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장. 나와 보시죠.
‘흐흐흐. 걸렸다!’
어두운 골목에서 주점 내부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남자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정보 길드가 제공한 자료는 정확했다.
거의 매일 이곳 주점을 빠지지 않고 들르는 베커 공작.
겁을 상실한 듯 호위 기사 하나 대동하지 않고 홀로 움직였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의복 차림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바꾸어 입었다.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다른 귀족들과는 뭔가 달랐다.
귀족 신분임에도 웬일인지 싸구려 맥주를 즐겼다.
안주 역시 평민들이 먹는 음식을 자연스럽게 먹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함정을 팠다.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여기는 모양이었지만 세상에 비밀은 있을 수 없었다.
남자는 오늘을 위해 값비싼 이동 마법진까지 이용했다.
실패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스윽.
남자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점을 향해 20여 명의 인간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대부분의 차림이 상인이나 그냥 이곳을 지나가는 듯한 용병 복장이다.
사삭.
손가락 두 개를 펼쳐 흔들었다.
수신호를 확인하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져 자리를 잡는 무리.
조심스럽게 품에서 무기를 빼들었다.
빠져나갈 구멍도 없이 완벽하게 주점을 포위했다.
스윽.
상황을 확인하고 남자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마법 스크롤이라 불리는 은빛 양피지.
한눈에 봐도 대단한 고서클 스크롤이었다.
고서클 스크롤일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비싸졌다.
마력석뿐만 아니라 미스릴 가루까지 이용됐다.
거기에 마법사의 심력과 마법 능력이 추가됐다.
공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어서 마법사들은 스크롤 제작을 꺼렸다.
한 번 만들고 나면 마력과 기력이 탈진돼 어지간히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런 물건을 엄청난 거금을 주고 정보 길드에서 구입한 남자.
이 일이 성공만 한다면 투자비용의 몇 배를 획득할 수 있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잘 가라. 베커 장 공작. 흐흐흐.”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력 소멸!”
마력을 불어넣으며 스크롤을 찢는 남자.
파아아아앗.
그 순간 투명한 빛의 거대한 파편이 터졌다.
순식간에 반원의 형태로 발한 빛이 주점을 뒤덮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가락 하나가 정확하게 주점을 가리켰다.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무기를 뽑아들고 주점으로 다가가는 이들.
“뭐, 뭐야!”
“으아아아아!”
“살수들이다!!!”
그들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손쓸 틈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이렇다 할 자경단도 없는 평화로운 마을의 오후.
청부 길드 소속 살수들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돼 왔던 평화가 산산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
팟!
이상한 기분이 든다 싶은 순간 아니나 다를까 사방이 알 수 없는 결계로 뒤덮여 버렸다.
위이잉.
허공 위에서 시작된 빛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에 존재하던 마력이 사라졌다.
“!!!”
당황스러웠다.
“크크크. 베커 장 공작 나으리. 이제야 눈치를 챈 겁니까?”
“마족도 별 수 없나 봅니다.”
그그극.
기다렸다는 듯 한쪽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상인들과 용병들이 한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기에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처음 들어설 때 언뜻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이곳에 오는 동안 그냥 스치고 지나갔던 그런 행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이상하게 달랐다.
“쩝.”
입맛이 절로 써졌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이 동네에서도 누군가에 의해 가동되는 정보력에 동선이 노출되고 말았다.
팰트론 왕성에 그만큼 많은 첩자들이 득실거린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어차피 모두를 다 색출할 수 없는 일이니 한편으로는 무시해 온 것도 사실이다.
스르릉.
거침없이 검을 빼드는 그들.
“누구 지시를 받았나?”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직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흐흐.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군.”
우두머리로 보이는 상인이 히죽거리며 비웃음을 날렸다.
묻는 내가 어리석기도 했다.
잡귀가 있었다면 옆에서 침을 튀겨가며 날 책망했을 터였다.
이런 상황도 감지 못했냐며 추궁했을 것이다.
“어느 청부 길드 소속이더냐?”
공작에 어울리는 말투로 물었다.
일반 기사들은 쫀심 때문에 이런 짓 안 한다.
내 동선을 파악하고 함정을 판 놈들은 청부 길드 소속이 자명했다.
“그걸 알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뒈질 놈이.”
“그렇지. 어차피 뒈질 놈들에게 묻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지.”
스윽.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릉.
검을 뽑았다.
“순순히 죽어라. 너의 마력은 봉쇄됐다.”
“확신하는가?”
대수롭지 않게 피식 웃으며 물었다.
“!!!”
눈에 띄게 당황하는 놈들.
“죽여!”
콰앙!
우당탕탕.
