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3장. 응급실의 마법사(4)
“……뭐야!”
김국조는 정신이 멍해졌다.
음주운전 사고유발자가 응급실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방금 전까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본인부터 치료하라고 고성을 질러대던 악당.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악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스스로에게는 더없이 관대하고 무엇이 되었든 타인을 원망하는 데 익숙한 악인.
그가 작심한 듯 김국조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똥 묻은 개를 멀리하라는 격언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욱하는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유치원생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의 다친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도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결코 남은 인생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지가 없는 부류였다.
주먹을 날려 막말을 뱉어내는 아가리를 갈겨야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오늘 사고로 최소 두 명 이상은 엄마의 품에 다시는 안기지 못할 상황이었다.
김국조의 그런 심리 상황에서 사고유발자가 게거품을 물고 고꾸라진 것이다.
전형적인 쇼크 발작 증상이었다.
타다닥.
응급실 담당 의사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갔다.
곧바로 눈을 까고 호흡을 확인했다.
“CPR!!!”
숨이 멎었다는 의미다.
“비켜!”
김국조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쓰러진 사고유발자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들어 옮겨!”
촤르르르릇!
맥이 풀려 축 늘어진 사고유발자를 이동 배드에 실어 CPR이 가능한 장소로 옮겼다.
쫘아아아악.
상의를 찢었다.
“200줄!!!”
바로 시작되는 제세동기 가동.
찌이이잉.
손에 느껴지는 전기 맛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펄떡!
멈춘 심장을 살리기 위해 가동된 제세동기에 의해 육중한 몸뚱이가 배드 위로 튕겨올랐다 떨어졌다.
그러나 어떤 반응도 없다.
팟팟팟팟!
그사이 숙련된 응급의가 배드 위로 올라가 흉부 압박에 들어갔다.
더 이상 제세동기 가동은 무의미했다.
제세동기는 한 번 이상 시행하면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연구 결과에 따른 결론이다.
“후우우우우!”
배드 위에 무릎을 세운 채 열심히 심장을 압박하고 산소를 공급했다.
“…….”
하지만 요지부동인 사고유발자.
사망이다.
“그만…….”
김국조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심장을 압박하고 있는 후배를 말렸다.
어떤 이유로 쇼크사가 왔는지 부검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함께 상황을 지켜본 증인들이 많았다.
의료사고는 아니었다.
자칫 김국조의 손이라도 그에게 닿았다면 독박을 뒤집어썼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장태산…….’
김국조의 시선이 장태산을 찾았다.
아직 사망 선고 전이지만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한 아이 시신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장태산.
악인 앞에서 그의 집 주소와 이름을 외친 준엄했던 장태산의 모습과 달랐다.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이 그의 얼굴에서 복잡하게 뒤섞여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사실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처럼 제 빈손을 보며 준엄하게 소리치던 장태산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사고유발자 황동춘이 호명된 주소와 이름에 깜짝 놀라며 바들바들 떨던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현실감은 떨어졌지만 마치 사실처럼 느껴졌다.
장태산은 정확히 세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승사자도 아니고…….’
죽음이 수시로 찾아오는 응급실이라 미신에 관한 다양한 시각도 많이 받아들여졌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호명하면 그 사람의 혼이 육체를 벗어나게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의사라서 미신보다 과학을 더 신뢰하는 김국조였다.
장태산의 행동을 보고 의심스럽긴 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버젓이 산 사람이 저승사자일 리가 만무했다.
“영민아!!!”
“예지아!!!”
“아, 아들!!!”
그때 응급실로 일단의 부모들이 들이닥쳤다.
유치원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부모들이 사고 소식을 들고 달려온 것이다.
“엄마!!!”
“우아아아아아아앙!”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아아아아악!”
비명도 터졌다.
멀쩡하던 자식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어느 부모가 멀쩡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응급실로 달려온 대부분이 엄마들이다.
털썩.
비명을 지르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엄마들도 보였다.
“간호사!!!”
그럴수록 의사들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선생님!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 계십시오!”
“으흐흐흐흑…….”
난장판 쓰나미가 응급실을 덮치고 있었다.
아직 처치가 다 끝난 상태도 아니었다.
충격을 받고 몰려드는 부모들도 통제가 되지 않았다.
“도와주십시오! 지금 이러시면 아이들 치료에 더 안 좋습니다!”
김국조가 큰 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응급실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는 광경 중 하나이기도 했다.
평소 같았다면 경비원을 동원해서라도 응급실을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달랐다.
환자가 성인이 아닌 유치원생 아이들이다.
그사이 김국조는 장태산에게 쏠렸던 관심을 거두었다.
사망 사고가 두 건이나 발생한 응급실.
사고 수습은 오늘 하루로 부족할 게 뻔했다.
***
한 사람의 남은 명줄을 거두었다.
내 손으로 처단한 악인이 또 한 명 추가됐다.
전혀 안타깝거나 미안하지 않았다.
이런 류의 악인들은 세상 곳곳에 차고 넘쳤다.
