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장. 황제와의 산책(3)
- 지, 집이요? 중난하이에 말입니까?
귀신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파격적인 제안이다.
중국 고위 공산당원들도 순번표를 들고 대기해야 한다던 중난하이 저택.
결코 돈 주고 쉬이 살 수 있는 물건 따위가 아니었다.
슈건핑 정도 되는 강력한 권력자가 나서야 겨우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완진바오나 웨신타오, 심지어 방태민도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유일하게 황제만이 가능한 윤허.
사실 귀가 솔깃했다.
적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중난하이 저택이 아닌가.
그런 곳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이 주어질 게 분명하다.
수시로 중국 권력자들과의 회동도 가능해진다.
오고 갈 이해관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게 빤하다.
가치가 무한한 중난하이 집을 선뜻 내주겠다고 제안하는 슈건핑.
“물론 공짜는 아니네.”
그럼 그렇지!
슈건핑도 정치적 부담을 안고 뱉은 말이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해도 전임 상황들이 버티고 있다.
- 쪼잔하게 조건은 왜 붙여. 말을 말던가.
귀신도 가끔 옳은 소리를 할 때가 있다.
무척 평범한 상식선에서 연명하고 있는 귀신.
이럴 때는 속이 시원했다.
베풀려면 조건이 없어야 미덕이 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슈건핑은 언제나 배고픈 자의 입장이다.
세계 2위인 경제 대국이자 1위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을 다스리는 황제.
그럼에도 배고픈 늑대처럼 늘 조급증에 시달렸다.
평생 중국의 황제로 군림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다.
동시에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황제이고 싶어 했다.
강력해진 국력을 이용해 주변국에게 머리 조아림을 강요하는 슈건핑과 그 일당들.
일평생 만족이라는 걸 모르고 살 인물이었다.
손에 쥘수록 더 목이 마른 권력과 명예.
새 차를 타고 얼마간 기쁘다가도 금세 적응해버리는 것처럼 권좌에 오른 만족감은 짧은 순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욕망을 연료 삼아 굴러가는 전차는 멈추는 순간 불행에 빠지는 법이다.
- 그래도 가진 게 많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말 한마디면 모두가 벌벌 떨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귀신이 품고 있는 보통 사람 수준의 행복론.
부정할 수 없다.
어차피 웬만한 사람들 모두 그 수준으로 생각하며 산다.
소유하고 싶었던 물질을 얻게 되면 잠깐 행복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착각이다.
목이 마를 때 탄산 가득한 콜라로 목을 축이는 일과 같다.
근본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슈건핑은 타인보다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주의자다.
권력을 지킬 수 있다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식까지 거래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오직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살아가는 자.
그러니 그는 역설적으로 결단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나눌 때 더 가치를 발한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할 때 행복은 몇 배 더 가치가 빛난다.
그래서 나는 인류평화를 꿈꾼다.
난 그 어떤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은 인간이다.
“어떤 조건인지…….”
일단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어려운 건 아니야.”
슈건핑은 당연히 내가 거절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투두두두두둑.
그사이 굵어지는 빗방울.
“각하!”
우산을 든 경호원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물러들 가 있어.”
“넵!”
슈건핑은 비 맞는 걸 개의치 않았다.
손으로 가볍게 경호원들을 물렸다.
동물원의 판다 곰이 아니라 야생에서 거칠게 자라온 불곰 냄새를 풍겼다.
“추천서를 써주지.”
- 추천서요? 집 사는 데 필요한 건가요?
“어떤 추천서를 말씀하시는지요.”
“공산당원이 돼 주게.”
“!!!”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제안이 나왔다.
- 오! 이 제안은 신선합니다.
“어려울 것 하나 없어. 내 추천서라면 바로 가입될 걸세.”
중국 공산당 총서기 추천서라면 당연히 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그 순간.
- 조상신을 바꾸시겠습니까?
뭐라고??? 조상신을 바꾸겠냐고???
***
슈건핑은 무척 당황한 모습의 장립을 보자 흐뭇했다.
‘재밌군.’
황제가 된 뒤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이렇게 빳빳하게 든 자는 장립이 거의 유일했다.
천하의 방태민도 목줄을 잡고 흔들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장립은 달랐다.
환단으로 슈건핑을 농락했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준비해 둔 회심의 반격 카드를 꺼냈다.
남자라면 누구나 품고 사는 권력과 명예욕을 자극한 것이다.
예수나 부처 같은 성자가 아닌 이상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다.
물질로 구성된 인간이라면 욕망이라는 감정에 어느 정도 충실할 수밖에 없다.
장립이 내뱉은 인류평화가 꿈이라는 말도 농담으로 치부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환단을 팔아 거액을 챙긴 장본인이 바로 장립이다.
