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228화 (224/268)

< 42. 밀림 속으로 [12] >

세올이 죽었다며 호들갑을 떠는 일이 한두 번이랴.

“빨리 돌아오고 좋지. 뭐.”

-하지만, 죽었다구요! 이 세올의 소중한 강신체가!

“그래 봐야 어차피 이리 돌아오는 것을.”

-죽고 안 죽고가 문제가 아니라요, 이게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지 선배님이 아셔야…….

문득 세올이 깨달음을 얻었다.

-아. 알고 계시는구나.

“그리 끔찍하지도 않더마는. 게다가 너는 안 죽는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어째 의연하지가 못해?”

-몇 번이나 겪어도 끔찍한 일입니다만…….

“됐고. 베히모스가 중상이라고?”

세올이 라이뱅과 화해를 했다고.

물론 세올의 일방적인 견해였다.

라이뱅 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테지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베히모스가 늑대인간 무리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베히모스가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며 바닥을 굴러다녔다고 전했다.

“그럼 어쩌다 죽었어?”

-그게, 이 세올이 그 광경을 전해드리기 위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똑똑히 지켜보는 중이었는데요. 갑자기 등 뒤에서 ‘어이, 해골 바가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세올이 어설프게 사내 목소리를 흉내냈다.

시엔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고?”

-예. 그래서 뒤를 돌아보려 했는데, 곧장 두개골 깨지는 고통과 함께 이리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먼저 했어야지.”

늑대인간 무리가 베히모스의 영역에 둥지를 트고 있었다면 둘이 충돌하는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 공교로운 때에 일어난 뿐이었으니까. 한 영역에 두 종류가 살고 있으니 충돌은 피할 수 없었을 터다.

그러나 거기에 사람 목소리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크게 뒤바뀔 수밖에는.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이란 기이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끼어들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무엇이든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 세상의 천장을 뚫고 달에 다녀왔을 수도 있고, 혹은 그 기술이 발전해 누구나 밤하늘 노란 황금빛 천체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될 수도 있지.

기이한 일에 사람이 연결되면 인과가 성립한다.

누군가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을 만들었다면?

사악하고 비밀스러운 연구라면 인적 없는 외진 곳이 필요할 테고. 대수림에서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장소가 자취를 감춘 베히모스의 영역이었으리라.

이거 아귀가 맞아떨어지는데.

하지만 누가, 왜?

그건 이제부터 확인해 보면 알 일이었다.

“뷔아?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히드라와 싸움을 붙이겠다면서요?”

“베히모스가 늑대인간 무리와 싸움이 붙어 중상을 입었다고 하는군요. 상처 입은 괴물은 몸을 피하는 법이니, 아마 한동안 추격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요? 당장 위험이 없다고 해서 베히모스를 처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세상에 큰 해악이 되고 말 거예요.”

“애초에 그리 좋은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시엔이 호수와 같은 늪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한가운데 낮은 암초처럼 완만하게 솟은 무언가.

세로로 찢어진 광택 없는 동공과 눈이 마주친다.

“이상할 정도로 얌전한 녀석입니다만, 괜히 베히모스와 싸움을 붙여 자극하면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베히모스를 대신해 히드라가 세상에 나와 난동을 부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왜 애초부터 둘을 싸움 붙이겠다고…….”

“그야, 일단 베히모스보다 히드라가 상대하기에 훨씬 편한 괴물이라 그렇습니다. 늪 안의 히드라는 불사의 괴물입니다만, 밖에 나오면 그렇지 않으니.”

늪 안의 히드라는 절대 죽지 않는다.

머리 아홉을 베어야 죽는 괴물이, 아예 하나를 늪 깊은 곳에 박아 두고 싸우기 때문이었다.

세상 어떤 생물이나 괴물이 질척한 늪지 안쪽에 숨은 머리를 공격할 방법을 가지고 있을까.

제아무리 베히모스라도 마찬가지리라.

애초에 땅에 발을 디딘 것이 늪지에서 제대로 힘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계획으로 들리는데요.”

“계획을 아예 폐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더 번 셈이고, 뷔아의 표식도 여전합니다. 그러니 일단 베히모스의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위험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그 정도 위험이야 계속 감수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시엔이 허리를 굽혔다.

뷔아가 들기 편하도록 무릎과 허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시엔이 그 사이로 팔을 넣고 들어 올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미쳐 물었다.

