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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경매장의 큰손, 시엔 (48/77)


48화. 경매장의 큰손, 시엔
2023.05.16.



‘원작은 3인칭이라, 딜러 시점도 나오거든. 그래서 나는 이 총의 비밀을 알아.’

물론 멜로디아는 모두가 존경하는 성녀이기에, 딜러는 게임 따위 없이 바로 그녀에게 경매장의 티켓을 넘겨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 딜러는 멜로디아와 게임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그녀를 약간은 의심했다.

그리고 원작은 바로 그 시점에 딜러가 하던 생각을 서술했다.


‘이 총은 말을 하지 못할 뿐, 사실 반쯤 인격을 지니고 있는 마도구이자 무기라고 했어.’

인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자신이 원할 때는 인간을 죽이고, 원하지 않을 때는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총 속의 인격체는 딜러를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총은 결코 자신의 주인인 딜러를 죽일 수 없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 총 속의 인격을 이용하면 어떨까.’

나는 가만히 웃으며 손을 들었다.


“구거 알아, 온니?”

나는 내 손에 있는 총을 보여 주었다. 총의 겉표면이 진득하게 달아올라 그 아래에는 [딜러]라고 고대어로 적혀 있었다.

딜러가 당황해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이건 불가능해요!”

“왜?”

당연히 알면서도 물었다.

딜러의 여유만만했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 총은 딜러가 쥘 때만, 그 고대어가 적히는데……! 마법을 써서 조작했나? 마법을 쓸 수는 없을 텐데……!”

“마력은 쓸 수 업지만, 다른 이능력은 사용할 수 있지.”

나는 해맑게 웃으며 대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아까 대장이 나를 보며 혼잣말을 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혼잣말이 아니라 주술이었으니까.

오늘 이 카지노에 오기 전, 나는 대장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장, 나 궁금한 게 이쏘. 인격이 있다면 마도구도 조종할 수 이써?’

‘주술로?’

‘웅!’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아마도 가능해.’

오늘, 주술사인 대장이 힘을 내 주었다.

물론 카지노 내에서는 함부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타인의 마법이 통하지 않게 설계되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사들이 별거 아니라고 무시하는 이능력 중에, 집시들의 주술이라는 게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주술을 사용해서 마도구를 조작했다.

주술은 마법과 달리 심리를 조작하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인간에게도 통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인격을 부여한 마도구의 심리를 교란시킬 수도 있던 거였다.

승리한 자의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짜나, 온니가 다치면 안 대니까 힐러두 데려와써. 그런데 힐러는 주근 사람을 살릴 수 없다니…… 걱정대네.”

나는 딜러를 바라보며 총을 장전하고 내 이마에 쐈다.

휘이-.

당연하게도, 이 총은 이미 주인으로 인식한 나를 죽이지 못했다.

게임의 룰. 이미 게임이 시작된 이상, 패배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못한다.


“이 마도구엔 주술이 걸려서, 당분간 나를 딜러로 인식할 거고든.”

나는 씩 웃으며 총 모양 마도구를 흔들었다.

새하얀 앞니가 톡 튀어나왔다.


“그치만 온니는 어떨까?”

“…….”

딜러도, 나도 답을 알고 있었다.


“패배 선언을 하거나, 아니면 참가자처럼 주거야 해. 둘 중, 하나야.”

내 말에 딜러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녀는 나를 보며 한숨처럼 물었다.


“……결정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묻죠. 다른 이능력을 사용한 건 그렇다 치고 대체, 당신. 그 마도구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죠?”

나는 새침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꾸했다.


“영업 비미리야.”

“……하, 세상에.”

상당히 당황스러워 보였지만, 역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딜러여서 그런가 사태 파악이 빨랐다. 그녀는 내가 건넨 총을 내려다보며,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기한테 당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 방 먹었네요.”

나는 잠자코 딜러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뒤 탁자 위에 총을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딜러의 권한으로 이번 러시안룰렛을 종료합니다. 당신의 승리입니다.”

밝았던 불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승리하셨으니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

“웅.”

