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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이렇게 귀여운 어린이는 오지 못하는데 (47/77)


47화. 이렇게 귀여운 어린이는 오지 못하는데
2023.05.12.



 


‘나, 키가 너무 작아!’

나는 아주 짜리몽땅했다. 시녀 언니들이 그냥 연필이라면, 나는 몽당연필이었다.

심지어 내가 데려온 애시드는 나만큼이나 어리지만 키가 큰데.

나는 이 중에서 제일 키가 작았다…….

그래서 적어도 성인 여성 어른만큼 큰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검사대를, 오직 나만 통과할 수가 없었다.


‘이 파티의 길드장은 나인데, 이렇게 되면 가오가 죽는다!’

나는 뻔뻔하게 시녀 언니의 소매를 꾸욱 잡았다.


“온니.”

“아이고, 예.”

근육 시녀 언니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내 팔을 꼬옥 잡았다.


“나 들어조.”

시녀 언니들은 내 말을 따르는 멍멍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존명!”

나는 보자기를 꽁꽁 싸맨 채로 시녀 언니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데드리 언니가 나를 영차 하고 안아 들었다. 나는 금세 160cm 정도의 눈높이가 되었다.


‘세상이…… 엄청 하찮아 보인다!’

엄청난 눈높이였다.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러자 카지노 입구에 서 있던 검사원이 안타깝다는 듯이 나를 보며 속삭였다.


“어쩐다. 이렇게 귀여운 어린아이는 오지 못하는데.”

나는 새하얀 가래떡 같은 팔을 휘적거리며 그를 향해 말했다.


“어허.”

내 말에 검사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위엄에 잔뜩 졸아붙은 게 틀림없었다. 나는 가슴 앞으로 근엄하게 팔짱을 끼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들여보내다오. 나는 미르모드다.”

검사원의 표정이 다소 아리송해졌다.

이렇게 말했다고 당연하게 나를 들여보내지는 않을 거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검사원이 조심스럽게 나를 보며 말했다.


“미르……모드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미르모드 가문의 어린 악당들이 벌이는 온갖 기행이 지금에 와서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턱을 뻣뻣하게 치켜들면서 ‘나는 귀여운 게 아니라 사악한 것이노라’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나를 안고 있던 데드리 언니가 매끄럽게 나섰다.


“감히 시엔 님을 품평하지 마라. 우리 미르모드 가문의 인장을 보여 주지.”

나를 볼 때는 눈에 하트가 가득하던 검사원은 시녀 언니를 보면서는 급격하게 쪼그라든 모양새였다. 우리 언니가 조금 무섭게 생기긴 했지. 시녀 언니가 보여 준 인장을 확인한 검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미르모드…… 가문의 어린 레이디께서 무슨 일로 이 카지노에 방문하신 겁니까?”

검사원, 상당히 깍듯해졌다.

역시 이 세상에서도 힘의 논리가 통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 검사원이 나를 애타게 바라보는 게 마치…… 길거리에 너무 귀여운 강아지가 산책 중인데, 마침 험상궂은 주인이 있어서 만지지 못하는 애견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강아지 역할인 건 아니겠지?’

의심을 애써 휘휘 날린 다음 주먹을 꾸욱 움켜쥐고 최대한 악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허, 검사원아. 카지노에 무슨 일로 오겠느냐?”

“으음……. 도박을 하고 배팅을 하시려고요?”

본래 어린아이들은 카지노장 출입 금지다.

하지만 악당 가문 미르모드는 다르다.

어린아이들부터가 악당 포스를 줄줄 흘리고 있다는 소리다. 고로 우리 가문 아이들은 어떤 나쁜 행위를 해도 어느 정도 용인이 되고는 했다.

게다가 시녀 언니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검사원은 급격히 꼬리를 내린 모양새였다.


“더 이상 무, 묻지 않고 내부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미르모드 가문의 인장을 꼼꼼히 확인한 검사원이 이내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다른 건 다 괜찮았다.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 제일 두려운 건 이거다.


‘내가 바깥에 몰래 빠져나온 거, 무조건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바보 아빠가 이 사실을 눈치채면 기절하거나 졸도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 사실을 거듭 상기하면서 시녀의 품에 포대기에 안기듯이 안겨서 안으로 들어섰다. 보자기로 얼굴을 꽁꽁 숨겨서 아주 흉악한 모습도 만들어 낸 참이었다.

시녀 언니들, 나, 애시드, 대장.

우리 다섯은 카지노장 안으로 힘껏 걸어 들어갔다.

<어둠의 경매장>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을 사기 위해, 딜러를 찾으러!

***

나는, 아니 시녀 언니는 나를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섰다. 시녀 언니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길쭉해서 내가 오동통 면 같은 다리로 열심히 걷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카지노의 중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앙까지 오는 동안 카지노의 룰렛과 슬롯머신, 그리고 내부에 들어찬 사람들을 구경하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 많다.’

보자기를 쓴 어린애와 커다란 근육 시녀도 수상쩍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곳은 이상한 사람들 천지였다.

혼자 고개를 내리고 중얼중얼하거나 양손에 현금다발을 든 사람, 눈에 핏발이 서서 계속 슬롯머신의 스틱만 움직이는 사람까지…….

나는 시녀 언니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제일 판돈이 큰 곳으루 가쟈!”

<어둠의 경매장>으로 가는 딜러는 가장 판돈이 큰 장소에 있다. 그리고 나는 카지노장 내부에 있는 안내문을 꼼꼼히 보고 그 지점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을 보면서,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걸요?”

“이 게임을 하면 인생 배팅……일 텐데요.”

“시, 시엔. 여긴 아니야!”

다들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히 대꾸했다.


“저거, 마자.”

“그렇지만 저건 러시안룰렛인데요……!”

