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7장. 인싸(3).
“원자바오가 양광의 별장에 갔다고?”
“그렇습니다. 단주님.”
“왜?”
리장창은 베이다이허 기간 중에 무척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하룻밤만 지나도, 곳곳에서 쏟아지는 보고서가 수북하게 쌓였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가볍게 취급할 내용들이 하나도 없었다.
사소한 정보 하나가 의외로 상대를 옥죌 수 있는 강한 무기가 됐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들려온 중요한 정보.
“장립이 초대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장립이?”
“류평과 그의 아내 온수려, 딸 류미도 동행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전부 다?”
“뿐만 아니라…… 장택민 주석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장립을 만났다고 합니다. 왕정 상무위원을 비롯해 조평 상장도 함께였습니다.”
“으음.”
제갈유량의 보고에 리장창이 깊은 신음을 흘렸다.
‘그 늙은 너구리가 왜?’
원자바오는 행동이 신중한 자였다.
겉으로는 자애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단칼에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자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원자바오가 이유도 없이 장립을 만났을 까닭이 없었다.
‘장택민과 화해하기 위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상이었다.
아직 시진핑과 태자당의 권력은 완벽하게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이런 때 공청단의 원자바오가 상해방과 동맹을 맺는다면 시진핑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리장창.
“단약 때문입니다.”
제갈유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약?”
“장립이 장택민 주석이 애용하는 단약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함께 들어왔습니다.”
“!!!”
리장창의 눈동자가 심하게 커졌다.
소문만으로 들어왔던 장택민이 복용한다는 단약.
그 효능이 대단해 한 번 복용한 자는 다시 찾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귀한 단약을 장립이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지 못한 정보.
‘진짜란 말인가?’
원자바오가 왜 직접 움직였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전해진 정보를 믿기 힘들었지만 원자바오가 움직였을 정도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도대체 장립! 넌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야?’
귀신같이 각자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든 장립.
권력자들 대부분이 이미 노회한 고령자들이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더 이상 돈도 지위도 아닌 건강.
장립이 갖고 있다는 단약이 그래서 무서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거 참…….”
리장창도 난감했다.
원자바오와 장택민이 만났다.
어떤 이유를 찾더라도 그 자리에 함께 합류하기에는 리장창의 레벨로는 어림없다.
안면 몰수하고 찾아갔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게 자명했다.
최소 같은 수준급의 인사가 움직여야 격이 맞았다.
“시 주석님은?”
“잠시 후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해.”
“네?”
“뭘 그렇게 놀라. 주석님께 의중을 물어봐야지.”
리장창의 결단은 빨랐다.
“알겠습니다.”
제갈유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 나에게 할 말 없나?”
리장창이 고개 숙인 제갈유량을 쳐다보며 물었다.
“시간을…… 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냉정한 태도로 한결같던 제갈유량이 당황했다.
“자네를 믿겠네.”
리장창은 더 묻지 않고 뼈가 담긴 말을 던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제갈유량.
얼굴빛이 금세 굳어버렸다.
“지금쯤이면 소문이 쫙 퍼졌겠군.”
베이다이허의 빠른 정보 공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리장창.
‘장립!’
리장창은 당혹스러웠다.
일대일로에 참가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던 해외 화교.
녀석의 그림자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폭을 넓히고 있었다.
리장창이 감당하기에 벅찰 만큼의 속도로 말이다.
***
‘아니 왜?’
양광이 처음 품었던 의문이 그것이었다.
분명 자신은 초대한 적이 없는 거인이다.
양광 수준에는 곁에 다가가기도 힘든 상대였다.
그런 공청단의 거두가 직접 걸음 해 모습을 보였다.
‘장립이?’
당황스럽고 떨리는 마음에도 장립을 지켜보는 양광.
겁도 없이 환히 웃는 장립의 모습에 믿을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양광의 등은 축축하게 젖었다.
베이다이허의 눈들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이곳에서 한순간에 중심이 되어버렸다.
