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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장. 그들만의 세상. (1,131/1,284)

1155장. 그들만의 세상.

- 와아아아……. 정말 죽입니다. 중난하이! 중국 황제와 귀족들이 거주한다더니 저택들 포스가 장난 없이 으리으리합니다!

귀신이 탄성을 터트렸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동조했다.

자금성 서쪽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호수 바닥을 파낸 흙으로 경산이라 불리는 인공산을 만들어 냈다.

인공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웅장한 자금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곳.

호수 주변에 위치한 건물들은 하나같이 위용이 대단하다.

수십 채의 거대 저택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금색과 푸른 기와가 어우러져 한눈에 봐도 그 기세가 대단했다.

중국에서 중난하이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명예이자 권력으로 작용할 정도다.

금, 원, 명, 청 제국 시절 황실의 원림 안에 위치해 있다.

과거부터도 아무나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

자금성의 일부나 마찬가지였기에 감히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장소였다.

지금은 중국 국가주석과 고위직들의 집무실이 주로 이곳에 존재했다.

다른 국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난하이에는 고위직들의 가족들까지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장소에 눈에 띄는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찾아왔다.

마법을 사용해서 감시자들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로버트 라이언을 통해 자가용을 준비시켰다.

- 이걸 어떤 말로 표현해야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스카이캐슬!

딱 떠오르는 적당한 표현은 하나였다.

전 세계에서 이곳만큼 정치 권력이 응집해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미국 쪽 정치 권력과 차원이 달랐다.

고위 공산당원들도 원로로 인정받아야 자연스럽게 이곳에서의 거주가 가능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이지 않는 규칙이 존재하는 영역인 것이다.

대신 한 번 입주하게 되면 퇴거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스카이캐슬에 입주하는 순간 활짝 열린 미래가 보장되는 셈이다.

고위 공산당원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자식들이 거주하며 자연스럽게 혼맥은 물론 각종 꽌시가 형성되었다.

한마디로 중국을 주무르는 핵심 인사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택지이다.

모든 중국 정치인들이 열망하는 곳, 중난하이.

반역죄 수준의 죄목이 아니라면 퇴거당하는 일 역시 절대 없었다.

- 스카이캐슬! 딱 그거네요! 그들만의 세상!!!

귀신도 수긍이 가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점에서는 중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 올 때마다 느꼈던 감정의 정점을 맛보고 있었다.

주변국을 속국으로 취급하는 중화사상이 이곳에서 태동하고 있었다.

자금성이라는 중국 제국 역사와 문화의 산 중심지.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빼고 본다면 신음이 절로 나올 만큼 화려하고 두려운 곳이었다.

고풍스럽고 장엄한 건물들의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이 안에 거주하는 인사들의 면면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중국 현대사를 만들어 낸 위인들과 그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이니 더욱 그렇다.

문화대혁명의 무지하고 무식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실력을 증명한 작금의 중국 지도자들이 아닌가.

하방이라는 지독한 인내의 시험장을 통과한 무리들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춥고 배고픈 시간을 지나 무수한 멸시를 참아냈다.

그 과정 속에서도 좌절을 맛봤으나 꿈을 잃지는 않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경야독하며 중국의 최고 학벌의 양대산맥인 베이징대학과 칭화대를 졸업한 파워엘리트들이 서로 싸워가며 교차로 권력을 쟁취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천운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노력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한국처럼 배부르게 살아왔던 재벌과 독재자의 자식들로 이뤄진 상류층이 아니다.

탐욕스러운 한국의 기득권층들과 태생부터 달랐다.

보리밥에 물 말아 먹고 오늘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더 무서웠다.

욕망의 질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철저하게 밑바닥을 기어본 자들이기에 눈치도 그만큼 빨랐다.

어느 곳에 데려다 놓아도 생존이 가능한 진짜 욕망꾼들인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한 정치 전쟁터 중난하이.

그곳에 내가 왔다.

- 이리 오너라! 

귀신이 단단해 보이는 거대한 문 앞으로 다가가 뒷짐을 지고 소리쳤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처량한 귀신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안으로 전달되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문 앞에 선 나를 무장한 무경들이 곁눈질로 바라봤다.

어디선가 명령이 내려지면 바로 총질을 해댈 것만 같은 분위기.

그그그그그극.

문이 열렸다.

그리고.

“립!!!”

류미가 이름을 부르며 힘차게 달려왔다.

덥석.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에 매달리는 류미.

- 흐흐흐…….

귀신의 만족스러워하는 웃음이 괜히 귀에 거슬렸다.

***

“곧 가을이 오겠군…….”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작은 파도를 만들어 냈다.

중해와 남해 사이에 위치한 중난하이의 명당 터.

주석궁에서 슈건핑은 창밖을 보며 곧 다가올 가을을 생각했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몸서리쳐지는 과거가 떠올랐다.

하방 시절은 슈건핑을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

추수 시절마저도 배를 곯았다.

들판에 곡식이 넘쳐도 따뜻한 쌀밥 한 그릇 얻어먹기가 힘들었다.

고기는 언감생심.

혁명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문화대혁명 시절 하방을 명받아 깡촌으로 내려가 살았다.

워낙 살벌한 시절이라 아버지 이름을 팔아서 연명할 수도 없었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점심시간으로 주어진 단 30분 동안만 자유가 허락됐다.

피곤한 몸을 누일 곳은 오직 토굴뿐.

그곳에 돌아와 촛불을 밝혀가며 공부했다.

타락한 혁명가 자손이라는 딱지 때문에 감시가 유난히 심했다.

완장을 찬 무학자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슈건핑을 질투했다.

옥수수죽과 보리밥에 소금을 뿌려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그것도 없으면 맹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버텼다.

