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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장. 내가 먹는다 (621/1,284)

624장. 내가 먹는다

“TS 큐셀에서 개발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어렵게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TS 쪽에서 이번에 획기적인 배터리를 개발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획기적인데?”

엘자 그룹의 회장실.

고자룡 회장은 엘자 화학 대표의 보고에 인상을 썼다.

엘자 그룹 미래 핵심 먹거리 중 하나가 배터리 분야였다.

IMF 시절 강제로 전자를 빼앗기고 이후 육성 중이던 디스플레이는 중국이 무섭게 따라붙고 있었다.

초격차를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가 몇 가지 남아 있지 않았다.

퇴사한 직원들이 은밀히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

해당 직원들이 받는 연봉의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제시해 한국의 기술을 빼돌리고 있는 중국.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 탈취가 진행 중인 셈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닫아야 했다.

내수 시장 규모가 엄청난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눈치껏 침묵했다.

그 점을 알고 집요하게 공략해 들어오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

고자룡은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갈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그 중에서도 아직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배터리 산업.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터지고 말았다.

“이게…….”

시원하게 답을 못하는 홍광훈 화학 대표.

“성능이 얼마나 돼?”

다시 확인하고자 묻는 고자룡 회장.

선뜻 대답 못할 정도라면 충격이 될 만한 수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한 번 충전으로 500킬로미터 정도를 주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500킬로미터!!!”

고자룡은 화들짝 놀랐다.

결코 예상치 못했던 수치.

“차에 장착할 수 있는 부피도 작아졌고 충전도 단시간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끄응…….”

고자룡은 기어코 신음을 흘렸다.

배터리 기술이 나날이 발달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엘자 화학이 계획하고 있는 2020년 도달 목표였다.

500킬로미터 정도의 효율을 보여야 일반 보급이 획기적으로 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충전까지 빠르게 이루어진다면 TS를 제외하고 다른 업체는 공멸할 수도 있었다.

“확실해?”

고자룡의 라인인 화학 대표.

“테슬러에서 기술자들이 파견되었습니다. 최종 확인한 사항입니다.”

“이거……. 머리 아프게 됐군.”

TS 그룹은 장태산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외국계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투자 주체가 선명하지 않고 애매했다.

정체가 뚜렷하지 않은 사모펀드가 주체였다.

해외에서 파견된 실제 이사진도 숫자가 많지 않았다.

사실상 장태산이 임명한 대웅 출신의 하관우 회장이 얼굴이었다.

‘TS가…… 태산의 약자였어.’

품어 왔던 의심이 확신이 된 지는 오래였다.

분명 TS 그룹은 장태산 개인의 것이 확실했다.

확증할 만한 증거는 없었지만 고자룡이 갖는 심증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고자룡 회장.

알게 된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장태산을 만난 자리에서 그를 면전에 두고 건방지다 화를 냈던 그였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애처로운 시선을 보냈던 젊은 친구.

천재였다.

부끄러움과 동시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연지, 화학 쪽으로 데려가.”

“네?”

“연지를 TS 그룹 대외 담당으로 임명해. 나한테 다 계획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직급은 팀장으로 올려줘.”

“!!!”

홍광훈은 고자룡 회장답지 않은 지시에 깜짝 놀랐다.

그 동안 없었던 파격적 인사였다.

고씨 가문 딸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없었던 승진이었다.

“처리하겠습니다.”

고자룡이 앞뒤 막힌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 번 뜻을 세운 건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했다.

뭔가 이미 계획을 세운 고자룡 회장.

“그건 그렇고. 동룡이 대웅 건설 진짜 먹는 거야? 자네 생각은 어때?”

“소문은 일단 그렇습니다. 주 회장이 이번에 제대로 사고 칠 것 같습니다.”

“무리인데……. 엘자 건설도 감당 못할 덩친데…….”

“정치권과 결합하면 안 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연 그럴까?”

‘장태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고자룡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동룡 주현태 회장이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

아니 인수는 희망 사항이고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도리어 당할 수도 있는 상황.

냉정하게 장태산 역시 동룡 그룹의 핏줄이었다.

그의 능력은 충분히 높이 살 만큼 대단했다.

