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13화 (113/268)

< 23. 도둑맞은 빈 집의 책임은 [2] >

결국 백작이 마지못해 합류에 동의하고 말았다.

다시 행렬이 시작되고 한나절. 휴식을 위해 멈춰선 참이었다. 탑리프 상단의 책임자가 시엔을 찾아왔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시름을 덜었습니다.”

“시름을 덜긴. 합류하지 않았다 해서 상행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 않나.”

“그러나 저희를 위해 나서 주셨지요. 이 늙은이가 손님을 상대하다보니, 관계란 것이 여간 것이 아닌 것은 압니다. 백작과 척을 지시며 저희를 위하셨으니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늙은 상인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단을 챙기느라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시엔을 무시한 것이 백작이었으니 그대로 돌려주었을 뿐이지.

민망해진 시엔이 물었다.

“탑리프에서 오래 일했나?”

“이제 3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가문을 위해 30년이나 일해주었는데 이 정도가 뭐 수고라고.”

“······감사합니다. 도련님.”

늙은 상인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표정뿐만 아니라 목소리마저 적잖이 매인 채였다.

시엔이 더욱 민망해졌다.

“그나저나, 이럴 수는 없습니다. 티란디스를 가벼히 여기는 이가 없었거늘, 책봉식이 끝나자마자 당장에 이 꼴이군요.”

상인이 분노를 터뜨렸다.

시엔이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상인은 뜨끔한 표정이었다.

“그, 도련님을 탓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저 세가 밀렸다 하여 당장에 바뀌는 인심이 더럽다 생각한 것 뿐이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예?”

“응?”

상인과 시엔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대화가 맞지 않았다. 대개는 이럴 때 서로가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

상인이 사람을 상대하며 오래 굴렀으니, 이내 그를 알아차렸다.

“이런. 그간 국외에 가셔서 모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뭔데?”

“왕세자 책봉이 이뤄졌습니다.”

“왕세자 책봉? 왕자님께서 여기 계신데 어떻게?”

“그것이, 2왕자 전하를 후계로 한다고 공표되었습니다만······.”

시엔이 비로소 상인의 말을 이해했다.

시엔을 필두로 티란디스가 1왕자파의 거두였으니, 불안하다 하여도 델피르가 유력할 때에야 가문의 위상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뚫고 2왕자가 후계에 이르니, 그 때문에 가문을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이었다.

1왕자파에 적극 가담하게 한 것이 시엔의 공적이라, 자칫하면 시엔을 원망하는 투가 되어 오해하지 말라 변명을 덧붙였던 것이고.

“완전히 모르고 있었어.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왕비마마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을텐데.”

“그것이······”

늙은 상인이 눈치를 보았다.

시엔이 재촉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파악하고자 할 뿐이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상인이 그간 있었던 일을 풀어냈다.

시작은 왕비의 반역 혐의였다. 왕비가 제 친정과 통하여 나라의 중대사를 그대로 전하고, 또한 최신예 무기의 설계나 각 영지의 전력 따위의 중요 정보를 타스테스테 왕국으로 빼돌렸다는 것이었다.

“끔찍한 누명이군.”

“타스테스테의 첩자가 직접 증언한 것이라 합니다만······.”

“누명이야. 그럴 리가 없거든.”

왕비가 타스테스테에서의 권력 싸움에 밀려 왕국으로 쫒겨나듯 팔려온 처지였다. 덕분에 친정이라 해도 일말의 좋은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왕을 도와 왕권을 성장시켜 어엿한 왕국의 안주인으로 자리잡지 않았던가.

그러한 왕비가 타스테스테를 도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그리하여 왕비를 폐위하고, 비록 반역죄라 하나 그간 왕실의 대소사를 맡아 처리한 점을 참작하여 수월궁에 유폐에 처했다고.

그리고 나선 일사천리였다.

그간의 부진과 왕비의 반역행위를 엮어 델피르의 정통성이 깨졌고, 2왕자를 후계로 선언하여 급히 책봉이 이루어졌다.

왕자가 국경을 넘자마자 일어난 일들이었다.

“쯧. 제대로 당했네.”

시엔이 혀를 찼다.

집을 비운 사이에 살림을 전부 도둑맞은 꼴이었다. 왕자가 국외로 나가고, 왕비의 수족인 왕자친위대를 내어보냈으니 왕성이 텅 빈 것과 같았다.

예상지 못한 일이었다.

알고 봤더니 다른 세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국왕의 뜻이 아니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째서인지는 대충 이해가 갔다.

권력이란 비정하여 혈육과도 나눌 수 없다 했던가.

왕비의 도움으로 떨어진 왕권을 회복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알린 왕비의 세력이 너무 커졌다.

이 상황에서 델피르가 왕세자에 이르면 왕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선공을 가해 쳐냈겠지.

“······가는 곳마다 호위가 과하다 했더니.”

이전엔 명분을 위해 죄수 호송을 들먹였으나, 알고 보니 실제로 그러했다.

정보가 닿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함과 동시에, 왕자가 딴 곳으로 샐까 엄중히 감시하려는 수작이었으니.

