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96화 (192/268)

< 38. 대단원 [9] >

노을이 지고 있었다. 태양의 단발마였다.

색으로 하늘을 뒤흔드는 절규.

땅 위가 온통 붉었다.

“각하. 해가 지고 있습니다.”

북부 귀족군은 육천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대략 집계한 것이 육천 이상이었다.

어쩌면 칠천, 어쩌면 그보다 더.

거기에 고급 병력의 피해는 더욱 막심했다.

공략 선두에 베테랑 병사와 기사가 앞장을 섰다.

그리고 돌아온 이가 없다.

파상공세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진군이었다.

“병력 소모가 큽니다. 야간 작전을 나서기에는.”

야간 공략은 더욱 피해가 클 것이 분명했다.

적은 그저 자리를 지킬 뿐이다.

낮과 같이 유기적인 후퇴 지원은 불가능하겠지만, 서로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성벽으로부터 뿌리는 공격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공성 측은 어떠한가.

횃불을 들어 적을 확인해야 하니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판이었다.

거기에 통로가 좁았다. 서로 엉키고 막으니 돌파의 어려움이 배가 되었다.

“지금 물러나서 어쩐단 말입니까. 겨우 확보한 세 개 성벽을 다시 넘겨줄 생각이 아니라면야.”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다.

적이 밤사이 성문을 고치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뚫어야 했다.

물론 급히 고친 문짝의 내구가 별것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궁처럼 꼬인 내부 통로를 처음부터 다시 돌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하지만 야간 공세는 피해가 더 크지 않습니까?”

“이미 병력의 삼 할을 잃지 않았나. 차라리 재정비하며 후방에 남은 이들을 설득해 보세나.”

귀족들의 의견이 갈렸다.

이대로 단기 결전을 속행하거나, 혹은 일단 철수 후에 날이 밝는 대로 다시 공략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결국 총사령관의 몫이었다.

“각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귀족들이 결단을 촉구했다.

“……후퇴는 없다.”

“각하!”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 함락시키지 못하면, 영영 기회가 없을 터이니.”

마지막 투석기 또한 사라졌다.

적의 마법이 긴 거리를 날아 정확히 틀어박히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서.

공작이 준비한 방책이 전부 허사로 돌아갔다.

적군이 익숙하지 않은, 복잡하기까지 한 성채를 끼고 지휘 체계를 갖추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어떤 수법인지는 몰라도.

공략 지점에 적의 지원은 빠르고, 불리할 때 후퇴가 정연히 이루어졌다.

탓에 공세는 지지부진하고 아군의 피해가 커졌다. 적의 피해는 미미할 터다.

취약점을 통한 파괴는 투석기를 잃고 좌절되었다.

지휘부를 노린 급습은 시도 중에 좌절되어 충직한 기사를 허망하게 잃었다.

이제는 그저 혈로를 뚫는 방법만이 남았다.

여기서 물러나 병력을 보전한다 한들 그게 전부가 아니던가.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특히 공작에게는 더욱더 그러했다.

이대로 패배한다면, 공작은 모든 것을 잃으리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나.

공작이 회한에 잠겼다.

그 탓에 두 귀족이 눈빛을 나누는 모습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물러나자 주장한 두 명.

‘이대로 승산이 있겠습니까?’

‘글쎄요.’

흐레이그 공작은 하루 사이 부쩍 늙은 것 같았다.

항상 굳게 다물려 있던 입가가 풀어지고, 반대로 미간의 주름은 더 깊숙이 패였다.

본래의 강건한 인상이 사라지고 나니, 지금은 딱 그 나이대의 장년으로 보였다.

전에 눈치채지 못한 새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 * *

사발디 백작이 편지를 읽었다.

『백작께서 말씀하신 때입니다.

영주성의 다섯 개 성벽 중 세 개를 점령했습니다. 우군 피해는 약 육천 가량이니, 백작께서 합류하여 힘을 보탠다면 꼭 승리에 이를 것입니다.

백작께서 중립을 선언했다 하나, 꼭 필요할 때에 도움만큼 고마운 것이 있겠습니까?

각하께서도 불문에 부쳐 공을 기꺼이 나누고자 할 것입니다.』

로오스 남작의 편지였다.

