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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94화 (93/275)

94화

바르크 이바드라.

일곱 개의 새로운 별 중 염성을 담당하며, 특유의 불같은 성격과 오만함이 특징인 남자다.

바르크 가문의 직계이자, 재능이 넘치는 그는 제 누이와 함께 태어났을 때부터 바르크의 희망이라 불렸다.

그가 희망이라 불린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대가문의 가주임에도 불구하고 바르크 가주 염호는 천하오장성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강했지만, 동시대를 풍미하는 천재들이 너무 많았다.

서리스와 동기들이 새로운 별의 세대라면, 바르크 가주가 태어난 세대는 빛의 세대였다.

너무도 많은 빛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천재들의 시대.

그것이 당시의 시대였다.

그 탓에 대가문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책임을 해내지 못할 거란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대가문으로서의 이름을 지켜 내고자 자연스레 후대에게 시선이 쏠렸다.

현재의 가주가 힘이 모자라더라도 후대만 재능 있다면, 대가문이라는 명성을 지켜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결과만 본다면 바르크 가주 염호의 두 아이는 훌륭했다.

둘의 넘치는 재능은 바르크가 대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준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문 전체의 기대감이란 건 천재에게도 버거운 것이었다.

쌓이고 쌓여 그의 속 안을 곪게 할 정도로 큰 기대감 아래.

이바드라는 패배라는 두 단어를 자신이 절대로 지녀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겉으로는 오만이라는 가면을 쓰면서도 이바드라는 자신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성장했다.

그 결과 염성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아직 올라야 할 산이 그에게는 끝도 없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나 올라야 할 산이 많은 이 몸인데!’

그런 이 몸이 지금 밀리고 있다고?

“크학!”

배를 두드린 그림자 검격에 토악질하며 이바드라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안 좋은 곳을 맞았는지 몸이 벌벌 떨렸다.

쏟아 내던 불길이 이전과 같은 화력을 내지 못하고 제멋대로 일렁거렸다.

그런 이바드라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기에는 새까만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리스가 있었다.

내려다본다.

자신을 낮추보고 있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이바드라가 부들거리는 팔로 자기 몸을 일으켰다.

염성은 여기서 무너질 수 없었다.

바르크를 일으켜 세우려면 자신의 인생에 패배란 오점은 절대로 남길 수 없었다.

“너도 오기가 보통 센 게 아니구나.”

“너 따위가 이 몸을 평가하려 하지 마라.”

“그래, 오만한 거 하나는 샬롯보다 위인 거 같다.”

서리스는 이바드라의 불길에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가 몸 위로 두르고 있는 그림자 망토 탓에 이바드라의 불길이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분했는지 이바드라는 화력을 더더욱 끌어올렸다.

이제는 화염 내성이 높은 그의 피부마저 살갗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서리스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대체!’

저놈의 별은 뭐란 말인가.

서리스의 이야기는 들었다.

검성의 빛에 묻혀 버려 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간 망나니.

그리고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 최연소 청랑호법 자리를 올라온 노력가.

그의 눈에는 딱 그 정도였다.

청랑단 입단 시험 당시 샬롯과 싸워 이겼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건 목숨을 건 전투가 아니고, 그녀 특유의 흥미를 느끼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 탓에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을 뿐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샬롯이 전력을 다 안 했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샬롯은 자신이 보기에도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서리스를 상대하고 있으니 샬롯의 패배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별을 집어삼키는 용.

이바드라에게 서리스의 모습이 그렇게 비치기 시작했다.

만약 여기서 패배하면, 자신의 별빛마저 놈이 전부 삼켜 버릴 것이라는 착각마저 일 찰나.

‘이 몸이 패배할까 보냐!’

이바드라는 검을 놓았다.

명검이라 불리는 검이지만, 저놈을 뚫기에는 부족했다.

이바드라가 양손을 펼친 순간, 그의 손아귀에서 새빨간 두 자루의 검이 쥐어졌다.

별을 응축시키고 또 응축시킨 검은 막대한 화기를 머금은 채 강렬히 빛났다.

오래 사용하지는 못한다.

멸천화륜검은 화력은 압도적이나 화공의 특성상 유지력이 약하다.

화력을 올리면 올릴수록 몸이 견디기 힘든 건 물론이고, 별이 먼저 다 타 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아껴 써 봤자 시간만 끌릴 뿐이다.

“별이여.”

모든 것을 전부 다 쏟기로 마음먹은 이바드라의 부름에 바르크의 별이 거세게 빛을 터트렸다.

승리를 위한 마지막 울부짖음과 함께 이바드라의 검이 다시금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콰앙! 쾅! 쾅!

화력이 올라간 덕인지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 못 할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이바드라의 검은 불꽃의 잔적을 남겼고, 그것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멸천화륜검(滅天火圇劍)

이식(二式)

멸천화륜십구검(滅天火圇十九劍)

열아홉 번에 달하는 화염의 검로가 서리스를 압박해 왔다.

서리스도 청운귀검로로 맞받아치기 시작했는데, 그는 곧 헛웃음을 지어야 했다.

흐름을 타고 점차 성장하는 청운귀검로와 달리 멸천화륜검은 폭발적인 화력으로 모든 걸 짓누르는 불같은 검이었기 때문이다.

‘상성이 안 맞는군.’

청운귀검로가 흐름을 탈 시간 따위 주지 않겠다는 듯.

열아홉 번의 검로 안에 끝장내고자 하는 이바드라를 보고 서리스의 몸에 또 다른 별이 깃들기 시작했다.

