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96화 (95/275)

96화

광견.

세계 침식자와 손을 잡은 조력자.

일반적인 잠식은 본인이 잠식된 지조차 모르나.

조력자들은 세계 침식자와 직접 손을 잡은 이들이다.

그들이 세계 침식자와 함께한 이유는 가지각색이나.

그들 중 대부분은 세계 침식자가 지닌 힘이 탐났기 때문이다.

서리스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힘을 나누어 주었는지 예전에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 수 있다.

세계 침식자가 그들에게 해 준 것은 분명 검은별을 새긴 것일 거라고.

‘광견이 어떤 놈이었지?’

서리스가 광견에 대해 아는 것은 그가 일곱별들에 집착했던 것과 함께.

3년 뒤, 천하오장성 중 한 명인 신왕(神王) 그라말테 세라 아이징에게 죽었다는 것뿐.

그걸 제외하고 이 당시에 광견과 관련된 소식을 떠올렸지만, 서리스는 떠올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신성인 염성이 포함된 주홍빛 기사단을 습격당했다는 건 초유의 사태일 텐데도 전생에는 딱히 이렇다 하게 들린 게 없었던 탓이었다.

‘바르크에서 의도적으로 숨긴 거겠지.’

바르크 입장에서는 염성의 명성에 금이 가게 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건을 일부러 은폐해 둔 거겠지.

‘이바드라는 그 뒤에 별문제 없이 워너힐 아카데미에 입학했었다.’

그렇다면 이번 일도 무사히 해결될 거란 소리와 같으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일곱별에 집착하는 광견이다.

그의 목표는 당연히 이바드라일 것이다.

그런 마당에 이번 친선 대결에서 자신을 상대한 이바드라는 필요 이상으로 전력을 다 쏟았다.

제왕월영도로 직접적 피해는 보지 않았지만.

모든 걸 다 쏟아 낸 만큼 체력이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혹시나 그게 발목을 잡게 된다면.’

이바드라가 광견에게 당할 수도 있게 된다.

“광견의 습격이라니.”

급히 소집된 회의에서 윌리엄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광견은 대표적인 조력자 중 한 명이었다.

환상계 마법사인 그는 언제나 힘을 갈구했고.

강함을 탐닉하다가 광기에 절어 결국 세계 침식자와 손을 잡고 괴물이 되어 버렸다.

그런 그가 주홍빛 기사단을 습격한 상황.

펜타니엄의 친선 대결을 온 그들인 만큼 돌아가기 전까지는 펜타니엄의 책임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원 요청을 위해 회의 소집이 이루어진 거다.

“가죠. 주홍빛 기사단은 저희와 친선 대결을 치른 뒤인 만큼 다들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닐 겁니다.”

윌리엄이 시간을 지체할 필요 없다는 듯 말하자, 하다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조력자는 세계의 적이다.

세계를 지키는 같은 대가문들의 일원으로서 이번 지원은 확정되어 있었다.

남은 건 누가 그들에게 지원하러 가냐였다.

광견은 7성급 괴물이라는 소문이 있다.

못해도 소가문 가주 혹은 그 이상이라면, 웬만한 대가문 가주 수준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소가문 가주들은 어떤가요?”

“멀어서 지원이 늦을걸세.”

펜타니엄은 아직 청랑단 본부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도중이었다.

심지어 다트론은 먼저 청랑단 본부로 돌아가 있는 상황.

소가문 가주들은 레일로에서 출발해야 하는 만큼 당연히 늦는다.

“그럼 검왕께서는.”

“일이 있으셔서 레일로에 잠깐 가 계시네. 소가주들과 회의할 것이 있으시다 하셨어.”

윌리엄이 혀를 찼다.

하필 상황이 이런 식으로 겹칠 줄이야.

“저희만으로 괜찮겠습니까?”

서리스가 솔직하게 물음을 던졌다.

청랑단이 정예 부대인 것은 맞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이다.

진짜 괴물을 상대로는 같은 괴물이 맞서야지, 사람이 맞설 게 못 된다.

“흠, 바르크 쪽에도 연락이 왔네. 염호가 움직였다더군.”

그 순간 바르크 가주가 직접 움직였다는 말에 윌리엄과 서리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바드라는 바르크의 희망이다.

바르크 입장에서는 그만은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광견과 직접적으로 부딪칠 생각은 없네. 단지, 우리 쪽은 염호가 올 수 있도록 시간만 끌어 주는 정도면 될걸세.”

그 정도라면 해 볼 만한 수준이었다.

“그럼 서리스와 제가 가 보겠습니다.”

“나도 움직일 생각이네만.”

“아뇨. 단주님까지 움직이면 일이 커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주님도 아시잖습니까. 서리스의 수준을요.”

윌리엄이 말한 순간, 하다크는 서리스를 돌아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서리스는 이제 나보다도 강할지도 모르니.”

