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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장. 남자 대 남자. (862/1,284)

868장. 남자 대 남자.

‘시 주석!!!’

조평 상장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거실에 한가운데 마련된 대형 식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관 입구.

트레이드마크인 정겨운 미소가 잘 어울리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덩치 큰 판다곰을 보는 듯한 인상의 주인공.

중화인민공화국을 다스리고 있는 현 황제가 나타났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조평은 한때 잘나가는 중국 군사 파벌 가문 자제였다.

할아버지가 지역 군벌이었다.

대대로 권력을 위임받는 중국 군벌.

승승장구하여 중앙군사위 부주석까지 올랐지만 시진핑 주석 앞에서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었다.

주변의 몇몇 동료들이 부패 혐의로 내사를 받은 직후 사라졌다.

군벌의 힘이 과거와 다르게 많이 약해졌다.

그 강도는 점점 세져 더 목을 죄어왔다.

멍청한 후진타오가 상해방에 복수하기 위해 한꺼번에 권력을 넘겨 버린 탓이다.

여러 차례 군벌들과 정치 세력들이 시진핑 암살을 위한 기회를 노렸다.

그때마다 실패했다.

암살 시도를 모두 무사히 피한 시진핑은 더욱 무자비해졌다.

절대 뿌리까지는 제거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중국 군부 파벌이 정리 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뿌리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쉽지 않았다.

상해방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했던 조평의 입장은 더욱 그랬다.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베이다이허.

마음을 다잡고 참석했다.

장택민 주석에게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시진핑 쪽에 줄을 대기 위해서였다.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빼앗기게 되더라도 명예롭게 물러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조평은 이미 태자당에 찍혀 있는 상태.

죽을 날을 받아놓은 시한부와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이 시점에 시진핑이 눈앞에 나타났다.

‘왜?’

가장 먼저 스치는 의문.

장택민 주석과 원자바오를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베이다이허의 마지막 날에나 가능한 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국 권력을 놓고 벌이는 피 튀기는 진검 승부가 예상됐다.

지금부터 부딪친다면 그 시기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 시점에 시진핑이 나타났다면…….

조평의 시선은 원자바오의 손으로 향했다.

‘단약!’

오늘 점심 무렵, 조평도 아내를 통해 밖에 돌고 있는 소문을 들었다.

장택민 주석의 모든 행보를 가능하도록 하는 단약.

그 귀한 물건을 정립이라는 사내가 쥐고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장택민을 찾아갔던 조평.

마침 시간이 맞아 운 좋게 이 자리까지 동행하게 됐다.

그리고 확인하게 된 단약의 실체.

조평도 단약이 필요했다.

진정 위기에서 자신을 구명해 줄 선물로 하늘이 주신 기회가 확실했다.

이 자리에서 단약을 몇 개 얻을 수만 있다면 목숨도 연명하고 가문도 지킬 수 있었다.

중국에서 건네지는 뇌물은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을 제공할수록 점수를 후하게 받았다.

어떻게 하면 장립에게서 단약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돌연 시진핑이 나타났다.

그것도 홍콩의 리장창과 동행한 채로.

“…….”

장내에 약속이나 한 듯 적막이 흘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물의 등장에 다들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주석님. 총리님. 저 시진핑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만면에 짓는 판다곰.

“어, 어서 오게! 시 주석!”

장택민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상황을 인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시 주석께서 어인 일입니까!”

원자바오도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며 활짝 웃었다.

“두 대인께서 함께 식사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막 도착해 인사차 들렀습니다.”

손에 들려있는 종이 백을 들어 올려 내보이는 시 주석.

직접 술을 들고 찾아왔다.

옛 권력자들에게 인사차 찾아왔다는 명분이 좋았다.

“어서 들어오게. 양광 뭐 하나. 자리를 만들어야지.”

“넵!”

양광은 장택민의 말이 떨어지자 퍼뜩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았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주석님.”

고개를 숙이고 손님을 접대하는 별장 주인 양광.

“고맙네.”

시진핑이 안으로 들어섰다.

“양 대협. 나도 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리 대협.”

홍콩에서 세력을 잡고 있는 리장창과 양광의 만남.

서로 파벌이 달랐기에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두 사람만의 자리가 아닌 만큼 분위기가 달랐다.

웃는 얼굴로 시진핑과 함께 들어서는 리장창을 양광은 환대했다.

과거 시대라면 이는 황제가 평민 집에 직접 발걸음을 한 격.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모두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양광은 상석으로 시진핑을 안내했다.

상무위원 왕정이 자리를 옮겼다.

국가 주석 앞에서 상무위원은 힘없는 일개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요리가 훌륭합니다.”

차려진 요리를 보고 시진핑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 내 아끼는 청년 장립이 만들었네.”

장택민이 장립을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팟.

짧았지만 눈에 이채를 띤 시진핑.

“자네가 장립인가?”

장립을 향해 아는 체를 했다.

“주석님을 뵙습니다.”

장립이 깔끔하게 인사했다.

“반갑네.”

먼저 악수를 청하는 시진핑.

“!!!”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크게 놀랐다.

미국 대통령이나 러시아 차르, 인도 총리 정도 되어야 시진핑이 살갑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시진핑이 처음 보는 장립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영광입니다.”

장립은 차분한 자세로 들뜬 기색 없이 악수를 했다.

다른 이들 같았다면 눈에 띄게 바들바들 떨었을 테지만 그는 바위처럼 굳건했다.

“…….”

장립의 의연한 배포에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 주석과 원자바오도 시진핑 출현에 당황했는데 유일하게 장립의 얼굴만 어떤 변화도 비치지 않았다.

꾸욱.

손을 마주잡고 악수를 나누는 두 남자.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렬한 오러가 두 사람 사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

- 강력한 중국 조상신의 수호를 받는 자를 만났습니다.

