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배 좀 아프겠다?
성남 스톰 전.
FWX의 승리.
1세트의 POM은 스톰 탑 글로리였고.
2세트는 FWX 탑 팬시가 뺏어왔으며.
3세트는 권건의 울라프가 자리를 차지했다.
문봉구의 올 시즌 첫 POM이자.
프로 생활 전체를 통틀어 몇 안 되는 이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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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현 해설과 강기수 해설은 분석 방송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가 한 명 더 있었다.
현수진 해설.
선출은 아니었으나 입담이 좋아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현수진은 본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분석 방송에 함께 했다.
아직까지 7주차 경기가 모두 끝나지는 않았지만 방송에서는 각 팀의 동향을 쭉 훑은 뒤 마지막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니. 스킬을 다 맞춘다는 전제 하에 사기챔이 아닌 게 어딨어요? 스킬이라는 게, 빗나갈 가능성! 리스크가 있어야 그만큼 힘이 있는거거든요.”
“그렇죠.”
“근데 이걸 다 맞추잖아. 말이 돼요? 그러니까 지금 조심스럽게 이 선수가 진짜 신인이 맞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고.”
“신인이긴 하죠. ‘신’인 신인.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주된 토픽은 권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 탈리아 경기도 기억나세요? 트릭스터 전에서 탈리아로 드리블하면서 시간 벌어다 주는거. 그거 완전 창조 경제 아닙니까.”
“맞지. 나는 맞추고, 적은 못 맞추게 하기. 진짜 이건 사기에요. 말도 안되는 거래인거죠. 지불할 건 지불해야하는데 완전 이기적이잖아.”
“오더도 권건 선수던데요.”
“동현이, 아니 남동현 해설 말이 맞아요. 특히 큰 싸움 전에 오더를 너무 잘해줘. 그냥 엄청난 선수인 게 맞아요.”
“그쵸. 요즘 챔피언들 보시면, 헤크림, 자르반, 친 짜오.. 전형적으로 이니시를 해주거나.”
강기수 해설은 한 호흡을 쉬면서 권건의 데이터를 훑었다.
“리싱, 탈리아, 뽀비 같은 챔피언들로는 메이킹에 더해서 상황에 따라 이니시 역할도 하고.”
“나 뽀비 그거도 되게 재밌었어. 해설 잘하시더라. FWX에서 특타라도 하냐고.”
“하하, 그래요?”
“그나저나 FWX의 약점 중 하나가 그, 좀, 클래스 선수가 솔직히 이니시를 잘 하는 서포터는 아니거든요. 유틸폿같은걸로 라인전을 강하게 가져가거나 버티는 데에 강점이 있는 선수고. 이니시 하다가 꽝! 넘어질 때가..”
- ㅋㅋㅋ 클래스 요즘 짐 좀 덜음
- 솔직히 좋은 서포터는 아니지 B+급정도
- 이기고 있을 때만 잘함ㅋㅋㅋ
- 클래스 혼자 이니시 할 때 좋았는데 꽁킬;
- 라인전 뭉개기는 잘 하더라ㅋㅋㅋ
“뭐, 아무튼. 권건 선수가 딱 한 번, 그브 한 적이 있는데.”
“스톰 전 2세트요.”
“맞아요. 이 때는 팬시 선수가 그거 했잖아. 요른 앞플 박치기 이니시. 그런 거 보면서 이런 생각 들었어. 아, FWX가 이제서야 팀 합이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구나.”
“왜. 검사들끼리 서로 등을 믿고 맞댈 수 있는? 그런 느낌이죠. 우리 팀원들이 해줄거야. 좋은 이니시가 한타의 반 이상이잖아요.”
“나쁘게 보자면 FWX는 지금 한타 원툴. 근데? 그게 너무 강력한거야. 전보다 훨씬 잘 버티고 버티다가 확! 그래서 최근들어 사람들이 열광하는거고. 매드 무비도 계속 나오고.”
“요즘 FWX 밴픽도 그렇게 돌아가요. 하지만 못 막아. 한타를 아예 못하게 밴픽을 할 수는 없잖아.”
“근데. 그거 보면서 저 그런 생각했어요.”
“뭔데요?”
“스톰.. 배 좀 아프겠다?”
가볍게 웃던 해설들이 급히 웃음을 감췄다.