“아니…… 총리가 어인 일로…….”
장택민은 현관 앞에 서 있는 원자바오를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베이다이허에 와서 보게 될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왜 이렇게 놀라십니까. 주석님께서는 제가 반갑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하.”
원자바오가 넉살 좋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소린가! 자네가 참석하면 나야 언제나 고맙지. 어서 들어오게.”
그 한마디에 장택민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올해는 자주 봐서 좋군. 하하하.”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장택민이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시선은 좌중을 빠르게 훑었다.
원자바오를 초청한 자를 찾았다.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장립이 앞으로 나섰다.
‘저 녀석이?’
장택민은 몹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립에 대한 주가가 치솟고 있지만 원자바오까지 초청할 정도는 아니었다.
베이다이허의 본회의 전에는 장택민의 청도 거절했던 원자바오였다.
태자당과 상해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즐기고 있는 정치 고수.
‘설마!’
장택민은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장립이 갖고 있다는 단약에 관련한 정보가 샌 게 분명했다.
‘누가?’
장택민은 신중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장내를 훑었다.
양광과 양소려는 아니다.
장립에 대해 항시 감시중에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장택민의 시선이 왕정에게 멈추자 그가 움찔했다.
정치판에서 지금까지 온전하게 살아남은 장택민의 눈빛은 매서웠다.
‘저 바보 같은 놈!’
상해방 중요 인사의 동선을 금방 파악했다.
어제 본처가 있던 집으로 향하지 않고 옆으로 샜던 왕정.
술을 과하게 마신 그가 첩의 별장에 들렀다.
분명 그곳에서 정보가 샜음이 확실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석님.
“하하. 류평. 사업이 번창한다는 소리를 들었네. 중국 경제 부흥이 자네 손에 달려 있어.”
“과찬이십니다.”
류평도 안으로 들어왔다.
“주석님을 뵙습니다.”
“오! 공주님도 오셨군.”
온수려도 조신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도 왔어요. 할아버지.”
“하하. 류미~ 네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한때는 가족처럼 어울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셨던 사이였다.
장택민이 그런 원자바오의 가족을 환영했다.
“다들 이제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준비한 요리들이 식기 시작했습니다.”
“립! 불러줘서 고맙네.”
“호호. 립, 오늘 저녁 기대하고 있어요.”
류평과 온수려가 립을 보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부족한 솜씨지만 최선을 다해 대접하겠습니다.”
이곳이 마치 자기 집인 듯 장립은 행동했다.
그의 모든 행동과 모습이 모두 자연스러웠다.
장립에게서는 어색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양광도 단약을 받은 후 더욱 장립의 수족처럼 굴었다.
“…….”
그 와중에도 여전히 찬밥이 된 왕정의 얼굴만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상무위원인 자신을 제치고 먼저 인사를 받는 장립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너를…… 기필코 파멸시켜 버리겠어!’
순간순간 악독한 마음을 다잡는 왕정.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로 삿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그를 누군가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
“오! 이것도 맛있군! 소동파가 다시 와도 이 맛은 못 낼 것 같아. 그렇지 않습니까. 주석님?”
“대단하군. 상해의 천일루에서도 이런 맛을 보기가 힘들어. 윤기부터 시작해 향과 식감까지 완벽해.”
“비곗살이 자칫 물러지기 쉬운데 쫄깃함이 살아 있습니다. 살코기도 촉촉하니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한잔하지.”
“오늘 제대로 날을 잡았습니다. 하하하하.”
원자바오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커다란 손님용 식탁에 각종 요리들이 즐비하게 세팅됐다.
류미와 양소려가 나를 도와 미리 차린 요리를 그때그때 배달했다.
“전속 숙수로 초빙하고 싶어지는 솜씨에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이건…… 평가가 불가능하네요.”
류평과 온수려도 음식에 대만족인 듯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요리 레벨이 대폭 상승했다.
미식가 못지않은 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술잔이 멈출 줄 모르고 거침없이 돌았다.