남작이야 워낙에 영세하니 두 전장에 병력을 파견할 일도 없었다.

팔퓌유 참사에서 빗겨나 있으니 사사로운 원한도 없을 테고.

그래서 미리 남작에게 이야기한 바였다.

상황을 보다 지원이 필요하게 되면 편지를 달라.

남작이 듣기에는 참으로 부러운 소리였다.

일개 남작이 공작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

병력을 바쳐 충성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사발디 백작이 중립을 선언하고 또 따로 자신을 불러 당부하지 않는가.

상황을 보고 편을 바꾸려 간을 보는 것이다.

중립을 선언하면 1왕자파가 승리하더라도 불이익을 줄일 수 있을 테고, 상황을 보아 제가 필요해지면 말을 바꿔 합류해 이득을 챙기겠다는 것이니.

그러나 남작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사발디 백작이 나중에 합류하더라도, 설득한 공을 내세울 수 있었다.

합류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면 백작의 몫에서 일부 이득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패배하더라도 대책을 세우고 싶지만, 그건 백작쯤 되는 인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그저 승리를 바랄 수밖에는 없겠고.

백작이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티란디스의 대공자가 보통 인물은 아니었지.”

사실, 백작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왕당파가 여기까지 궁지에 몰렸다.

쉬이 이길 방법을 두고 멀리도 돌았다.

그 이유야 뻔했다. 흐레이그 공작이 합동 조사를 피하고 적의 입을 막고자 함이 아니던가.

상황이 여기까지 오고 나니, 아들의 원수가 공작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진작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될 만큼이나.

그럼에도 백작이 편지를 청한 것은 귀족다운 결정으로 보였다.

아들의 원한이니 뭐니 떠들던 치였으니, 흐레이그 공작의 범행을 확신했다면 곧장 이탈하여 원수를 갚고자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중립을 선언했으나 원한과 이득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한 것이라고.

그렇게 보이는 처사였다.

로오스 백작이 그렇게 판단했듯이.

그러나 실상 그 속이 새까만 증오였다.

중립을 지켜 1왕자파가 승리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왕당파가 쉽게 승리하게 되면, 차후의 때를 기약하며 힘을 기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1왕자파가 겨우 사천 남짓한 군대였다.

수성이야 가능하겠지만, 밖으로 나와 확연히 승리를 쟁취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흐레이그 공작.

공작이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쉽게 승리할 것이다. 그렇다면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혹은 그 수단이 모두 좌절되고 나면?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때였다.

“우리 모두 같은 원수를 가진 동지들이외다. 그간 바친 충성이 혈족의 피가 되어 돌아왔소이다. 이러고도 계속 공작을 따라 섬긴다면, 사육하는 개와 돼지의 꼴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오.”

“백작? 무슨 말씀이시오?”

“흐레이그 공작. 그 작자가 가증스러운 원수라는 뜻이지. 그리고 공성에 꽤 애를 먹는 모양이오.”

피해가 육천이라. 최소 육천이겠지.

저들끼리 승리가 가능했다면 굳이 설득의 편지를 보낼 이유가 있겠는가.

백작이 돌아선 만큼 저들이 가질 몫이 줄어들 텐데.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마 칠천, 혹은 팔천까지도 병력을 잃었다고 봐야 할 터다.

그렇다면 공작의 군대는 일만 삼천, 그보다 더 적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델피르 전하께 충성을 바치리다. 어차피 공성전에서 이긴다고 내전이 끝나는 것도 아니오.”

왕성이 점령되면 북부의 승리도 의미가 없다.

지금 당장 영주성을 함락시키고 군대를 돌리더라도, 왕성 합류에는 보름이 더 걸렸다.

“사발디 백작, 공성 부대의 뒤를 치자는 말이오?”

“아니. 원군인 척 합류해 지휘부를 제압하고 곧장 전쟁을 끝내야지.”

“그건 비열한 수법이요!”

“비열? 비열이라 했소?”

사발디 백작이 으르렁거렸다.

“바로 그 비열한 수법에 내 아들이, 그리고 여기 자식 잃은 애비가 셋이나 있고!”

“누군 분하지 않아 이러는가! 공작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없지 않소! 티란디스의 대공자의 짓이면? 원수를 돕는 꼴이 아닌가!”