변경백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엔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무지개 제도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왕국의 남서부 지역이 아닌가.

서쪽의 대제후가 티란디스이며, 남쪽의 대제후와 서로 친하니 이 근방이 전부 1왕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태도를 보아하니, 전부 변심하여 마음을 바꿔먹은 모양.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아. 마음써주니 고마워. 덕분에 현 상황도 파악했고. 아니었음 큰일 날 뻔했어.”

“아닙니다. 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인걸요.”

“나는 몰랐지. 잠시 생각 좀 해야겠네.”

“예, 도련님.”

늙은 상인이 고개를 숙여보이곤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하랴.

이미 일어난 일이 과거로 남았으니 아무리 후회하고 분통을 터뜨린들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빈집이 털렸다면 그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을 잠갔건 활짝 열어놓았건 간에, 도둑맞은 물건이 있다면 온전히 도둑의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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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이 왕자에게 사실을 전했다. 왕자는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마마마께선 무사하실까······.”

“너무 심려치는 마십시오. 무사하실 수밖에 없으니.”

“왜?”

“왕국 내부의 일이 아닙니까. 허나 왕비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턴 외부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야?”

아직은 어려운 이야기였던가.

시엔이 설명했다.

왕비가 이웃 왕국 타스테스테의 왕족 출신이었다.

아직까진 계승에 관련된 사건의 연속이라, 타스테스테가 굳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왕비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달랐다.

왕비가 내통했다 하는 것이 누명일 뿐이니, 타스테스테 왕국이 무고를 주장하며 저희네 왕족을 해하였다 명분을 삼으면 막을 방도가 없지 않겠는가.

“물론 유폐형이라 하니 왕성에 구금되어 있으실 터입니다.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왕비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신 일들이 있으니, 융숭한 수발 아래 무사히 잘 계시겠지요.”

평생 수월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지라도. 시엔이 뒷말을 삼켰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머니를, 아바마마가 그러실 수가 있어. 내 당장 가서 말씀을 드려야겠어. 백작에게 당장 출발하자 해야.”

“왕자님.”

“내가 왕위를 잇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어머니께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응? 그러니까 내가 잘 말씀 드리면······”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정치적 싸움에서의 유폐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이 있으니, 같은 파벌을 가두어 둘 때에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었다.

이대로 궁에 돌아가면? 왕자의 신세가 왕비와 다르지 않았다. 델피르 또한 어디 한적한 궁전에 감금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평생 나오지 못하게 될 터.

그뿐이랴.

비정한 일이나, 어미와 그 아이가 평생 마주볼 일이 없게 되겠지.

시엔이 말하자, 델피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델피르가 성마르게 시엔의 손을 잡아 쥐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방법이 있는 거지? 시엔이라면, 시엔이니까.”

“이대로 순순히 왕성에 들어가는 것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일단은 차악을 선택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시엔이 델피르를 바라보았다.

예를 차릴 때에야 제법 왕자의 태가 나던 소년이나, 이제 와선 그저 어쩔 줄 모르는 아이가 시엔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미 패배한 상황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지고 말았지요.”

“그런······”

델피르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시엔이 말을 이었다.

“사람은 갖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일단 대화하여 서로의 이해를 비교합니다. 그리하여 소유권이 바뀌거나 다른 이득으로 교체됩니다만, 모든 일이 그렇게 잘 풀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면.”

“그러면?”

“피가 흐르게 되는 겁니다.”

종래에 서로의 이해가 맞지 않으면, 남는 것은 포기 혹은 칼날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피와 눈물이 떨어지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러하기에.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리시라 하지는 않겠습니다. 허나 이대로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생각할 시간을 좀 버는 것이 좋겠지요.”

이대로 왕자가 왕성에 가는 것이 최악이라면, 최악만은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시엔에게도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흐레이그가 티란디스와 앙숙이며, 현 왕세자가 흐레이그의 소생이 아니던가.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왕세자가 결코 시엔의 왕이 될 수는 없으리라.

왕은 신하를 사랑하여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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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이 두 하녀를 바라보았다. “제국 오브, 지금 누가 가지고 있지?”

“아. 소녀가 가지고 있답니다. 시엔 님.”

“이리 줘 봐.”

트리예가 가방에서 제국 오브를 꺼내들었다. 양손으로 받쳐 다소곳히 앞으로 내미니, 참으로 공손하고 유순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오브를 받아든 시엔이 말했다.

“이건 세올이 쓰고.”

그러자 트리예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시엔 님? 오브는 저희가 상의하여 각기 공평하게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였답니다. 앞으로 닷새는 더 소녀의 것인데······.”

“훗. 선배님도 아시는 거지. 그래도 선배님을 모신 건 내가 먼저란다.”

세올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껏 고소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트리예가 하소연했다.

“시엔 님, 제가 그리 모자랐던가요? 소녀는 언제나 시엔 님을 성심으로 모시며 당신의 가장 유순한 종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였는데······.”

심지어 목소리가 점점 메이며 물기가 섞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서운한지는 모르겠지만.