“그러고 보니, 회복은 아직이십니까?”

“예? 아, 음. 쬐끔?”

“그 조금이 어느 정도입니까?”

“아이구 팔다리야. 나 팔 떨리는 것 좀 봐요.”

뷔아가 엄살을 떨었다.

안기기 전이라면 모를까 안기고 나서 이제는 괜찮다고 하기는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탓이었다.

거기에 사심도 조금 섞였다.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품에 안기기에 아직까지도 탈진해 힘이 빠졌나 싶었는데, 그도 아닌 모양.

“아하하, 신성이 좀 회복되긴 했는데, 팔다리에 두르면 잠깐은 뛰어다닐 정도? 그렇다고 막 팔팔이 날아다닐 정도는 아니고. 제가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절대 아니고. 그러니까…… 아, 그래요. 그러니까 베히모스를 보러 가는 거잖아요? 혹시 그때 모르니 조금만 더 쉬면서 힘을 모으는 게. 그렇죠?”

뷔아가 중언부언 말을 쏟았다.

시엔이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당황한 태도를 보아하니, 좀 편하게 있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아니면 으레 당연하다는 듯 덥석 안긴 것이 민망해서 그러할 수도 있겠고. 혹은 둘 다.

* * *

베히모스의 위치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밤이라곤 하나 시엔이 어둠을 낮처럼 꿰뚫어 본 지가 벌써 오래였다.

나무에 올라 내려다보니, 가지로 얽힌 대수림의 모습이 평야처럼 광활하게 펼쳐졌다.

그야말로 수해. 큰 숲을 일러 나무의 바다라 표현하는 말이 참으로 정확하지 않은가.

가지와 잎새로 엮인 밤바다였다.

그리고 저만치 멀리에 그 바다가 움푹 팼다.

베히모스가 고통에 겨워 바닥을 굴렀다고 하니, 그 덩치가 만든 폐허가 아니겠는가.

시엔의 의지가 심령을 타고 퍼져나갔다.

대수림에 푼 마수들이 시엔의 정신 세계를 통해 세상에 나왔으니, 이리 모여라 저리로 가라 하는 간단한 명령 정도는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정신 세계에 깃들어 시야를 공유하는 세올이 보기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예였지만.

본래 마물이란 소환해도 말을 더럽게 안 들어먹는 족속들이었다.

누굴 공격하라 죽여라 잡아먹으라는 명령은 곧장 들어도, 그 반대는 들은 척도 잘 안 하는 말썽꾸러기들.

심지어 일정 범위 바깥으로 나가면 아예 통제가 안 되는 놈들이었다.

대수림 전체를 아울러 의지를 전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강대한, 그리고 광활한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검은 털 뭉치며 눈 여럿 달린 거미, 그림자 모양으로 어숨에 숨어 있던 고양이 같은 것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통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짐승과 하나 된 이형의 기생충이 숙주의 몸을 조종해 땅을 박차고, 시체를 파먹던 다리 달린 뱀이 수백의 발바닥을 움직여 땅을 기었다.

마수에게 뜻을 전한 시엔이 곧장 달려 나갔다.

빽빽한 밀림의 수질이 어느 순간 탁 트인다.

쓰러진 나무가 땅에 박혀 평탄한 대지였다.

밀대로 민 반죽과 같은 꼴이었으니, 베히모스의 그 거체가 몸으로 굴러 만들어낸 참상이었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는 짓이겨진 풀냄새와 혈향이 섞여 지독한 것이다.

온 대수림의 벌레들이 한데 모인 양으로 스웜을 이뤄 까불거린다.

그리고 그 한편, 바닥에 누운 회색의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덩어리의 한쪽이 움직이며 그 눈코입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히모스였다.

그륵그륵 핏물 섞인 숨소리가 거칠기 그지없다.

제 새끼의 원수가 제 발로 나타났음에도, 그저 목을 돌려 노려볼 뿐이었다.

중상이라더니.

와 보니 아예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이건.”

“곧 죽겠군요.”

시엔이 땅에 남은 자국을 보았다.

평탄해진 밀림이었으나 와중에 한 줄기 길게 팬 고랑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베히모스의 발치로 이어지는 긴 고랑이었다.

제 몸 가눌 수 없는 베히모스가 두 팔로 힘겹게 기어 움직인 흔적이었다.

