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18)화 (1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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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용의 성채

“아무튼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런 귀한 것을 막 찍어대다니. 신기하긴 하네.”

그녀가 마약이 든 병 하나를 손에서 빙빙 돌렸다.

“그나저나 품질 확인은 한번 해 봐야겠어.”

“물론입니다.”

카르안은 자신이 있었다. 연금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포션과 약을 잘못 만들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확인은 어떻게?”

“뭐, 맞아보면 알겠지.”

카르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약 품질을 검사한다며 직접 맞는 것은 어리석은 짓. 누구보다 카르안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카르안은 전생에 마약을 팔고 다녔지만, 그 마약을 직접 즐긴 적은 거의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부하 한명이 그녀에게 주사기를 건넸다. 사이프카르는 약 하나를 골라 주사기를 채웠다. 투명한  액체가 주사기를 타고 올라갔다.

“하아. 그러면 어디 우리 연금술사님 작품좀 볼까.”

그녀가 카르안을 올려봤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어둡다는 것을 눈치 챘다. 잠시 카르안을 살피던 사이프카르가 씨익 웃었다.

“설마 너 내가 뽕맞고 정신줄 놓을까봐 걱정하는 거냐?”

“으흠.”

카르안이 헛기침을 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걱정 마. 나는 혼혈이라 이런 거 맞아도 건강 걱정 없거든.”

악마와의 혼혈. 그녀는 반은 악마이고 반은 인간이었다. 덕분에 마약을 맞더라도 거기에 대한 내성이 훨씬 강했다. 덕분에 중독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주사기를 꾸욱 눌렀다. 섬세한 공정을 거쳐 완성된 액체가 그녀의 정맥을 타고 심장을 향했다.

사신의 키스. 최고급 마약이다. 짜릿한 오르가즘과 끝없이 기분을 업 시켜주는 물건. 놀기 좋아하는 귀족들 사이에서 도는 것이다.

사이프카르의 눈이 살짝 풀렸다. 강렬한 쾌감. 마약은 그녀의 심장에서 힘을 얻어 온 몸으로 펴졌다. 그리고 온 몸의 신경 하나하나를 전부 유린했다. 카이프카르가 살짝 몸을 떨었다.

“이거 진짜 죽여주는데.”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들뜬 얼굴이다. 사이프카르라는 여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다.

“흠. 효과는 확실한 것 같군요.”

어지간한 약으로는 짜릿함을 못 느끼는 사이프카르다. 그런 그녀가 저렇게 좋아한다면 확실한 것이겠지. 그녀는 더운지 윗옷을 집어던져 버렸다.

“하아.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야릇한 목소리. 카르안과 러슬라이, 제이크 모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평소에 색기 넘치는 보스였지만, 이정도로 노골적인 것은 처음이다........

사이프카르가 더운 숨을 내뱉었다. 방의 공기가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러슬라이에게 다가갔다.

“후후. 우리 귀여운 곰탱이.”

“허어억!”

그가 죽는 소리를 내었다. 사이프카르가 그의 목을 끌어안은 것이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마치 잘 익힌 문어처럼 보였다.

사이프카르는 귀엽다는 듯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몽로(夢露)에 가야겠다. 꽃미남들 대기시켜놔.”

“예에?”

몽로는 흑룡회에서 관리하는 요정. 카르안이 그녀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

모두들 김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아쉬움에 가득 찬 얼굴들.

“뭐야? 얼른 연락해 둬. 통신마법 있잖아.”

“아, 알겠습니다.”

명을 들은 러슬라이가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모습이 더 없이 슬퍼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이프카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너희들 설마 내가 너희들한테 뭔 짓이라도 할 줄 알았냐?”

“아, 아닙니다.”

모두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웃긴지 한참을 웃어대었다.

“꿈 좀 깨라. 죄다 무슨 오크전사들처럼 생겨가지고. 특히 카르안, 너는....... 연예하고 싶으면 초록색 분칠하고 오크 부락에 가야될 걸?”

“누, 누님.”

제이크가 카르안의 눈치를 보았다. 약기운 때문인지, 농담이라도 말이 너무 심했다. 아무리 그녀가 지부장이라도 카르안의 입장이라는 게 있었다.