시엔이 고개를 젓고는 품을 뒤적거렸다.

이내 세계수의 나뭇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신 이걸 써.”

시엔이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세올과 트리예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아! 역시!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계신 줄도 모르고.”

“선, 선배님. 그래도 증폭을 생각하면 요 건방진 애송이보다 제가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쓰는 게······”

세올의 말이 맞기는 했다.

세계수의 나뭇가지는 마력의 증폭에 효험이 있고, 제국 오브는 어마어마한 충전량을 뽑아쓸 수 있는 것이었으니.

세올의 실력이 살아온 날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라는 편이었다. 그래도 리치로 오래 묵었다 보니 트리예와 비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트리예가 오브를 쓰고, 세올이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쓰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쯧. 도대체 믿고 맡길 수가 있어야지.”

이전에도 맡겼다가 된통 사고를 치지 않았던가.

그것이 세올의 고의가 아니기는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실수에 가까울까. 오히려 그러기에 두 번 세 번 더 사고를 칠 확률이 높았다.

“헌데 어찌하여 소녀에게 갑자기 이러한 신물을 맡겨 주시는지요?”

이제는 완전히 기가 살아, 요염한 미소를 띈 트리예가 시엔에게 달라붙으며 물었다.

“왜긴 왜야, 당장 써야 하니까. 그렇지.”

시엔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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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이었다.

탑리프 상단이 행렬에서 이탈했다.

이전 거래의 계약서의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얌밸 백작이 이를 으득 갈았다.

고작 하루도 함께하지 않을 것들 때문에 새파란 애송이에게 욕을 보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 짧은 동행은, 왕자에게 왕성의 일이 전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쩐지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차라리 쭉 함께하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그리고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정오가 되자 미리 보아둔 공터에 도착하여 점심 준비가 이루어졌다.

왕가의 식사를 위한 실력 있는 요리사가 따로 요리를 시작하고, 한편에선 한 개 대대, 사백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취사병들이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렸다.

왕자의 마차에 요리가 도착하고, 뒤이어 병사들의 식사 역시 시작되었다.

날이 워낙에 더우니 병사들 역시 입맛이 별로 없는지라, 대개는 음식을 남겨 버리고선 얼마 없는 그늘이나마 누워 휴식을 취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렇게 취사병들의 노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점심 시간이었다.

카일은 대대의 조리반장으로, 산더미만큼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묻을 구덩이를 파느라 진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처먹지도 않을 거면서.”

“이 입맛만 찾고 우리가 고생하는 건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개 같은 놈들 같으니.”

“저희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시길, 음식 남기는 놈은 언제고 몬스터의 밥이 되어 남김없 이 먹히고 말거라 하시지 않습니까.”

카일이 피식 웃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으레 하는 소리였다. 음식 남기지 마라. 편식하지 마라는 훈계를 그런 식으로 반쯤 겁을 주어 듣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자. 이쯤 파면 되겠지. 다 엎어. 묻어버리자고. 음?”

그때, 무언가가 날아와 카일의 등을 두드렸다. 몸을 돌려 바닥을 살피니, 살이 잘 발려 흰 뼈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카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취사병들의 처우는 사실 별로 좋지 않았다.

작전 내용상 항상 최후미에 위치한 이들이며, 덕분에 여간해선 전투 순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식사를 준비하느라 아침점심저녁으로 항상 바쁘고 고생스러우나, 전우라는 놈들은 죽이나 끓이는 것들이나 얕잡아보며 무시했다.

이렇게 남은 음식들을 묻을 구덩이를 파면, 보란듯이 다가와 버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이번에도 그러한 일이리라.

그래도 조리반장이라 구를 만큼 구른 베테랑이니, 어지간한 병사들이 무시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카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떤 새끼가 벌써 버리고 지랄이야?”

-그우?

대답 대신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래가 끓는 듯 답답하고 울림통이 큰 소리였다.

카일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물론, 눈을 부라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글락, 칵!

괴물이 있었다.

주름이 가득해 늘어진 피부에, 키는 사람의 세 배쯤 되는 거인. 팔과 다리는 사람의 두 배는 두꺼우나, 몸통이 워낙에 비대하여 오히려 얇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없이, 눈코입이 몸통에 달렸으니, 비대한 뱃살이 위아래로 벌어지며 싯누런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칵! 칵!

괴물의 손이 아가리로 들어가더니, 깨끗하게 발린 뼈 하나가 들려나왔다. 그걸 카일을 향해 툭 던졌다. 괴물이 다시 칵칵 뼈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작업중인 취사병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기괴한 괴물. 잠시 사고가 끊겨 무엇을 해야하는지 잊어버렸다.

툭. 괴물이 끄집어낸 뼈가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카일이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의 두개골이 데굴데굴 구르다 이내 자리를 잡고 멈춰섰다.

“괴, 괴물······!”

그때였다.

투두두둑. 무언가 연신 구덩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서슬에 취사병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온 사방에 괴물이 둘러싸, 계속해서 뼈를 토해 집어던졌다.

< 23. 도둑맞은 빈 집의 책임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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