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아빠만 모르는 비밀?
(49/77)
49화. 아빠만 모르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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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아빠만 모르는 비밀?
2023.05.19.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뭐가 나올지…….
“이번에 나온 물건은 장미목 수목원입니다.”
바로 내 목표가 입찰됐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한숨 같은 소음을 내뱉었다. 다들 웬 쓰잘데기없는 수목원이나 경매하냐는 듯한 뉘앙스였다.
‘이 바보들.’
수목원의 지하에는 금이 잔뜩 묻혀 있다. 엄청난 양의 금으로, 그걸 팔면 중소형 상단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자금이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사회자의 입을 똑바로 노려보며 몸에 힘껏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다지 성실하게 입찰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팻말을 들어 올리고, 얼마에 사야 할지를 고민하던 바로 그때였다.
“13번 참가자, 10골드!”
이미 배팅을 한 사람이 있다?
심지어 소녀의 목소리였다. 절대 성인이 아닌 것 같은.
‘멜로디아도 아니고 누가 이 수목원을 사려는 거지?’
나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삐죽삐죽 가시를 세우는 조그만 고슴도치처럼 무시무시하게.
***
수목원에 배팅한 사람은 바로 놀랍게도 가브리엘레 신녀였다.
그녀는 멜로디아에게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이 자리에 온 터였다.
‘13번 참가자로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필 저 애가 1번이라니.’
가브리엘레는 미묘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저 옆에는 애시드라는 아이가 틀림없었다. 테드는 자신을 버리고, 저 힐러도 시엔의 곁에 붙었다.
대체 쟤의 장점이 무엇이길래.
멜로디아가 보낸 편지를 떠올리며, 가브리엘레는 이를 갈았다.
[성기사도 잃고 힐러도 빼앗기다니, 가브리엘레.
그대의 행태가 몹시 실망스럽습니다.
그대는 우선 <어둠의 경매장>에 방문하는 게 좋겠군요.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전부 사 와요. 예산은 100골드 정도가 좋겠군요. 당신이 고르는 물건의 안목을 볼 거예요.
처분은 그다음에 결정하도록 하죠.
일주일 뒤. 동대륙에서 떠나 교황청으로 들어갈 겁니다.
그때 제가 성녀로 임관하게 될 예정이라는 뜻이지요.
그날 황궁으로 들어갈 생각이니,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세요.]
가브리엘레는 수목원을 꼭 사고 싶었다. 멜로디아 님은 풀을 좋아하셨으니까.
하지만 못 사도 그만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상대는 시엔 미르모드다.
‘이번에야말로 절대 안 질 거야.’
가브리엘레는 자신의 예산, 100골드를 떠올렸다. 이걸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구입하고 말 것이다. 저 쓸모 없어 보이는 수목원을. 설마 저걸 100골드 이상 주고 살까? 시엔 미르모드가?
가브리엘레를 힐끔 본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더 입찰하실 분 없나요?”
하지만…… 시엔 미르모드는 자신을 힐끔 보더니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1번! 101골드.”
하필이면, 저렇게 바로 101골드로……!
허를 찔린 가브리엘레는 분노로 몸을 덜덜 떨었다.
고작 수목원 따위를 못 산다고 해서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게다가 저 수목원을 저 돈 주고 사는 시엔이 바보 같다는 것도 안다.
‘멍청해. 101골드나 주고 저 수목원을 사다니!’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그렇지만 예산 부족으로, 시엔 미르모드에게 밀려 수목원을 못 사는 신세가 되다니.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건 이것대로 화가 나는 지점이었다.
“더 입찰하실 분?”
사회자가 가브리엘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의 돈이 없었다. 여기서 돈을 더 쓴다면 멜로디아님께 혼쭐이 날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또 졌다.
저 멍청한 꼬맹이, 시엔 미르모드에게!
