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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장. 장태산! (863/1,284)

869장. 장태산!

돈?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모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굳었다.

중국 정부 금고에 3조 달러가 넘게 들어 있었다.

금융이 개방되어 있지 않아 국가가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집행이 가능한 자금이었다.

국가주석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도처에서 쓸어 담을 수 있는 뇌물도 장난 아니다.

퇴임 시까지 앞으로 최소 수백억 달러 정도는 족히 챙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주석직이다.

그런 자리의 주인인 시진핑 주석이 젊은 화교에 불과한 장립에게 돈을 빌려달라 청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단약 냄새를 맡고 온 게 아니었어?’

장택민의 눈이 미심쩍은 듯 작아졌다.

멍청한 왕정 때문에 소문이 퍼진 거라고 확신했다.

눈앞에서 원자바오에게 단약을 빼앗겼다.

그 마당에 시진핑까지 합세했다.

단약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자가 한 사람 늘었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장택민을 힘으로 누를 만한 자는 태자당에서는 아직 시진핑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사적인 자리에 시진핑이 방문한 일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돈이라……. 종잡을 수 없는 놈 같으니.’

원자바오는 실눈을 뜨고 안경 너머로 시진핑을 응시했다.

덩치는 서커스단 곰처럼 생긴 놈이 행동하는 것은 호랑이처럼 굴었다.

목표한 먹이를 정하면 단숨에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었다.

태자당이면서도 상해방과 공청단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던 시진핑.

장택민과 자신의 눈을 너무 믿었던 결과로 권력을 넘겼다.

짧은 판단에 다루기 쉬운 애완견 정도로 생각했던 과오가 불러온 결과였다.

선택의 결과는 패착이었다.

푸근한 웃음 뒤에 강한 살기를 품고 살아온 자였다.

아직까지 공청단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았지만 바짝 경계했다.

보기와 달리 손속이 무자비했다.

상해방 거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조직 천지회가 그의 뒤를 바쳤다.

경계하고 있지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더 건강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예민했다.

시진핑의 약점을 잡고 있는 원자바오 자신이 쓰러지면 공청단은 하루아침에 줄이 끊어진 연 신세가 될 터였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장립 저자는 뭐야?’

원자바오는 장립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시진핑의 말도 안 되는 요청에 가벼운 말투로 응대하는 장립.

자칫 불경죄에 해당할 수 있는 태도였다.

시진핑 곁에 경호원들이 서 있다면 총구를 겨누었을 정도다.

그러나 장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진핑을 응시했다.

단약을 손에 쥔 채 원자바오는 고민에 빠졌다.

반드시 자신에게 필요한 단약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한 해 한 해 달라졌다.

이 물건 때문에 과거 장택민의 부탁을 몇 번 들어준 적도 있다.

이상하지만 장립의 모습에서 원자바오는 부드러운 갈대를 볼 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척하지만 결국 폭풍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을 갈대 같은 인간형.

저런 자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것을 원자바오는 잘 알았다.

바로 원자바오 자신과 같은 자였다.

‘도대체 장립이 뭐라고…….’

류미는 시진핑 주석의 말에 얼이 나갈 뻔했다.

외할아버지 원자바오가 대단한 인물이긴 해도 국가 주석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사실 오늘 이 자리는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한 것 자체로 대단한 이슈였다.

지금쯤이면 웬만한 소식통들을 통해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이곳 별장을 향해 수많은 이들의 시선과 귀가 쏠려 있을 게 자명하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합류한 것이다.

계획돼 있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나눠진 대화.

시진핑의 방문 목적은 장택민이나 외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장립을 만나기 위한 술수가 확실했다.

류미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대면 자체만으로도 다들 두려워하는 대상 앞에서 장립은 여유만만했다.

이건 단순하게 배포 문제가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자신감이 강하지 않다면 불가능한 대면이다.

‘장립…… 넌.’

류미는 장립을 오판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류미 자신의 수준으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보통의 사내가 아니었다.

장택민 주석과 외할아버지 원자바오를 손 안에 넣고 쥐락펴락했다.

거기에 더해 상대하고 있는 시진핑까지.

류미는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

‘얼마?’

시진핑은 장립의 반응에 흥미를 느꼈다.

툭 던졌던 돈 얘기는 시험에 불과했다.

이곳에 오는 도중에 들은 장립에 대한 정보.

장택민이 보물로 생각하는 단약을 그가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욕심이 나긴 했지만 아직 단약에 의지할 정도의 나이가 아니다.

대신 확인하고 싶었다.

장택민이 밀고 있는 베이다이허에 갑자기 나타난 젊은 투자자.

리장창까지 극찬하며 가까이 둬야 할 대상이라고 귀띔했다.

장택민에 이어 원자바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현장으로 왔다.

명분이 좋았다.

정치 선배들에게 안부 인사를 드리는 건 베이다이허의 오랜 전통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과시도 하고 싶었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재주 부리던 곰. 시진핑이 아님을 확인시키고 싶은 마음도 컸다.

분위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특히 장립은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민첩했다.

동시에 당당한 모습도 보였다.

이악산 상무위원의 아들 이광을 납작하게 짓밟아 놓았다는 소식은 더 흥미로웠다.

수족이자 동지인 이악산은 시진핑의 칼이나 진배없었다.

그 이악산을 화나게 만들어 놓은 장립.

일대일로에 자본을 투자하고 싶다는 의견도 냈다.

시진핑과 태자당, 천지회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중국몽의 핵심 전략을 간파한 장립.

그 정도라면 테스트를 한 번 해볼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 테스트는 일단 합격.

돈을 빌려달라는 말에 배짱 좋게 금액을 물어오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줄 돈은 있고?”

