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4장. 천하를 논하다(5)
‘미끼를 빌려준다고……?’
웨신타오가 놀란 눈으로 장립을 바라봤다.
말하는 투로 보아 농담이 아닌 듯했다.
담백한 빛을 띤 안광에서 보이는 기묘하게 타오르는 감정.
웨신타오에게 미끼를 빌려주고 고기를 낚으려 했다.
꿀꺽.
웨신타오는 많은 생각에 마른침을 삼켰다.
장립의 변화무쌍한 태도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두려움이 일었다.
‘판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다.
장립의 처음 등장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흐름이 어떤 계획하에 움직여지고 있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수십 년간 몸부림쳐 왔던 웨신타오였기에 누구보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거인이라는 평가도 박했다.
웨신타오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중국 권력자들이 모두 그에게 장기판의 말이나 어항 속 물고기 취급을 당했다.
“두려우십니까?”
목소리만으로는 전혀 장립의 감정 상태를 짐작할 수 없었다.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하지 않았다.
마작판 구경꾼처럼 혹은 전혀 입장이 다른 제3자처럼 행동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장립이 중국 절대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휘두르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짐작 밖의 일이 돼 버렸다.
스스로를 장사치라 스스럼없이 밝혔지만 생각하고 있는 판의 크기가 달랐다.
수십억 위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엄청난 국가 이권 사업에도 과감하게 투자한 장립.
그의 진심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글쎄요. 장사치가 꿈이 있다 한들 얼마나 큰 꿈이 있겠습니까. 적당히 이문만 남기면 되지.”
거짓이다.
두리뭉실 넘어가려 말을 돌렸지만 장담하건대 장립의 속은 누구보다 새카맣다.
“빌려줄 미끼가 뭔가?”
웨신타오는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미끼의 정체.
만약 그게 맞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다.
좀 더 진하게 미소를 짓는 장립.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
독심술이라도 배운 듯 장립이 기대하던 답을 해왔다.
“어, 얼마를 빌려준단 말인가?”
웨신타오의 목소리가 예민하게 떨렸다.
“얼마면 됩니까? 아니 몇 개면 됩니까?”
‘기회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였다.
빠른 두뇌 회전으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순간 치고 들어온 기회지만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었다.
모든 상황이 장립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다.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따로 없다.
주고받을 이익의 균형추가 맞지 않았다.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미끼.
“되도록 많이 줬으면 좋겠……네.”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건만 목소리가 떨리면서 새어나왔다.
“불러보십시오.”
한때 자신이 누렸던 가진 자의 권력을 마음껏 행사하고 있는 장립.
원망스럽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낚싯대 따위가 아니라 그물에 걸려버린 신세.
‘복수를 위해서라면!’
복잡한 계산은 필요 없다.
슈건핑만 무너트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지난 시절 너무 많은 미래를 계획했다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 달에…… 최소 10개!”
웨신타오는 최대한 원하는 바를 제안했다.
이번에 환단이 한바탕 쫙 풀리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환단에 대한 소문은 지금쯤 사방에 퍼져나가고도 남았다.
능력자들이 눈에 불을 켤 것이다.
구입하게 된 자는 꽌시를 맺을 대상들에게 우선적으로 뿌릴 수 밖에 없다.
상부뿐만 아니라 중요한 동료나 이익 관계자에게도 나눠야 한다.
그중에는 돈이 미치도록 넘쳐나는 신흥 부자뿐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저명인사들이 다수다.
10개를 낙찰받는다 해도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다.
가족 중에 노인이나 환자가 있다면 더더욱 빨리 소진될 것이다.
“10개라…….”
장립이 살짝 고민에 빠졌다.
‘욕심을 너무 부렸군.’
웨신타오는 자신의 욕심을 자책했다.
아무리 장립이라 해도 다달이 10개의 환단을 미끼로 주는 건 힘에 벅찰 것이다.
“각하.”
웨신타오를 조용히 부르는 장립.
“너무 많으면 3개씩이라도…….”
“달에 20개씩 지원해 드리죠.”
“뭐, 뭐라고!!!”
웨신타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무려 환단 20개.
환단을 주기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과거 누리던 권력을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다.
“부족합니까?”
‘미친!’
장립의 환단이 얼마나 대단한지 웨신타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선물용 보약을 뿌리듯 가볍게 말하는 장립.
가진 바 능력을 결코 짐작할 수 없었다.
“아니네 아니야! 절대 부족하지 않아.”
웨신타오가 손사래 치며 극구 부인했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마, 말해 보게.”
환단만 얻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피붙이라도 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딸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립을 혈연으로 묶을 수 없어서 더 안타까웠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조건입니다.”
“최대한 맞춰주겠네.”
꿍쳐둔 비자금을 털어주는 것쯤은 기본이다.
안 되면 환단을 팔아 충당하면 될 일이다.
“비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물론이네!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야!”
믿음을 줬던 방태민을 배신하고, 믿었던 슈건핑에게 배신을 당했던 웨신타오.
지금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다른 조건을 제시하려는 듯한 표정의 장립.
웨신타오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생존.”
“???”
간단하고 짧은 한마디.
“생존이라 하면…….”
“말 그대로입니다. 닥쳐올 폭풍 속에서 살아남으십시오. 그게 조건입니다.”
