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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7)화 (1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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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용의 성채

사이프카르가 돌아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그녀가 돌아오자 부하들은 우렁차게 그녀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누님!”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해. 어휴, 쓸데없이 시간만 날렸네.”

그녀는 부하가 건네준 수건을 받았다. 그녀의 뺨에 섬뜩한 피 한줄기가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전후사정을 전해들은 부하들은 그 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잠은 다 잤네. 그보다 카르안 그 녀석은 어디 갔어?”

“그, 그것이.”

부하 한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님은 러슬라이 형님이랑 잠시 나가셨습니다.”

“나갔다고? 이 시간에?”

밥을 먹으러 간 것은 아닐 것이다. 저녁이 한참 지난 시간. 포션을 만들어 놓으라고 했더니 갑자기 밖은 왜 싸돌아다닌단 말인가. 그녀의 고운 이마에 핏줄이 빡 섰다.

“어쭈. 이놈이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우동사리처럼 풀어졌구만. 기어코 오늘 피를 두 번 봐야겠어.”

“지점장님. 진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

황급히 부하 한명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는 사이프카르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부하의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뭐? 다 끝냈다고?”

2.

‘달의 눈물’ 5병. 없으면 그 C급 이하의 포션으로 20개정도 구해 와라.

러슬라이에게 전한 쪽지다. 꼭 카르안같이 마나가 적은 연금술사가 아니더라도, 대규모의 연금술을 펼치려면 마나 포션이 필수적이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촉매제는 필요 없으신가?’

러슬라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지식으로 촉매제는 연금술의 또 다른 필수품. 연금술사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도구였다.

마나 포션만큼이나 자주 쓰이는 물건.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카르안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면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러슬라이는 서둘러 시내로 향했다. 연금술 길드에 가야한다. 잠시 후 그는 포션을 넉넉히 사들고 사무실에 돌아왔다.

그런데 재료의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엉?”

“이제 왔냐. 빨리 내놔. 일 끝내야 하니까.”

“형님. 재료가 좀 줄었습니다.”

카르안은 말없이 책상 한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새하얀 가루들이 병에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건 마나소모가 덜 하니까. 금방 만들 수 있어.”

“그러면 이게 전부........”

러슬라이가 말을 잃었다. 재료들이 어디로 사라졌나 했는데, 이미 연금술을 마친 것이다. 굉장히 빠른 솜씨.

“나가서 일 봐. 누가 있으면 정신 사나우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는 포션을 올려두고 카르안의 작업실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얼떨떨했다.

‘저게 가짜......일 리는 없고. 하아.’

카르안이 그를 뭐 하러 속이겠는가. 방 안에서는 연금술을 위한 것인지 요란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결국 카르안이 방에서 나온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과도한 집중력과 마나 소모로 몸이 땀에 잔득 젖어있었다.

“여기 목록에 있는 것은 대부분 만들었다.”

카르안이 종이를 한 장 건넸다. 그가 만든 포션과 약을 정리한 표다. 부하들은 그것을 신주단지마냥 조심스럽게 받았다.

“뭐, 너무 급하게 하는 바람에 실수도 했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실수라면.......”

“재료를 조금 날려먹었지. 아, 많지는 않아.”

카르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조적인 미소. 스스로도 민망한 것 같았다.

“분명 누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특별한 일도 아니고.”

제이크가 얼른 말했다. 실제로 연금술사들이 사고로 재료를 날려먹는 일은 제법 흔했다. 딱히 이상할 게 없는 일. 다만 러슬라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많은 포션을 순식간에 만들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지셨는데, 실수라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 카르안이 뭘 얻는다는 말인가. 쓸데없는 의심이었다.

그때 카르안이 잠시 비틀거렸다. 러슬라이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그를 부축했다. 신경 깊숙이 각인된 충성심(아첨 본능) 이었다.

“흐흠. 간만에 무리를 했더니 좀 피곤하네. 한 시간 정도 눈 좀 붙여야겠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아무리 부지부장이라고 해도 대놓고 잠을 자는 것은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었다. 안 그래도 카르안은 이 자리에 부임한지 일주일도 안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카르안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큰일을 해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자건 탭댄스를 추건 그의 자유였다.

