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28화 (128/268)

< 27.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있다 [2] >

모든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적의 영지를 헤집으며 내 백성의 복수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영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군대를 이끈다면? 왕국 북서부 적의 영지까지 누가 순순히 길을 열어줄 것인가. 제 땅에 타인의 군대를 들이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도, 과거 흑마법사처럼 단신으로 나서 적의 피눈물로 땅을 적실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영주가 할 일이 아니다.

천 년 전, 모든 것을 잃어 흑마법사는 세상 아래 혼자였다. 왕국이 없어 왕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복수자 한 명이 존재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시엔에겐 아직 지킬 것들이 남았다.

내 땅, 내 영민, 내 작위.

그리고 내 왕.

시엔이 턱을 괸 채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뒤집어 놓아야 세상에 자자히 소문이 돌게 만들 수 있을까. 감히 티란디스를 건드린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여상한 표정이나 그 속이 얼어붙었으니, 평상과 같은 듯 보이면서도 차가운 기세가 밖으로 뻗었다.

덕분에 마차 안의 분위기가 살얼음장이다.

세올과 트리예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야. 어떻게 좀 해 봐.’

‘세올 선배야말로 이럴 때 좀 나서 보죠?’

‘너 그런 거 잘하잖아. 아양 떠는 거.’

‘선배야말로 평소에 하던 푼수짓이나 이럴 때 하면 되잖아요.’

서로 양보가 없으니 결국 평행선이었다.

눈싸움을 벌이던 두 여인의 고개가 한 데 돌아갔다.

베른닐이 제 귀 아래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으, 왜 이리 싸늘한지 모르겠습니다.”

“올 겨울은 춥겠는데.”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가을이 추우면 겨울은 포근한 법이지 않습니까.”

“그런가.”

“생각이 많으신 것 같은데. 대련이라도 한 판 하십니까?”

시엔이 피식 웃었다.

“검위공한테 배웠나? 카레네에게 두들겨 맞는 거로는 모자라나 봐?”

“두들겨 맞다니요. 주군의 혈족에게 감히 손댈 수 없으니 맞아 드리는 겁니다.”

“그래? 카레네가 들으면 좋아하겠는데.”

“그건 좀 참아 주십쇼.”

시엔과 베른닐이 사이좋게 낄낄거렸다.

두 하녀가 안심했다. 그래도 저 반쯤 노는 호위기사가 얼굴 말고 또 쓸데가 있구나.

베른닐이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계십니까?”

“그냥. 죽일까 살릴까.”

“누굴 죽이고 누굴 살립니까?”

“그게 문제지. 무장을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울 정도면, 어지간한 용병단으로 가능한 게 아냐. 비밀 유지에도 신경을 쓰고 싶었을 테니. 흠. 군대가 나섰겠지.”

“군대을 동원했단 말씀이시군요?”

“원래 적의 군대는 죽여도 돼. 그래서 군인을 키우는 거야. 무고한 영민들 대신 피를 흘리도록. 그러니 일단 군대는 죽이는 걸로 하고.”

베른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대를 죽인다는 말이, 다 잡은 돼지의 목이라도 따는 양 쉽게 튀어나왔으니까.

“적의 영민들은. 흠. 이 부분이 애매하지. 무고한 이를 베는 건 기분이 나쁘거든.”

“맞습니다. 무고한 이를 베는 것은 강자의 치욕이 아닙니까.”

“근데 딱히. 무고한지도 잘 모르겠고. 영민의 죄는 영주의 것이고, 영주의 죄가 영민의 것이잖아. 주인을 잘못 만나면 몰살당해도 할 말 없는 법이야.”

베른닐이 침을 꿀꺽 삼켰다.

베른닐은 시엔이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굳이 기사의 앞에서 숨기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니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탓이었다.

그 능력의 실체를 몰라 군대와 대적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애먼 마을 한두 개야 충분히 몰래 지워버릴 수 있다는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베른닐의 얼굴이 굳었다.

시엔이 베른닐을 보며 피식 웃었다.

“됐어. 내 사람이 죽었고, 나는 그 살인자를 찾아 징치하면 되는 일이니까. 살인자 전부를 지우던가, 그 주인이 죄를 물던가.”

* * *

조사대가 랭무튼 백작령의 경계, 함들채 요새에 도착했다. 군대가 사열해 나팔을 울리니 으레 있는 의장이었다.

“자에바 랭무튼입니다. 귀하의 방문을 환영하며, 또한 불미스러운 일에 유감을 표합니다.”

“시엔 티란디스입니다.”