아사하기 직전까지 그 역시 감사한 일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집안에서 어렵게 먹을 것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슈건핑은 결코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하방 시절 슈건핑은 다짐했다.

권력에 취한 무지한 자들을 계몽해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꿈꾸고 고대하던 절대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배가 고팠다.

주석직에 올랐지만 곳곳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미래를 방해하는 암초들이 많았다.

“과거의 고난을 잊은 자에게 미래란 없는 법이다. 아직 난…… 배가 고프다.”

슈건핑은 스스로 나태해졌다고 느낄 때마다 당시의 고난을 떠올렸다.

다들 운이 좋다고 말하지만 반 정도만 맞는 말이었다.

원로였던 아버지 덕분에 태자당과 공청단이 연결된 것은 사실이다.

방태민의 호의로 상하이시 서기를 지내며 상해방과도 꽌시를 맺었으니 운이 좋다고 말할 만했다.

칭화대 학사를 가지고 베이징대 대학원을 졸업해 짱짱한 학교 인맥도 획득했다.

남들이 보기엔 거저 얻어진 듯한 화려한 인맥.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 과정 속에는 슈건핑의 피와 땀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말 잘 듣는 사냥개 노릇을 했고 우직한 소처럼 일했다.

수탉처럼 일찍 깨어 아침을 열었고 사바나의 사자처럼 야생의 싸움에도 능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우처럼 교활했으며 독사처럼 해독이 불가능한 독을 품고 살았다.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일생일대 꿈의 정점.

계약직 같은 10년 주석이 아니라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서서히 저물어가는 오후.

낮잠을 자지 않아도 오늘은 거뜬했다.

장립이 준 소황자단의 효과가 아직도 유지된 덕이다.

“각하.”

방창걸이 들어왔다.

중앙판공청 주임이라는 직함으로 슈건핑을 측근에서 오랫동안 보좌해 오고 있다.

알고 지낸 세월만 해도 30년.

“또 지난 과거를 생각하셨습니까?”

방창걸이 바로 슈건핑의 지금 상태를 알아챘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지독한 시절이었습니다.”

함께 지난 시절의 고난을 공유한 만큼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마음은 통했다.

방창걸 또한 하방을 같이 경험했다.

권력상으로는 위였지만 두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슈건핑은 방창걸을 존중했다.

“그랬었지요……. 아직도 그 시절 겨울만 생각하면 뼈마디가 쑤십니다.”

방창걸도 과거를 잊지 않았다.

중난하이에 거주하는 대다수가 하방을 몸으로 견뎌낸 역군들이다.

“그래도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처절했지만 꿈은 더욱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으니까요.”

슈건핑의 목소리에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으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던 완벽한 세상…….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슈건핑의 눈빛이 더욱 단단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방창걸.

“그 녀석이 완진바오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요? 호텔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켜보던 모든 시선을 따돌렸습니다.”

“역시 비범한 녀석입니다.”

슈건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가 철저했지만 보란 듯이 감시자들을 농락했다.

“그런데 중난하이에는 어떻게 들어왔답니까?”

“방 주석의 비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전직 주석들에게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허락된 비표.

주석들이 제공한 비표를 제시하는 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중난하이에 출입할 수 있었다.

“웨신타오는 낚시터로 돌아갔습니다.”

“대화 내용은 파악 못 했습니까?”

“아쉽게도 얻지 못했습니다.”

“흐음…….”

슈건핑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 모시던 주군이었지만 이제는 자의로 유배당하고 있는 웨신타오.

방태민과 함께 웨신타오 측근들의 힘을 상당수 제거했다.

가까이서 보필했기에 웨신타오의 냉혈한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오랜 시간 인내하며 차근차근 목표한 바를 쟁취해 나갔다.

방태민보다 더 두려운 웨신타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껏 환단 몇 알을 얻어갔을 겁니다.”

“그래야겠죠. 그게 아니면…….”

슈건핑의 눈동자에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진득한 살기.

평소 잘 드러내지 않는 슈건핑의 본심이 고스란히 담겼다.

“철저하게 더 감시하겠습니다.”

방창걸이 고개를 숙이며 그가 바라는 대답을 했다.

“안심하면 안 됩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그건 그렇고 완진바오가 장립을 포섭하기 위해 무엇을 내놓을까요?”

“미인계를 시도할 겁니다.”

“류미를 통해서 말입니까?”

“장립이 애까지 딸린 유부남이지만 완진바오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겁니다. 워낙 계산이 빠르기에 주판알은 다 튕겼을 겁니다.”

“장립이 넘어갈까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효과는 볼 겁니다.”

“그렇겠지요. 류미 정도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슈건핑이 인정했다.

고위 공산당원들 자제 중에 류미만큼 빼어난 신붓감은 드물었다.

슈건핑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류미를 며느리로 삼았을 것이다.

성격 까칠해 보여도 쓰레기 같은 짓을 벌이는 다른 고위급 자제들과 류미는 질적으로 달랐다.

“다음으로는…….”

“주기적으로 환단 공급을 요구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죠. 지금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

장립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환단.

슈건핑이 입맛을 다셨다.

“그것 말고도 더 맛좋은 걸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슈건핑이 소리 없이 웃으며 물었다.

“각하도 대충 짐작하실 겁니다.”

마주 이를 드러내는 방창걸.

“장립이 덥석 물까요?”

“글세요……. 그건 장립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방창걸이 묘하게 미소를 띠었다.

“어찌 됐든 우리에게는 득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장립이 중국에 터전을 잡는 순간…….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야죠. 특별한 인재는 국가의 반석입니다.”

엘리트로 성장했기에 누구보다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슈건핑이었다.

그가 조용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는 중난하이.

기이한 욕망의 불꽃들이 일어나 춤을 출 시간이었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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