벌써 10여 병의 술이 비워졌다.
안주가 좋으니 분위기도 한층 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누구도 정치 얘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늘 모임은 다들 예상치 못한 자리인 만큼 식사와 술을 나누는 정도로 생각했다.
장택민과 원자바오는 과거 친분이 두터웠던 당시처럼 술잔을 나눴다. 각자의 마음은 감춘 채로.
“립. 수고했네. 한 잔 받게나.”
“감사합니다.”
주방에서 나와 자리에 합석했다.
거대한 탁자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즐겼다.
조평 상장도 쉽게 끼지 못하는 어려운 자리였다.
왕정과 함께 한쪽에서 나란히 앉아 대인들의 눈치를 봤다.
명실상부한 대륙의 실세들 간의 회동.
흐뭇했다.
인싸가 주최하는 베이다이허 샐럽 파티.
모두의 목적은 같았다.
집에 보관 중이라고 말한 단약으로 인해 흔쾌히 만들어진 회동이었다.
그러니 모두들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로록.
지금 잔을 채우고 있는 원자바오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자애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훤히 보였다.
모르는 척하고 순박하게 웃었다.
단약이 없었다면 잘나가는 원자바오가 나를 만나러 올 일도 없었다.
“총리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잔을 들고 쭉 들이켰다.
“고맙네.”
흐뭇한 표정을 짓는 원자바오.
이런 때일수록 확인 사실이 필요했다.
스윽.
품에서 단약 한 알이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를 꺼냈다.
“총리님께 바치는 제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입니다.”
“이게 뭔가?”
알면서 시치미를 떼며 묻는 저 약은 수법.
“이 단약은 피를 깨끗하게 만들고 피부재생을 촉진시켜 주는 황제재생단이라고 합니다. 화타께서 완성한 약방문으로 제조했습니다.”
“황제재생단!”
원자바오의 입이 저절로 찢어지려 했다.
그 이름도 거창한 황제재생단!
일단 ‘황제’라는 말이 들어가면 이곳 중국에서는 무조건 먹혔다.
“!!!”
다른 이들의 표정도 마찬가지.
어제 뿌렸던 영생선단과 다른 이름을 가진 단약의 등장에 내심 놀라는 눈치들이다.
파바밧.
누구보다 장택민 주석의 눈동자에 희열이 스쳤다.
나에게 단약이 더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된 순간.
“열어보십시오.”
물건은 봐야 신뢰가 쌓이는 법.
딸깍.
원자바오가 주저하지 않고 상자를 개봉했다.
그 순간 삽시간에 쫙 퍼지는 상큼하고 시원한 단약의 향.
누가 맡아 봐도 약성이 제대로 된 물건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영생선단과 달리 특효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그건…… 집에서 복용하시면 알게 되실 것이옵니다.”
비상용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 대충 아공간에 구겨 넣어 두었던 반쯤 완성하다 만 불량품이다.
영생선단과 달리 다른 쪽으로 특효가 좋았다.
차마 이 자리에서 입에 담기에 뭐한 남자에게 좋은 그것이다.
원자바오의 입이 눈에 띌 만큼 길게 쭉 찢어졌다.
“이런 귀한 것을…….”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게 되자 원자바오는 더할 나위 없이 표정이 부드럽고 편해졌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오고 가는 게 있어야 세상 사는 일이 평화로운 법.
내가 뿌린 미끼에 다들 만족했다.
이제는 슬슬 본격적인 딜을 시작할 때.
“귀한 걸 받았으니 내가 장립 자네를 돕고 싶네. 장 주석이 계시지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띵동.
기대하던 말이 막 나오려는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벨소리.
“???”
모두의 시선에 의문이 실렸다.
늦은 밤.
밖에 있는 경호원들을 건너뛰고 울린 벨 소리.
그들을 침묵시킬 만한 거물의 등장이라는 의미였다.
그르륵.
집주인 양광이 서둘러 현관으로 나갔다.
덜컹.
그리고…….