랭무튼 백작가는 이번 행렬 참사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영지 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합동 조사단이 꾸려졌다. 양 가문에서 협력하여 참사의 원인과 흉수를 찾고, 그 해결을 같이하자는 뜻이었다.

“자에바. 오랜만에 보네요.”

“그러게요. 카레네는 잘 지냈나요? 듣자 하니 검위공께 검을 배우셨다던데. 이젠 가문에 아예 뜻을 버리신 건가요? 동생분에게 아예 맡기시고?”

“가문에 공헌하는 방법이야 누구나 다를 뿐이고, 저야 제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도우려는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가문을 이끄는 데엔 저따위보다도 시엔이 훨씬 나으니까요.”

환한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 보아하니 구면인 모양. 품새를 보니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것보다도.

시엔이 고개를 돌렸다.

자에바의 뒤편, 키가 무척이나 큰 기사 하나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섰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또 유난히 길어 검을 다루기에 참 좋은 몸을 타고 났다.

눈이 마주치자, 시엔이 경쾌하게 물었다.

“경은?”

“바라마엘 디스하스입니다.”

“아아. 디스하스 경인가. 참으로 키가 커. 키가 크면 실력도 좋다던데, 아닌가? 베른닐도 작은 키는 아닌데. 아. 여기는 베른닐 스타돌이라고. 검위공께서 직접 사사하셨거든. 디스하스 경은?”

초면에 꽤 무례한 소리였다.

내 기사는 검위공께 검을 배웠는데, 키는 큰데 실력은 잘 모르겠는 너는 누구한테 배웠느냐 하는 뜻이 아닌가.

“……북극성 기사단의 단장이신 바인드하트 경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대공자님.”

“아. 바인드하트 경. 훌륭한 기사이시지 암. 음. 베른닐, 맞아?”

“맞습니다. 바인드하트 경께서도 다음 경지에 이르는 검사가 있다면 그분이 되실 것이다 손꼽히는 분이시니까요. 존경할 만한 분이십니다.”

시엔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지. 존경받는 기사께서 이런 인물을 가르쳤다고? 그럼 존경받을 자격이 없지. 바인드하트인지 뭔지, 실력은 모르겠지만 기사로서는 형편없는 치 같은데.”

베른닐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면전에서 하는 모욕이었다.

그것도 본인과 그 스승을 싸잡아 욕하는 것이었으니. 본인을 욕하는 것보다 그 스승을 욕하는 것이 더 큰 모욕이었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별로 안 지나친 것 같은데.”

“기사의 명예와 관련된 일입니다. 무고한 음해라면 저는 저와 제 스승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를 신청할 것입니다.”

그래도 실력이 대단한 이였는지, 노려보아 그 압박이 보통은 아니었다.

대충 1.5베른닐정도일까? 그런데 베른닐은 왜 비교할 때마다 더 약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정도 압박이 뭐 대수랴.

시엔이 웃으며 말했다.

“흠. 내가 아는 기사란 충성하여 목숨을 바치나, 또한 잘못된 명령에 항거하여 주군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의무도 있지. 그저 명령에만 따른다면 기사가 아니라 그저 군인과 다르지 않으니까. 맞나?”

“……맞습니다.”

“기사의 명예가 정의에서 나오는 것이니. 정의로운 이는 항복한 적의 목을 취하지 아니하고, 무기를 들지 않은 이를 핍박하지 않으며, 무고한 약자를 보호한다. 맞아?”

바라마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엔이 킥 웃음을 터뜨렸다.

“무고한 약자를 베니 기분이 어떠하던가? 살려달라 애걸하며 내미는 손을 뿌리쳐 기분이 좋았을까? 내 살다살다 천한 살인자가 기사를 자처하는 건 처음 보는군.”

시엔이 기사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기사를 부여잡고 늘어진 망령들이었다.

-복수, 복수를! 복수, 복수, 복수!

-죽여라! 죽여라!

-복수를 해 줘! 이놈이 날 죽였어! 내 머리를 자른 놈이야! 복수를, 복수를! 어째서 보고만 있는가! 내게 보오오옥수우우우르으을!

망령이 원한에 몸부림치니, 시엔을 보자마자 제 주인임을 알아 바글바글 소리치며 소름끼치는 절규를 토해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시엔게 속한 영혼이 시엔에게 복수를 청했다.

다른 이도 아닌 시엔의 백성이었다. 세상 가장 강력한 흑마법사에게 속한 백성이니, 그 죄악이 한눈에 간파되어 숨길 수가 없음이라.