“아냐....... 괜찮아.”

카르안이 우울하게 말했다. 뜬금없는 팩트 폭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놀러간다~ 남은 일은 회계사들한테 전부 맡겨 놔.”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모두들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밖을 향했다. 그녀 주변으로 흑룡회 조직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경호를 위해서다.

평소에는 경호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약에 취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는 조직원들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며 요정으로 향했다.

사이프카르가 빠져나가자, 남은 것은 몇몇 조직원과 카르안, 러슬라이, 제이크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한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근데, 솔직히 내가 그렇게 못생겼냐?”

“그럴 리 있습니까! 형님은 그러니까......... 아주 남자답고, 또 남자가 반할만한 사나이다운 그게........”

러슬라이가 버벅거렸다. 척추반사에 가까운 아부본능으로 입을 열기는 했는데,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카르안은 한숨을 쉬며 제이크를 쳐다봤다.

“흠흠. 분명 형님이 꽃미남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꿀릴 얼굴은 아닙니다.”

그가 제법 그럴싸하게 말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분명 외모가 아닌 진심어린 마음을 보는 여자도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본 적은 없지만.”

“에휴. 이일을 어쩌냐.”

카르안은 가슴이 꽉 막혔다. 생전에 외모에 별 콤플렉스가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 얼굴로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는 벽에 달린 거울을 쳐다봤다. 한숨부터 나왔다. 아무리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일단 이 얼굴은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못생긴 것이라면 신경 쓸 일도 없겠지만........ 못생기다 못해 보기 흉할 정도라면 도저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젠장, 여기는 성형외과도 없잖아.’

한국이었으면 강남에서 다시 한 번 태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는 성형기술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흉터나 화상 자국을 조금 지워주는 정도밖에. 원판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

“저기 형님. 제가 혹시나 해서 알아본 정보가 있습니다.”

러슬라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굉장히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생명과 의술의신. 뮤프리드라는 신이 있습니다.”

“그 신이 뭘 하는데?”

카르안이 귀를 기울였다. 러슬라이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신에게 재물을 바치면, 아무리 못생긴 얼굴이라도 선남선녀로 만들어 준답니다.”

3.

“그게 정말인가?”

카르안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막힌 가슴이 뻥 뚫린 기분.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다. 카르안이 보기 드물게 흥분하자 러슬라이도 덩달아 기뻐했다. 간만에 준비해놨던 정보가 먹힌 것이다.

“물론입니다. 요즘 각 국의 귀족 아가씨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해요. 덕분에 뮤프리드 교단이 아주 잘 나간다고......”

“그 뮤 뭐 시기 하는 놈의 신전이 우리 백작령에도 있나?”

“아쉽게도 여기는 없습니다. 다만.......”

러슬라이가 품속에서 지도를 꺼냈다.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세계지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각 나라들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뮤프리드 교단의 대신전이 저희나라, 특히 알페라츠 백작령과 가깝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고치려면 대신전에서 교주에게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지도 한 곳을 동그라미 치며 말했다. 지도에는 세계에 퍼져있는 뮤프리드 교단의 신전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실로 철두철미한 준비였다.

러슬라이는 카르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보를 모은 것이다. 분명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비무한. 결국 준비해 둔 자만이 더욱 영양가있는 아부를 떨 수 있었다.

“흐흠. 하긴 중요한 일이니 대신전으로 가야겠지.”

카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전은 그 신앙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신을 믿는 교주가 직접 관리하는 곳이기도 했다.

“마차를 타면 가는대만 1주일 정도 걸릴 것입니다.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당장 가고 싶었는데 아쉽군.”

카르안은 입맛을 다졌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휴가를 쓸 수도 없는 노릇. 조직에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쉰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고맙다. 그런 것도 다 알아봐주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다들 수고했다. 일없는 사람은 가 봐.”

“예!”

카르안은 대충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그도 이제 딱히 할 일이 없다. 사이프카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는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카르안은 남아있는 서류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역시 집이 좋아.”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완전히 그만의 공간이다. 도청도, 감시도 불가능하고 보스와 사이프카르를 제외하면 누가 들어올 수도 없다. 그는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개운한 기분. 찝찝하던 땀이 다 씻겨나갔다. 그는 편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었다. 그리고 손의 문신을 한번 문질렀다.