회귀의 전설 2부
“원자바오가 양광의 별장에 갔다고?”
“그렇습니다. 단주님.”
“왜?”
리장창은 베이다이허 기간 중에 무척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하룻밤만 지나도, 곳곳에서 쏟아지는 보고서가 수북하게 쌓였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가볍게 취급할 내용들이 하나도 없었다.
사소한 정보 하나가 의외로 상대를 옥죌 수 있는 강한 무기가 됐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들려온 중요한 정보.
“장립이 초대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장립이?”
“류평과 그의 아내 온수려, 딸 류미도 동행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전부 다?”
“뿐만 아니라…… 장택민 주석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장립을 만났다고 합니다. 왕정 상무위원을 비롯해 조평 상장도 함께였습니다.”
“으음.”
제갈유량의 보고에 리장창이 깊은 신음을 흘렸다.
‘그 늙은 너구리가 왜?’
원자바오는 행동이 신중한 자였다.
겉으로는 자애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단칼에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자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원자바오가 이유도 없이 장립을 만났을 까닭이 없었다.
‘장택민과 화해하기 위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상이었다.
아직 시진핑과 태자당의 권력은 완벽하게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이런 때 공청단의 원자바오가 상해방과 동맹을 맺는다면 시진핑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리장창.
“단약 때문입니다.”
제갈유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약?”
“장립이 장택민 주석이 애용하는 단약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함께 들어왔습니다.”
“!!!”
리장창의 눈동자가 심하게 커졌다.
소문만으로 들어왔던 장택민이 복용한다는 단약.
그 효능이 대단해 한 번 복용한 자는 다시 찾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귀한 단약을 장립이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지 못한 정보.
‘진짜란 말인가?’
원자바오가 왜 직접 움직였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전해진 정보를 믿기 힘들었지만 원자바오가 움직였을 정도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도대체 장립! 넌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야?’
귀신같이 각자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든 장립.
권력자들 대부분이 이미 노회한 고령자들이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더 이상 돈도 지위도 아닌 건강.
장립이 갖고 있다는 단약이 그래서 무서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거 참…….”
리장창도 난감했다.
원자바오와 장택민이 만났다.
어떤 이유를 찾더라도 그 자리에 함께 합류하기에는 리장창의 레벨로는 어림없다.
안면 몰수하고 찾아갔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게 자명했다.
최소 같은 수준급의 인사가 움직여야 격이 맞았다.
“시 주석님은?”
“잠시 후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해.”
“네?”
“뭘 그렇게 놀라. 주석님께 의중을 물어봐야지.”
리장창의 결단은 빨랐다.
“알겠습니다.”
제갈유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 나에게 할 말 없나?”
리장창이 고개 숙인 제갈유량을 쳐다보며 물었다.
“시간을…… 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냉정한 태도로 한결같던 제갈유량이 당황했다.
“자네를 믿겠네.”
리장창은 더 묻지 않고 뼈가 담긴 말을 던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제갈유량.
얼굴빛이 금세 굳어버렸다.
“지금쯤이면 소문이 쫙 퍼졌겠군.”
베이다이허의 빠른 정보 공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리장창.
‘장립!’
리장창은 당혹스러웠다.
일대일로에 참가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던 해외 화교.
녀석의 그림자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폭을 넓히고 있었다.
리장창이 감당하기에 벅찰 만큼의 속도로 말이다.
***
‘아니 왜?’
양광이 처음 품었던 의문이 그것이었다.
분명 자신은 초대한 적이 없는 거인이다.
양광 수준에는 곁에 다가가기도 힘든 상대였다.
그런 공청단의 거두가 직접 걸음 해 모습을 보였다.
‘장립이?’
당황스럽고 떨리는 마음에도 장립을 지켜보는 양광.
겁도 없이 환히 웃는 장립의 모습에 믿을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양광의 등은 축축하게 젖었다.
베이다이허의 눈들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이곳에서 한순간에 중심이 되어버렸다.