“그리고 러슬라이하고 제이크는 좀 있다가 나랑 같이 좀 나가자. 볼일이 있으니까.”

“그러면 시간을 비워두겠습니다.”

카르안은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책상 위에 엎어졌다.

별일 없이 일이 끝났다. 그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3.

“뭐, 포션은 잘 만들었으니 상관없지만.”

사이프카르는 카르안이 적어놓은 목록을 읽어보았다. 확실히 특이한 연금술을 쓴다 했더니, 훨씬 싼 재료로 쓸 만한 약들을 잔득 만들어내었다.

“그나저나 어디를 간 거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 간다고 말씀을 안 하시고 나가셔서.”

“끄응. 아무튼 그 녀석 오면 내 방으로 불러. 그리고 약이랑 회복포션 구분해서 보관하고.”

그녀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오늘 일을 손도 대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해 놔야 나중이 편해진다. 다행이 사이프카르는 악마와 인간의 혼혈. 며칠 정도는 밤을 새워도 아무 이상 없었다.

그 시간, 카르안 일행은 공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르안은 바쁜 일이 많아서 한 가지 잊고 있었다. 그는 아직 휴가 중인 노동자였다.

“그만 둔다고 말은 해야지.”

당연히 그 일을 계속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이별 인사 정도는 해야 되었다. 그런 이유로, 카르안은 직접 그가 일하던 곳을 찾았다.

알샤인 교단의 신전.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의 동료들, 그리고 한스였다. 한스는 뭐라고 크게 소리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이 늦게 끝난 건 카르안 그 새끼 때문이라고! 미친놈이 휴가가 끝났는데도 오질 않잖아!”

반면 동료들의 표정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카르안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아직까지 일을 한 것인가.’

하늘에서 해가 떨어진지 오래다. 당연히 일할 시간은 한참 초과. 그런데 지금 그들은 일이 막 끝난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한스는 카르안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동료들을 더욱 혹사시켰다. 어떻게든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물론 본인이 일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져 있었다. 술을 잔득 마신 듯 했다. 일이 길어지자, 중간에 슬쩍 빠져 술집에 들린 것이다.

“어? 저게 누구야.”

그의 눈에 카르안이 들어왔다. 옆에 웃기게 생긴 대머리와 주황머리가 서 있었는데,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잘 안보였다. 한스는 반가운 표정으로 카르안에게 다가갔다.

“야~ 우리 카르안씨! 얼굴이 뽀사시한게 아주 휴가가 즐겁나봐? 덕분에 니 동료들은 죽어 가는데.”

한스가 세상에서 가장 짜증나는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카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연 한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며칠 쉬더니 니가 뭐하는 놈인지도 잊어버렸냐?”

그가 카르안뺨을 치려했다. 그 순간 누군가 한스의 손을 막았다.

“이 새끼 정신병 있나? 왜 웃다가 갑자기 주먹질이야?”

제이크였다. 그는 급하게 한스의 주먹을 낚아채었다. 한스는 그를 보자 얼굴을 팍 구겼다.

“넌 왜 대가리에 오랜지를 쓰고 있냐? 이거 놔 이 새끼야!”

한스가 주절거렸다. 그의 술주정은 상당히 안 좋은 편이었다. 어이없어하는 제이크. 한스의 돌발행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아악 퉤!”

미지근한 가래침이 제이크의 얼굴에 탁 달라붙었다. 동시에 제이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제야 좀 어울리는구나! 히히히.”

“아이고.”

러슬라이가 고개를 저었다. 제이크는 한번 화가 나면 말릴 수가 없다. 그야말로 불같은 성격. 그래도 그는 카르안 앞이라고 바로 검을 꺼내지는 않았다.

‘형님.’

‘그냥....... 때려도 괜찮아. 그래도 죽이지는 마라........’

제이크와 카르안이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동시에 제이크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파아아악!

“어어어억!”

“이게 누구 얼굴에 침을 뱉어!”