“이 상황을 봐! 빌어먹을 공작 그 작자가 어떻게 말아먹었는지 보라고! 이게 정상인가? 그저 동부와 함께 왕성을 지키기만 해도 될 전쟁이었어!”

“그건…….”

“흐레이그 놈이야. 그놈이 우리 아들을 죽였어.”

사발디 백작이 씩씩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사발디 백작. 일단 좀 진정하시오.”

“……미안하오. 그러나 백작께서도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으시잖소? 악행으로 파문당한 자와 명예 성자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는 자명하지.”

사발디 백작이 말했다.

두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공작의 짓이라고 결정할 수가 없는 그 마음이.

그렇게 되면 아들의 죽음이 결국 제가 바친 충성의 대가임을 인정해야 하므로.

자식을 잃은 아비가 그 원통함을 자신에게 돌려야 하는 일이었기에.

* * *

시엔은 어둠을 대낮처럼 환히 보았다.

흑마법사가 아니라, 그저 신체의 효능이었다.

그러니 밤이 되어도 보루 위에서 떠날 수가 없다.

적을 보고 지휘할 이가 그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심력을 소모하는 중이었다. 뻑적지근하니 피로한 몸이 괴로움을 호소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대체 어떻게 일주일씩 안 자고 싸웠나 몰라. 지금 하라면 차라리 죽이라 할 것 같은데.

‘……거기에 적의 원군까지. 중립이라더니.’

시엔이 성문을 통과하는 병력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전향해 공작의 뒤를 공격하려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당당히 나팔을 불고 북을 치니 그 누가 보아도 합류를 적과 아군에게 알리는 모습이었다.

‘직접 끝내는 편이 좋으려나…….’

낮과 밤의 다른 점이 바로 어둠이 아니던가.

밤자락이 추함을 가려준다면, 써먹을 만한 마법이 뭐가 있을까.

마물을 떼로 소환해 적진에 밀어넣는 방법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때였다.

[전쟁이 끝났습니다요. 그러하다면 주인님께 소인이 미리 청한 질문의 때가 이제야 찾아왔다 여겨도 괜찮은 일이 아니겠습니까요?]

-전쟁이 끝났단 말씀이십니까?

[저기 일만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 자들은 귀족이 아닙니다요. 그저 자식 잃은 아비 셋이니 흉중에 비수를 품고 독한 수단을 쓰려 하니 전쟁이 곧 끝난 것이라 하겠지요. 헤헤.]

시엔이 이해했다.

[한쪽은 3941명이 조금 더 살고, 한쪽은 8569명이 일찍 떠났지요. 헤헤, 퍽 우습지 않습니까요? 사람은 결국 모두 사람인데, 편을 갈라 살고 죽고 말았습죠.]

시엔이 이 또한 이해했다.

조금 더 산 이들이 시엔의 남은 병력이었다.

애초에 사천이백이 조금 넘은 군대였으니 약 삼백여 명이 전사했다는 뜻이리라. 산 자에 부상자를 포함하니 실제 피해는 더 크겠지만.

그리고 일찍 떠난 이가 공작의 군대였다.

죽은 이만 팔천칠백. 아득한 숫자였다.

죽은 이의 숫자만 비교하자면, 한 명이 적 서른을 상대한 꼴이었다. 아무리 견고한 성채라도 기적에 가까운 기이한 교환비였다.

-파랑새께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고것이 말입죠…….]

대죄인이 말끝을 흐렸다.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인의 힘이 본디 보잘것없어 이러한 것이 아닐진대. 이 모든 것이 전부 당신께서 ㅍ…….]

파랑새가 무슨 말을 꺼내려다, 급히 어색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돌렸다.

[헤헤헤헤헤헤. 아닙니다. 소인이 이미 정해진 결과에 약간의 운을 더할 뿐이 아닙니까. 주인님께서 홀로 능히 상대할 적이라 예정된 승리였으니 결과 또한 이러한 것이겠지요.]

명백히 수상한 태도였다.

그러나 이어진 변명이 그럴듯했다.

어차피 대죄인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면, 입을 열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대죄인이 삼킨 말이니 아마 한낱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일 수도 있고.