눈 하나는 이미 빛이 바랬다.

시엔의 몸통만 한 눈알에는 네 줄기 수직선이 그어져 울퉁불퉁하게 내용물이 새어 굳었다.

그러나 사나운 외눈이 이쪽을 똑바로 바라본다.

잔뜩 성난 눈빛이나 죽어가는 괴물의 시선이 굳이 두렵지는 않다.

그보다는 다른 호기심이 앞섰다.

대체 얼마나 많은 늑대인간이었길래 베히모스를 빈사에 몰 수 있었을까.

제아무리 오러를 쓴다 하더라도, 늑대인간의 발톱이란 베히모스에게 피부에 난 생채기나 다름없을 텐데도.

돌연 베히모스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뻘건 것이 하나 튀어나왔다.

사지 달린 형상을 한 것이 대가리를 치들고 양팔을 벌리며 사납게 포효했다.

아우우. 늑대인간의 하울링이었다.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죽을 뚫고 안으로 파고든 늑대인간이 있었던 모양.

두어 마리만 파고들었더라도, 신체의 내부로부터 가해지는 폭력 앞에 제아무리 베히모스라고 별수가 있었겠는가.

전설적인 업적을 세운 늑대인간 개체였다.

물론 제 자신이 대단한 위업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전설적인 늑대인간의 최후는 허무했다.

달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제 머리를 노리는 검은 화살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베히모스에게야 따끔하고 말 것이지, 늑대인간의 대가리가 버틸 주문이 아니다.

베히모스의 숨소리가 멎었다.

제 새끼의 원수를 앞에 두고 숨이 끊어졌으니 그 원한이 보통 것이랴.

그러나 괴물의 최후야 원래 비참한 법이므로.

그보다 베히모스가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제는 베히모스가 아니다.

베히모스의 시체였다.

흑마법사가 참으로 좋아하는, 바로 그.

시엔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쪽, 멀쩡한 밀림의 경계선상의 나무 한 그루.

굵게 뻗어 나온 가지 위로 금빛 눈 한 쌍이 시엔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눈이 마주치자, 곧 노란 두 줄의 잔상이 지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악의가 없다는 듯 사람의 형체가 태평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정체는 금방 알았다.

사자 수인이었다.

“이봐, 새로 온 친구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사자 수인이시네요. 밀림에 사자 수인도 살았던가요? 제가 알기로는.”

“오. 상식이 조금 있는 친구잖아. 왜인지 시설의 다른 녀석들은 내가 있어도 당연하다 여기지 뭐야. 나는 히예브. 사자들의 떠돌이 왕이지.”

시설이라고?

새로 온 친구냐 물었으니 사자 수인이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야. 시엔이 말을 맞춰주었다.

“시엔이에요. 그리고 이쪽은 뷔아.”

“어, 안녕하세요?”

“오우. 아름다우신 아가씨로구만. 부인인가? 자네, 계집처럼 비실한 상인데, 능력도 좋아.”

“그러면 실례가 되겠지요. 친구죠, 친구.”

“친구라…… 친구를 그리 애지중지하게 안고 다닌다고?”

“오는 도중 습격이 있어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바람에요. 그런데, 보아하니 이쪽도 난리가 났었네요?”

“말도 마. 그 많던 늑대인간들이 다 죽었다니까? 그러고도 혹시 몰라 나더러 숨을 끊어 달라는데, 보아하니 놔둬도 죽을 것 같아서 보고 있었지.”

“전부 말입니까?”

“몇 마리 살았을지도 모르고. 나야 모르지. 어쨌든 시설에 남은 건 없다니까. 뭐.”

진중하게 생겨서는 의외로 입이 가볍다.

시설에 남은 건 없다. 그 시설에서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을 제조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덕분에 마중 나온 셈이 되었네요. 주변이 이러니 방향을 모르겠는데,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야, 뭐. 나도 돌아갈 참이었으니까. 아. 그런데 혹시 힘들지는 않나? 그 아가씨, 내가 들어 줄 수도 있는데.”

“아뇨, 저는 괜찮아요.”

사자 수인의 추파에, 뷔아가 급히 대답을 붙였다.

시엔이 웃으며 덧붙였다.

“친구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뭐.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사자 수인이 유쾌하게 대답하곤 앞장을 섰다.

