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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01화 (201/275)

201화

망아꾼을 베어낸 서리스는 바닥에 늘어진 채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금강잔월로 단련되어 있음에도 전신에 입은 화상의 통증이 머리를 마구잡이로 어지럽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살면서 역대 최고로 많은 별을 소모했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 용의 모습은 악스판시온에 담아둔 별과 자신의 별을 모두 다 끌어 써 만들어낸 그림자 마수였다.

악스판시온에 담긴 별을 사용할 때는 그 기운이 사용자의 몸을 타고 가는 만큼.

서리스는 평소 사용량의 두 배 이상의 별을 한 번에 소모한 기분이었다.

망아꾼은 강했다.

세계 침식자답게 이 정도로 하지 않았다면 그를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써그을.”

발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몸에서 오는 탈력감에 간신히 폐부로 산소를 공급하던 서리스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망아꾼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검은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검은별을 흡수하면 몸을 회복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서리스는 망아꾼의 검은별이 흩어지기 전에 손을 뻗었다.

후욱!

그 순간 서리스의 손을 타고 망아꾼의 검은별이 마구잡이로 몰려들었다.

“윽.”

통증을 느낄 만큼 제멋대로 빨아들이는 검은별의 흡입력은 마치 소모한 것을 전부 되찾기 위함인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초를 몸을 떨며 망아꾼의 힘을 흡수하던 서리스는 점차 육체가 회복되어감을 느꼈다.

동시에 소모되었던 별들도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하자 서리스는 그제야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사라져가는 상처를 보며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힘의 고동을 느꼈다.

세계 침식자답게 대량의 검은별을 소유하고 있었던 망아꾼의 힘이 전신에서 흘러넘쳤다.

“이 정도라면.”

서리스는 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크라페의 일 때문에 그를 죽이게 되긴 했으나, 흡수한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지금 단순 출력만 본다면, 월하십인 급까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다.’

어느샌가 8성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직시한 서리스는 꽉 쥐어진 주먹을 내려다봤다.

훈련의 성과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은별이 엄청난 속도로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어.’

훈련의 성과를 따지기 전에 검은별의 성장 속도가 더 높아졌다는 것을 서리스는 깨달았다.

검은별의 식탐은 끝이 없는 듯, 망아꾼을 삼키자마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더더욱 더 많은 힘을 원하고 있었다.

적들이 강해지는 만큼 흡수하는 힘도 늘어난다.

그 때문에 검은별의 성장이 더더욱 빨라진 것이었다.

‘오히려 일정 수준에 오르니까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건가?’

일 년도 채 안 된 시간에 7성에서 8성을 넘보게 된 상황이다.

7성에 오르는데 그렇게 고생을 했던 것을 고려하면 정말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됐다. 잡생각은 그만하고.”

서리스는 검은별 생각을 떨쳐내곤 지금 상황부터 되새기기로 했다.

우선 크라페의 아버지인 은신사를 노리던 망아꾼은 무사히 처리했다.

망아꾼과 같은 의견인 세계 침식자들이 더 있는 것 같으니, 아직 완전히 안전한 상황이라고는 못하지만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흑마녀.”

그렇다면, 지금은 돌아가는 게 우선이었다.

서리스가 흑색 브로치를 들고 흑마녀를 불렀지만, 이번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용신의 대적자인 자신을 최우선으로 돕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나 대답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흑마녀,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야? 무슨 일인데.”

그런 순간 치직하고 브로치 위로 옅은 노이즈가 생겨났다.

서리스가 그걸 살펴보는 순간, 흑마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

“마?”

“마, 제, 마…… 가 여기…… 나타났어.”

이윽고 들린 말에 서리스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마제, 삼무제 중 한 명인 올스타드 스타린.

흑마녀는 지금 그에게 쫓기고 있었다.

* * *

검은 숲속, 낙뢰가 내려쳤다.

그런 낙뢰를 짧은 단거리 공간 이동으로 피하고 있는 것은 긴 흑발을 흩날리고 있는 흑마녀였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런 흑마녀를 쫓는 것은 다름 아닌 올스타드 스타린이었다.

과거 삼무제이자 용제와 무척이나 친한 친구였던 그는 얼마 전 정보 하나를 입수했다.

그건 바로 흑마녀가 용제와 접촉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타린은 그 사실을 알자마자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흑마녀의 뒤를 쫓았다.

자신의 친우인 용제의 시체를 훔쳐 간 자를 흑마녀라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그녀가 그 일에 연관이 되어 있을 거란 판단도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번개 마법이 흑마녀에게 작렬했다.

새까맣게 타오르는 숲 일부분을 바라보며 스타린은 천천히 그 앞으로 내려왔다.

“내가 멈추라 했을 텐데.”

당연히 흑마녀는 죽지 않았다.

대신 도망칠 생각을 접은 듯 그녀는 스타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새까만 눈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스타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정신계 공격의 일종인 듯싶었다.

예전부터 세계 침식자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식의 영향을 끼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사람들을 해치지 않아도 배척받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 때문이었다.

세계 자체가 그들을 거부하고 있으니.

“용제에 대해 네가 아는 걸 전부 털어놔야 할 거야.”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스타린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용제의 정보였으니까.

그런 스타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흑마녀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어딜 보는 거지.

무심코 그 시선을 따라 흘깃 옆을 바라봤던 스타린의 눈에 뜻밖의 인물이 보였다.

그도 잘 아는 인물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리스 꼬마?”

