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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장. 끝나지 않는 전쟁. (1,139/1,284)

1163장. 끝나지 않는 전쟁.

“소식 없어?”

“아직…… 없습니다.”

“그래…….”

아리아 초코파이를 생산하고 있는 동룡제과 본사 회장실.

중국발 악재에 회장실은 늦은 밤까지도 환히 불을 밝히고 있다.

무리 없이 잘나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코가 깨졌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중국 측 고위 인사의 개입.

중국 지사 쪽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보아하니 오늘도 꽝이다.

“하아아.”

주미란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욕심 많은 오빠에게서 겨우 지켜낸 동룡제과였다.

조카의 뒤늦은 반격이 있었지만 그때도 끝까지 쥐고 지켜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생긴 차원이 다른 외부 변수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

국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지경.

외무부를 비롯해 각종 정부 기관 모두 난색을 표했다.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고위 공산당 앞에서는 법조차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

멀쩡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라였다.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지만 피할 수 없는 압박이 가해졌다.

‘태산이도 어쩔 수가 없겠지.’

어쩔 도리 없이 믿어본 조카의 행보였지만 역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한국과 많이 달랐다.

큰소리치며 호언장담하며 미국으로 떠난 조카는 여태 연락이 없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 전무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은 중국으로 출국해야만 한다.

국가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에 들어가 해명을 해야만 했다.

“가야지.”

주미란은 반은 포기한 듯 힘없이 답했다.

약소국의 비애가 아닐 수 없었다.

중국에서 아리아 초코파이가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온갖 짝퉁 상품이 판을 쳤다.

언뜻 봐서는 알 수 없을 만큼 포장지가 똑같은 제품이 몇 개씩 출시됐다.

다행히 숙련된 기술과 고수해 온 맛이 달랐기에 어찌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상 플랜을 가동하겠습니다.”

“인수가는 어때요?”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강 전무가 고개를 숙였다.

비상 플랜이라고 해봐야 말만 거창한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상대가 원하는 가격대에 팔고 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베트남을 비롯해 아시아 판권은 절대 안 됩니다.”

“공장을 인수하면……. 덤핑을 시작할 겁니다.”

중국 공장이 넘어가면 아리아 초코파이에 걸려 있는 노하우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분명 동룡을 쓰러트리기 위해 저가에 판매할 것이다.

“내일 비가 온다고 그랬나요?”

“네.”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한강변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간간이 창문이 덜컹거렸다.

중국 쪽에서 발달한 비였다.

“여차하면 직원들 먼저 모두 빼내세요.”

“알겠습니다.”

중국 측의 악랄하고 비열한 수완은 상상을 초월했다.

인신 구속은 말할 거리도 되지 않았다.

“퇴근해요. 공항에서 보도록 하죠.”

“쉬십시오…….”

강 전무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먹어주는 중소기업이지만 중국에서는 수만 개의 그저 그런 회사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무기력함과 패배감이 그녀를 지배하며 공간을 맴돌았다.

“태산아…….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주미란은 울릴 기미조차 없는 스마트폰을 가만히 쳐다봤다.

몇 번이고 연락하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조카가 떠나기 전 분명히 말했다.

절대 먼저 연락해서는 안 된다고.

“하아.”

무겁게 가라앉는 한숨.

주미란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이, 이게 뭔가요?

귀신이 바짝 쫄아서 묻는다.

나도 모른다.

비 내리는 한밤의 자금성 산책.

보시다시피 슈건핑의 제안은 단칼에 거절했다.

중난하이에 둥지를 트는 일은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슈건핑을 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꼭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의 갈증을 해소하고 바라는 바를 채워 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이 사태는 또 달랐다.

야밤에 자금성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현재 슈건핑밖에 없다.

그런 만큼 소원권을 사용할 타이밍인 것이다.

타다다다다가.

손에 등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

- 저들 모두가 다 귀신인가요???

귀신이 귀신인지를 묻는다.

척 보면 몰라?

- 아니 그러니까 묻는 거 아닙니까. 형님은 신선이고 저는 아직 귀신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보이지 않는 법칙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거구요.

나라고 다 아는 거 아니다.

물론 지금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 경험은 있다.

떠올려 보면 태릉 선수촌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밤이 되면 태릉에 왕과 왕비가 나타났다.

그들을 따르는 나인과 무관의 수가 적지 않았다.

다만 규모가 좀 달랐다.

그 당시 마주쳤던 태릉 나인과 무관은 기껏해야 백 명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 귀신들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슈건핑과 걷는 도중 어느 순간 갑자기 출몰한 자금성의 귀신들.

내시와 궁녀들이 수십 명씩 조를 짜서 바쁘게 움직였다.