시설은 멀지 않았다.

초토화된 지역을 지나 밀림으로 접어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빙 둘러 세워놓은 목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입구 좌우로 걸린 거대한 태피스트리.

위를 매달아 늘어뜨린 큰 천에는 익숙한 문양으로 염색을 해 새겼다.

제국의 인장이었다.

아니, 비밀 결사라며?

인장 반지도 그렇고.

숨길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은데.

하기야, 인장의 정체를 소속원 말고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대놓고 내보인들 누가 알겠는가.

철저히 비밀을 지키고 있다는 자신감이겠지.

악연도 인연이라고 이리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으면 모르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시엔이 할 일은 간단했다.

여기서 그 누구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시엔의 흉흉한 속도 모르고, 망루에 오른 병사가 히예브를 보고 반갑게 말을 붙였다.

“이봐, 히예브. 괴물은 처리했나?”

“그럼. 이제는 그냥 고깃덩어리지.”

“그거 먹을 수 있나?”

“괴물을 먹으려고? 제정신인가?”

“하긴. 그런데, 뒤에 둘은?”

“새로 온 친구들이라던데. 자네는 모르나?”

새로 왔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저 혼자 오해했을 뿐이지.

그러나 다른 이도 히예브라는 사자 수인처럼 무심하진 않으리라. 특히나 문을 지키는 경비라면야.

시엔이 뷔아를 안은 손의 손가락만 움직여 뷔아의 옆구리를 톡톡 두드렸다.

혹여 모르니 바짝 긴장하라는 신호였다.

어깨에 기댄 뷔아의 머리가 슬쩍 위아래로 움직여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림 님이 알고 계시겠지, 뭐. 수고했네. 자네들도 여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고.”

그리고는 선뜻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보안도 개판이네. 시엔이 평가했다.

하기사 상인 놈에게 이미 들었다.

제국 의회가 저들끼리도 정체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의회의 지도층, 의원급은 되어야 안다면서.

그 나림이라는 인물은 어떨까.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의원급의 인사라면 좋을 터였다. 쓸만한 정보를 많이 캘 수 있을 테니까.

목책 내부로 들고 보니, 규모는 고만고만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도 이 층 건물이 하나, 일 층짜리 둘이 전부였으니.

이 층 건물 앞에선 여인이 한 명.

히예브가 여인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나림.”

“베히모스는 처리했나요?”

“그럼. 깔끔하게 죽었지.”

“날이 밝는 대로 회수해야겠네요. 수고했어요.”

나림이 바로 이 인물인 모양.

시엔이 여인을 살폈다.

시엔 또래로 젊은 인물이었다.

앙칼진 얼굴이 트리예를 떠오르게 하는 상이었다.

시엔이 나림의 가슴팍을 보고 당황했다.

아니, 저 녀석은 왜 여기에 있어?

나림이 품에 양팔로 끼워 안은 새까만 털 뭉치.

라프라크가 시엔을 보고 끼이끼이 반가운 소리를 냈다.

소리뿐만 아니라, 시엔에게 가고 싶어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얌전하더니. 그런데, 히예브 이 사람들은 뭐죠?

“새로 온 친구들이라던데? 겁도 없이 베히모스를 구경하고 있길래 내가 데려왔지.”

쉿. 가만히 있어.

시엔이 조용히 의지를 보냈다.

라프라크가 어쩐지 풀이 죽은 모양새로 나림의 품에 축 늘어졌다.

“인원 요청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 오고……. 후, 오지 중에 오지에 처박아 두곤 사람도 안 보내고. 그런데 두 명? 그쪽은 두 명이 전부야?”

자연스러운 하대였다.

시엔이 어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나림이 인상을 팍 썼다.

“침묵의 미덕도 좋지만, 내 앞에서 그딴 건방진 턱짓 한 번만 더 했다간 어디 극한의 오지에 처박힐 줄 알아.”

입이 상당히 걸은 여인이었다.

“아, 젠장. 그런데 여기보다 더한 오지도 없잖아. 빌어먹을. 그런데 그년은 또 뭐야? 어디 다쳤어? 별채에 의사가 있으니까 보여주도록 하고.”

문득 나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네, 반지는 어디다 팔았어?”

시엔이 나림의 손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손가락에 끼운 제국의 인장 반지를.

< 42. 밀림 속으로 [1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