“아!”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장립의 거래 방식이다.
웨신타오는 참았던 격한 탄성을 터트렸다.
장립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려 했던 어리석은 행동이 부끄러웠다.
완벽하게 그에게 패배했다.
그릇 크기가 애초에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달랐다.
“각하의 적들이 사정없이 뒤흔들 겁니다. 그 폭풍 속에서 생존함으로 인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십시오. 그다음에 천하를 논해도 늦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웨신타오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이다.
거절하면 천하에 다시 없을 어리석은 바보였다.
“립!!!”
찻잔을 놓고 웨신타오는 장립의 손을 움켜잡았다.
일생의 복수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 분명했다.
“고……맙네! 이 은혜는 살아생전 모두 다 갚고 죽겠네!”
“이자가 비쌀 겁니다.”
“걱정 말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자 계산은 언제나 철저했네!”
웨신타오는 뜨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 순간 거침없이 그려지는 새로운 계획들.
장립의 미끼 제공으로 더욱 선명하게 청사진이 그려졌다.
‘슈건핑 기다려라!!!’
화려한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다시 계획을 세우며 힘을 내는 웨신타오.
그러나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을 철저하게 비웃는 계략자가 지금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
“연락은?”
“아직 없어요.”
“이제 출발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류미에게 말을 던지고 창밖을 내다보는 완진바오.
평소 느긋하던 그가 웬일인지 조급함을 드러냈다.
‘립…….’
외조부의 낯선 모습에 류미는 장립을 떠올렸다.
그와 홍콩에서 우연히 조우한 뒤로 대형 사건들이 연속 터졌다.
베이다이허에서 처음 만났던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스케일이 컸다.
평소 가족들에게도 속내를 들키지 않기로 유명한 외조부가 안절부절 못 한 모습을 보였다.
하루 종일 비밀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방에 깔린 정보원들이 보내오는 장립에 관한 보고 내용들.
아버지 류평도 진작 집에 들어와 회의에 참석했다.
장립에 대한 평가가 대화 내용의 주를 이뤘다.
그리고 장립을 찾아간 웨신타오의 목적에 관해서도 논의됐다.
물론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는 이상 답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장립이 추구하는 바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게 없기에 난무한 추측들만 오고 갔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어요.”
“그래도 출발할 시간이다. 설마 주소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낮에 통화했고 문자로 정확한 주소를 보냈어요.”
“연락해 봐서 늦지 않았다면 네가 데리고 오거라.”
“할아버지 그건…….”
평소에는 찾아오는 외부인사만 받던 외조부 완진바오.
속이 타는 듯 류미를 재촉했다.
“연락해봐.”
아버지 류평도 류미를 보며 채근했다.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했다.
오늘을 위해 성대한 연회가 준비됐다.
외조부 생신 때를 넘어서는 연회 준비.
집안은 조용한 가운데 부산스러운 기운이 곳곳에 넘쳤다.
들떠 있는 집주인의 마음과 같았다.
‘장립. 진짜 네 정체가 뭐야…….’
알면 알수록 정체를 파악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었다.
같이 시간을 보냈지만 더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중국 정치인들을 손에 쥐락펴락하는 장립.
류미는 아직도 잊지 앉았다.
장립 발밑에서 간택당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권력자들의 모습을 말이다.
그들을 밟고 서 있던 순간 얼마나 찌릿했던가.
장립만 옆에 있으면 그 현장에서는 마법이 펼쳐졌다.
문제는 신데렐라처럼 장립과 헤어지는 순간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진다는 것.
류미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늘따라 연결 상태가 좋았다.
장립의 연락은 다시 없었다.
조금만 중요한 일이 발생해도 중난하이에서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휴대전화가 통제됐다.
유선전화가 주로 사용되는 중난하이의 저택.
자존심은 진작 내려놓았지만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장립에게 스스로 첩이 되겠다 선언한 일이 떠올랐다.
그만큼 간절하게 장립에게 매료됐다.
그러나 최소한의 제 가치는 지키고 싶었다.
“뭐 하느냐. 어서 해봐.”
“네…….”
아직 호텔에 머물고 있는 장립.
류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띠이익.
장립의 이름을 길게 터치했다.
띠리리리.
신호가 울렸다.
- 류미!
반갑게 자신을 부르는 장립.
“아직 호텔이야?”
- 아니.
“호텔이 아니야? 지금 어딘데?”
류미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정보원들을 쫙 풀어놓은 상태였다.
장립이 호텔을 떠나지 않았다는 건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호텔이 아니라고 말하는 장립.
- 후후훗. 비밀.
“립!!!”
류미가 소리 높여 그의 이름을 불렀다.
띠리리릭.
그때 정보를 전달하는 비서가 밖으로 연결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입을 막고 작게 통화하는 비서.
“뭐라고! 장립이 지금 집 앞에 와 있다고!!!”
순간 놀라서 소리치는 비서.
모두의 시선이 비서에게로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장립이 왔다고?”
완진바오가 크게 놀라며 재차 물었다.
그 순간.
- 집 앞이야. 문 좀 열어줄래?
갑작스러운 장립의 출연.
“…….”
일순간 모두의 몸이 거짓말처럼 굳어버렸다.
평소에 공안들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난하이.
그런 곳에 장립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