“아, 이런 이야기 좀 곤란한데.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 ㄹㅇ 설사 마렵다
- 붐보이 라방 나온거 보니까 막말ㄷㄷㄷ
- 옆에서 에단이 덜덜 떨던데 ㅋㅋ 말실수 할까봐
- 권건.. 스톰이 남긴 유산
- 분석파 해설들의 분석ㄷㄷ
“흠, 그럼 FWX. 플옵 가능성은 어때요?”
강기수가 마지막 화제를 던지자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와, 사실 진짜 어려운 이야긴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F.L.E가.. 미라쥬한테 진다고 가정하면. 이제 FWX가 8위인데.”
“근데.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것 보다도. 시즌 초에 몇 패였지, 8연패 하던 팀이 지금 플레이 오프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층 더 풍성해지는 LKL 시즌이 빌드업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거죠. 지금이 아니더라도 서머 때는 더. 권건 선수가 이 리그에 발붙인 지 얼마 안 됐잖아. 나이도 어리고.”
“일단 확실한 건 저 선수, 어느 팀에 가져다놔도 그냥 그 팀 자체의 가치를 올려 놓을 것 같아요.”
“맞아요. IF의 재미가 있지. IF.. 트릭스터에 갔다면..”
분석 방송은 밤늦도록 끝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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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KL) ‘진짜 태풍’ 대전 FWX, 성남 스톰 저지 (종합) ]
[ (LKL) 트릭스터 전은 우연이 아니었다? FWX, ‘연승 행진’ 4연승 축포 ]
[ FWX vs 스톰, 요른의 짜릿한 박치기 한 방.. 팬시(Fancy)의 ‘각성’? ]
[ 성남 스톰 불화설? “그런 일 없습니다” 김지훈 감독의 단언 ]
서서히 해외 포럼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 글로벌 캐스터 LKL “주목하라, FWX.” ]
[ 스톰을 잡은 권건(GwonGun)은 누구인가? ]
[ K서버의 돌풍! 뉴-타입 정글러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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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우리는 오랜만에 방송을 켰다.
FWX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기에 방송 시간과 일정이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계약 상 기본 방송 시간은 있다.
팬들에게 얼굴을 비치고 소통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니까.
“와우. 와우. 와아아우.”
스트리밍 룸으로 가면서 슬쩍 들여다보니 방송을 좋아하는 편인 곽지운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청자 수 때문이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시참도 해야지!”
방송.
나는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사실 방송 시간과 연습 시간이 그리 다를 바 없다.
지금은 빅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기도 했지만 팀이 유례없는 상승세다보니.
하락세라 방송이 취소되는 것 보다는 반가운 이야기다.
“뒤에 있는 사람이요? 아, 건이. 우리 팀 정글러. 탈리아 초고수.”
곽지운은 내 탈리아가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 권건 왜 방송 안 켜!!!!
- 오빠 잘 생겼어요 (덜렁덜렁)
- 야 지금 말걸어!!! 자기 방송에선 아무 말도 안해
- 다른 애들이랑 보이스라도 켜고 하면 안됨? 제발
“이따가 듀오할래?”
“저 본계로만 돌려서.”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 듯 했다.
- 방송할 때도 본계ㄷㄷㄷ 자신감이죠??
- 역시 갓건..
- 랭킹 1위 무너지면 어캄?
- 점수 넉넉합니다 :D
- 우리의,, 자랑,, 국위,, 선양,, 1위,, !! 외세에,,맞서는,,
- 지금 최고 기록 레전드 갱신 중;;
“우연히 만나면 보이스 켤게요.”
“오키, 오키. 이제 빨리 가. 팬분들 기다리시겠다.”
곽지운은 밝게 웃었다.
방송을 많이 좋아하나?
뒤에서 들려오는 시청자들과의 몇 마디가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 저요? 저는. 그.. 저 짝에. 사실은 쯔이님이랑 묘묘님.. 우열을 가릴 수가.. 하, 여러분덜. 외국인 취향이냐뇨. 아임다. 아 형님덜!! 그런거 아임다.”
문봉구는 큐를 돌리고 최애 걸그룹 덕질 토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음악은 구수한 트로트다.
