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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02화 (202/275)

202화

스타린과의 대화를 마친 서리스는 흑마녀의 도움을 받아 크라페가 습격받았던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서 아크 단원들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다가가자 분신체 시체를 치우고 있는 단원들이 보였다.

“서리스 후배,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그때, 서리스의 등장을 눈치챈 엑스널이 그를 부르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서리스는 그들을 보곤 머리를 긁적인 채 웃었다.

“세계 침식자랑 한판 붙고 왔는데요?”

“우리도 세계 침식자랑 싸우긴 했거든?”

분신체도 세계 침식자긴 하니까 말이다.

그것보다 서리스는 힐로즈 쪽을 돌아보았다.

“힐로즈 단장님, 이야기하고 싶은 게 좀 있습니다.”

“음? 알았어.”

서리스의 이야기가 중요한 건이란 걸 눈치챈 그는 손쉽게 승낙했다.

그는 단원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좋은 단장이었다.

“그리고 크라페 너도.”

서리스가 크라페도 언급하자 포션을 통해 겨우 회복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단원들도 그가 하려는 이야기가 궁금한 눈치였지만, 그들만 부른 이유가 따로 있을 거로 생각한 듯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을 두고 서리스는 크라페, 힐로즈와 함께 잠깐 숲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그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망아꾼을 통해서 지금 세계 침식자가 세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전해 들었습니다.”

“세 세력?”

힐로즈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예, 세계를 침공하려는 세계 침식자들과 그 반대파, 그리고 중립파입니다.”

그 말을 들은 힐로즈가 침묵하였다.

세계 침식자들의 침공.

그 말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세계 침식자들은 하나 같이 위험한 이들이다.

최소 월하십인 정도의 실력자가 있지 않은 이상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영지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당연하였다.

자신들의 세계가 멸망한 뒤에도 살아남은 그들은 그 정도 무력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죽음을 맞이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세계 침식자들에는 수명이 없는 건가?’

아주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서리스는 그들 나름대로 방법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지금 그 말은 세계 침식자가 전쟁을 벌일 거라는 거야?”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커진 거구나.”

“이번 망아꾼의 습격도 그런 전쟁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리스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크라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크라페, 네 아버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

그 순간 그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서리스는 크라페의 힘을 직접 같이 써본 사람이다.

그것과 관련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리스가 자신의 힘이 누구와 관련이 있는지는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크라페는 잘 알고 있었다.

“네 아버지가 그 은신사지?”

서리스가 그리 말한 순간 힐로즈의 시선도 크라페에게로 향했다.

힐로즈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맞아.”

크라페의 대답이 이어졌다.

힐로즈가 깜짝 놀란 듯했지만, 서리스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망아꾼은 네 아버지인 은신사를 포섭하려 하고 있었어. 그는 침공 반대파였고, 그의 힘은 천하오장성과 천상사성 같은 인간 쪽 강자들을 암살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으니까.”

크라페의 은신만 놓고 봐도 무장공주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걸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마당에 완벽한 상위호환이라 할 수 있는 은신사의 힘이라면 정말로 위험한 것이었다.

“망아꾼이 노렸던 것처럼 분명 다른 침공파 세계 침식자들도 네 아버지를 포섭하기 위해 너를 노릴 거야.”

크라페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턱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이빨에 입술이 짓눌려 찢어진 것이다.

워너힐 아카데미에 와서 서리스를 만나고, 훈련의 박차를 가한 그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크라페는 아직 세계 침식자와 맞설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분한 것이었다.

오늘의 기억은 분명 그를 더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그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크라페, 네 아버지를 만나자.”

그리고 이어진 서리스의 말은 크라페의 고개를 들게 하였다.

“세계 침식자의 수는 생각 이상으로 많아. 월하십인과 천하오장성, 그리고 천상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각지에서 그들이 전쟁을 시작하면 막을 인원이 모자라.”

실제로 서리스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있었던 대전쟁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머릿수였다.

단순 세계 침식자의 수만 놓고 봐도 인간 쪽의 강자들보다 많다.

그런 마당에 잠식자와 조력자까지 덩달아 날뛰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반대파는.’

침공파들에게 궤멸당했을 것이다.

크라페가 인질로 잡히며 은신사가 침공파에게 힘을 빌려주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들 세 세력의 균형은 무너진 거니까.

그러니 그 당시 반대파 쪽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것일 거다.

“나는 반대파 쪽에 힘을 빌리고 싶어.”

그렇기에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만 한다.

“서리스, 그건…….”

그 말을 들은 힐로즈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계 침식자와 맞선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바꿀 수 없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였다.

세계 침식자는 인류의 적이며 그들은 완벽한 악이다.