말로만 인류평화를 위해서 살고 있지 그의 투자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차라리 동물적이기까지 하다.
완진바오가 내민 대학원 입학 따위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조건이다.
그래서 더 통 큰 선물을 준비했다.
몇 년 전 목을 쳐낸 태자당 거물들을 퇴거시킨 덕에 중난하이 저택 일부가 비어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허락지 않은 물건이다.
그중 한 채를 건네줄 참이다.
장립을 가까이 곁에 두고 천천히 통제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은혜는 잊지 않으리라.
“으음…….”
장립이 신음을 흘렸다.
‘흐흐. 어서 미끼를 물어라!’
슈건핑은 자신의 도박이 통할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이런 제안을 거절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방태민도 쿠데타 실패 후 중난하이 집은 뺏지 말아달라 간청했다.
쏴아아아아앗.
빗줄기가 굵어졌다.
시원했다.
산성비 걱정 때문에 10년 동안에 비를 맞아본 적이 없다.
오늘은 그런 비라도 좋으니 시원하게 맞고 싶다.
게다가 다행히 근래 비 오는 날이 많아 대기질이 좋아졌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런 비를 맞을 수 있을지 모른다.
“비가 많이 오고 있어.”
슈건핑이 우회적으로 결정을 재촉했다.
공산당원에 가입하는 순간 장립은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동시에 확실한 중국인이 된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결정이다.
미국 정보당국이 공산당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관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공산당원은 중국의 진짜 시민권자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장립에게는 외통수 격이다.
“각하.”
결정한 듯 장립이 그를 불렀다.
“말하게.”
“그 제안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장립.
비에 젖은 슈건핑은 황제 특유의 오만한 눈빛으로 장립을 바라봤다.
장립의 다음 말이 나오면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해 줄 생각이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래 잘……. 뭐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지, 지금 뭐라고 했나?”
슈건핑이 당황하며 다시 물었다.
“각하의 크신 베품은 이 장립이 평생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하지만 중난하이의 저택을 하사받는 일은 제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
슈건핑은 분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견해로는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유언?”
“사능지족심상락(事能知足心常樂)이라. ‘자기 일에 능히 만족함을 알면 마음이 항상 즐겁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
슈건핑은 어이없는 시선으로 장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농담이 아닌 게 분명했다.
꿈이 인류평화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새삼 장립이 다르게 보였다.
결론은.
‘미친놈!’
장립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깍듯한 자세로 깊숙이 고개 숙이는 장립.
“끄응…….”
슈건핑은 자신의 계책이 어긋나자 신음을 흘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빗줄기가 얇은 양복을 적시고 들어와 서서히 한기가 느껴졌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조심해서 돌아가게.”
슈건핑은 몹시 불쾌했다.
그렇다고 장립을 매정하게 내치지는 못했다.
장립은 이제 어떤 순간에도 없어서는 안 될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완곡한 거절 끝에도 그는 예의를 잃지 않았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슈건핑이 먼저 몸을 돌렸다.
그때.
“각하! 청이 하나 있습니다.”
‘청?’
슈건핑은 장립의 다소 급한 부름에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부탁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꽌시는 서로 부탁을 들어주는 관계.
“뭔가?”
무게를 잡고 슈건핑이 위엄있는 모습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웬만한 부탁은 한 번 튕기고 들어 줄 생각이다.
“괜찮으시다면……. 자금성을 더 둘러봐도 되는지요?”
“뭐라고?”
천하의 중국 주석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겨우 자금성 구경이나 더 해도 되냐 묻는 장립.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다음부터 이 녀석을 만날 때는 욕심을 버려야겠어.’
더 이상의 대책이 없었다.
“마음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각하!”
장립은 저택을 주겠다고 할 때보다 더 기뻐했다.
“허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젖는 슈건핑.
찰박찰박.
어느새 바닥에 고인 빗물을 밟으며 걸어왔던 길로 돌아섰다.
차자자자작.
기다렸다는 듯 곁으로 다가오는 경호원들.
커다란 우산을 씌우며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었다.
황제를 세심하게 보좌하던 고위 환관들 같았다.
슈건핑은 다소 빠른 걸음으로 자금성을 빠져나갔다.
장립은 다시 슈건핑을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문득 드는 의구심에 걸음을 멈추고 살짝 뒤돌아본 슈건핑.
장립이 자금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빗줄기에 젖으면서도 당당하게 자금성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뒷모습.
생각보다 넓어 보이는 뒷모습이 그제야 슈건핑의 눈에 들어왔다.
과거 그가 모셨던 전 자금성의 주인들보다 더 크게!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