그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른 스타린의 눈이 서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서리스 꼬마가 지금 여기서 나타난 거지?”

동시에 스타린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서리스의 반응을 보건대 그는 지금 흑마녀와 아는 사이인 듯하였다.

흑마녀는 얼마 전에 서리스를 습격했었고, 그 이후 무장공주의 탈출을 도운 적이 있다.

그런 그녀와 서리스가 아는 사이라는 건…… 지금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흑마녀와 서리스의 사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스타린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서리스를 향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흑마녀와 한패였고, 자기 앞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계획한 거라면.

자신을 우롱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이다.

“이야기를 좀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서리스는 불편한 기색의 스타린 앞에서도 정중하게 말을 하였다.

스타린은 선인이다.

그는 아무리 분노했다 한들 무턱대고 누군갈 죽일 만큼 감정에 휘둘리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려 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야기, 이야기라.”

그런 스타린은 서리스를 보다가 이내 흑마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차피 스타린의 목적은 흑마녀를 죽이는 것 보다 용제의 정보를 얻어내는 쪽이다.

구태여 싸울 필요 없다면 이대로 넘어 가줄 수는 있었다.

“무슨 내용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상당히 달라질 텐데, 책임질 수 있겠지?”

“예,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여기에 왔으니까요.”

스타린과 용제 제롬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화를 삭이듯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곤 발을 한번 세게 굴렀다.

그러자 그의 발아래에서 돌로 된 의자가 나타났고, 그는 거기에 털썩 앉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금의 틈조차 보이지 않은 채, 살기등등한 눈으로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허튼수작을 부리면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듯한 모습은 그야말로 그가 왜 삼무제라 불리며 추앙받았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선 용제 제롬이 겪었던 일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스타린이 알지 못했던 용제의 뒷이야기.

그가 무엇에 맞섰는지, 그리고 홀로 무엇을 준비했는지.

서리스는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 천천히 스타린에게 털어놓았다.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용제의 친우인 그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긴 하나.

스타린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기도 했다.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은 썩 좋은 상황이 아니다.

과거에 삼무제로 이름을 날리고, 지금도 현역이라 할 수 있는 스타린의 도움이 있다면 분명 일을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런 만큼 서리스는 최대한 거짓 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 내용을 잠자코 듣고 있던 스타린은 서리스의 말이 끝나자, 자기 백발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그는 들었던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조용히 내게 물었다.

“네가 용제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내게 증명할 수 있겠지.”

그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곤 스타린의 앞에 서서 천천히 오른손을 펼쳤다.

그 순간 그의 손을 타고 별빛이 쏟아 내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드란이자 용제의 별이었다.

그 별들이 휘몰아치며 서리스를 중심으로 뭉쳤다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그 별빛을 직접 목격한 스타린의 두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 서리스를 봤을 때, 그저 비정상적으로 별이 많은 녀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서리스는 펜타니엄에다가 검은 별까지 가지고 있던 만큼.

그의 별은 이것저것이 섞여 있는 만큼 순수한 색을 띠지 않았기에 스타린은 그게 용제의 별이었다는 걸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서리스는 오직 용제의 별빛만을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가진 금색의 빛은 스타린이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금강잔월.

용제의 오리지널 비기이자 그를 삼무제 꼭대기로 올려놓았던 그 비기.

그 힘이 지금 서리스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스타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래전,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죽어 버린 친우가 남긴 유산이 지금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썩을 놈, 진짜 썩을 놈이야.”

그를 향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스타린은 오랜만에 그를 추억하며 쓰라린 웃음을 삼켰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미덥지 않은 동료였던 걸까.

용신이라는…… 자신조차 모르는 적과 홀로 맞선 그를 떠올리며 스타린은 탄식했다.

그놈다웠다.

분명 자기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했겠지.

기어코 끝까지 용신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제 믿어 주시겠습니까?”

“그래.”

서리스가 직접 금강잔월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용제의 유산을 이은 후계자였다.

“서리스 꼬마, 너는 제롬의 의지를 잇기로 한 것이냐.”

“용제께서는 저에게 굳이 자신과 같은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다운 말이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유지를 잇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세상이 망할 수도 있다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서요.”

그리고 이건 서리스다운 말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 제롬 녀석도 결국 죽었으니까.”

“제가 한 번 죽어본 몸이라 괜찮습니다.”

“농을 하는 꼬락서니하고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말거라.”

서리스는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용제의 별을 얻게 되었고, 그 비기를 이어받았다는 것뿐.

이 사실을 알려봤자 스타린에게 혼란만 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알았다. 그래서 제파림, 그놈 자식이 결국 제롬 녀석을 끝장내었다는 소리지.”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놈은 내가 찾아보도록 하마.”

스타린은 의자에서 가볍게 점프해 일어났다.

진실을 알게 된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후련해 보였다.

그러면서 스타린은 흑마녀를 홱 하니 노려보며 말했다.

“흑마녀, 서리스 꼬마에게 딴마음을 품어 그를 배신한다면 내가 너를 반드시 응징할 테니 그리 알아라.”

“이루는 건 별이 떨어질 때 닿음의 선.”

“알아듣는 건지 모르겠군.”

자기 세계 침식의 힘을 쓰지 않으면 여전히 대화할 수 없는 흑마녀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서리스는 안도했다.

동시에 스타린이라는 든든한 패가 생겼음에 기뻐했다.

이쪽은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은신사.’

그쪽과 대화해 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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