그들로 인해 소리 없이 인류가 오염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삶을 꽃피워 보지도 못한 한 아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
아직 사망 선고 전이지만 심박과 호흡이 멈춘 상태다.
- 신선님…… 이 아이는…….
뒤에 시립해 있던 저승사자가 당황스러워했다.
여 저승사자는 황동춘의 영혼을 끌고 사라졌다.
- 왜?
저승사자에게 짧게 물었다.
신계도 서열 관계가 명확했다.
카르마가 곧 그 신의 능력이자 전부였다.
안다.
명부가 바뀌었다.
황동춘이 보인 간악한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저승사자들처럼 냉정할 수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신선이라 불렸지만 내 붉은 피는 여전히 뜨겁게 흐르고 있다.
저승사자에게서 명부를 빼앗았다.
그리고…….
의지를 담아 카르마를 불어넣었다.
경험상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카르마 포인트로 안 될 게 없었다.
이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무한정 빨려 들어가던 포인트.
멈추지 않았다.
순간 내 뜻대로 아이의 이름 대신 황동춘의 이름이 명부에 새겨졌다.
명확한 윤회 법칙도 카르마 포인트로 수정 가능하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명부에 선명하게 황동춘 이름 석 자가 보였다.
바뀐 주소와 이름을 호명했다.
하급 신이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난 신들도 인정하는 상급 신.
- 명부가 바뀌었지만 저 아이의 육신을 다시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사료되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명부에…….
- 이름이 뭔가?
- 저승 영혼 회수부 소속 미관말직 윤 차사라 하옵니다.
이름을 묻자 윤 차사가 고개를 숙이며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에서 두려움이 감지됐다.
아마 나 같은 신선은 처음 겪을 것이다.
그의 저승사자 선배들도 이렇게는 못 할 테니까.
- 윤 차사의 눈에는 저 아이가 죽은 것으로 보이나?
- 송구하오나…… 그렇사옵니다.
모든 신체 기능이 정지된 상태지만 아이의 영혼은 아직 육신에 갇혀 있었다.
아직 오염되지 않아 더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의 영혼.
육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살짝 영혼의 머리를 내밀고 사방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저승사자의 눈에만 보이는 아이 영혼의 행동.
- 아저씨 누구세요?
아이의 영혼이 말을 걸었다.
똘망똘망하니 똘똘한 눈길에 담겨 있는 호기심.
- 의사 선생님이세요?
하얀 가운을 보고 묻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의사처럼 보이는 게 당연했다.
- 응. 아저씨 의사 선생님이야.
- 그럼 고쳐주세요!
- 누구를?
- 저기…… 제 친구들이요.
아이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담겨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거나 타박상으로 몸 이곳저곳이 부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 찬혁이는 아픈 거 싫어해요. 감기약도 잘 안 먹는데…….
특히 바로 옆 침대에 중상을 입은 채 누워 있는 아이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안타까움이 목소리에 뚝뚝 묻어났다.
- 너도 아픈데 친구가 걱정돼?
- 전 안 아파요. 그리고 찬혁이는 제 베프예요!
역시 아이의 영혼은 순수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아직 죽음이 뭔지 전혀 모르는 아이다운 행동이었다.
- 공짜로는 안 되는데…….
- 걱정 마세요! 제 돼지 저금통에 용돈 모아놨어요! 할아버지가 주신 세뱃돈도 있고 아빠가 준 용돈하고……. 3만 원도 넘을 걸요?
어느 정도 돈의 개념은 알고 있는 아이였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자랑스러워했다.
- 그걸로는 부족한데?
- 저, 정말요?
- 지금 찬혁이는 많이 아프거든.
- 그럼 아빠에게 말할게요. 우리 아빠는 힘도 세고 지갑에 카드도 3개나 있어요!
유치원생에게는 부모님의 신용카드가 마법 카드처럼 보일 것이다.
모든 걸 구입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카드.
- 신선님……. 지금 새로 명부가…….
아이와 대화하는 중에 윤 차사의 손에 새로운 명부가 생성되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 우진아. 아저씨하고 약속 하나만 할까?
- 약속요?
- 약속하면 우진이하고 다른 친구들 다 고쳐줄게.
- 정말요! 그럼 무조건 지킬게요!
우진이는 신이 났다.
친구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모습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지금 약속은 영혼에 각인될 것이다.
지키지 못하면 우진이는 그 업의 굴레를 몇 생 동안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 우진이 병이 나으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아저씨 같은 의사 선생님이 되는 거야. 그래서 아픈 사람들 많이 치료해 줘야 돼. 그 약속 지킬 수 있어?
- 네에에에에에!!! 약속해요!
우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늘 우진이와 맺은 인과가 결코 작지 않았다.
만약 우진이가 악인의 길로 들어선다면 그 업은 당연히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더 영혼과의 약속을 시도했다.
순수한 아이의 영혼은 그만큼 힘차게 대답했다.
그걸로 계약 성립.
힘없이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의 손가락을 잡았다.
파아아앗!
신선과 인간의 맹약이 맺어지는 순간이다.
포인트를 투자해 축복도 빌어줬다.
그리고 그 순간.
- 그레이트 힐!!!!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