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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6)화 (1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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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용의 성채

“아직 어린 아이잖아요! 다 큰 어른 셋이서 부끄럽지도 않나요?”

긴 금발, 선해보이는 얼굴. 새하얀 법의. 성녀 뮬리펜이었다. 그가 이 세계에 온 날, 처음으로 상처를 고쳐준 장본인.

“이건 우리 일이요. 상관하지 마시오.”

러슬라이도 당황하고 있었다. 단순한 시민이라면 문제될 것도 없지만, 뮬리펜은 선과 빛의 신, 알샤인의 성녀. 도저히 무시할 위치가 아니다.

“우리의 일?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신들 밖에 없어요.”

소녀가 뮬리펜에게 달려갔다. 성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소녀를 안았다. 소녀는 성녀의 품 안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거기 당신! 왜 뒷짐을 지고 서 있나요. 어서 사과하지 않고!”

‘할거야. 당신 모르게. 나중에.’

속으로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그는 뮬리펜에게서 등지고 서 있었다. 성녀가 카르안을 바라본 순간, 그는 얼른 뒤로 돌아섰기 때문.

‘젠장.’

반사적인 행동. 저 성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위선적인 짓이다. 정말 그러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흑룡회에 가입 따위는 하면 안 되었다.

그냥 사실이 들통 나는 것을 조금 미루고 싶었다.

‘바보같은 여자.’

그보다 뭐 하러 저렇게 나서는가. 아무리 성녀라도 흑룡회에게 찍히는 순간 목숨이 위험하다.

뮬리펜도 바보가 아니다. 흑룡회의 악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카르안에게 흑룡회에 대한 정보를 준 게 그녀였으니까.

“일은 끝났고, 더 볼일 없소. 형님! 갑시다!”

“제가 바보로 보이나요? 나중에 가서 복수할 거잖아요!”

‘그럴 생각은 없는데.......’

오해하는 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카르안과 러슬라이, 제이크. 세명을 제외하면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려고 일부러 협박까지 한 것이니까.

‘일이 커지는군.’

이제는 서로 물러나기도 애매했다. 성녀는 처음부터 물러날 생각이 없고, 그들이 사과해도 자존심에 금이 간다.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이봐요. 아가씨.”

보다 못한 제이크가 나섰다. 그는 품에서 조그마한 단검을 꺼냈다.

“그냥 조용히 넘어 가요. 예쁜 얼굴 상하기 싫으면.”

러슬라이와 달리, 그는 거침이 없었다. 단검에 위협적으로 푸른 오러가 서렸다.

카르안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정도면 대부분 겁먹고 도망간다. 약간 귀찮기는 했지만, 확실한 해결법. 저 여자도 겁을 먹고 물러나리라.

“하, 항상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했던 거군요.”

예상 외였다. 그녀는 겁먹은 눈으로도 물러서지 않았다. 맹수 앞에서 새끼를 지키려는 초식동물 같은 모습. 평소 착하고 순진한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저렇게 나오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일단 뮬리펜이 성녀인 이상.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할 수도 없다.

‘젠장. 확 그냥 회를 떠버릴까.’

제이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뒷짐을 지고 있던 카르안이 몸을 돌렸다.

“뮬리펜. 접니다.”

“당신은........ 카르안씨?”

뮬리펜이 깜짝 놀랐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인물이다.

“보시다시피.”

카르안은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뮬리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카르안은 순박하고 건실한 남자였다.

“거, 거짓말. 대체 왜?”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건 연극 의상이 아니니까.”

흑룡회의 간부를 상징하는 옷. 뮬리펜도 알고 있는 물건이다. 카르안이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반면 뮬리펜는 충격이 컸다. 그녀에게 카르안이 단순한 인부가 아니었다. 카르안은 그녀를 본지 몇일 안 되었지만, 그녀는 1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니까.

