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장. 더블.(2)
탕! 탕탕탕!
연달아 울린 총성.
사람들 틈에서 악수를 하던 모디가 총탄에 그대로 저격당했다.
확인 사살이 목적인 것마냥 순식간에 연속 발사된 여러 발의 총성.
“꺄아아아아악!!”
“테러다!!!”
“으아아아아악!”
삽시간에 난리가 났다.
모디 주지사가 직접 걸음한 신전.
시바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모디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당탕탕.
한꺼번에 인파가 쏠리면서 넘어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총성으로 인해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이 돌아가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살피거나 배려하지 않았다.
“주지사님을 보호해!!!”
타다다닥.
경호원들이 총을 뽑아들고 쓰러지는 모디를 몸으로 막았다.
따라라라라라라락 따라라라라라라락.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대편 쪽에서 쇠 콩 볶는 듯한 날카로운 기관 단총 소리가 울렸다.
최종 사살 확인을 목적으로 또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테러범.
몸놀림이 날렵하고 거침이 없었다. 달려오며 모디와 경호원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갈렸다.
신전에 바칠 공물 속에 교묘하게 감춰진 기관 단총과 특수 제작 탄창.
수백 발에 달하는 총알이 순식간에 발사됐다.
퍼버버버버벅.
“크아아아아아아악!”
“컥!”
피분수를 뿜으려 쓰러지는 경호원들.
거의 의식을 잃다시피 한 모디를 향해서도 총탄 세례는 멈추지 않았다.
털썩.
피갑칠이 된 모디 주지사의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무릎을 접은 채 앞으로 뒹굴었다.
“암살자들이다!”
“죽여!!!”
“모두 죽여!!!”
탕! 탕! 타다다다다다당!
총을 든 암살자를 향해 남아 있던 경호원들과 경찰들이 총을 쐈다.
“알라후 아크바르!!!”
두 손을 치켜들며 ‘신은 위대하시다’라고 외치는 암살자들.
퍽! 퍼버버벅!
그들의 몸통을 관통하는 수십 발의 총탄.
주르르르륵.
총알받이가 된 테러범들의 몸뚱이는 순식간에 벌집이 됐다.
붉은 폭죽처럼 몸통에서 터져 나오는 핏줄기들.
털썩.
테러범들의 몸통이 바람 빠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주지사님!!!”
“뭣들 해. 빨리 앰뷸런스 불러!”
뒤쪽 차에 타고 있던 수석 수행비서 칸이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흐흐흐. 모디 잘 가라.’
계획한 모든 일들이 완벽하게 처리됐다.
인도는 선거철마다 수십 명의 희생양들이 테러범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특히 총리 후보라면 가장 맛있는 먹잇감이나 마찬가지.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친 테러범 덕분에 범행 목적도 분명해졌다.
오늘의 테러는 이슬람들의 소행으로 발표될 것이다.
당연히 인도인들은 분노할 테고 진실은 가려질 것이다.
선거는 혼돈으로 치달을 게 뻔하다.
칸은 자신과 계약을 맺은 자들의 소행임을 알았다.
타다다닥.
“모디이이이이이!”
쓰러진 경호원들 사이에 파묻힌 모디에게 달려가며 비명에 가깝게 그를 부르는 칸.
가슴 절절한 그의 외침은 누가 봐도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모디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경호원들과 함께 피 범벅이 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지사.
털썩.
칸은 조용히 꿇어앉아 모디를 품에 안았다.
“잘 가. 네 덕분에 난 부자가 됐다. 크크크.”
슬픈 얼굴을 가장했지만,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모디의 귓가에 얼굴을 파묻고 속삭이는 칸.
아직 목숨이 떨어지지 않은 모디에게서 약간의 경련이 느껴졌다.
그러나 목숨을 건질 가망성은 없어 보였다.
바로 앞에서 총을 맞은 데다 기관총에 무차별 난사도 당했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시기와 질투로 인한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신이시여!!!”
칸은 속마음과 달리 눈물을 흘리며 피 범벅이 된 모디를 안고 흐느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며 신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제멋대로 씰룩이는 입술 꼬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너냐.”
그때 칸의 귀속을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
황급히 고개를 숙여 품 안에 안긴 모디를 살핀 칸.
“헉!”
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피 범벅이 되어 민낯을 알아보기도 힘든 모디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쳐다봤다.
자신의 품에 안긴 그는 검은 사신보다 더 차가운 눈빛이었다.
칸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
“하아.”
깊은 탄식이 터졌다.
모디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짐작됐다.
악마의 시험은 지독했다.
모디가 영혼의 단짝이라 여겼던 칸.
역시 친구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죽음 앞에서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인간은 죽기 전까지 영원히 선할 수만은 없었다.
수십 년간 도를 닦아온 선사들조차 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파계의 길을 걷기도 했다.
하물며 평범한 욕망 속에 뒤섞여 살아가는 인간들을 의심 없이 믿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살을 맞대고 수십 년을 산 부부도 서로의 속마음을 모른 채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게 끝이 아닌데.”