“형님덜. 차분허게 들어보세요. 탑이라는 장소는.. 명상, 명상의 거.. 머시냐. 진또배기들의 땀내나는..”
나는 발길을 돌렸다.
“르블란 룬이요. 자세히 보여드릴게요. 상대에 따라 다르긴 한데 저는..”
김예성은 차분하게 설명하는 부류.
게임에서는 말이 없는 편이었는데 방송할 때는 다르다.
시청자들이 돈을 쓰지 않아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고 대답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야야야, 건아!”
이제 막 스트리밍 룸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최은호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왜 내 방에만 안와. 빨리.”
최은호는 다급하게 나를 이끌었다.
“뭐 좋은 말 좀 해주고가라. 제발.”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건이 데려왔어요!”
최은호는 빠르게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내 팔을 놔주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했나?
“안녕하세요.”
- 건하ㅋㅋㅋ
- 클래스ㅋㅋㅋ다급한 목소리 다 들렸어ㅋㅋㅋ
- 왜 자기만 그냥 지나가냐고ㅋㅋㅋ
- 친하다며ㅋㅋ 안 친한거 아님?
“절대 그런 거 아니구요. 저 건이랑 되게 친해요. 봐봐. 그치?”
처음 만났을 때는 대선배처럼 굴며 친추하자던 최은호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어 뭐야 웃는다
- ㅅㅂ;; 뭔 일 나는 거 아님?
-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
“제가 진짜 건이 건강지키미거든요. 얘 진짜 뭘 거의 안 먹어요. 뭐 갖다주기 전까지는 군것질도 안하고.”
- 위키 한 줄 추가..
- 헉ㅠㅠ 단 거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ㅠㅠ
“과일은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건이 데려왔어요!”
후원이 터진다.
아, 자본주의 아시는구나.
너무 소소한 금액이라 또 다시 웃음이 나왔다.
- 어!!! 또 웃는다!!!
- 야 돈 주니까 웃는다!!! 코인 좀 더 넣어봐!!
- 머야?? 머야?? 자낳괴였어??
- 근데 여기 권건방 아닌데
- 작동 원리 어캐되는건데;; 알려줘 제발
후원이 연달아 터진다.
모두 소액이었지만 최은호는 아주 즐거워했다.
“와우! seirbon87님, vgb1225님..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이제 방송 켜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땡큐, 응! 커피 필요하면 내 방송 와서 말해!”
나는 그냥 손에 들고 있는 따뜻한 커피를 흔들어보였다.
최은호는 눈을 찡긋하더니 금세 시청자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게임은 천천히 할 생각인가보다.
자리에 앉은 나도 방송을 켰다.
- 악 드디어
- 기다렸어(이모티콘)(이모티콘)(이모티콘)
- 제발 블츠정글 제발 블츠정글 한번만
“안녕하세요.”
- 찌세(zzise_332) 님이 987명의 시청자를 보냈습니다
- 빅스 꼭 밟아주세요
정체 불명의 팬은 오늘도 시청자를 보내왔다.
관전방이라는 것 같던데.
많이 커진 것 같다.
- 후원하면 웃어주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 이거 돈주면 어디로 들어가요? 구단??
- ㄴㄴ 선수한테 들어감 근데 지금 못줌
- 왜요??
- 건건이 막았음···
- 왜..? 웃게 해주고 싶은데 웃질 못하니..
- 후원 풀어줘.. 제발..
- 또또.. 실력 방송하지.. 또..
- 그저 캠 달린 관전방..
내 방송은 여전히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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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박진현 감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들은 모두 동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연습실은 텅 비어있었다.
다만 방금 전 진행한 면담.
뜻밖의 소식에 마음 속에 묘한 감정이 뭉실거렸다.
“한빛아. 어떻게 해야할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김한빛 코치는 말을 한참 골랐지만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팀은 상승세였다.
모두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팀을 이기고.
말도 안된다고 했던 일들을 이뤘다.
이제서야 전체적인 호흡이 정렬되고.
이제서야 틀어졌던 톱니바퀴들이 제대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FWX가 추구하고자 했던 ‘요람’ 정책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어느 순간 자식이 다 자라버린 것과 같은 기분이 이럴까.
그저, 감코진은 다음 주에 다가올 경기를 또 다시 준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금방 끝나버릴지도 모를 스프링 시즌의 끝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