나는 당당하게 양 옆구리에 손을 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둠의 경매장 티켓을 조.”

“하아…… 그건가요. 좋아요.”

내 당당한 말에 딜러는 헛도는 손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러더니 주머니 안에서 황금색 티켓을 꺼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멜로디아가 받은 건 붉은색 티켓이었을 텐데, 이게 뭔가 싶어서였다.


‘뭐지? 밑장 빼긴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섞어 딜러를 바라보는데 그녀가 내게 황금색 티켓을 건넸다.


“평범한 경매장 출입 티켓이 아닙니다. 특별한 분에겐 특별한 티켓이 필요한 법.”

나는 내 손에 있는 티켓을 내려다보며 눈을 내리 감았다 떴다.

이건…….

성녀로 유명했던 멜로디아도 얻지 못했던, 경매장의 최고급 프리미엄 티켓이었다.

조금 당황한 나를 보며 딜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기 공주님, 어둠의 경매장 속에서 행복과 행운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나요?”

이건, 원작 속 멜로디아에게도 했던 질문이다.

그때 그녀는 힘차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실제로 어둠의 경매장에서 수없이 많은 유용한 물건들을 구입했으니, 그녀는 행복과 행운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게써.”

딜러는 내 대답이 흥미롭다는듯 턱을 매만지다 불쑥 물었다.


“그럼 왜 경매장으로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가야 하니까.”

이 경매장 안에서 파는 물건을 사서 강해질 것이다.

돈도 벌 것이다.

그래서…….


“그건…… 사명이라는 뜻인가요?”

그녀는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은 채로 가만히 말했다.


 


“나한텐, 꼬옥 지켜야 할 사람들이 이꺼든.”

나는 이 손으로 바로 우리 바보 아빠와 바보 친구들의 목숨을, 악당들에게서 구해낼 것이다.

몰살당할 우리 미르모드 공작가의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지켜 낼 것이다.

비록 내 두 손은 하얀 물만두보다 조그맣지만.

내 얼굴에 어린 비장한 진심을 확실히 읽어 낸 걸까, 그녀는 밝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서 있던 바닥을 연 채로 나를 향해 말했다.


“어서 들어가세요, 경매는 이미 시작되었을걸요. 조금 늦었어요.”

그녀의 말마따나 바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데드리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치 빠른 데드리 언니가 나를 품에 쏘옥 끌어안았다.

시녀 언니의 품에 안겨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길.

애시드와 대장이 내려오기 전, 내 머리 위에서 딜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스러운 아기 공주님,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기를. 행운을 빌어요.”

나는 조금 놀라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말은 원작 속에서 멜로디아도 듣지 못했던 축복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어린 즐거움을 떠올리니 묘하게 누군가 생각났다.


‘……델피아 언니 닮아써.’

뇌리를 스치는 생각을 지우며, 나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경매장 내부로 들어섰다.

***

딜러의 말대로 경매는 이미 시작된 눈치였다.

장미목 땅은 쓸모없다고 판단되어 초반부에 입찰될 텐데.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사다리에서 내려 지하 어둠의 경매장의 문 앞에 선 나는 허겁지겁 티켓을 경매장 앞의 가드에게 건네주었다.

내 티켓을 받은 가드가 경매장에 참여할 팻말을 건네주었다.

티켓을 보자마자 말을 더듬고 몸을 살짝 떨며 깊숙이 부복하는 걸 보니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경매에 참여하는 게 중요했다.

가드가 문을 열어 주자, 우리 다섯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경매장은 열기로 달아올라 버렸다. 사회자가 한창 무언가를 떠들어 대고 있었던 듯했다.


“……없으시면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앞에 어떤 물건이 유찰되었는지를 고민할 틈도 없이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일단, 뭐든 사자!


“나!”

엄숙한 듯, 가면까지 쓴 사람들 사이.

키가 1 미터도 안 되는 데다 시녀에게 안겨 있는 나의 쨍알거리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에 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급하게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팻말을 꺼내 들었다.


“나, 가 아니라 1번!”