‘빌어 처먹을 계집애!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곧 멜로디아 님이 오시면, 그분이 성녀가 되시면, 시엔 미르모드 따위는 땅 위의 개미처럼 쉽게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마티어스 미르모드가 위험하다는 경고는 들었다.
하지만 멜로디아 님이 성녀가 되면 그들도 끝장이다.
멜로디아 님의 말씀에 따르면, 미르모드 가문은 계시에 따라 반드시 멸망한다고 하니까.
조만간 시엔 따위와 자신은 땅과 하늘만큼이나 위세가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도 패배한 가브리엘레의 새파란 분노가 시엔에게 가 닿았다.
***
총 금액 101골드로 나는 수목원을 품에 안게 되었다.
원래 101골드를 배팅할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물건 수령 후 금액 지불까지 일주일간의 유예가 있지.’
일주일 동안 미친 듯이 땅을 파서 금괴를 마련해야 했다.
어깨가 약간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목원을 구입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때 애시드가 내게 조그맣게 말했다.
“저 13번 참가자, 가브리엘레 신녀예요.”
“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브리엘레, 요즘 들어 자주 부딪치네?’
저렇게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테드와 애시드를 갈라놓은 걸 보면 인성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미르모드와 신전의 관계처럼, 쟤랑 나는 적이 되어 버린 거 같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거다.
‘가브리엘레가 갑자기 이 경매장에 튀어나온 건 원작 내용과는 달라. 내 행동 때문에 원작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의미겠지.’
이제부터는 원작 내용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나부터가 타임라인을 구성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배시시 웃다가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우고 수목원 입찰을 즐겼다.
그제야 비로소 귓가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체로 비웃음이었다.
“꼬마 귀족 아가씨라 그런가.”
“땅값을 영 모르네.”
그 땅에 금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그들이 계속 입방아를 찧어 댔다.
“저 수목원이 예뻐 보이기는 하지?”
“저런 별거 아닌 걸 입찰하느라 101골드나 쓰다니.”
특히나, 파이프 담배를 내려놓은 아저씨가 나를 그윽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나는 그를 그윽한 시선으로 마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정말 바보 같네. 영구 결번인 1번 참가자가 저걸 돈 주고 산다면, 뭔가 뜻이 있다고는 생각을 안 하는 건가?’
명색이 어둠의 경매장까지 온 사람들인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건가, 고민하던 때였다.
아저씨의 입에서 몇 가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전에도 영구 결번을 손에 넣은 참가자 중에 저렇게 과시용으로 무제한 입찰을 남용하던 이들이 있었지요.”
“하여튼 그런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지 않나. 결국 번호를 빼앗기고 경매장 출입도 금지당했지.”
“이번에도 그렇게 되겠구먼.”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특권을 과시하려다 쓸모없는 물건만 잔뜩 산 사람이 있었다면 나를 무시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 반응도 아니지만.
‘과거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해서 나까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 아닌가?’
물론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걸.
‘일주일만 기다려. 그 뒤에는 배가 엄청 아프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내색하지 않은 채로 조그만 앞니만 내밀어 웃었다.
정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꼬맹이답게.
과연 내 개구진 표정을 보면서 그들은 비웃듯 폭소를 터뜨렸다. 나와 달리 자기들이 이 경매장에서 잭폿을 터뜨릴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결국 이 경매장의 승자는 내가 될 테니까.
내가 산 수목원에 금이 묻혀 있다는 걸 대대로 광고하고, 그를 발판으로 내 돈줄이 될 상단을 만들어 낼 테니까.
나는 비웃는 시선들 따위는 뒤로하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내 곁에 있던 대장이 잇새로 무언가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장 쪽을 바라보았다.
“불행을 모아 오는 주술이야.”
“……어?”
“여긴 마법이 걸려 있는 경매장이고, 난 강력한 주술사는 못 되어서 잘은 못하지만 말이야. 아주 사소한 불행은 불러일으킬 수 있지.”
“사소한 불행이 무슨 뜻이야?”