“시엔 티란디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자에바의 뾰족한 호통이 침묵을 깼다.

“이 치가 영애의 호위 기사입니까? 내 백성을 해한 살인자가 말입니다.”

“내 기사를 근거 없이 모욕하여 겁박하지 말아요. 영식께서 어떤 증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는 모르겠으나.”

“증거라.”

시엔이 히죽 웃었다.

“아직 딱히 증거는 없습니다만. 앞으로 잘 숨기셔야 할 겁니다.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도 유분수지, 최소한 범인을 여기에 데려다놓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

“당신은 너무 가셨는데. 가만 있자. 에라이. 차라리 누가 낫지, 진심으로 끔찍하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시고.”

“어, 어쩜 이리 무례한……!”

자에바가 몸을 떨었다.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합동 조사라. 곁에 붙어서 방해할 작정이신 모양인데. 그럼 티 나지 않게 조심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걸리면 그 끝이 좋지 않을 테니까요.”

* * *

“시엔, 이게 무슨 짓이야?”

“응? 뭐가?”

카레네가 씩씩거렸다.

시엔이 대답했다.

“내가 짓이라 불릴 만한 행동을 했던가?”

“지금 몰라서 물어?”

“눈앞에 범인을 두고 그럼 덕담이라도 주고받을까? 그건 아니지.”

“……확실한 거야?”

“그럼. 확실하지.”

“증거는?”

“그런 건 없어. 내가 알고 있다는 게 증거지.”

“너는.”

카레네가 말을 멈췄다.

시엔의 표정이 진지한 탓이었다.

평소 유들유들 웃으며 농담조로 이야기하던 시엔이라, 담백한 표정으로 그래서 그렇다 이야기하니 선뜻 개소리라 치부하기 힘든 탓이었다.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마법을 쓸 줄 안다고 했지. 이번에도 그런 거야?”

“응.”

“하아.”

카레네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현명하지 못한 대처였어. 게다가 네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랭무튼 놈들의 경각심만 일깨워준 셈이고.”

“그건 아니지. 지금쯤 어디서 정보가 샜나, 그리고 내가 뭘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초조해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마음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고 나면 틈이 보이기 마련이거든.”

시엔의 기색이 태연했다. 카레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가 난 것 아니었어? 나는 시엔이 너무 화가 나서.”

“에이. 화를 내서 겨우 모욕 몇 마디. 겨우 그런 거로 화풀이를 하고, 또 그렇게 마음이 풀릴 것 같으면 애초에 화를 내지도 않았어. 그냥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좋겠다 판단을 한 거지.”

자에바의 호위 기사가 습격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습격이야 백작이 직접 관여했겠지만, 차기 영주라는 자에바의 호위 기사가 그러하니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곁에 따라붙어 비위를 맞출 수가 있겠어? 이제부턴 우리가 뭘 하고 어떻게 돌아다녀도 간섭하기 애매하겠지.”

합동 조사단이랍시고 옆에 붙어 방해를 할 작정인 모양.

시작하자마자 야멸차게 적의를 보였다. 너희랑 상종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시엔 일행이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어쩌겠는가.

그저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것 이외에 제지할 방법이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인데?”

“무장 상단을 계획할 때 말야.”

계획은 언제나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상정하여 짜야 하는 것이었다. 상단을 무장화 할 때부터, 이 정도면 군대가 아니고서야 감히 습격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갖춰 놓은 것이고.

군대가 아니고서야, 하고 조건을 달았으니, 그러한 상황까지 궁리해야 맞는 계획이었다.

“일꾼 중 세 명. 만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면, 그 위험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이탈하기로 했지. 할 수 있다면 증거를 수집해도 좋고, 아니더라도 보고 들은 증언 자체가 도움이 될 테니까.”

물론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시엔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살아서 숨은 녀석이 있을 거야. 일단 그 녀석을 찾아야겠지.”

* * *

“뭔가 알고 있을까?”

“아가씨.”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냐? 어떻게 경을 딱 짚어서.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샜지? 누군가 배신자가 있었나? 이제 막 도착했는데, 어떻게 이미 소식이 새어 나갔냔 말이야.”

자에바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진정하십시오, 아가씨.”

“진정하고 있는 중이거든?”

“그저 허세, 떠보는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단의 무장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영지의 개입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겠지요.”

“그럼 애초에. 하아. 내가 무리라고 했는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합당한 의심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적 떼가, 충분히 무장한 상단 행렬을 단숨에 전멸시키고, 또 그만한 세력이 또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기는 했다. 가문의 작위란 내려가기는 쉬워도 올라가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아무리 뛰어난 영주라 해도 시운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 작위 상승이란 가문의 숙원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그러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이제부턴 알아서 조사하겠다 제멋대로 굴 것이 뻔합니다.”