불치의 병과 가난함을 안고도 성실하게 사는 남자. 비록 술집에 돈을 쓰긴 했지만, 그것은 상처를 달래는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뮬리펜은 그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카르안이 돈이 없을 때마다 조용히 그의 약값을 지불해 준 것도 그녀였다. 축복받지 못한 삶이라도, 노력하다 보면 분명히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카르안이 흑룡회의 간부가 된 것이다.

뮬리펜에게는 카르안이 어떻게 간부가 되었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대체, 왜?”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만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방금 전에는 순수한 의문 이었다면, 지금은 짙은 실망감이 깔려있다.

“더 많은 돈을 위해서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단순히 그 뿐만은 아니었지만. 카르안은 짧게 말했다.

10년 후에 안식의 뭐시기 하는 신이 쳐들어오고,

그 때문에 세계가 멸망 할수도 있으니까 힘을 키워야 한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해 봐야 정신병자 취급만 당할 것이다.

게다가 카르안이 흑룡회에 들어온 것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이었다. 비록 더러운 일에 몸담게 되었지만, 거짓말로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뮬리펜에게는 말이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요.”

뮬리펜이 작게 말했다. 그런 성녀 앞으로, 카르안이 걸어갔다. 그녀는 몸을 작게 떨었다.

“제 이름을 걸고, 복수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 주세요. 뮬리펜 성녀.”

“......그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에요.”

“그러면, 대체 무슨 말을 원한 것입니까.”

성녀는 말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답. 사실 뮬리펜도 카르안도 그 답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침묵할 뿐.

“당신이 말했죠. 타인에게 도우며 살다보면, 언젠가 타인이 당신을 도울 것이라고.”

카르안이 말했다. 뜬금없는 이야기였기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성녀, 뮬리펜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정성들여 키운 꽃이 당신에게 향기를 선물하는 것처럼.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물론 당신처럼 축복받은 인생은 다르겠지만.”

최강민과 카르안. 그 두 명은 행복한 인생과 거리가 멀었다. 카르안만 해도 연금술사의 지식을 얻지 못했다면, 불치병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평생 고통에 시달리다

오직 저 순진한 성녀의 눈물만을 노잣돈삼아 떠나갈 것이다.

또한 최강민은........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거에요.”

“그럴 수도 있겠죠.”

카르안이 작게 말했다. 분득, 적막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그는 수건을 상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럼 이만. 그리고 다시는 무모한 짓 하지 마십시오.”

카르안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멍하니 있던 부하들도 황급히 그를 따랐다.

반면 뮬리펜은 움직이지 못했다. 몸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품 안에 소녀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형님. 저 성녀와 아는 사이였습니까?”

“별 사이는 아니었어.”

카르안이 말했다. 그때 눈치를 보던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역시 부대장님 이십니다. 성녀도 부대장님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군요.”

“야야.......”

러슬라이가 그를 툭툭 건드렸다. 지금 카르안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그가 보기에는 농담이나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제이크.”

“예?”

“나중에 좀 보자 새끼야.”

제이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를 보며 러슬라이가 혀를 찼다. 저래서 눈치 없는 놈들은 답이 없었다.........

2.

카르안은 이틀이 지나서야 재료를 만질 수 있었다. 그 동안은 하는 게 없어 영 지루했는데, 이제야 손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알아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의 상사 사이프카르가 예상 이상으로 똑똑하다는 것. 그는 조직의 행정적 업무를 전부 체크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도 사람이다. 모든 행정을 혼자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자기 손으로 꼭 처리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분량.

어차피 부하에게 맡겨도 알아서 처리할 문서들이었다. 흑룡회는 각 지부마다 유능한 행정사들을 몇 명씩 고용하고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그녀처럼 행정적으로 많은 일을 하는 지부장은 없었다.

한번은 카르안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 모르게 장난을 치는 놈들이 있거든.”

결국 부하들도 믿지 못해서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다. 과거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할 일이 없던 카르안도 그녀를 도우려 했으나, 곧 포기했다. 카르안은 행정적인 부분에서 한없이 취약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흑룡회 알페라츠 지점은 드디어 재료를 받을 수 있었다. 2일 만에 주문한 연금술 재료를 받는다.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대 조직답다고 할까.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빠르기는 했는데,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10개를 주문했던 약초 뿌리가 100개가 되어 있었다.