가볍게 빙긋 웃으며 되묻는 시진핑.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제가 아직 젊어 가진 돈은 얼마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가 보는 것처럼 욕심이 많네.”

갑자기 돈을 요구하는 시진핑과 자연스럽게 응대하고 있는 장립의 대화는 지켜보는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화 내용이었다.

전직 국가 주석과 총리가 함께 하고 있는 자리.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현 국가 주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결코 가볍게 취급할 수가 없었다.

“제 친구가 돈 많은 친구를 압니다.”

“친구? 누구?”

“로버트 라이언이라고…… 아시나 모르겠습니다.”

“아! 월가의 그 미국인……. 그런데 그 친구가 아는 친구는 또 누군가?”

“말해도 잘 모르실 겁니다.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이라……. 누구?”

시진핑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장난기가 섞인 듯한 눈빛으로 미소를 짓는 장립.

“장태산이라고 하더군요.”

“헛!”

“자, 장태산!!!”

***

지금 나랑 장난 까?

시진핑이 던진 말에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세상에서 미국보다 더 달러가 많은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연방은행에서 발권을 하고 있지만 막상 미국 정부는 가난했다.

항상 마이너스 재정으로 버티는 양치기 미국 정부와 달리 중국은 달러를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 놨다.

권력의 정점을 찍어가는 시진핑이 당장 마음만 먹는다면 그 돈 빼먹는 거 일도 아니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철도 및 사회 간접자본 투자.

그 뒤로 빼돌려지는 자금은 상상 불가할 정도다.

그럼에도 돈줄은 마르지 않았다.

인민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벌어들인 달러를 공산당이 쏙쏙 다 빼먹었다.

지적 재산권을 강탈해 짭짤하게 재미도 봤다.

특허는 개무시 하고 돈만 벌어들이면 장땡인 민족이 중국이다.

돈이면 죽은 귀신에게 맷돌도 돌리게 만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인 중국.

그런 중국의 현재 대장이 바로 시진핑이다.

그가 나에게 돈을 빌려 달란다.

수작이다.

나를 떠보겠다는 심사로 던진 파격적 언행.

다들 표정이 볼 만하다.

시진핑의 시험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나에게는 시진핑의 의도가 다 보였다.

리장창이 동행하면서 나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건 자명한 일.

천지회 측의 정보를 담당하는 리장창이 단약에 대한 얘기를 못 들었을 리 없다.

날 시기하는 왕정이 소문의 근원지다.

장택민 주석이 왕정을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왕정은 정치판에서 사라질 게 분명하다.

바람 좀 더 넣어볼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시진핑과의 밀당 대화가 재밌다.

진도를 좀 더 빼볼 의향으로 내가 나를 팔았다.

장태산 이름 석 자가 내 입에서 나오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류미와 양소려만 처음 듣는 이름인 듯 순진하게 눈을 깜박였다.

이 정도로 장태산은 어느새 유명인사가 됐다.

“장태산을 아나?”

리장창이 제일 먼저 물으며 끼어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장태산과 인연이 많은 인물.

이름만으로도 똥줄이 타는 그의 표정이 재밌다.

“이름만 들어봤습니다.”

“이름만?”

“조만간 로버트 라이언이 만남을 주선한다고 했습니다.”

“으음…….”

리장창이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다들 표정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들끼리 나의 뒷담화를 많이 한 듯했다.

“장태산에 대해 아십니까?”

선수를 쳤다.

“그자는…… 사기꾼이야!”

내가?

리장창 이 사람 못쓰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 대 패고 싶지만 남자 대 남자로 계약을 맺은 상태.

“돈이 많다고 하던데…… 거짓말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의 누구도 내가 장태산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투명인간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사기질로 몇 십억 달러는 쥐고 있겠지. 그러나 실체를 까보면 로버트 라이언의 이름을 팔아서 기생하는 놈에 불과해.”

그럼, 내가 기생충?

그럴싸한 눈빛으로 리장창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렇군요. 아주 나쁜 놈이었군요.”

연신 고개도 끄덕여줬다.

“만날 생각인가?”

“직접 확인해 봐야죠. 만약 나쁜 놈이라면 뺨이라도 갈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거짓말 하는 인간이 제일 싫습니다.”

리장창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면서 나의 신념을 밝혔다.

파르르.

잠깐 몸을 바르르 떠는 리장창.

찔리지?

“그래서 지금 돈이 없다는 건가?”

시진핑이 타이밍 좋게 다시 개입했다.

사건을 키우고 싶지 않는 느낌이 팍 들었다.

“제 통장 잔고가 궁금하신 듯합니다.”

“자네가 참가하고 싶다는 일대일로에 투자하려면 돈 주머니가 꽤 커야 할 게 아닌가?”

“말씀해 주십시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은근한 신경전이 제대로 벌어졌다.

중국 주석을 상대로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는 이 맛.

개꿀.

“많을수록 좋지.”

“저도 많을수록 좋습니다.”

“뭐가 말인가?”

“아시지 않습니까?”

“뭘?”

“돈을 대신할 만한 지분.”

의도치 않게 큰 추수의 기회가 왔다.

모두 다 흥미진진하게 나와 시진핑을 지켜봤다.

“일대일로는 중화민족의 영광을 위해 투자하는 애국 사업이야.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

다소 차가운 말투로 바뀐 시진핑의 대답.

“영광도 밥심이죠.”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내가 자네를 잘못 판단했나?”

시진핑이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안 쫀다!

어디서 애국팔이로 남의 돈을 거저먹으려고!

“돌아가신 할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립의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를 덤으로 팔았다.

지켜보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무척 궁금한 표정들이다.

“거창한 말보다 동전 한 개가 더 진실하다고 말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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