“아니…… 총리가 어인 일로…….”
장택민은 현관 앞에 서 있는 원자바오를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베이다이허에 와서 보게 될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왜 이렇게 놀라십니까. 주석님께서는 제가 반갑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하.”
원자바오가 넉살 좋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소린가! 자네가 참석하면 나야 언제나 고맙지. 어서 들어오게.”
그 한마디에 장택민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올해는 자주 봐서 좋군. 하하하.”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장택민이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시선은 좌중을 빠르게 훑었다.
원자바오를 초청한 자를 찾았다.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장립이 앞으로 나섰다.
‘저 녀석이?’
장택민은 몹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립에 대한 주가가 치솟고 있지만 원자바오까지 초청할 정도는 아니었다.
베이다이허의 본회의 전에는 장택민의 청도 거절했던 원자바오였다.
태자당과 상해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즐기고 있는 정치 고수.
‘설마!’
장택민은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장립이 갖고 있다는 단약에 관련한 정보가 샌 게 분명했다.
‘누가?’
장택민은 신중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장내를 훑었다.
양광과 양소려는 아니다.
장립에 대해 항시 감시중에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장택민의 시선이 왕정에게 멈추자 그가 움찔했다.
정치판에서 지금까지 온전하게 살아남은 장택민의 눈빛은 매서웠다.
‘저 바보 같은 놈!’
상해방 중요 인사의 동선을 금방 파악했다.
어제 본처가 있던 집으로 향하지 않고 옆으로 샜던 왕정.
술을 과하게 마신 그가 첩의 별장에 들렀다.
분명 그곳에서 정보가 샜음이 확실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석님.
“하하. 류평. 사업이 번창한다는 소리를 들었네. 중국 경제 부흥이 자네 손에 달려 있어.”
“과찬이십니다.”
류평도 안으로 들어왔다.
“주석님을 뵙습니다.”
“오! 공주님도 오셨군.”
온수려도 조신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도 왔어요. 할아버지.”
“하하. 류미~ 네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한때는 가족처럼 어울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셨던 사이였다.
장택민이 그런 원자바오의 가족을 환영했다.
“다들 이제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준비한 요리들이 식기 시작했습니다.”
“립! 불러줘서 고맙네.”
“호호. 립, 오늘 저녁 기대하고 있어요.”
류평과 온수려가 립을 보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부족한 솜씨지만 최선을 다해 대접하겠습니다.”
이곳이 마치 자기 집인 듯 장립은 행동했다.
그의 모든 행동과 모습이 모두 자연스러웠다.
장립에게서는 어색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양광도 단약을 받은 후 더욱 장립의 수족처럼 굴었다.
“…….”
그 와중에도 여전히 찬밥이 된 왕정의 얼굴만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상무위원인 자신을 제치고 먼저 인사를 받는 장립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너를…… 기필코 파멸시켜 버리겠어!’
순간순간 악독한 마음을 다잡는 왕정.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로 삿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그를 누군가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
“오! 이것도 맛있군! 소동파가 다시 와도 이 맛은 못 낼 것 같아. 그렇지 않습니까. 주석님?”
“대단하군. 상해의 천일루에서도 이런 맛을 보기가 힘들어. 윤기부터 시작해 향과 식감까지 완벽해.”
“비곗살이 자칫 물러지기 쉬운데 쫄깃함이 살아 있습니다. 살코기도 촉촉하니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한잔하지.”
“오늘 제대로 날을 잡았습니다. 하하하하.”
원자바오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커다란 손님용 식탁에 각종 요리들이 즐비하게 세팅됐다.
류미와 양소려가 나를 도와 미리 차린 요리를 그때그때 배달했다.
“전속 숙수로 초빙하고 싶어지는 솜씨에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이건…… 평가가 불가능하네요.”
류평과 온수려도 음식에 대만족인 듯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요리 레벨이 대폭 상승했다.
미식가 못지않은 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술잔이 멈출 줄 모르고 거침없이 돌았다.