주 회장과 경영권을 놓고 은근히 대립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안아에 이어 친일, 삼룡 그리고 이제 동룡까지.

세 곳을 합치면 무리 없이 10대 그룹 안으로 가볍게 들어서게 된다.

날이 갈수록 은근히 강해지고 있는 장태산의 영향력.

이미 대한민국 재계에서는 확실히 주목받고 있을 정도다.

“휴우.”

고자룡은 이미 자신과 악연이 되어버린 장태산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토했다.

눈앞에서 기회를 놓쳐버린 자의 후회.

‘연지야……. 널 믿어보마.’

그러나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믿었다.

자신과 달리 장태산이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막내딸 고연지.

요즘 들어 더 기대가 커졌다.

***

- 고맙네. 태산 군.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네.

심철수 교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음 같아서는 여동생을 희롱한 일곱 명의 사내새끼들 모두 쫒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심철수 교수님이 진심으로 선처를 바랐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빡빡한 자필 깜지 반성문 열 장과 재발방지 사과문 게재.

몇 푼 되지 않은 합의금은 받지 않았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거만한 자들에게 돈은 깜지보다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각자 성의껏(?) 자발적 기부 명목으로 학교 발전 기금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앞으로 주아를 비롯해 여학생들을 상대로 낄낄거릴 미대 남학생은 없을 것이다.

물론 딱 한 놈은 나의 넓은 아량에서 제외됐다.

강촌 소속 변호사로 싼값에 후려치려고 했던 용창승.

놈의 이모가 나에게는 외숙모.

한마디로 주현태 회장의 와이프였다.

몰카를 찍던 주범이라고 물고 늘어졌다.

주아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미대 내에서도 소문이 안 좋았다.

강촌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삼우 로펌에 의뢰했다.

증거가 확실해 최소 벌금 이상의 형이 선고 될 것이다.

놈의 신상에 성폭력범으로 빨간 줄이 선명하게 그어질 예정이다.

동시에 학교에서는 퇴학 처리가 진행 중이다.

심철수 교수와의 딜.

총장님도 이 사건의 파장을 잘 알고 있기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확정된 사실은 아니었지만 결과가 달라질 만한 변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모두 한 큐에 싹 쓸어 날려 버릴 능력이 나에게는 있었다.

“회장님, 무슨 생각하세요?”

“응?”

“요즘 수상해요. 동룡과 대웅 건설 문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너무 한가한 거 아니에요?”

“난 학생이잖아요. 도희 씨는 직장인이고.”

“……으으으. 직장인의 서러움을 회장님은 모르실 거예요.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쉬고 싶어요? 그럼 쉬어야죠. 휴가 갈래요? 아니면 아주 푹…….”

걸렸다.

약 올리기 딱 좋은 건수.

말끝을 흐렸다.

“회장님!!!”

하이톤으로 목소리가 높아진 도도희.

씨익 한 번 웃어줬다.

분위기 참 좋다.

동룡의 파멸 계획과 대웅 건설 인수 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큰일을 도모하고 있지만 회의는 조촐하게 둘이서 진행했다.

굳이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할 일도 아니었고 폼 잡을 것도 없었다.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로 중요 사항을 지시하고 보고 받으면 됐다.

대웅 건설 인수라는 명제 앞에 대웅맨들이 뭉쳤다.

하관우 회장을 비롯해 황효관 대표, 현동영 대표가 힘을 합쳤다.

거기에 도운중 회장의 딸인 도도희 대표까지 합세해 일을 진행했다.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대웅의 재도약.

힘든 일이 분명했지만 도도희는 갖고 있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승산이 없어요. 동룡에 대해 정치권, 언론, 행정부의 지원이 막강해요. 산업은행에서 채권 은행들과 협약해 채무도 일정 이상 탕감해 주기로 약조가 됐어요. 다른 기업들도 나서지 않고 있고요. 들러리로 몇 개 기업이 인수 제안서를 제출한다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니에요.”

도도희는 인수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동룡 주현태를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현 정권의 실세 주순자였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배를 불리고 있는 진짜 권력자.

그러나!

“인수가로 20억 달러면 적당하겠네요.”