놈들이 탁자를 발로 차며 걷어찼다.
누가 봐도 시야를 어지럽히려는 행위.
타다다닥.
그 뒤를 바로 이어 검과 창이 날아왔다.
한두 번 해본 솜씨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까아앙!
날다시피 검을 뿌려오는 놈의 검을 단박에 후려쳤다.
“헛!”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검이 튕겨져 나가자 짧은 비명을 토하는 놈.
그대로 놈의 옆구리는 발로 걷어찼다.
퍼어엉!
폭음과 함께 가볍게 날아가는 살수의 몸뚱이.
콰드드드득.
어찌나 가볍게 날아가는지 그대로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푹! 푹푹!
동시에 달려들던 살수들의 몸통에도 쾌속하게 검을 박아 넣었다.
콰다다다당.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살수들이 널브러졌다.
모두 다 급소를 정확하게 겨냥했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곧장 시체가 됐다.
“어, 어떻게!”
“마력이 봉쇄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간단해.”
“???”
“내가 좀 세.”
“!!!”
“뭘 그렇게 놀라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내가 제국 황실수호공작 명함을 그냥 딴 거 같은가?”
“닥쳐!”
타앗!
바로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가차 없이 상인의 몸통에 검을 깊숙이 박아넣었다.
반항은 있을 수 없었다.
“컥!”
짧은 비명과 함께 눈을 부릅뜬 두 명의 살수 모두 곧 쓰러졌다.
그대로 문을 향해 몸뚱이에 박힌 검을 빼들고 밖으로 나갔다.
퍼버버벅!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나를 노린 각종 암기들이 상인 몸뚱이에 날아와 박혔다.
“!!!”
방패가 되어 준 상인의 몸뚱이.
치켜뜬 두 눈에서 상인의 생애 가장 큰 고통과 공포, 허탈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슈욱!
검을 뽑아내며 상인의 몸뚱이를 털어냈다.
바닥에 흥건하게 피를 뿌리며 저만큼 뒹굴었다.
“헛!”
“으음…….”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놈들이 신음을 흘렸다.
당혹스런 표정이 읽혔다.
“환영식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너, 너 마력을…….”
“대장이 너냐?”
검을 들어 가장 뒤에 서 있는 놈을 가리켰다.
“…….”
“판 까느라 돈 많이 썼겠군. 7서클 마력 봉쇄 스크롤까지 찢었으면 오늘 아주 개 적자군.”
마법의 실체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마탑의 장로급 마법사가 제작했을 게 분명한 스크롤.
대상의 마나와 마력을 순식간에 봉쇄하는 마법이다.
스윽.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게 무엇인지 아나?”
“!!!”
“알지? 위대한 드래곤이 제작한 황실수호반지야.”
드래곤이 제작한 극강의 마법 아이템.
“드래곤께서 제작한 반지에 강력한 마법 저항 능력이 숨겨져 있지. 그래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라고 하는 거고.”
나도 마법에 당해보고 난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마력이 봉쇄된 주변과 달리 내 몸뚱이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파스를 바른 듯한 느낌.
드래곤 제작 아이템은 장식품이 아니었다.
착용자의 마력 봉쇄 마법마저 무력화시켰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깔끔하게 보내주지.”
검을 들어 다시 한 번 살수 대장을 가리켰다.
“이이이이!”
이를 갈면서 놈이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나를 제거하겠다는 일념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놈을 죽여!!!”
스크롤 마법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포기를 모르는 살수들.
“타앗!”
“이얍!!!”
파아아앗!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이었다.
쇄애애앳.
놈들이 무기를 들고 나를 향해 불나방처럼 돌격해 왔다.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살수를 펼치기에 때와 장소가 무척 좋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정의의 기사라도 되는 듯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여간…… 멍청한 것들한테는 약이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마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으면 어서 도망을 가야 정상인데 놈들은 아직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어리석은 자들의 행진 같은 저들의 선택.
촤아아앙!
검을 들어 그대로 허공을 향해 그었다.
길게 끌 것도 없는 싸움이었다.
마력이 검을 타고 유형화되며 살수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리고.
서거거걱!
“크아아아아아악!”
“아악!”
먼저 팔다리와 몸뚱이가 잘려나갔다.
당연히 살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비를 뿌렸다.
단 몇 수만으로 명색이 살수들인 놈들이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꼴이 됐다.
“으으으으으…….”
대장 놈이 부하들의 쓰러진 주검을 보며 얼어붙은 채 신음을 흘렸다.
그 순간.
“구경 그만하시고…… 나와 보시죠.”
나의 검은 10미터쯤 떨어진 곳의 허공을 가리켰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