벌써 10여 병의 술이 비워졌다.
안주가 좋으니 분위기도 한층 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누구도 정치 얘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늘 모임은 다들 예상치 못한 자리인 만큼 식사와 술을 나누는 정도로 생각했다.
장택민과 원자바오는 과거 친분이 두터웠던 당시처럼 술잔을 나눴다. 각자의 마음은 감춘 채로.
“립. 수고했네. 한 잔 받게나.”
“감사합니다.”
주방에서 나와 자리에 합석했다.
거대한 탁자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즐겼다.
조평 상장도 쉽게 끼지 못하는 어려운 자리였다.
왕정과 함께 한쪽에서 나란히 앉아 대인들의 눈치를 봤다.
명실상부한 대륙의 실세들 간의 회동.
흐뭇했다.
인싸가 주최하는 베이다이허 샐럽 파티.
모두의 목적은 같았다.
집에 보관 중이라고 말한 단약으로 인해 흔쾌히 만들어진 회동이었다.
그러니 모두들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로록.
지금 잔을 채우고 있는 원자바오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자애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훤히 보였다.
모르는 척하고 순박하게 웃었다.
단약이 없었다면 잘나가는 원자바오가 나를 만나러 올 일도 없었다.
“총리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잔을 들고 쭉 들이켰다.
“고맙네.”
흐뭇한 표정을 짓는 원자바오.
이런 때일수록 확인 사실이 필요했다.
스윽.
품에서 단약 한 알이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를 꺼냈다.
“총리님께 바치는 제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입니다.”
“이게 뭔가?”
알면서 시치미를 떼며 묻는 저 약은 수법.
“이 단약은 피를 깨끗하게 만들고 피부재생을 촉진시켜 주는 황제재생단이라고 합니다. 화타께서 완성한 약방문으로 제조했습니다.”
“황제재생단!”
원자바오의 입이 저절로 찢어지려 했다.
그 이름도 거창한 황제재생단!
일단 ‘황제’라는 말이 들어가면 이곳 중국에서는 무조건 먹혔다.
“!!!”
다른 이들의 표정도 마찬가지.
어제 뿌렸던 영생선단과 다른 이름을 가진 단약의 등장에 내심 놀라는 눈치들이다.
파바밧.
누구보다 장택민 주석의 눈동자에 희열이 스쳤다.
나에게 단약이 더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된 순간.
“열어보십시오.”
물건은 봐야 신뢰가 쌓이는 법.
딸깍.
원자바오가 주저하지 않고 상자를 개봉했다.
그 순간 삽시간에 쫙 퍼지는 상큼하고 시원한 단약의 향.
누가 맡아 봐도 약성이 제대로 된 물건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영생선단과 달리 특효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그건…… 집에서 복용하시면 알게 되실 것이옵니다.”
비상용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 대충 아공간에 구겨 넣어 두었던 반쯤 완성하다 만 불량품이다.
영생선단과 달리 다른 쪽으로 특효가 좋았다.
차마 이 자리에서 입에 담기에 뭐한 남자에게 좋은 그것이다.
원자바오의 입이 눈에 띌 만큼 길게 쭉 찢어졌다.
“이런 귀한 것을…….”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게 되자 원자바오는 더할 나위 없이 표정이 부드럽고 편해졌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오고 가는 게 있어야 세상 사는 일이 평화로운 법.
내가 뿌린 미끼에 다들 만족했다.
이제는 슬슬 본격적인 딜을 시작할 때.
“귀한 걸 받았으니 내가 장립 자네를 돕고 싶네. 장 주석이 계시지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띵동.
기대하던 말이 막 나오려는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벨소리.
“???”
모두의 시선에 의문이 실렸다.
늦은 밤.
밖에 있는 경호원들을 건너뛰고 울린 벨 소리.
그들을 침묵시킬 만한 거물의 등장이라는 의미였다.
그르륵.
집주인 양광이 서둘러 현관으로 나갔다.
덜컹.
그리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