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장. 응급실의 마법사(5)
파지지직!
갑자기 응급실 전체 등이 짧게 꺼졌다 다시 켜졌다.
띠띠띠띠!
환자들에게 부착된 각종 의료장치들도 한꺼번에 전원이 나갔다가 재부팅에 들어갔다.
언제나 전력이 안전하게 공급되던 응급실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헛!”
“뭐, 뭐야!”
의료진은 물론 기타 직원들까지 모두가 당황했다.
“기기들 체크해!!!”
김국조가 다급하게 명령 내렸다.
난장판인 상황에서 전기문제까지 발생하면 언론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과정과 원인은 살피지 않고 썩은 살점만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기레기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더 이상 찾아볼 수 어려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은 이제 교과서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소설가 지망생 같은 수준의 기자들만 살아남았다.
그들에게 지금 같은 일은 최상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이상 없습니다!”
“여기도 이상 없습니다!”
다행히 의료기기들은 멀쩡하게 다시 작동됐다.
다만.
“엄마…….”
“우아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
“효, 효진아?”
“영민아!!!”
갑자기 아이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배드 옆에서 눈물 바람이던 엄마들이 모두 제 아이 이름을 불렀다.
“어?”
“어어!!!”
“이게 무슨…….”
의사와 간호사들의 표정에는 황당한 기색이 역력하다.
방금 전까지 긴급 수술과 즉시 치료를 필요로 하던 아이들 중 상당수가 바이탈을 회복했다.
뿐만 아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던 외상 흔적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가벼운 찰과상 정도로만 보였다.
“…….”
김국조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의 의학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진단 내렸던 환자들이었다.
“우진아아!!!”
그때 뒤늦게 나타난 엄마 한 명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들어왔다.
“아들! 아드으으으을!!!”
미친 듯 아이를 찾는 여인.
타다다닥.
한순간에 응급실을 휘저었다.
그리고.
“우, 우진아아아아아아아!”
이미 사망한 남자아이가 누워있는 배드 앞에서 망연자실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지켜보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반복해서 겪어도 적응하기 힘든, 살아있는 자가 담당해야 하는 고통의 현장.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우진이라는 아이는 살아날 수 없었다.
이미 심장이 멎고 호흡도 끊긴 상태였다.
다발성장기부전이라 심장 부근이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 났다.
신이 온다고 해도 살려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엄마…….”
모두의 귀를 파고들며 또박또박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우진아!!!”
아이의 엄마가 우진이에게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엄마.
“아파……. 엄마 나 아파.”
아이가 아프다고 말했다.
“히익!!!”
“어……떻게!”
우진이를 처치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갔다.
우진이는 분명 사망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되살아나 엄마 품에 안겨 말을 하고 있다.
“뭐, 뭣들 해! 어서 상태 살펴봐!”
김국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분명 자신도 사망으로 판단한 아이였다.
타다닥.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진이에게 달려갔다.
“사, 살아났어!”
“아!”
달려든 의료진들의 눈에 보이는 우진이의 상태.
치료를 위해 찢어버린 유치원복 사이로 다친 흔적이 없는 멀쩡한 가슴팍이 보였다.
멍이 살짝 들어 보이는 것 말고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 아이가 죽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아이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우진이 엄마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그게…….”
담당 의사가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살아있는 아이를 두고 조금 전에는 분명 사망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 어디 갔어요?”
그때 우진이가 물었다.
“누구?”
엄마가 물었다.
“내 친구들을 치료해주신 의사 선생님이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살피는 우진이.
누군가를 찾았다.
“체크해! 아이들 상태 모두 체크해 봐!!!”
김국조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CCTV를 봐야 해! CCTV를!!!’
***
- 클리어.
귓가에 들려오는 깔끔한 목소리.
“선배 수고했어.”
- 으흐흐흐. 언제든 나만 믿어.
악당의 웃음소리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가장 믿을만한 파트너 중에 한 명인 온시은 선배.
갈수록 솜씨가 좋아졌다.
그녀가 가동하는 해킹 프로그램은 펜타곤은 물론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뚫지 못할 곳이 없었다.
신계 최고의 해킹 전문가 블라드미르가 그녀의 보이지 않는 스승이니 당연했다.