그런데 궁금하긴 하네. 대체 뭐야?

[헤헤. 그럼 약속하신 질문을 받으시지요.]

-예. 경청하겠습니다.

[주인님께서 어찌 주인님인지 아십니까?]

파랑새의 음성이 변했다.

일전의 비굴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람이 마음으로, 행운을 귀한 것이라 떠받들어 희망이라 했다. 희망은 곧 바라는 것이니 사람이 행운을 꿈꿔 바라고 쫓으며 또한 칭송하고 부러워하며 시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행운의 노예들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렇지 아니한다. 행운이 헛됨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바라지 아니하면, 진정 행운은 잠깐의 즐거움으로 하찮기 그지없는 것이다.]

[아주 적은 이들만이 행운을 하찮게 여겨 발아래에 두고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이 곧 행운의 주인이라.]

온 정신을 뒤흔드는 준엄한 음성.

[그리하여 내 주인에게 물으리다.]

[행운과 불운이 그저 가능성 속에 결과이며, 또한 그 둘을 묶어 운이라 부른다. 그리고 운을 다른 말로 이르되 운명이라 한다. 그리하여 주인이시여.]

사방에서 굉음으로 울렸다.

천지를 깨부술 듯한 그런 소리.

[운명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정해진 결과를 따라 그저 그대로 제 갈 길을 가는 것입니까?]

시엔이 현상을 이해했다. 과연. 이런 거였나.

그렇기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삶의 가능성을 모든 순간에 선택해 그저 지금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죄는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다.

파랑새가 웃었다. 그런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뒤이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밤하늘.

그 너머.

천신을 바라보며.

[들으셨습니까? 당신께서 들으셨습니까? 행운의 주인이 죄를 부정하였으니, 이로써 지상의 커다란 죄악이 형기를 마치겠습니다.]

어쩐지 대죄인들이 친근하게 군다 싶더니만.

다들 이러한 꿍꿍이가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파랑새의 격이 바뀌었다.

대죄인에서 대죄인이 아닌 어떤 무언가로.

대죄인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파랑새가 날아올랐다.

날개를 펴고 위로, 그리고 더 위로. 순간 하늘이 열렸다.

세계를 비틀어 여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천신께서 거하시는 곳에.

파랑새가 그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말 그대로 승천.

* * *

-드디어 첫 번째 해방이 이루어졌다!

무저갱의 죄수 열하나가 기쁨에 몸을 떨었다.

열셋의 대죄인 중 첫 번째 면죄자가 나타났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랴.

대죄인이 웃거나 울거나 춤을 추며 그 환희를 몸으로 표현했다.

“왜? 뭐야? 뭔데? 왜들 그러는데? 다들 왜 이래?”

그 사이에서 순진무구 혼자 외로움을 느꼈다.

* * *

시엔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성의 역사와 함께한 죄인이 이제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긴 형무였을 것인가. 수천, 어쩌면 수만에 이르는 그 시간을.

거대한, 하나의 역사가 그 끝을 맞이하는 순간의 목격.

그런 벅찬 감동…….

[아. 주인님.]

새대가리가 허공에 불쑥 솟아 분위기를 깼다.

감동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당황하다 못해 육성으로 말이 터졌다.

“아니, 여기서 다시 나오시면…….”

[헤헤, 주인님께서 말년에 큰 재앙을 맞이하실 터. 미리 준비하시라 말씀드린다는 것을 깜짝했던지라.]

큰 재앙이라고? 시엔이 눈을 꿈벅거렸다.

[헤헤. 소인이 말씀드렸습니다. 말년에 큰 횡액, 큰 불행, 크게 살을 맞이하실 예정이십니다. 미리 준비하십시오.]

“아니, 운명이 없다 방금 말씀드렸는데.”

[헤헤, 운명은 없으나 종말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죽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니, 따로 심려하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요.]

“잠깐.”

그러나 파랑새가 다시 머리를 쏙 집어넣었다.

뒤이어 하늘의 균열이 완전히 닫혔음을 알았다.

뭐야. 저주인가?

기껏 풀어줬더니 저주를 걸고 간 것 같은데.

영 찝찝한 결말이었다.

< 38. 대단원 [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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