언제나 단원들을 존댓말로 대하며 존중해 주던 하다크지만, 서리스에게는 편하게 말을 해 주고 있었다.

함께 지낸 시간 동안 그를 신뢰하고,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나오는 행동인 걸 알고.

서리스는 믿음에 부합하듯 미소로 답했다.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서리스와 윌리엄은 빠르게 준비를 시작했다.

염호는 사건이 사건인 만큼 분명 혼자서 급히 움직였을 것이다.

그의 수준이라면 습격 장소에 다다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청랑단이 도착하는 게 훨씬 빠를 것이다.

“다들 모였나.”

윌리엄이 모인 단원들에게 확인하듯 묻자.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각 기수 대표가 앞에 선 채 대기 중인 단원은, 곧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48기, 50기, 51기, 53기는 지금 바로 주홍빛 기사단 지원을 출발한다.”

49기와 52기는 원래 청랑단 본부에서 상황 대기 중이었는지라 없었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인원은 53기까지만 가기로 결정되어 이렇게 인원이 추려졌다.

제로가 54기가 빠진 것에 심통 난 듯하긴 했지만, 당장 바로 위인 53기와의 격차도 큰 만큼 납득하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청랑단 본부로 귀환이다. 제로, 네가 귀환 단원 중 가장 선배다. 단주님을 따라 잘 인솔하도록 해라.”

“예!”

그래도 귀환 단원 중 가장 선배라는 말에 제로는 책임감을 느낀 듯 달뜬 표정으로 외쳤다.

펜타니엄 직계인 만큼 원래도 권리를 누리던 그였다만, 이제는 선배라는 타이틀이 더 기쁜 모양이었다.

‘저렇게 보면 마냥 어린애인 녀석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얼마 안 가 그도 어른이 되는 날이 오겠지.

“출발한다.”

부대 편성을 마친 윌리엄이 앞서자 서리스도 그 옆에 따라 섰다.

“달리는 속도는 각 대표가 알아서 인솔해라! 서리스와 나는 먼저 가겠다!”

53기는 아카펠에게 대표를 맡겨 두었다.

서리스가 그에게 눈짓해두자 아카펠은 걱정하지 말라는 양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든든하군.

“가자. 서리스.”

“예.”

윌리엄이 신호를 주자 서리스의 몸 위로 별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요치아 덕분이랄까, 달리는 것에는 이골이 난 서리스다.

험준하기로 유명한 엘리자 산도 제 앞마당처럼 뛰어다녔다.

그러니 평지라면 당연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서리스.”

그리고 그걸 옆에서 직접 보게 된 윌리엄은 조용하게 말했다.

“그냥 먼저 가라.”

“아하하.”

따라갈 수 없을 거라고 자각한 윌리엄이 질린 표정으로 말하자, 서리스는 어색하게 웃곤 고개를 숙였다.

“먼저 가서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나 원, 가기나 해라.”

그 말이 끝마치자마자 서리스가 바닥을 박찼다.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튀어 나가 버린 서리스는 비룡보다 더 빠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건 무슨 짓을 해도 못 따라간다.

그 사실을 안 윌리엄은 주홍빛 기사단이 서리스를 보며 느낀 감정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은 채.

자신도 달리기 시작했다.

* * *

바르크와 펜타니엄의 경계에 있는 산기슭.

본래라면 고요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

때아닌 비명과 병장기 소리 그리고 그곳을 가득 메운 망자들의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젠장, 끝이 없잖아!”

산의 절벽을 타고 아래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망자들을 보고 기사단원 한 명이 침음을 내뱉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벌써 삼 일째.

끝도 없이 몰려드는 망자들은 광견의 부하이자 망자지기인 장물아비가 다루는 놈들이었다.

한 놈 한 놈은 분명 별것 아니나.

죽음을 초월한 망자들은 산을 뒤덮듯 몰려들고 있었기에 주홍빛 기사단도 대처가 까다로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평지 일대가 많은 곳에서 활동하는 주홍빛 기사단에게 적응하기 힘든 산이라는 악조건.

게다가 망자 사이사이에 배치된 광견을 따르는 부하들의 존재도 문제였다.

망자만 상대한다고 생각한 주홍빛 기사단의 방심을 틈타 공격하는 그들 때문에 기사단에 중간중간 부상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뿐이라면 강행 돌파가 가능했을 것이다.

광견의 부하들의 수준이 낮지는 않았으나 주홍빛 기사단은 엄연히 바르크 최고 정예부대고, 염성과 총기사단장 엘다리트까지 함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들이 산에 묶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광견의 존재였다.

주홍빛 기사단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다.

마차도 지나갈 수 있는 산길을 가던 도중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한 남자를.

새빨간 개의 머리와 터질듯한 근육, 마땅한 옷도 입지 않은 채 그저 붕대만 둘둘 두른 차림새의 그는 인간이라 볼 수 없었다.