- 악과 선을 걷는 자입니다.

- 위험! 위험!

연속해서 울리는 알림음.

두 차례 ‘위험’ 경고는 처음 들었다.

시진핑이 중국 조상신의 수호를 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그것도 가장 센 강도로 받고 있는 자일 것이다.

그러나 ‘악과 선을 걷는 자’라는 말에 고민이 생겼다.

말 그대로 선인도 악인도 아닌 자…….

이익이 따른다면 선도 악도 언제든 저지를 수 있는 ‘중간인’이라는 말이 아닌가.

꾸우우욱.

손에 악력이 들어왔다.

일반인치고 제법이다.

내공을 수련한 자는 아니다.

대신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로 보아 경호원들 상당수는 내공을 수련한 고수들이다.

파바밧.

서로 눈빛이 마주쳤다.

넉넉한 웃음 뒤에 언제든 상대의 등에 꽂을 수 있는 비수를 숨기고 있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다.

태자당 출신으로 바닥을 기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오늘에 이른 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 인간들과 뼛속부터 달랐다.

단단한 깡이 느껴졌다.

밑바닥의 처절함을 경험한 자이기에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숙성된 진정한 정치 깡패.

그가 날 유심히 쳐다봤다.

남자 대 남자.

씨익.

서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절로 베어 물었다.

그토록 대면해 보고 싶었던 중국몽의 중요 하수인.

시진핑은 그 주인공이 아니었다.

두려운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최종 보스라는 감이 오지 않았다.

이 남자 뒤에 또 누군가 있다는 뜻.

마음에 한 자락 여유가 생겼다.

“좋은 눈을 가졌군.”

나도 속마음 정도는 쉽게 감출 줄 아는 사내다.

당당하되 결코 도발하지 않았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자네 같은 젊은 친구가 있음이 중국의 홍복일세.”

아니요. 크게 착각하셨습니다!

“주석님 존재는 중화인민의 대복입니다.”

장택민 주석이 뒤에 있지만 먼저 시진핑 얼굴에 금칠을 해줬다.

돈도 안 드는 투자.

대부분 인사들은 장택민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 말 대놓고 못 꺼낸다.

하지만 장택민은 나에게 약점이 잡힌 상황.

“립. 장 주석님이 계시네. 감당할 수 없네.”

나름 잔머리를 쓰는 시진핑.

겸손한 척하며 장택민을 돌려 깠다.

누가 보면 장 주석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분위기와 말투로 보아 결코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다.

짧게 얼굴이 굳었다 풀리는 장택민.

“하하. 시 주석. 저문 태양이 뭐가 대단한가. 주석이야말로 중화인민의 홍복일세.”

진정한 처세술은 저런 거다.

한때 황제이자 상황이었던 장택민이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을 낮췄다.

“맞는 말입니다. 시 주석이야말로 이 시대가 낳은 영웅이죠. 우리 같은 뒷방 늙은이들이야 연금이나 축내는 인민의 짐이 아니겠습니까.”

와우! 원자바오는 한술 더 떴다.

꼭 배워둬야 할 덕목이다.

지금도 권력이 짱짱한 두 노인네가 서로를 낮추느라 안달이다.

“얼굴 들기가 부끄럽습니다.”

뻔뻔한 시진핑은 그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권력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만만한 모습.

누구 하나 부정의 눈빛을 내비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동화로 본 ‘숲속 동물들 회의’의 주인공인 호랑이 같다.

겉모습은 판다 곰인데 속은 능구렁이 수십 마리에 교활한 너구리, 거기에 호랑이의 강맹함까지 다 들어 있는 듯했다.

그 실체를 모르고 장택민이 시진핑을 키웠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장택민.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힘을 빼앗긴 자는 숨을 죽이고 다음 때를 노려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노련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립. 또 보는군.”

“오셨습니까.”

리장창이 반가운 눈빛으로 아는 체를 했다.

홍콩에서 자기를 죽이려 했던 장태산이 나라는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살갑게 웃었다.

인생 살다 보면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아이러니의 현장.

“요리 솜씨가 장난이 아니군. 시간 나면 제대로 초대해 주게.”

“알겠습니다.”

긴장감 속에서도 대화는 정답게 이어졌다.

“립. 뭐 하나. 시 주석께 한 잔 올리게.”

장택민이 눈치가 빨랐다.

시진핑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술을 올리겠습니다.”

마오타이주를 들었다.

“고맙네.”

시진핑이 잔을 잡았다.

또로로록.

빈 잔에 채워지는 술.

실내는 고요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자리가 분명했다.

장택민과 원자바오가 좌우에 배석해 있지만 시진핑이 시비를 걸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대동하고 온 경호원들 수만 해도 장난 아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황제의 경호원들 기세가 사방에서 느껴졌다.

웬만해서는 안에 있는 이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모두가 시진핑의 다음 말과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눈치다.

“모두 잔이 채워졌군요. 장 주석님, 그리고 총리님. 부족하지만 제가 건배사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허락을 구하는 말이었지만 통보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말투.

“물론이오. 주석의 말 한마디가 보석 아니겠소.”

장택민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선창하시지요.”

원자바오도 해맑게 웃었다.

정치 능구렁이들의 태도 하나하나를 모두 눈에 담았다.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정치 교육 현장.

“중화인민을 위하여!!!”

시진핑이 잔을 들며 외쳤다.

짧고 간단한 건배사.

“위하여!”

모두 한목소리로 따라 외쳤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잔을 비워냈다.

분위기 참 좋다.

“립이라 불러도 되나?”

“물론입니다. 주석님.”

잔을 비운 시진핑이 먼저 입을 뗐다.

그리고.

“립! 돈 좀 빌려주게.”

“???”

“!!!”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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