나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그러자 대장이 흡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나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꼬맹이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거 짜증 나. 그래서 불행 주술 걸 거야.”
나는 입을 쩌억 벌렸다.
저 아이의 미래가 아주 약간 걱정되기 시작했다.
“모야? 정확하게, 어떤 불행인데……?”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장을 보자 대장은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곧 알게 될 거야.”
대장이 그들 쪽을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좁히고는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대장의 시선을 따라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으윽.”
신음 소리를 흘리기까지.
“후후.”
대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손에 땀을 쥐고 그 아저씨를 응시했다.
그 아저씨는 주변을 급하게 둘러보더니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배가 아픈 듯 몸을 급하게 일으키는 데다 얼굴이 거의 황달 수준이었다.
……대충 알 만하다.
‘설사병에 걸렸군.’
그런데 문제는 그 아저씨만이 아니었다.
그 아저씨 주변으로 물을 마시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레가 들린 듯 재채기를 한다거나, 급하게 뒷목을 잡는 경우가 자꾸 생겼다.
‘저쪽은 갑자기 거북목이 됐어.’
가브리엘레 역시 힘겹게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목에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온 듯했다.
‘가브리엘레는 알러지고.’
갑작스러운 불행 주술의 습격에 일동 당황한 게 눈에 보였다.
경매가 잠깐 중지될 정도의 약한 소란에 나는 대장을 슬쩍 호명했다.
“대장?”
“……난 그냥 네 복수를 한 것뿐이야. 입 잘못 놀린 대가는 치러야지.”
내가 자기를 탓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대장은 상당히 자기방어적인 말투였다.
나는 대장의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면서 말했다.
“……안니야. 잘해써.”
“……뭐, 그래.”
대장이 입꼬리를 애써 아래로 내리며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이쯤에서 나는 대장에게서 눈을 휙 돌렸다.
아까부터 뺨이 따가울 정도의 시선이 나한테 닿아 있었으니까.
마치 자기를 봐 달라는 듯한 눈빛.
그 시선의 주인은 바로 애시드였다.
‘애시드, 왜 날 빤히 쳐다보지?’
의문이었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애시드의 볼이 복숭아처럼 빨개져서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안 한 척 등받이에 몸을 푹신하게 기댔다.
그때 데드리 언니가 내 어깨를 꼬옥 움켜잡으며 물었다.
“아기님, 땅에 발이 안 닿아서 불편하시죠?”
……내 짧고 통통한 다리가 바닥에 못 닿아서 달랑거리는 걸 본 모양이다.
나는 애써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갠찬타. 다시 입찰하겐느니라.”
다리가 땅에 안 닿고 달랑거리는 통에 위엄이 살짝 상하기는 했지만!
나는 주변의 소란을 위엄 넘치게 잠재운 다음 다시 시작된 경매 실황을 지켜보았다.
이제 수목원도 구입했으니, 측근들에게 당근을 줄 때였다. 원래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용병술의 한 단계거든.
정말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 몇 개를 지나친 다음, 나는 분홍 목걸이라는 신비한 경매 물건을 볼 수 있었다.
“분홍 구슬로, 신성력을 약하게 증폭시켜 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1번.”
“오, 또 아기님이?”
사회자의 짓궂은 말에 나는 거만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10골드.”
……그 누구도 입찰하지 않았기에, 구슬 역시 헐값에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저 구슬은 가브리엘레가 탐낼 만도 한데, 대장의 주술에 걸려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애시드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애시드 줄게!”
그런데 이상하지.
아까 내 눈을 마주쳤을 때와 비슷했다.
이번엔 말을 걸었을 뿐인데 애시드의 두 볼이 화르륵 붉어졌다.
자기를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샀다는 게 무척이나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조그맣게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저도 꼭…….”
“웅?”
“도움이 될게요, 시엔 님에게.”
애시드의 말에 나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화답했다.
“지금두 충부니 도움 대.”
애시드의 볼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붉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