‘적습이다!’

제일 먼저 반응한 총기사단장 엘다리트가 그에게 검을 휘두르고, 다른 기사단장도 뒤따랐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엘다리트는 당분간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큰 부상을 당했고, 2기사단장은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주홍빛 기사단원이 할 수 있던 건 그들이 벌어 준 시간 동안 산속으로 도망치는 것뿐.

그나마 운 좋게 몇 명이 도주에 성공하여 펜타니엄과 바르크로 지원 요청하러 갔으나.

그것도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언제 올지 모를 지원이었다.

당장 산속에서 버티는 것 외에는 별 방도가 없는 주홍빛 기사단의 처지에서는 애간장이 타는 것이 당연했다.

꾸준하게 나오는 부상자.

치명상을 입어 한시라도 빨리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총기사단장.

떨어져 가는 식량.

조여 오는 망자.

무엇하나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견이 움직이지 않고 있단 것.

추측되는 건 그가 엘다리트와의 전투 도중 부상을 입고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바드라 님.”

그렇게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도중.

이바드라는 망자를 불길로 쓸어버린 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셀링이 있었다.

비록 며칠간의 산속 생활로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미모는 빛나고 있었다.

“이바드라 님이라도 도망치셔야 합니다.”

“또 그 소리더냐.”

이바드라는 콧방귀를 내쉬며 망자에게 다시금 불꽃을 피웠다.

매캐한 탄내와 함께 망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그 사이로 셀링이 다시금 말해 왔다.

“총기사단장님께서 정신을 잃기 전에 말해 주셨잖습니까. 광견이 노리는 건 이바드라 님이라고.”

“지금 그 말은 기사단원들을 버리고 이 몸에게 도망치라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주홍빛 기사단보다 이바드라 님의 생존이 더 중요합니다.”

“……셀링.”

못 들을 걸 들었다는 양 이바드라가 눈살을 팍 찌푸렸다.

지금 그녀의 말은 바르크를 위해서 주홍빛 기사단을 희생하라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못 들은 거로 하겠다.”

“……저는 이바드라 님이 살았으면 하는 거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셀링의 뜻은 달랐다.

바르크의 미래 같은 건 그녀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셀링은 이바드라가 살기를 바랐다.

총기사단장마저 저 꼴로 만든 광견이 이바드라를 노리고 있다.

그런 걸 대체 어떻게 두고 보란 말인가.

지금도 혹시나 광견이 나타나 이바드라를 해칠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이바드라는 도망은커녕 이러고 있으니, 셀링 입장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 셀링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침묵하던 이바드라는 곧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눈 하지 말아라. 이 몸은 안 죽는다.”

“저한테까지 강한 척할 필요 없잖아요.”

“강한 척이 아니라 강한 거다.”

셀링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만한 가면만큼이나 고집이 센 사람이다.

절대 혼자서는 도망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셀링은 계속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콰앙!

그런 순간이었다.

이바드라와 셀링의 귓가를 강렬히 때린 소음이 울려 퍼진 것은.

“이바드라 님!”

셀링이 그를 말리고자 부르기도 전에 이바드라는 불꽃을 일으키며 바닥을 박찬 뒤였다.

셀링을 두고 소음이 들린 곳에 서둘러 도착한 순간, 이바드라는 가슴이 조여옴을 느꼈다.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한 살기.

존재감만으로 모든 것을 찍어누를 듯한 기세를 풍기는 괴물. 그의 앞에서는 염성이라 불리는 이바드라조차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광견(狂犬)

데사무스

환상계 마법사의 절정에 올라 스스로에게 환상을 걸고, 기어코 세계 침식자와 손까지 잡은 미치광이.

그가 그곳에 있었다.

놈의 손에 들린 것은 자신의 소속 기사단원인 한스렘이었다.

떨리는 몸을 보니,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광견이 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한스렘의 머리는 순식간에 터져 버릴 것이다.

안 된다.

광견이 날뛰는 순간, 이곳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득.

깨물린 입술과 함께 이바드라의 주홍빛 머리카락이 위로 치솟았다.

그의 몸 주위에서 타오른 불길이 하늘까지 닿아 빛나고, 그 환한 빛은 광견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오싹.

개의 누런 두 눈깔이 자신에게 닿는 순간, 이바드라는 속 안에서 올라오는 공포감에 토사물을 뱉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바드라는 그것을 억지로 억눌렀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할 뿐!

“이 몸은 염성 바르크 이바드라!”

자신의 이름을 거침없이 토해 낸 목소리가 산속을 메아리쳤다.

“안 돼요! 이바드라 님!”

뒤따라온 셀링이 그의 이름을 울부짖었지만, 이미 늦었다.

광견은 이바드라를 발견했고, 그 이빨을 드러내었다.

“미친개야, 이 몸이 친히 훈련해 줄 테니 따라와라!”

이바드라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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