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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장. 응급실의 마법사(3) (1,167/1,284)

1192장. 응급실의 마법사(3)

‘개새끼들!’

황동춘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낮에 반주로 마셨던 술기운이 온몸에 알싸하게 퍼졌다.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충혈된 눈동자로 사방을 훑었다.

응급실은 여기저기 피로 난장판이 됐다.

조그만 체구의 아이들 몇몇이 흘린 피라고 하기에는 양이 많았다.

25인승 통학 버스였다.

수업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생님을 따라 노래도 부르고 조잘조잘 대화도 나누고 있던 아이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던 황동춘의 11톤 트럭은 정확하게 버스 중간을 들이받았다.

속도가 정해진 시내 주행이었기에 과속까지는 아니었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반응이 늦었다.

‘망했어! 저 애새끼들 때문에!!!’

황동춘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에 띄는 아이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아직 할부도 끝나지 않은 트럭이다.

어제부터 마신 술이 깨기도 전에 점심으로 해장국을 먹으며 낮술을 곁들였다.

가정폭력 때문에 애들과 함께 집을 나간 아내와 양육비 문제로 며칠 전부터 전화로 싸웠다.

사정이 이렇게 되기 전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마시고 종종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다.

본인만 빼고 다들 잘 먹고 잘산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멀쩡했다가도 술만 마시면 개처럼 변했다.

처음 술을 배울 때 잘못 배운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20년 트럭 운전이 밥줄이 돼 주었지만 덩달아 음주운전을 즐겼다.

트럭은 음주운전 단속의 사각지대에 속했다.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며 지금까지 운 좋게 운전해왔다.

걸린다 해도 법적 처벌이 약했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법원은 음주운전에 그 어느 나라보다 관대했다.

‘뒈지지만 않으면 돼!’

황동춘은 교통사고에 빠삭했다.

사망사고만 아니면 됐다.

화물공제조합에 가입돼 있어서 사망사고만 아니면 처벌은 크게 세지 않을 것이다.

음주 대형사고라서 이번에는 벌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은 예상했다.

재판을 받을 게 확실했다.

사정이 어렵더라도 전관 변호사와 계약하면 집행유예 정도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가정불화와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들어 요즘 많이 힘들었다고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하면 된다.

그 정도는 자신 있었다.

문제는 지금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는 것이다.

버스를 추돌하며 핸들에 얼굴과 가슴을 강하게 부딪쳤다.

중상은 아니지만 이마가 찢어지고 몸 곳곳이 타박상으로 벌써 파랗게 멍들었다.

그런데도 119 구급대원은 자신을 중요한 환자로 여기지 않았다.

이미 가해자라 낙인을 찍은 듯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가장 늦게 119 차량이 배정됐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누구 하나 살뜰하게 살펴봐 주지 않았다.

“다들 뭐 해! 나 치료하라고! 사람 차별하냐! 이 나쁜 새끼들아!!!”

급기야 황동춘은 악을 썼다.

솔직히 술이 덜 깨기도 했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몇 해 전 병원에서 알코올성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걸 빌미로 삼아 정신병 진단을 받으면 이번 교통사고 처리에 있어서 정상참작이 될 거고 처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정신병력은 충분한 감경 사유다.

모든 계산을 마친 황동춘은 지금 자신의 몸뚱이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더 고래고래 악을 썼다.

어느 병원에 가서든 응급실에서는 악을 지르고 떼를 써야 먼저 진료해 준다고 배웠다.

“야! 이 뻔뻔한 새끼야! 좀 닥치고 있어!”

김국조가 화를 참지 못하고 득달같이 달려와 소리질렀다.

간혹 저렇게 뻔뻔한 자들이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과속이나 신호 위반 등으로 교통사고를 유발한 가해자들 상당수가 저런 부류에 속했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 사고를 냈음에도 막상 잡아놓고 보면 더 뻔뻔하게 나왔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해도 자신의 아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작은 불편도 참지 못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피해자보다 더 아프다고 소리치는 인간들이 그 부류다.

아무리 의료행위가 인간의 범법행위를 따지지 않고 행해지는 인술(仁術)의 영역이라지만 의사도 인간이다.

“닥쳐? 씨발! 너 뭐야! 니가 뭔데 소리쳐!”

“여기 응급실 담당 의사 김국조다!!!”

“오! 맞아 김국조! 당신 이래도 돼? TV에서는 온갖 착한 척 다하면서 환자에게 막말에 소리를 쳐! 내가 방송에 알리고 고소할 거야! 이거 명예훼손이야!”

황동춘은 김국조를 빌미로 막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과거 같았다면 진작 마누라와 애들을 폭행하며 분이 풀릴 때까지 화풀이했을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딱 걸린 김국조.

먹이를 발견한 독사처럼 시선이 집요해졌다.

“그래! 고소해라! 이 쌍놈의 새끼야! 너 때문에 다친 애들 안 보여!!!”

김국조도 한 성깔 했다.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악을 쓰고 난동을 부리는 가해자가 괘씸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싸다귀라도 날리고 싶었다.

“썅! 내 잘못 아냐! 저 새끼들 운이 나빠서 그런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황동춘도 지지 않고 침을 튀기며 항변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아이들이 타고난 운 탓이라고 쏘아붙였다.

“저런 미친!”

“아아…….”

“씨발!”

사방에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욕과 신음을 토했다.

그들의 눈에 발악해대는 황동춘은 그 자체로 악마처럼 보였다.

누구도 그를 돌보거나 응원의 시선을 보내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개 같은 세상이야! 내가 착하다고 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저렇게 비틀린 시선으로 지금껏 살아온 자였다.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할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와오! 이런 개새끼를!”

김국조의 눈이 홱 돌아갔다.