모디 주지사에게 내려진 악마의 시험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 울렸던 더블 알림.
3단계와 4단계, 악마의 시험이 동시에 시작된다고 했다.
모디 주지사와 함께하면서 그 주변 인물들을 면밀히 살폈다.
모디의 하루하루 스케줄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때 직감했다. 칸의 부정을.
칸에 대해 모디 주지사를 떠봤지만 마음 깊이 총애했다.
하지만 나의 입장은 달랐다.
그를 보는 순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모디의 말에 경청하듯 진지한 얼굴 뒤로 가면을 쓴 그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관상이 변했다.
일명 배신자 관상.
생기가 사라져 버린 눈빛은 모략으로 번뜩였고 입술은 뱀처럼 수시로 꿈틀거리며 치켜올라갔다.
피부에서도 맑은 기가 아닌 탁기가 느껴졌다.
의심이 커질수록 더 세심히 칸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배신 현장을 잡았다.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로 가는 그를 뒤쫓았다.
마법으로 몸을 감춘 채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
역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준 현장의 진실.
“모……디!”
오금이 저린 듯한 수행비서 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스윽.
누가 봐도 죽은 자로 보이는 모디가 피 범벅이 된 채 몸을 일으켰다.
“으헉…….”
“주……지사님이 살아 계신다!!!”
“오……. 시바께서 오른팔로 안아주셨다!”
“신이시여!”
테러범들이 제압되고 슬금슬금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비처럼 쏟아지던 총탄 속에서 살아남은 모디를 확인하고 시바를 찾았다.
사람들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분명 총탄에 몸뚱이가 곤죽이 되고도 남았을 법한 모디는 아주 멀쩡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는 사람들.
순식간에 진실이 왜곡됐다.
시바의 오른팔이 아니라 내가 오른팔로 그를 안아줬다.
“너를 믿었건만……. 그 누구보다 내가 너를 믿었건만…….”
분노한 모디의 음성이 선명하게 귀에 들렸다.
가장 친한 친우의 배신에 모디는 분노에 휩싸였다.
그의 눈빛은 마치 악신처럼 번득였다.
이것이 악마의 시험이었다.
여기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모디가 악인이 될 수도 있었다.
테러라는 물리적 공격과 더불어 가장 믿었던 친우의 배신이라는 더블 공격.
이 부분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3차 시험까지는 나의 활약이 분명이 필요했지만 4차 시험은 예외였다.
온전히 모디가 의식적으로 견뎌내야 할 시험이었다.
“나…… 난…….”
칸이 벌벌 떨었다.
방금 전 칸이 죽은 듯 품에 안겨있던 모디의 귓가에 속삭였던 말을 나도 들었다.
성격파탄자가 따로 없었다.
총탄에 맞아 죽어가는 친구를 안고 자신의 찌질한 질투심을 해소하는 데 정신이 팔렸던 칸.
“돈 때문이야……. 그것도 아니면…….”
모디가 얼음처럼 차갑게 물었다.
피로 목욕을 한 듯한 그의 모습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방어 마법은 핏물을 차단하지 않았다.
물리적 공격은 당연히 차단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자연스럽게 통과됐다.
꿀꺽.
바들바들 떨던 칸이 마른침을 삼켰다.
빼박으로 들켜버린 속마음에 감춰뒀던 악심.
“흐흐흐흐흐흐.”
무슨 일인지 갑자기 칸이 웃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동료들의 시신 틈에서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칸의 모습은 악신의 재림 같았다.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디 앞에 서며 칸이 따지듯 물었다.
“같은 조건에서 살았음에도 누구는 종이고 누구는 주인이 됐어.”
“난 단 한 번도 너를 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모디가 눈을 부릅뜨며 부정했다.
“너야 그렇게 말하겠지. 다른 사람들은 날 보며 뭐라고 생각하겠어? 친구 뒤꽁무니나 따라 다니며 빌어먹고 사는 놈이라 속으로 손가락질을 했겠지!”
칸의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고쳐서 사용하기에는 심성이 제대로 삐뚤어졌다.
“칸…… 칸!”
모디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칸의 이름을 불렀다.
차오른 분노에 두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이 됐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모디는 살아가면서 믿음이라는 감정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닥쳐! 내 이름 그만 불러! 네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모르지만…… 이 시간부터 난 자유다! 모디의 몸종이 아닌 칸으로 살겠어. 차별하는 신들도 필요 없어! 그깟 시바는 너나 믿어!”
급기야 칸이 손가락으로 모디를 가리키며 신을 모독했다.
“신벌이 두렵지 않은 거야!”
모디가 천둥처럼 외쳤다.
“신벌? 신이 어딨어? 진정 신이 있다면…… 신의를 저버린 나에게 당장 벼락을 내리겠지. 그러나 내 삶에 신은 없었다. 본 적이 없어. 아니 썩은 고목처럼 아예 죽어 없어져 버렸겠지. 나 칸을 지금 당장 벌하지 못하는 신은 지옥에서…….”
타아앙!
그 순간 울린 묵직한 총성.
그리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