근력: 25

체력: 19

물리저항력: 11

마법저항력: 2

마나: 11

‘많이 오르지는 않았군.’

근력이 2, 체력이 1, 마나가 1 올랐다. 그는 입맛을 다졌다.

오늘 그는 부하들에게 ‘실수로 재료를 조금 날렸다.’ 고 했다. 틀린 말이었다. 그는 실수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저 사이프카르가 주문한 것과 조금 다른 포션을 만들었을 뿐이다.

E급 강화포션들.

강화포션은 회복이나 해독 포션에 비해 만들기 까다로웠다. 떨어진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것보다, 체력을 영구히 올려주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카르안이라도 좋은 재료 없이 고급 강화포션을 만들 수는 없다. 그나마 마약을 만든다는 핑계로 쓸 만한 재료를 몰래 사용한 것.

강화포션의 재료는 가격이 상당했다. 지금 그의 월급으로도 부담이 될 정도니까. 그래서 그는 남들 몰래 조직의 재료를 사용했다. 걸리면 큰일 나겠지만, 세상일은 안 걸리면 그만인 것이다.

“하아. 정신없네.”

카르안은 침대에 푹 쓰러졌다. 푹신한 감촉이 기분 좋게 그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착잡했다. S급 강화 포션에 비해 약빨이 너무 떨어진다.

“다른 거 뭐라도 배워볼까?”

뭘 배워도 나쁘지는 않았다. 근력이 강해져서 검술을 배우기도 좋았고, 마나량을 늘려서 마법을 배워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

“역시 연금술을 배우는 게 효율적이지.”

연금술은 포션 제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골렘 생성, 생명체 창조등. 온갖 것들이 가능한 종합 학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것은 몰라도, 연금술에 한해서는 재능이 꿈틀대고 있었다.

검술이나 마법에 비해 훨씬 금방 익힐 수 있으리라. 전공 분야인 포션제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차 대신 골렘이라도 타고다니면......... 나름 재미있을거 같기도 하고........’

그는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수마가 그의 눈꺼풀을 짓눌렀다. 그는 느긋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3.

“가봐.”

“예?”

“뮤프리드 대신전 말이야. 너 가고 싶다며. 러슬라이한테 다 들었어.”

다음날 아침. 사이프카르가 출근하자마자 한 말이다. 카르안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거기가 동네 빵집도 아니고, 가는대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아, 긴말 하지 말고 가라니까. 너 예뻐서 상 주는 거야.”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모습. 어쩐지 그녀는 허둥대고 있었다.

“마음 변하기 전에 가는 게 좋을걸? 빨리 정해. 오, 사, 삼, 이.......”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하아, 그러게 말이다.”

그녀는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 약 파는 것도 가르쳐야 되고, 할 일이 많은데. 쯧. 아무튼 빨리 다녀와. 그리고.”

사이프카르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 부하들 앞에서 개쪽 줘서 미안하다.”

‘아.’

카르안은 어제 일을 떠올렸다. 둘만 있을때도 아니고, 직속 부하들이 보고 있었다. 원래라면 사이프카르도 적당히 선을 지키겠지만, 문제는 약 때문에 잠깐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 그녀도 도저히 자신의 혀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이프카르 나름대로의 사과이리라. 그녀는 금화 주머니를 건냈다.

“이건?”

“얼굴 고치려면 돈 들거 아니야.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충 금화 10개 정도면 되겠지.”

“이런 것을 받을수는 없습니다.”

“주는 거 아니야 새끼야. 다음 달에 월급 나오면 바로 갚아라?”

“네. 감사합니다.”

카르안은 고개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예상외의 기회에 가슴이 뛰었다.

‘미남, 아니, 예전의 얼굴로만 돌아가도 좋다.’

카르안은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외모에 신경을 안쓴다고는 했지만, 미남이 될수 있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러슬라이!”

“예.”

“당장 뮤프리드행 마차를 알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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