“그걸 막을 명분도 없잖아. 모욕은 내가 받았으니까.”

모욕을 받은 것은 랭무튼 백작가였으니, 티란디스가 사과하기 전에 먼저 굽히고 들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또 티란디스와 친한 척 붙어 조사를 방해해야 할 때고.

“대대를 소집해. 인제 와서 간섭이 안 되면, 무력으로 압박하는 수밖엔 없네.”

“하지만 아가씨. 그래서야 티란디스는 절대 수긍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뭐 어쩌겠어? 증거가 없으면 한 말도 없는 법인데. 아무리 속으로 의심해 봐야 그뿐이고. 우리랑 전쟁이라도 치를 건 아니잖아?”

티란디스와 랭무튼 사이에 낀 영지가 벌써 몇 개라. 그 모두가 사이좋게 길을 터주지 않으면 전쟁은 성립되지 않았다.

티란디스가 미친 것이 아니고서야, 무력으로 길을 터서 여기까지 진군하려 들지도 않을 테고.

“당당하게 나온 건 좋았지만, 자신들이 적지에 와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지.”

자에바가 흉흉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 * *

탑리프의 행렬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지점은 여우 고개였다.

여우 고개란 상당히 흔한 이름이라, 대륙에 같은 이름이 수백 개는 있으리라. 확실한 것은, 여우 고개 치고 가파르지 않은 언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우 고개로 간다 했으니 확실합니다요. 하지만 사우스실에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서…… 그것이. 안된 일이지요.”

“사우스실?”

“불산사 산을 통과하자마자 사우스실이 나타납니다요. 여우 고개가 불산사의 문턱이니, 산속에서 실종된 것이 아니겠습니까요.”

“불산사 산이라. 다른 길은 없나?”

“산이라 해도 봉우리 두 개짜리라, 통과하는 길이 가운데뿐 아니겠습니까.”

“흐음.”

시엔이 턱짓하자, 베른닐이 사내에게 주머니를 건넸다. 이 앞 도시에서 데려온 목격자였다.

주머니를 받아든 사내의 얼굴에 실망이 어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사내가 주머니 안을 흘끗 들여다보곤, 이내 입이 벌어져 귀에 걸렸다.

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들었다. 손으로 만져 보아 몇 장 안 되니 실망했다, 그게 금화이니 생각한 액수의 수십 배가 넘는 양이었다.

말 몇 마디에 반나절 길잡이 역할을 한 것 치고는 막대한 수입이었다.

“아이고,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이야기값과 안내해 준 값은 후하게 쳐줘야지. 쉽게 들어온 것은 쉽게 쓰라던데, 단골 술집에서 술이라도 사는 게 어떤가?”

“헤헤, 분부대로 합죠.”

사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나 미심쩍기 때문이었다.

술집에서 술이라도 사라는 것은, 티란디스가 제보 값으로 이만큼씩나 지불하니, 여기저기 소문을 내라는 완곡한 지시였으니까.

그러나 사내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술이 들어있음을 안다. 애초에 수많은 목격자 중 이 치를 찍어 데려온 이유가 있었다.

그러한 술꾼이면 알아듣지 못했더라도 횡재에 신나 퍼마시며 떠들 테니까.

“일단 가 보자고.”

시엔의 조사대가 고개를 올랐다.

그리고 그 멀찍이 뒤편, 랭무튼의 군대가 시엔을 쫒았다. 궁병에 보병, 경기마까지 갖춘 제대로 된 편제였다.

* * *

“현장은 어때? 제대로 치워 놨어?”

“완벽합니다. 작은 흔적 하나도, 발자국 하나까지 쓸어냈으니, 절대 습격 지점을 찾지 못할 겁니다.”

자에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마엘이 그렇다 하면 실제로 그러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어떤 기사들 중, 이만큼 일처리가 철저한 이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 * *

산을 통과하던 와중이었다.

“정지.”

시엔이 손을 들었다.

대열이 멈추자, 시엔이 땅으로 내려와 검을 들었다. 대지 위에 줄을 두 번 그으니, 이내 교차 된 표식이 땅에 새겨졌다.

“히야. 깊숙이도 파묻어놨네.”

시엔이 말했다.

“여기에 캠프를 치고, 사람을 모아. 거의 발굴 수준에 이를 것 같으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 단숨에 끝낼 거야.”

< 27.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있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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