저쪽이 화력으로 찍어 누르겠다면, 이쪽도 화력을 더해 주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소드란의 별이 빛나기 시작한 순간, 서리스의 검로에 깃든 힘이 바뀌기 시작했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일식(一式)

금강귀검로(金强晷劍路)

청운귀검로 한 번, 한 번에 박살(撲殺)을 담는다.

쾅! 쾅! 쾅!

완전한 화력 싸움이 시작되자, 불꽃과 그림자가 서로를 집어삼키고자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때마다 사방으로 쏟아지는 불꽃과 그림자의 여파에 사람들이 급히 대결장에서 물러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일반인들과 다르게 주홍빛 기사단과 청랑단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완전한 화력전.

특히 멸천화륜검을 직접 익혔던 주홍빛 기사단은 경악하고 있었다.

멸천화륜검의 분명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강력한 검술이다.

그런 검술을 바르크의 직계가, 그것도 하늘이 내린 별이라는 취급을 받는 염성의 검을.

서리스는 오히려 압도하듯 받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갑자기 저런 게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오래전 몰락했다는 소문도, 청랑단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소문도.

이제는 전부 무의미해졌다.

19살, 아직 약관도 넘지 않은 나이.

나이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무척이나 크게 작용한다.

아직 덜 여문 염성이 천재 취급받는 것도.

그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별들은 분명 미래의 천하오장성에 당연하게 들어설 만한 인재들이다.

더 나아가 개중에는 천상사성 또한 노려볼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지금.

천재인 염성을 압도하는 서리스를 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6성.”

침음하듯 내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르크 총기사단장 호크웬 엘다리트였다.

자신도 그 영역에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바드라와 대결을 하는 서리스가 6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육체는 완성도가 높았고, 은근히 새 나오는 별은 그의 눈길을 끌었다.

혹시 이바드라와 괜찮은 상대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보기에 이바드라는 좀 더 자기 또래의 실력자들과 붙어 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 그것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바드라와 붙여서는 안 되었다.’

이바드라가 가문에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 한들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대가문을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일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텐데.

이바드라에게도 당연히 힘든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오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바르크를 안정시켰다.

나이치고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바드라가 위를 보고 달릴 수 있을 때 이야기였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겪는 패배는. 그를 망가트릴 거다.

하물며 동갑의 상대라면 그 타격이 더 클 것이다.

‘저런 녀석이 나올 줄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사전에 이바드라의 출전을 막았을 것이다.

불찰이다.

혹시 하다크가 이걸 노린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든 엘다리트가 옆을 돌아보자 그는 곧 생각을 고쳤다.

하다크조차 서리스를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확신했다.

저건 곁에 있는 사람조차 감당치 못할 괴물이라는 걸.

날고 기는 천재들은 많다.

시간이 갈수록 가문별은 강해지고, 그에 따라 수많은 천재가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물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제나 손에 꼽는다.

저건 괴물이다.

바르크를 더더욱 처절하게 만들었던 검황 락로드와 같은 괴물.

‘바르크는 또다시.’

저런 괴물에게 묻히는 것인가.

‘버텨라. 이바드라.’

엘다리트는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꽉 쥐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바드라가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가쁜 호흡이 폐부를 뚫고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별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별문신 쪽에서 오는 통증이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 지경이었다.

제 몸이 제 몸이 아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몰린 적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고개를 든 이바드라의 눈동자에 한 남성이 보였다.

처음과 똑같이 여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남성.

그나마 해낸 건 조금 숨을 가쁘게 쉬게 한 정도.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별은 여전히 압도적이었고, 그 별은 무슨 짓을 해도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넌, 대체, 뭐냐.”

끊어질 듯한 숨소리로 이바드라가 물었다.

물음을 받은 서리스는 잠시 동안 침묵하곤 대답했다.

“펜타니엄 서리스.”

이름을 물은 게 아니잖나.

그러나 무슨 대답이 와도 의미가 없음을 이바드라도 알고 있었다.

입 안에 쓴 물이 느껴졌다.

손에 쥔 불의 검도 이제 제 화력을 못 내고 있었다.

“……한 번 전력을 다할 수 있나.”

서리스가 아직 꺼내지 않은 수가 많다는 것을 이바드라는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걸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물어보았다.

네가 다하는 전력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서리스는 아주 잠깐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곧 자세를 바꾸었다.

“잠깐이라면.”

좋다.

그걸로 됐다.

이바드라는 손에서 검을 지우곤 권의 자세를 잡았다.

검을 만들 힘조차 이 한 방에 모두 담기 위해서였다.

“이 몸은 염성, 바르크 이바드라다!”

거친 고함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별의 힘을 모조리 끌어다 육체로 욱여넣었다.

분명 완성과는 아직은 너무나 먼 기술이다.

바르크 가주 염호조차 이 기술을 아직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바드라는 이날을 위해 이 기술을 연마했다고 느꼈다.

이바드라를 중심으로 형성된 화염이 소용돌이치듯 솟구쳤다.

완성되지 못한 기술을 펼치려 하고 있음에도 그 강렬한 열기에 대련장 바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화염이 소용돌이 속.

이바드라는 조용히 내뱉었다.

“이 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수다.”

멸천화륜검(滅天火圇劍)

오의(奧義)

멸화(滅火)

태양이 떠올랐다.

내민 주먹과 함께 서리스를 향해 떨어지는 태양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다 못해 주저앉게 할 것 같은 태양을 앞두고.

서리스가 한 것은 그저 검을 옆으로 휘두른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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