뿌리뿐 아니라 여러 가지 재료들이 팝콘마냥 제 멋대로 불어나 있었다. 무언가 행정상 오류가 발생했다. 사이프카르가 불같이 화를 낸 것은 당연한 일.

단순히 양만 많아진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았다. 조직에는 빈 창고가 제법 있었고, 그 곳에 보관하면 그만인 일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유통기한. 연금술도 대부분 식물이나 몬스터의 신체부위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가만히 두면 부패한다는 것이다.

켄타로우스의 뿔 같은 재료는 괜찮다. 곰팡이가 슬지 않을 정도로만 닦아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슬라임의 심장 같은 것은 이틀만 두어도 새카맣게 상해버린다.

예상외의 사태에 카르안과 사이프카르, (별 도움은 안 되었지만) 러슬라이와 제이크까지 전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누님. 제가 배운 바로는 이 부패의 원인. 이것이 미생물이라는 놈들 때문입니다.”

당당한 목소리. 제이크의 것이었다. 사이프카르가 의외라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진짜냐? 너 또 구라치는거 아니지?”

“섭섭합니다. 제가 언제 허언을 입에 담았습니까. 분명 유명한 마법사의 저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으흠. 그러면 그렇다 치자. 어떻게 미생물들을 조질건데?”

그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바로 훈제(燻製)입니다.”

“훈제?”

모두가 멍하니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로 훈연법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죠. 마법도 필요 없고 재료도 간단합니다.”

“야. 잠깐 잠깐. 카르안.”

사이프카르가 카르안을 불렀다.

“예.”

“훈제 고기로도 연금술을 할 수 있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카르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제이크가 당황해서 말했다.

“하, 하지만 확실히 부패는 막을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사이프카르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세상에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차이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어. 니 머리같은거 말이야. 차라리 소금 뿌린 다음 통조림을 만들자고 하지 그러냐.”

“아, 그런 방법이!”

“방법 같은 소리하네. 밖에서 대가리 박고 있어.”

제이크가 퇴장하고, 세 명이 남았다. 그 상황에서 러슬라이는 현명하게 대처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는게 없을때는 침묵이 금이었다.

별다른 해법이 없었다. 마법사 길드나 연금술사 길드에 보관을 요청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보관료가 비싸서 기각. 또 마약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할 수도 없었다. 다른 방법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에휴. 그러면 카르안. 니가 고생 좀 해야겠다. 죄다 포션이랑 약으로 만들어 버려.”

“이걸 전부 말입니까?”

“그래. 일단 만들기만 하면 유통기간은 없어지니까........”

그녀가 자신 없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부탁. 저 많은 재료를 전부 포션으로 만들려면 연금술 길드 전체가 하루 종일 달라붙어야 한다. 카르안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다 안 만들어도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해봐.”

“알겠습니다.”

“나는 잠시 나가봐야겠다.”

사이프카르는 검을 챙겨들었다. 러슬라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가십니까?”

“이 사단 낸 놈들 족치러. 너는 집 잘 지키고 있어.”

쾅!

거칠게 문이 닫혔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 러슬라이는 실수한 조직원의 명복을 한번 빌어준 후, 카르안을 쳐다보았다.

“형님. 이건 전부 어쩌죠?”

“만들어야지 어쩌겠냐. 일단 상하기 쉬운 재료부터 처리하지.”

그는 산더미같이 쌓인 재료들을 보며 입맛을 다졌다.

“그리고 밖에 있는 제이크 데려와. 이거 전부 작업실로 옮겨야 되니까. 그리고 너는 심부름 좀 해야겠다.”

“맡겨만 주십시오.”

카르안은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러슬라이가 의아해했다.

“정말 이것만 있으면 됩니까?”

“그렇다니까. 빨리 다녀와.”

카르안이 말했다. 수많은 일거리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살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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