“실수라도 하면 죽어요!”

<러시안룰렛>의 룰은 상당히 간단하다.

총을 한 발 장전한다. 딜러와 참가자가 돌아가며 각자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쏜다. 총알이 나오면 즉사, 총알이 나오지 않으면 생존이다.

문제는 이거다. 룰이 불공평하다는 것.

총에 어떤 장치가 달려 있는 건지 딜러는 총을 맞아도 죽지 않지만, 참가자는 사망한다.

만약 딜러가 총을 맞게 되면 참가자의 승리로 끝난다. 참가자가 이길 경우 딜러는 소원을 하나 들어주었다. 그것이 아무리 많은 금액이건, 귀족 작위건 상관없이.


“실제로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어요.”

“이 카지노에 대해서는 몰라도 카지노 안에서 벌어지는 러시안룰렛은 다 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의사를 굽힐 생각은 없었다.


“갠차나. 다들 걱정 마.”

“……”

“내가 하 꺼니까.”

“그게 제일 걱정돼요! 정 필요하다면 제가.”

“내가 하겠다.”

“저, 저도 있어요. 전 힐러니까…….”

다들 나 대신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던 나는 고개를 힘껏 저어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시엔이가 하 꺼야. 약속했잖아!”

그들을 데려올 때 나는 이미 그들에게 다짐을 받은 뒤였다.

내게 모든 계획이 있으니, 위험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믿고 지켜봐 달라고 했었다.

내 말을 상기한 듯 그들이 불퉁하고 걱정되는 낯으로 꼬리를 내렸다.


“……네에.”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겸사겸사 경매장에서 좋은 물품 있으면 주워서 전력을 레벨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둠의 경매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최고의 물건들이 나오곤 하니까.

나를 믿고 따라 주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기회이기도 했다.

***

나는 모두와 함께 캄캄한 내부로 들어섰다. 온갖 사람들이 즐비한 외부와 달리 이 공간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나는 긴장한 채로 살짝 심호흡을 한 뒤 어두운 공간 속 유일하게 존재하는 붉은 나무목, 그리고 그 위의 총 모양 마도구를 향해 걸어갔다.


“나와, 딜러.”

나는 총을 집어 들고 말했다.

총에서 약간 울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조금씩 불이 켜졌다.

편의상 총이라고 하지만 마도구여서 그럴 것이다.

이 세계에는 정교한 총은 없지만, 마법으로 된 총과 비슷하게 생겨서 유사하게 작동하는 마도구는 있었으니까.


“러시안룰렛을 하러 와써.”

캄캄한 어둠 속에 촛불이 켜지듯 불이 하나둘 완벽하게 켜지며, 벽 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어머나.”

그녀는 아름답게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와,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응시하며 짧게 감탄했다. 딱히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데도, 딜러에게는 그들의 역량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멜로디아에게는 성녀님을 뵙습니다, 라고 했으니까.’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안녕.”

“아아……. 이쪽이 참가하나요?”

“웅.”

“죽으러 온, 최연소 참가자?”

나는 그녀를 또렷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죽으러 온 사람이 어디써?”

나는 손에 쥔 총 모양 마도구를 흔들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이제 시작하까, 우리?”

다섯 살 대 성인.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

딜러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노래하듯이 속삭였다.


“게임이 시작되면 제가 패배 선언을 하고 당신이 원하는 걸 들어 드리거나, 당신이 죽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나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갠차나. 나는 계획이 다 있거든.”

내 계획을 모르는 애시드와 시녀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특히 애시드는 거의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특수 능력자인 힐러라기에는 불쌍할 정도로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정작 게임을 하는 나보다 더 덜덜 떨고 있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내 시선이 애시드에게 못 박히자 딜러 역시 내 눈길을 따라갔다. 그녀는 역시 이 음습한 카지노의 딜러답게, 다른 사람을 힐끔 보면 그자가 가진 능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아……. 힐러를 데려와서 이렇게 자신만만하셨던 거구나.”

딜러의 눈에 별거 아니라는 듯한 눈빛이 깔렸다.


‘그거 아닌데.’

굳이 오해를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내 자신감의 원천을 단단히 오해한 딜러는 피식 웃으며 애시드를 바라보았다.


“공주님, 힐러는 이 총으로 죽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요.”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승리할 예정인 사람이 혓바닥이 길 필요는 없다.

나는 거만하고 아주 무서워 보이도록 턱을 까딱했다.


“시작하쟈!”

“아아, 귀여워라. 네.”

그녀는 나를 향해 총 모양 마도구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먼저 하시죠.”

“사양하지 안으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나는 바로 총알을 장전했다. 그리고 곧장 조그만 머리에 총이 가 닿게끔 총구를 겨눴다.


 
그 모습이 아찔한지 주변에서는 히익, 하는 소리가 났다. 특히 근육 시녀 언니가 긴장한 탓인지 철푸덕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오직 대장만이 나를 바라보며 잇새로 자그마한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대장을 제외한 모두가 숨을 죽인 바로 그 순간.

나는 찰칵, 소리를 내며 장전된 총을 당겼다.

휘이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에는 죽지 않았다. 나는 내 머리 가까이에 닿았던 총구를 내려놓으며 딜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운이 좋으시군요.”

“웅.”

나는 간단히 대답하며 그녀를 응시했다. 딜러는 이 총이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걸 아는 눈치로 편안하게 총을 장전한 뒤 제 관자놀이에 쐈다.

휘이익.

역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끝이었다.

그녀는 내게 곧장 총을 건네주었다. 총을 건네받으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보기에 운이 조은 건 딜러 온니야.”

“그게 무슨.”

딜러가 찜찜한 낯을 한 채로 나를 응시했다. 이쯤 되면 그녀도 이상한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총을 꽉 쥐고 녹색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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