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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장. 더블. (716/1,284)

719장. 더블.

- 라훌 회장님. 이번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니엘님이 아니었다면 축제 기간에 전 신의 품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감사함이 가득 담겨 있는 모디 주지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라훌 회장의 귀에 들렸다.

“제 덕이 아닙니다. 모두 다 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라훌의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모든 인연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라훌을 알고 있었다.

다니엘과의 만남도 그랬다.

만약 신탁을 받지 못했다면 첫 만남부터 큰 결례를 범할 뻔했다.

다행스럽게 시바신의 도움으로 친구가 됐다.

- 만약…… 내가 총리가 되면 신의 이름으로 보답을 하겠습니다.

급기야 신의 이름까지 언급됐다.

신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맹세였다.

“저 또한 신과 인도, 그리고 주지사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훌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다시 한 번 번졌다.

디왈리 축제 사흘째.

모디 주지사가 두 번의 위기를 무사히 건넜다는 걸 라훌은 알고 있었다.

악마의 다섯 시험 중 두 번.

모두 다 주지사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걸 다니엘이 막아냈다.

시바가 오른팔로 안은 자가 해낸 것이다.

- 락슈미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주지사님께도 락슈미 여신님의 미소가 함께 하시기를.”

띠릭.

통화가 끝났다.

디왈리 축제의 셋째 날.

락슈미 푸자라 불리는 날은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새로운 달이 뜨는 첫날.

태양이 천칭자리를 지나갔다.

평형과 균형을 의미하는 천칭자리는 락슈미 여신의 상징.

부와 재물을 중시하는 인도인들은 이날을 가장 경건하게 맞이했다.

한 해 동안 재물을 많이 달라고 신께 청하는 날이었다.

라훌도 마찬가지였다.

뭄바이 본가에서는 환하게 붉을 밝힌 채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 여신을 맞이했다.

집에 차려진 신당의 여신상 앞에는 갖가지 진귀한 음식들과 공양물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라훌은 여신께 축복을 듬뿍 받았다.

모디가 약속한 그룹의 미래.

10위권에 불과한 아스맛그룹이 앞으로 대대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빠. 주지사님 전화에요?”

은은한 붉은 비단으로 지어진 전통 복장을 하고 보석과 금 액세서리로 치장한 샬루가 옆에 서 있다 물었다.

여신도 질투할 만큼 아름다운 딸.

“그렇단다.”

라훌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님…… 이 주지사님께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눈치가 빠른 샬루.

그녀의 눈빛은 한 남자를 떠올리며 반짝였다.

‘녀석. 많이 컸구나.’

라훌은 딸의 깊은 관심을 알아챘다.

인도는 상류층 가문들끼리 대부분 정략결혼을 했다.

라훌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와 맺어졌다.

불만은 없었다.

아내는 아름다웠고 현숙했다.

딸인 샬루도 엄마를 닮았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경영 능력까지 물려받아 시야가 넓고 계산이 빨랐다.

그런 샬루의 마음을 흔드는 다니엘.

외국인이었지만 라훌도 마음에 들었다.

시바께서 오른팔로 안은 자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신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것 같구나.”

“그럴 것 같았어요. 뭔가 신비한 힘이 다니엘님을 보호하는 것 같았어요.”

입가에 미소를 짓는 샬루.

“잘하면 축제 마지막 날에 찾아올 수도 있단다.”

“정말요?”

“네가 초대하지 않았느냐?”

“……네.”

샬루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보고 싶어도 참거라. 신의 일을 하는 자의 앞길을 막으면 안 된단다.”

“네. 아빠.”

샬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대에 찬 눈빛과 은은하게 붉어진 얼굴은 쉽게 감춰지지 않았다.

***

“지금 부부간의 인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중입니다. 오늘 주요 일정은 크리슈나에게 바칠 공물 108가지를 들고 신전에 가는 것입니다.”

- 확실한가?

“제가 핵심 수행원입니다. 그는 저와 같이 움직입니다.”

모지 주지사의 공관에 위치한 화장실.

최측근 수행비서가 조용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 알겠다.

“저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약속대로…….”

뒷말을 흐리는 수행비서 칸.

그는 모디와 대학 동문이었다.

신분도 똑같은 간치 출신.

대학 때부터 두 사람은 영혼을 나눈 친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많이 달라졌다.

승승장구한 모디는 주지사를 거쳐 총리 후보가 되었다.

칸은 그와 달리 계속 2인자로 머물렀다.

언제부턴가 칸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한 질투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동문들 사이에서 가끔 지나가는 말로 두 사람을 비교하는 일이 잦아졌다.

청렴결백한 모디의 행보 때문에 그의 밑에서 일하는 칸은 돈도 쉬이 모으지 못했다.

수행비서 월급으로는 도시에 아파트 하나 장만하기도 벅찼다.

점점 몸집이 커지는 질투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칸의 마음속에 악마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디는 최측근 칸에게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다니엘과 있었던 일도 마찬가지.

시바께서 보내주신 경호원이라고 말했다.

- 걱정마라. 일이 끝나면 네 비밀 계좌에 나머지 금액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흐흐흐.”

칸의 눈빛이 요사하게 빛나고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상대가 약속한 엄청난 거금.

약속받은 돈만 수중에 들어온다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띠릭.

통화는 짧게 끝냈다.

“시바가 보낸 오른팔이라고? 크크크. 웃기는 소리. 신 따위는 없어!”

최측근에서 모디를 수행하는 수행비서지만 축제 시작 전날부터 어제까지 휴가를 받아 놓은 칸.

막상 모디를 수행하고 있는 다니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칸! 칸! 어딨나!”

그때 밖에서 모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갑니다!”