- 뭣들 하느냐! 중요한 사신이 온다 하지 않았더냐! 빨리 움직여라.

- 예이.

상급 내관이 호통을 쳐가며 진두지휘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알은체도 않는 귀신들.

문제는.

- 복장이 다릅니다. 그리고 정확히 반반씩 사용하는데요?

나의 눈에도 그 특이한 현상이 들어왔다.

내시와 궁녀 그리고 호위 무관들의 복장이 제각각 달랐다.

화려한 금색과 푸른 청색이 눈에 띄었다.

그 두 집단은 금이라도 그은 듯 중앙을 기점으로 서로 경계를 넘지 않았다.

투두둑.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귀신들은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옷자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마치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 참 별미입니다. 흐흐흐.

귀신이 흡족해하며 웃었다.

아무나 볼 수 없는 한 편의 영화가 따로 없다.

투두둑.

옷자락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튀었다.

슈건핑은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감시자는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적당히 젖은 상태를 유지하며 내공을 운용해 나머지 빗방울은 튕겨냈다.

저벅저벅.

자금성의 더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걸었다.

명나라 영락제가 1421년 건축하고 난 뒤 1924년 선통제가 쫒겨날 때까지 명, 청 두 왕조의 황제가 거주하던 곳.

지구상에서 가장 큰 왕성으로 꼽히는 곳답게 역시 규모가 장난 아니다.

주례에 따라 황제가 거주한다는 명목으로 오문삼조 방식으로 건축됐다.

과거 시대에는 북해와 중해, 남해까지 포함해 지금보다 훨씬 더 넓었다.

그러나 공산 정권이 들어서며 인민들에게 개방되었고 그때 내성을 제외한 건축물과 공간 상당수가 줄어들었다.

- 밤의 자금성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누가 알까요? 형님 덕분에 진귀한 경험 다 해 봅니다.

귀신은 소풍 나온 학생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겉으로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중국인들의 긴 세월과 문명을 품고 있는 심장과 같은 곳.

“으음…….”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자금성의 중심부.

- 오오! 이곳이 태화전입니다! 

눈에 들어온 곳은 태화전이었다.

한백옥 3단 기단 위에 72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목조 건물.

그 앞 광장은 황제의 즉위식, 황후 책봉, 국혼 등의 국가적 중대사나 대형 조회 등에 사용되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둥! 둥! 둥!

막 발을 들인 순간 갑자기 울리는 거대한 북소리.

파아아아앗!

빛이 터졌다.

현실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눈앞의 태화전과 그 앞 광장에는 햇살이 쏟아졌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엄청난 광경.

- 혀, 형님……. 이게 뭡니까.

귀신이 입을 떡 벌렸다.

묻지 마라. 나도 모른다!

공복(公服)을 착용한 문무백관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광장에 도열해 있었다.

이번에도 바라보는 나를 기준으로 반반치킨처럼 좌우로 복장이 확연히 비교됐다.

갑옷과 칼을 찬 황실 호위병들이 동상처럼 벽 쪽에 대기 중이다.

그들 역시 또 반반씩 나누어 무기와 복장이 달랐다.

문무백관들은 태화전 상단을 향해 허리를 숙인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절대 경외심을 품고 부동의 석상같이 서 있다.

-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귀신이 바짝 쫄아서 옆에 달라붙는다.

태화전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호위병들이 일제히 귀신을 노려봤다.

당장 어떤 명령이라도 떨어지면 달려들어 귀신을 요절낼 분위기다.

딱 봐도 모두 귀신보다 레벨이 높다.

잡귀 수준이 아니다.

그때.

- 황제 폐하 납시오!!!

양쪽에서 다른 내관들이 동시에 외쳤다.

황제의 등장.

파아아앗!

눈부신 황금빛 두 줄기가 비추며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화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두 존재.

커다란 황좌에 위엄있게 앉아 있다.

- 어라? 황제가 두 명입니까?

그랬다.

황제도 정확히 중앙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나뉘었다.

익숙한 곤룡포에 익선관을 입고 있는 정면 좌측의 황제.

우측에 있는 황제의 복장도 만만치 않다.

화려한 금색 조복 위에 붉은 관을 착용하고 있다.

- 맞다! 이 복장들은 바로……. 명, 청조 시대 복장들입니다!!!

귀신이 알아챘다.

처음 봤을 때 난 이미 알아봤다.

다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이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을 뿐이다.

회귀한 후 귀신이랑 신선들도 만나고, 이계까지 갔다 왔지만 아직도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기현상들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 순간.

- 조선의 사신은 황제 폐하를 알현하라!!!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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