들고 있던 차트를 들어올려 그대로 황동춘을 후려칠 참이다.

“참으십시오!”

“교수님!”

주변에 서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황급히 말렸다.

김국조는 그들이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는 열혈남아였다.

조직 윗선에 대놓고 할 말은 하고 살았다.

그런 김국조가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참아줄 리 없었다.

‘흐흐. 잘 걸렸다! 오늘 깽값 좀 벌자!’

황동춘 역시 어차피 당분간 차량 운전은 끝이었다.

차를 팔아 변호사 비용을 대주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다.

김국조가 몸에 손을 쓰는 순간 냅다 드러누우면 그만이다.

돈만 찔러 주면 진단서를 발급해 줄 교통사고 전문 병원은 사방에 널리고 널렸다.

증거가 될 CCTV가 작동 중인 것도 확인했다.

“쳐라! 쳐! 어서 쳐. 가운 입은 백정놈아!!!”

황동춘이 악을 쓰며 머리를 내밀었다.

한 번만 스쳐도 그대로 쓰러질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아이들 생명 살리기도 벅찬 응급실이 한층 더 난장판이 됐다.

그때.

“남섬부주 대한민국 부천시 상동 1278번지 3층 황…… 동…… 춘!”

갑자기 황동춘의 귓속을 파고드는 본인의 집 주소와 이름.

“누, 누구야!”

자신의 정확한 주거지 주소와 이름 호명에 황동춘이 깜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

어느새 다가와 있는 젊은 남자.

그가 저승사자처럼 차갑고 감정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

- !!!

윤 차사는 깜짝 놀랐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 응급실에서 악을 바락바락 썼다.

죽은 다음에 지옥행이 예약되어 있는 자였다.

저승사자가 된 이후 가끔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다.

저런 유형의 인간은 죽어서도 교화가 되지 않았다.

전생부터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온 자일수록 더했다.

교통사고 피해자인 아이들과 얽혀 있는 업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마음을 써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성하는 빛이라도 보이면 전생과 이생의 업이 동시에 소멸될 수 있건만 저런 식으로 나오면 다시 몇 배의 악업을 쌓게 된다.

이 또한 어리석은 중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 대신 저 악마를 데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명부가 넘어오지 않았다.

대충 봐도 명이 긴 자였다.

남아 있는 인생이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쉬이 죽을 자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선이 후배의 손에 들려있던 명부를 채갔다.

- 티, 팀장님!

후배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인간 신선이 손을 뻗자 명부가 저절로 그의 손에 들어갔다.

- 죽일 놈!

신선이 분노했다.

손에 들고 있는 명부를 힘껏 쥐었다.

파아앗!

그 순간 새카만 빛이 터졌다.

신선은 명부를 든 채 응급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인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저승사자처럼 그의 집 주소와 이름을 호명했다.

- 바, 바뀌었어! 명부가!

윤 차사가 크게 놀라 외쳤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사건이다.

명부는 저승의 각 대왕들도 함부로 바꿀 수 없었다.

전생과 이생의 업과 인과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얽히고설켜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인간 신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명부가 바뀌어 버렸다.

- 그, 그게 가능해요? 어떻게 신선이 저승의 명부를…….

후배가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저승사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상급 신선들이 대단한 존재인 건 익히 알았지만 이 정도 능력까지 있는 건 몰랐다.

- 으음…….

윤 차사가 신음을 흘렸다.

대사건이 터졌지만 명부 감시 시스템 관리 부서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눈 앞의 신선은 저승계와 어떤 계약을 맺고 있는 것 같다.

상급자들의 결정에 일개 하급 차사들이 문제를 제기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컥!”

호명된 인간이 갑자기 자신의 목을 잡았다.

한 번의 호명에 영혼이 빠져나오려 바둥거렸다.

숨이 막힐 때 보이는 증상.

“황 동 춘…….”

그리고 두 번째 이름이 호명됐다.

“커어어어억!”

황동춘이 목을 잡고 게거품을 물었다.

어느새 반쯤 빠져나온 영혼.

“머, 머어어엄…….”

황동춘이 본능적으로 뭔가를 알아챘다.

아등바등 멈추라는 말을 하기 위해 애썼다.

눈가에 깃드는 진득한 죽음의 기운과 공포가 동시에 보였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쇼크!!!”

황동춘에게 일어나는 돌발상황에 의사들이 놀랐다.

머리가 살짝 찢어진 것과 타박상을 제외하고 별 이상이 없던 황동춘이 게거품을 물고 목을 움켜쥐는 모습에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스윽.

명부를 손에 들고 다시 한 번 황동춘을 바라보는 인간 신선.

윤 차사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누구보다 더 저승사자 같은 인간 신선.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는 심장.

얼음처럼 차가운 킬러 같은 모습이다.

“황…… 동…… 춘!”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름이 호명됐다.

콰다다당!

배드 위에서 몸부림치던 황동춘의 몸뚱이가 한순간 힘이 빠지며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렇게 된 이상 대라신선이 와도 살리기 힘들었다.

저승에 완벽하게 호출됐다.

스르르릇.

황동춘의 영혼이 육신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 내, 내가 왜……!

육신에 집착하는 황동춘의 새카만 영혼체가 자신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발발발 떨었다.

- 뭣들 하나.

그때 신선이 멍하니 서 있는 저승사자들을 채근했다.

- ???

팟!

어느새 저승사자의 손에 다시 들려져 있는 명부.

- 손님 잘 모셔. 다음에 태어날 때 저 영혼이 누구보다 순박하기를 기원하지. 그게 아니라면…….

저승사자들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 신선.

- !!!

저승대왕 같은 눈빛에 감히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숨을 죽인 두 명의 저승사자.

공손한 자세로 명부를 들고 인간 신선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차렸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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