칸은 힘차게 답하며 뛰어나갔다.

스르릇.

이어 칸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공간이 일렁이며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적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더니…… 쯧.”

한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

“칸은…… 어떤 사람입니까?”

“칸은 제 영혼의 반쪽 같은 친구입니다.”

모디 주지사의 입에서 신뢰가 가득한 친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씁쓸했다.

다섯 시험, 악마가 던진 시련으로 차에는 모디 주지사와 나만 남았다.

운전기사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콧수염이 멋들어진 배가 툭 튀어나온 중년 남자.

그가 칸이었다.

그는 경호원들과 수행 비서들에게 수시로 지시를 내렸다.

일처리는 두 말 할 것 없이 깔끔했다.

신전에 바칠 공물과 안전, 일정 관리에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조심들 하세요. 크리슈나님에게 갈 귀한 공물입니다.”

칸은 차에 공물들을 옮기는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오늘 신도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경호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칸은 경호원들에게도 따로 지시를 내렸다.

“대학시절 배고픔에 시달릴 때 칸은 나에게 빵과 음료수였습니다. 내 아내를 만났을 때는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해주었던 전령사였습니다. 정치인이 되었을 때 칸은 더할 나위 없는 열성 지지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지금 주지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칸 덕분입니다.”

모디의 믿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신도 간섭할 수 없을 만큼 결속력 강한 우정.

“두 분의 우정이 부럽습니다.”

“다니엘에게도 그런 친구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모디의 말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내 카드로 호의호식했던 목숨 줄 질긴 그놈들(?).

대학교에 입학했나 싶더니 어느새 군복무까지 대부분 마쳤다.

이제는 남은 학기를 마치고 졸업 준비로 다들 정신이 없었다.

조만간 동창회 한번 소집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모디가 말한 목숨 같은 우정은 아니었지만 가끔 그리워지는 우정이었다.

“제가 부족해 그런 친구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로버트 라이언과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신뢰하는 계약관계 정도.

조 변호사님도 마찬가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진정한 친구를 얻기는 쉽지 않다.

“결혼을 하세요. 아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신이 주신 친구랍니다.”

빙그레 웃는 모디 주지사.

그 말은 자신의 성공도 아내 덕분이라는 말일 것이다.

내가 본 통통한 모디 주지사의 아내 인상은 인덕이 넘치는 관상이었다.

며칠간 지켜봤을 때 아랫사람들에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신분을 두고 차별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주지사님…….”

운전기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차안.

모디를 조용히 불렀다.

“네, 다니엘님.”

내가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챈 모디 주지사.

“인간 본성에 자리한 선악은 사람의 앞과 뒤처럼 한 덩어리입니다.”

“네?”

“내 눈에 보이는 자의 정면이 선한 빛으로 웃고 있어도 등 뒤에는 악한 그림자가 자리해 있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어두운 구석이 세상에 속할 것입니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태양이 아니라면 끊임이 달처럼 빛을 받아들이고 반사시켜야 절반의 빛을, 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빛을 받지 못한 달의 뒤처럼 악도 인간의 뒷면에서 기회를 엿보며 늘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내 안에서 수시로 진리를 전하는 그 신뿐입니다.”

특정 신을 따르는 모디에게 불경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진실을 전하고 싶었다.

내가 쌓은 업은 온전히 나의 것.

네가 쌓은 업은 온전히 너의 것.

신들의 이해타산은 인간의 계산법을 뛰어넘을 만큼 철저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무지한 이들은 바라는 것을 주지 않는 신들의 무정함을 원망했다.

신은 결코 끊임없이 빛을 발산하는 태양처럼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다.

부모와 무고한 세상 사람들 수백 명을 죽인 악인에게마저 태양은 공평했다.

그처럼 악신은 악인의 수호자가 되어 악인들을 살폈다.

악인도 악신에게는 카르마 포인트를 벌어다 주는 귀한 자식이었다.

“…….”

깊은 생각에 빠진 모디.

딸깍.

마침 운전기사가 차에 올랐다.

“주지사님, 출발하겠습니다.”

부우우웅.

삐뽀 삐뽀.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주지사의 차는 움직였다.

어제 하루 꿀 같은 휴식을 허락했던 악마.

오늘은 다시 그와 뜨겁게 만나게 될 것이다.

***

“모디! 모디! 모디!”

“인도를 인도하소서!!!”

“시바께서 모디를 안아주셨다!”

모디가 신전 앞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다음 대 총리가 될 주지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땅이 넓은 인도에서 총리는 신의 대리자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얼마 전 다른 신전에서 있었던 독약 사건이 큰 파문이 됐다.

시바신이 불길의 기적을 보여 모디를 위기에서 구해줬다는 소문이 한 바퀴 돌았다.

원래부터 인기가 좋았던 모디였는데 거기에 신의 축복까지 더해지자 그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물러나십시오!”

“조심하세요!”

경호원들의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다.

경찰관들이 쳐놓은 1차 저지선을 뚫고 2차 선까지 다가와 모디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이들이 수백 명에 달했다.

그들은 신께 축복을 받은 자의 신체를 스치기만 해도 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사람들이 내미는 손을 한 번씩 잡아주는 모디.

차 안에서 다니엘에게 들었던 말은 까맣게 잊은 후였다.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도 세상에 믿을 만한 존재는 자신뿐이라는 말을 했던 다니엘.

신의 기적을 직접 행하면서도 그는 신께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의 말에 모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나마 지지자들의 손을 잡으면서 잠깐이나마 고민을 놓았다.

그때.

불쑥불쑥 내미는 사람들의 손들 사이로 보이는 딱딱한 물체 하나.

“헉!”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한 모디.

탕! 탕탕탕!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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