“20억 달러면 충분해요! 동룡은 겨우 1조 정도밖에 없어요.”

도도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기업 인수는 결국 돈 싸움이었다.

더군다나 나에게서 나가는 자금은 월가의 탈을 쓰고 외국자본으로 포장됐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청와대가 피곤해지는 자금.

“여론전 시작하십시오. 외국계 투자 회사를 통해 대웅 건설의 부실 자산을 정리하고 옛 명성을 되찾게 하겠다는 내용이면 충분할 겁니다.”

“네! 맡겨만 주세요!”

씩씩한 여전사로 돌변한 도도희.

그녀는 언제 봐도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다.

“다음은 대웅 건설 대표에 대해…….”

띠링.

그때 문자 알림음이 들렸다.

스마트폰을 살폈다.

- 지금 발표 날 거예요. 다니엘…… 보고 싶어요.

영어 문장으로 이루어진 정성스런 문자.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좀 사용했다.

그 만큼 지극한 정성을 들였다.

“우리 TV 좀 보죠.”

“네?”

띠리링.

대표실에 비치돼 있는 TV를 켰다.

채널은 경제 뉴스 TV.

평범한 뉴스가 진행되던 중 마침 속보가 떴다.

[속보입니다. 방금 세계적 신용 평가기관인 마디스와 협업하는 대한신용평가사에서 동룡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CCC 수준으로 몇 단계 하양 조치했습니다. 대웅 건설을 무리하게 준비하며 금융권과 사채 시장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았음이 밝혀지면서 정크본드 수준으로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으로 보입니다. CCC 등급은 회사채 중에서 원리금 지급에 관하여 현재도 불안한 요소가 존재하며 앞으로 채무불이행의 위험성이 매우 커 투기목적 수준의 채권으로 평가한 등급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은행권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상환이 어렵게 될 수도 있으며…….]

“이, 이게 뭐죠?”

도도희가 속보 뉴스를 보고 당황해 물어왔다.

뭐긴 뭐야. 작업 결과 보고지.

“이 정도 지원이면 충분하죠?”

“회장님이…… 손쓰신 거예요?”

“그럼 누구겠어요?”

“아!”

도도희가 감탄한 듯 신음을 토하며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틱틱틱.

가볍게 화면을 터치해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리.

평범한 멜로디가 들렸다.

스피커폰을 켰다.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도도희.

- 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정중한 태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나의 사람이 된 한 남자.

“뉴스 보셨습니까?”

- 방금 봤습니다.

“그럼 다음 계획을 진행해 주십시오.

지시는 짧고 명확하게 간단해야 제 맛.

선수들끼리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 내일 동룡의 파멸을 보게 될 겁니다.

“수고하십시오.”

- 곧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거래도 체결됐다.

“무슨 소리죠? 저분은 또 누구…….”

도도희도 통화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전후 상황을 몰라 궁금해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도도희.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짜놓은 판 전체를 그녀도 예측 못했다.

나를 비롯해 엄마까지 해치려고 했던 외삼촌에 대한 치밀한 복수의 시간.

시시하게 끝내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가진 모든 것…….

빼앗고 무너뜨리고 바닥을 기게 만들어야 했다.

내 외할머니와 엄마가 안고 온 한에 대한 대가.

원금에 이자까지 정확하게 계산해 치르게 할 작정이다.

“도도희 대표님. 혹시 시간 있습니까?”

“네? 시간요???”

동그랗게 눈을 뜨는 도도희.

꽤나 반짝이는 눈빛이 순간 이상한 상상을 품는 눈치다.

“데이트 신청은 아닙니다.”

“그럼……. 무슨…….”

씨익, 그녀를 놀리듯 나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인빈지단(人貧智短) 복지심령(福至心靈)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갑작스런 고사성어 연발에 도도희가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지고, 복이 오면 마음이 밝아진다는 뜻입니다.”

“???”

그래도 선뜻 이해를 못하는 도도희.

미국파의 한계였다.

“복돼지 한 마리 잡읍시다.”

“돼, 돼지요?”

“인수팀 준비하세요.”

“어떤 인수를…….”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우리들 은행, 제가 먹을 겁니다.”

“네? 우, 우리들 은행을요???”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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