“밥 살게.”
- 믿어도 되는 거야? 내가 슈퍼컴과 연애한다지만 너무 서운하게 하지 마.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기분 좋았다.
첫 만남부터 거침없이 커피를 빼앗아 마셨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격은 과거와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맛집 리스트 작성해서 보고해 놔요.”
- 오케이! 바쁜 것 같은데 수고해.
지금도 병원 CCTV를 해킹해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관련된 모든 보안을 전방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그녀다.
띠릭.
통화가 끝났다.
“이건 기적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응급실에서는 믿을 수 없는 현상에 곳곳에서 놀라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힘 좀 썼다.
중상을 입은 다수의 상처 치료에는 마법 만한 게 없다.
고서클 마법사만이 시현 가능한 광범위 치료 마법.
응급실로 한정해 범위 치료 마법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우진이에게는 특별히 좀 더 힘을 썼다.
사실 우진이 상태는 죽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러나 아직 온기가 남아 있어 영혼이 육체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포인트를 투척했다.
나와 인연을 맺은 만큼 미래에 대한 축복도 함께 빌어줬다.
그리고.
- 진심으로 존경하옵니다.
옆에 따라온 윤 차사가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귀신 장립에게서 평소 듣던 멘트였기에 특별히 감동받지는 않았다.
- 비밀이네.
오늘 일이 굳이 신계와 저승계에 소문나서 좋을 게 없었다.
카르마 포인트를 지불하긴 했지만 천도와 윤회 법칙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불법이다.
- 오늘 전, 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윤 차사가 눈치 빠르게 대답했다.
앞으로 미래가 촉망되는 저승사자다.
개인적으로 인맥을 맺어 놓고 싶었다.
- 내가 아는 차사가 있는데……. 연락 한번 해보게.
- 신선님께서 아시는 저승차사님이요?
- 제법 유명하다고 들었네.
- 그분이 누구신지…….
똑똑한 윤 차사가 금세 말귀를 알아듣고 눈빛을 반짝였다.
보이지 않는 세계도 인맥이 작용하는 건 당연지사다.
인간들보다는 덜하지만 돌고 돌며 사는 모습은 비슷했다.
- 리처드 강 순찰사자님이라고 아나?
- 허억! 가, 강 순찰사자님 말씀이십니까!
윤 차사가 크게 놀라며 신음을 터트렸다.
잘 아는 모양이다.
- 제법 유명하다고 하던데…….
- 물론입니다! 차사계에서는 신화적인 존재이십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난 업적을 쌓아 진선급에 맞먹는 포인트를 획득해 진급하셨습니다!
입에 침을 튀겨가며 아는 체를 하는 윤 차사.
길게 설명할 게 없게 됐다.
- 내가 화끈하게 밀어줬네.
- 아!!!
윤 차사가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음을 눈치 못 채면 바보다.
- 진심으로 존경하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팍 숙이는 윤 차사.
목소리에 담긴 존경의 깊이와 무게감이 금방 달라졌다.
- 오늘 명부는 하나면 될 거야. 확실한 악당 하나가 어린 애들 둘보다는 낫지 않겠나?
- 물론입니다! 그리고 100세 가까이 장수한 영혼 하나가 대기 중입니다.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윤 차사는 더 따지지 않았다.
조만간 승진복이 터질 것이다.
- 가끔 부르겠네.
- 언제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 시간 가능하지?
- 물론입니다. 부르신다면 24시간 콜입니다!
윤 차사 센스 있다.
뚜벅뚜벅.
그사이 난 중앙집중치료실로 들어왔다.
응급실과 바로 붙어 있어 다들 지원을 나간 상태다.
띠띠이 띠띠이.
규칙적인 전자 신호음이 들린다.
그리고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와 몸에 붕대를 감고 죽은 듯 누워 있는 한 사람.
“흐음…….”
내가 경험한 회귀 전의 기억에는 절대 없었던 그의 지금 상황.
예상했던 대로라면 1년 후 청와대에 계실 분인데 지금은 이렇게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 이상합니다……. 대운(大運)과 상문(喪門)이 동시에 겹쳐 있는 존재라니…….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