실제로 세계 침식자들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막심한 피해를 줘 왔고, 그들에게 죽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서리스 또한 반대파라고 해서 인간들에게 그렇게 호의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서리스에게도 세계 침식자는 여전히 위험한 존재였다. 자신을 전폭적으로 돕고 있는 흑마녀를 완전히 신용하지 않는 게 그 증거였다.

단지,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옛 선조들의 조언을 믿고 있을 뿐이다.

“반대파와 침공파는 이러나저러나 부딪쳐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침공파 입장에서는 반대파가 혹시나 뒤통수를 칠까 꺼림칙할 테니까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초조한 이들은 직접 일을 벌여야 하는 침공파일 것이다.

같은 세계 침식자이기에 그들은 서로의 힘을 잘 알 것이고.

혹시나 그들이 우리 쪽에 붙는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침공파 입장에서 반드시 반대파를 제거한 뒤에 일을 벌이고 싶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걸 노려 임시 동맹을 제안할 생각입니다.”

“그들이 우리 말을 들어줄까? 들어준다고 한들 우리 쪽도 이 상황을 쉽게 못 받아들일 텐데.”

“그래서 크라페의 아버지인 은신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

힐로즈가 서리스의 생각을 눈치채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왕.”

크라페의 어머니인 신왕 그라말테 세라 에이징.

그녀는 다름 아닌 천하오장성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은신사는 세계 침식자이나 반대파에 속해있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크라페까지 가진 부부 사이다.

혈연만큼 깊은 관계는 존재치 않는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반대파와 인류의 동맹을 위한 히든카드인 셈이었다.

“……서리스, 이걸 그 단시간에 떠올린 거니?”

힐로즈가 질문하자 서리스는 겸연쩍게 웃었다.

“그냥 상황에 맞춰서 적당히 끼워 맞춘 거죠. 일이 이상적으로 흘러갔을 때의 가정일 뿐이니까요.”

힐로즈는 서리스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망아꾼과의 전투가 끝난 지 고작해야 한 시간.

그런데 정치에는 발도 들이지 못한 스무 살 풋내기가 단시간에 저런 큰 계획을 떠올렸다는 것이 힐로즈 입장에서는 놀라웠다.

‘보통, 무력이 뛰어나면 저렇게 머리 굴리는 건, 약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천상사성에 오른 4인은 네 명 다 이런 전략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오로지 무력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일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천상사성이라는 자리는 그 이름만으로 이미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에 그들에게 이런 일은 무의미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신경 쓰지 않았던 전략 쪽도 서리스는 공부한 태가 났다.

‘이건 눈여겨보는 수준이 아니지.’

힐로즈도 대가문 직계인 몸이다.

나름대로 정세를 보는 눈을 길러온 그가 보기에도 서리스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무력에 더해 이 정도의 머리 회전이라면.’

먼 훗날의 서리스를 떠올린 힐로즈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당장 워너힐 아카데미의 황금 세대라 불리는 이번 1학년 A반만 놓고 봐도.

서리스를 중심으로 반 전체가 뭉쳐있음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아크 단도 그렇고, 다른 단장들조차도 서리스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그 순간 힐로즈는 직감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올해 스무 살인 청년을 중심으로 세계가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크라페……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서리스가 다시금 그를 돌아보았다.

“네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사태의 심각성은 전부 알려 주었다.

남은 건 크라페가 선택하는 일뿐.

서리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크라페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었다.

그의 부모님과 관련된 일인 만큼 크라페도 생각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아버지를 계속 찾고 있었어.”

그 대답은 서리스가 가장 원하던 것이었다.

“아까 전, 아버지가 이곳에 와있었어.”

크라페는 아버지가 망아꾼에게서 자신을 지켜줬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은신사와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서리스 또한 거기에 동의하곤 힐로즈를 돌아보았다.

“힐로즈 단장님, 저는 크라페와 함께 은신사를 쫓겠습니다. 다른 단원들에게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둘이서 괜찮겠어?”

“친구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뿐인걸요.”

그 말을 들은 힐로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대로 은신사는 크라페의 아버지이지 그들의 적이 아니었다.

“알았어. 내가 잘 말해 놓을게. 성위님과 독후 님에게도 미리 이야기해서 도움을 구할까 하는데.”

“예, 그쪽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을 통과시키려면 여러 힘 있는 사람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는 괜히 아크 단장에 오른 게 아닌 듯 믿음직한 일 처리를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그쪽을 부탁하자 힐로즈는 고개를 끄덕이곤 아크 단원에게로 돌아갔다.

“크라페, 쫓을 수 있겠어?”

“잠시만.”

서리스의 질문에 크라페가 코끝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서리스와 대화할 때부터 이미 그는 아버지의 냄새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기다림이 지나간 후, 크라페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찾았어.”

역시나 은신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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