼다.
“좋아요. 이제 말해 봐요.”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날이 어두우니, 손을 잡으시지요. 빛을 틔우기엔 때가 좋지 않으니.”
뷔아가 말없이 손을 붙잡았다.
깜깜한 밀림을 헤쳐나가며, 시엔이 말을 풀었다.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이라. 본래 없던 것이라서 어쩌면 사람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세상 기묘한 일들은 대개 사람의 뜻이듯이.”
“그래서 저 사람들을 보고 범인이라 여겼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와는 또 별개로, 의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의회요?”
“예. 제국 의회라는 녀석들로 나름 비밀 결사라 하더군요. 하는 양을 보면 숨길 마음이 있기는 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요?”
“여기서 둘이 하나가 된 것뿐입니다. 늑대인간에게 오러를 쥐여주고, 대주기를 일으킨 세력이 바로 그들이니.”
“의회라고 했죠? 그럼 그들의 목적은 뭔데요?”
“저도 모릅니다. 그걸 알 기회가 있었는데.”
“있었는데요?”
“누군가 그때 후광을 발하는 바람에 말입니다.”
“후광이요? 갑자기 무슨, 아.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뷔아의 목소리가 움츠러들었다.
시엔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세상에 없어야 할 것이 나왔습니다.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이라. 그에 관련된 이와 자료를 모두 지워야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겠지요.”
“돌아가서 군세를 이끌고 돌아온다면…….”
“그래서는 늦습니다. 신입 둘이 사라지고 의사의 시신도 발견이 될 터이니, 들켰다 싶으면 숨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 지워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우리 둘이서요?”
시엔이 문득 멈춰 섰다.
밀림의 수목이 자취를 감추고, 무너지고 뭉개져 평탄해진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그 가운데 거대한 사체를 보며, 시엔이 대답했다.
“글쎄요, 둘이 아닙니다.”
* * *
사악하기 그지없는 힘이 맴돈다.
신성과 반대되는 마력. 세상 사람 누구나 느끼길 삿되고 악한 것이다 하는 그러한 기운이었다.
애초에 저 높은 흑마법의 선배님들께서 이 사악한 마력의 이름을 짓느라 큰 궁리를 했었다.
누구나 느껴 나쁜 마력이 이름마저 사악하다면 안 된다.
흑마법사가 전부 나쁜 놈 되지 않게 적당히 학술적인 명칭을 붙여야 한다고.
음차원 에너지.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누가 들어도 악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명칭이 어쨌거나 사람이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마력임에는 틀림없었다.
뷔아가 불안한 듯 시엔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강대한, 그리고 부정한 힘이라니.
신성이 있어 더욱 강렬하게 느끼는 마력이었다.
과연 한 사람이 속에 품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공간에 짙게 내려앉아 세상을 메웠다.
그리고 이내, 달빛 아래 무언가 꾸물거렸다.
흐느적거리고 진득한 것들이 무너진 수목들 사이에서 위로 새어 나와 뭉치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 뷔아가 잘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시엔의 시야에는 달랐다.
늑대인간의 짓이겨진 살점과 뼈다귀들이 아래에 잔뜩이다. 그러나 온전한 시체가 없었다.
본래 모습으로는 일으켜 세울 방도가 없다.
그럼? 다른 방법을 쓰지 뭐.
늑대인간의 뼛조각과 흩어진 살점이며 장기들이 한데 모여든다.
뭉치고 뭉쳐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니 곧 아래로 기둥이 서고 좌우로 긴 것이 빠져나왔다.
플래시 골렘. 한때 살았던 것의 잔해로 만들어진 부정한 거인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렘이 일곱 개였다.
저마다 시엔보다 세 배는 키가 큰 거인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베히모스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플래시 골렘이 아담해 보이도록 만드는 거체.
시엔이 베히모스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세올 녀석. 예전에 용의 뼈를 뒤집어쓰고 용 행세를 하고 나서는 꽤나 후유증에 시달렸는데.
베히모스의 육신을 뒤집어쓰고 나선 또 어떠려나.
확실한 건, 어쨌거나 지켜보는 재미는 있으리라.
사내 몸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버티더니.
괴물의 시체엔 신이 나서 들어가는 이유는 뭐람?
< 42. 밀림 속으로 [1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