한스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제이크는 그 위에 올라타서 미친놈처럼 주먹질을 해댔다. 그야말로 지옥의 파운딩이었다.

“술주정이 심한가본데, 내가 무료로 교정해주지!”

끔찍한 물리치료였다. 카르안은 물론 러슬라이마저 눈을 슬쩍 돌릴만큼. 정신없이 얻어터진 한스는 술기운이 싹 달아났다.

“제, 제성한니다........”

한스가 입만 뻐끔거렸다. 주변 동료들은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힘깨나 쓰던 그가 반항한번 못해보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워낙 양아치 같아서 그렇지, 제이크도 기사급 실력자다. 하는 짓도 웃기고 헤어스타일도 웃기지만, 주먹질은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후우. 형님. 이놈은 뭐하는 놈입니까?”

눈탱이 밤탱이가 돼서 무릎 꿇고 있는 한스를 앞에 두고, 제이크가 물었다. 카르안은 괜히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옛날 상사야. 저, 한스씨. 사표 내러 왔습니다.”

“그, 그렇숩니꽈.........”

한스가 이상한 발음으로 말했다. 입을 잘못 맞은 것 같았다. 카르안 그런 한스에게 다가갔다. 한스는 그가 한걸음 다가올 때마다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두니까 하는 말인데, 친구들 좀 괴롭히지 마세요. 정시출근, 정시퇴근. 그리고 본인이 성실하게 일하고.”

“예. 예.”

“이 자식. 형님 말하는데 대답에 성의가 없어!”

러슬라이가 으름장을 놓았다. 한스는 억울한 얼굴로 그들을 올려다봤다. 길게 말하고 싶어도 입이 안 움직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무튼 한번만 더 눈에 띄면, 흑사회가 네놈을 아주 밣아버릴 테니까. 그리 알아.”

‘흑사회!’

한스의 눈이 커졌다. 술기운과 폭행으로 흐릿했던 시야가 순식간에 선명해졌다. 카르안과 괴한 두명이 입고 있는 옷. 흰 옷에 검은색 용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저 옷을 입을 사람은 한 종류밖에 없다.

‘흑사회의 조직원이 된 건가!’

한스는 얌전히 고개를 조아렸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게 살자는게 그의 인생철학 이었다.

“카르안.”

“아아.”

옆에서 보고 있던 동료들. 그들이 다가왔다. 같은 방을 쓰던 동료들. 카르안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엄청 오랜만에 만나는것 같네.”

“며칠 안 됐는데 말이지.”

동료들의 카르안 뒤의 남자들을 보고 조금 위축되어 있었다. 대화가 영 이어지질 않는다. 어쩐지 어색한 분위기.

“음. 휴가를 나간다는게 그런 이유였나.”

“보다시피. 그렇지 뭐.”

“엉뚱한 녀석.”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카르안은 그들의 표정을 둘러봤다. 아쉬움. 놀라움 등의 여러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러면 이제 보기 힘들겠군.”

“뭐, 멀리 가는것도 아닌데. 옛날 만큼은 못 보겠지만.”

“새끼, 성공했구나.”

동료 한명이 과장되게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잭, 카르안과 유독 친하게 지내던 사내였다.

‘이걸 성공이라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지내라. 항상 몸조심, 건강조심하고.”

“너나 술부터 줄이고 이야기해라.”

“알겠네. 알겠어. 그러면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지.”

카르안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동료들과 한명씩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기억이 없지만, 오랫동안 일한 동료들이다.

이제는 없는 카르안의 기억. 하지만 이들과 헤어진다니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친한 친구를 두고 멀리 이사가는 기분.

“나중에 무슨일 있으면 와서 말해.”

“크하하. 나도 이제 빽이 생긴 건가. 어디가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겠군!”

“쯧쯧. 넌 그런 생각밖에 못하겠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카르안은 흑룡회 사무실로 돌아갔다. 씁쓸함과 후련함이 섞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돌아가자 사이프카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 없이 카르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뭐 하다 이제왔냐?”

평소와 같은 목소리, 다행히 질책하는 듯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카르안이 말했다.

“사표.......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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