그렇게 말해 놓고 나도 당황했다.


‘어라? 나 왜 1번이지?’

내 의문에 걸맞게 주변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번이면…… 이 경매장에서는 영구 결번이지 않았나?”

“어떻게 저런 꼬마가 영구 결번을 가져간 거지?”

“잘못 발음한 거 아냐? 11번이겠지.”

“……엥? 11번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데?”

나 역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1번 참가자가 그런 의미인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딜러가 준 팻말이 1번일 줄이야!

<영구 결번>.

보통 경매장에는 영구 결번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그 경매장의 큰 손이거나, 아니면 정말 귀한 손님이거나.

이들에게는 특혜도 있었다.

보통 이런 경매장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걸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쿼터제가 존재했다. 그래서 한 명이 2개 이상의 물건을 입찰할 수 없었다.

하지만……. ‘1번’ 같은 영구 결번은 달랐다. 그들은 돈이 허락하는 한 무제한으로 입찰이 가능했다.

그런데 내가 황금 티켓을 받은 것도 모자라 영구 결번 번호를 받게 될 줄이야.

벌써 흥미진진해지는 가운데, 사회자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사회자는 내 손에 들린 팻말을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1번 참가자군요.”

그의 반응에 경매장 내 분위기는 한결 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쟤는 뭐냐, 황족인 거 아니냐, 처음 보는 얼굴이다, 같은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내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지나가면서 듣자 하니, 황족 가운데에는 분홍 머리칼을 한 아이가 없으니 교황이 보낸 사자라거나 하는 설에 무게가 실리는 듯했다.


‘바보들. 다 아닌데. 나는 우리 아빠 딸이거든?’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 따위는 뒤로 제치고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 착석한 나는 경매장의 사회자를 응시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배팅하께.”

“얼마나 하시겠습니까?”

“이전에 얼마가 나와뜬, 거기서 1골드 더 배팅!”

이번에는 어눌한 말투가 안 나왔다.

나는 자화자찬하며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1번 참가자에 대한 의아함도 잠시뿐인 건지. 사회자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하하, 1번 참가자가 의외로……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군요.”

사회자가 저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내가 눈매를 뾰족이 하자 사회자가 헛기침을 했다.


“이번 물품은 공갈 젖꼭지인데요.”

그 말에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푸하하! 저런 것도 모르고 배팅을 하다니.”

“저 어린 애가 어떻게 1번을 가져간 거야?”

나 역시도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자는 내 표정을 보고 알 만하단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어린아이가 가져가는군요.”

사회자의 비웃음 어린 목소리에 좌중에도 한바탕 비웃음이 어렸다.

역시 어둠의 경매장에는 쓸모없는 물건이 많다면서, 저렇게 멍청한 어린애들이란 안목이 낮다고 낄낄거렸다.

아무리 봐도 교황의 사자 같진 않은데 대체 왜 쟤가 1번이냐면서 이 자리를 나가면 딜러에게 항의할 거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목소리 큰 몇몇은 대장과 시녀 언니들이 한 번 노려보자 바로 수그러들었지만.

특히 애시드는 내가 기죽을까 걱정된 건지 나를 향해 소곤거려 주었다.


“저, 공갈 젖꼭지도 귀, 귀여운 거 같아. 쓰, 쓸모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 어둠의 경매장에서 나오는 주요 마도구들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건 무려 드래곤 해츨링을 길들일 수 있는 공갈 젖꼭지라고!’

사람이 살면서 드래곤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지만 혹시 모른다. 먼 미래에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 바보들은 그 사실도 모르고 나를 조롱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턱을 치켜들고 새침하게 소리쳤다.


“모해? 다른 경쟁자, 업써?”

나는 다른 경쟁자가 있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눈길을 담아 주변을 둘러 보았다. 다행히 다들 잡동사니에는 관심도 없는 눈치였다.


“1골드에 낙찰입니다.”

1골드라는 헐값에 드래곤 해츨링의 목줄을 쥘 수 있는 물건을 갖게 되다니 확실히 시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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