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기자들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말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는 바람에 항상 긴장해야 됐지만요.""
··· ···""
놀랍게도 팩트다. 구라가 10% 정도 섞여있는 팩트."
북한이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긴 했지만 정작 한국에게는 인사치레와 비슷했다."
군대에서 복무하던 나조차 텔레비전으로 소식을 들으면 또 쐈냐? 라며 툴툴거릴 정도였으니."
하지만 최전방이다보니 도발이 있다 하면 부대가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 그러면 제논 님의 조국은 핵무기가 없습니까?""
없었습니다.""
어째서죠?""
미국이 만들지 말라고 했거든요.""
이것도 팩트다. 대한민국이 핵을 제작하는 순간 줄줄이 소세지마냥 다른 나라도 만들겠지."
그러한 불만을 잠재워주기 위해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는 편이다.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단 미국이 최강대국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으니 생각할 여지가 많다."
뭐, 제 조국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괜스리 더 얘기했다가는 끝이 없으니까요. 언젠가 제 조국이 겪은 내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 괜찮으십니까? 제논 님에게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죠. 조국이 문자 그대로 잿더미가 됐던 전쟁이었으니까요.""
한 사람의 욕심으로 시작된 전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빈말이 아니라 대부분의 기반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과정이 너무 가혹했다. 괜히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그래도 제 조국이 겪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에 적을 겁니다. 억제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역할은 충분히 한 거니까요.""
제논 님께서도 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거라고 봅니까?""
당장 제가 스타비르크에서 발생한 암살 시도를 막지 않았더라면 전쟁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것도 단순히 미네르바 제국과 스타비르크의 싸움이 아닌, 전세계로 화마가 번지는 전쟁이었겠죠.""
이제는 없는 미래다. 스타비르크는 나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빠져나왔으며 악마 숭배자까지 잡아들였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세계로 화마가 번졌다는 건 곧 세계대전을 의미하는 바였으니까."
그,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신 겁니까?""
1차 세계 대전이 그런 식으로 발발했거든요. 과정이 불길할 정도로 흡사하여 제가 몰래 따라간 겁니다.""
정확히는 모라가 편법을 사용해 나를 이용한 것이다. 허나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전개 자체도 1차 세계 대전의 근원이었던 사라예보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전쟁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겁니다. 당장은 평화롭겠지만, 오히려 이런 평화가 곪아있던 부분을 더욱 악화시키겠죠.""
··· ···""
영원한 건 절대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살던 세상도 그런 끔찍한 전쟁이 터졌음에도 곳곳에 크고 작은 전쟁이 터졌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곳으로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3차 세계 대전이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나왔죠.""
모라가 나에게 말했다. 우주로 진출하는 게 아닌 이상 세계 대전은 반드시 터지게 될 거라고."
중국과 인도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독소전쟁 그 이상의 사상자를 낳게 되어 더 끔찍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지도 아래에 더 큰 발전을 이룩하지만, 내가 이곳으로 넘어옴으로써 그것도 불투명해졌다."
어쩌면 3차 세계 대전이 아니라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부디 그것만큼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전쟁을 종용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현실이 냉정하리만치 가혹할 뿐이죠.""
··· ···""
음. 제가 너무 안 좋은 말만 했나요?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질문하세요.""
분위기가 너무 싸해지자 신속히 화제를 돌렸다. 나는 세상을 염세주의에 빠뜨릴 생각이 없다."
기자들은 처음에 내 눈치를 살살 보다가 기회라고 여겼는지 하나둘씩 질문을 걸었다."
전보다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기색이다. 주도권은 확실히 넘어왔다."
제논 님께서는 형제자매가 있으셨습니까?""
외동이었습니다.""
그럼 전에도 작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천직이 글을 쓰는 겁니다. 전에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기왕 이렇게 된 거 전생의 나에 대한 걸 있는대로 뿌릴 계획이다. 물론 상세한 상황 설명을 제외했다."
일종의 요리 같은 거다. 나는 재료를 대충 툭- 툭- 던져주고 요리는 저들이 하겠지."
이리 된다면 갖가지 오해가 쌓이고 쌓일 테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노린 게 그거고."
'설명해봤자 입만 아프지.'"
가족들의 오해를 푸는데만 해도 몇 개월이 걸렸다. 게다가 그들은 내가 직접 생활상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전생의 내가 시원하게 패드립을 친 건 물론, 야자를 시원하게 짼 것도 보여줬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지 깨닫게 해줬다. 그전까지는 계속 설명해줘도 안 믿더라."
정말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약혼녀가 있으셨습니까?""
약혼녀는 아니지만 여자친구는 있었습니다.""
오. 그러면······""
군대에 있을 때 바람 폈죠.""
··· ···""
가끔 가다가 지뢰를 밟아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자기가 알아서 찌그러졌다."
물론 나에 대한 질문만 꺼내지는 않았다. 이미 이들에게 내 조국,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군국주의에 가까울 것이다."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징병제를 한다는 것부터가 그런 오해를 부르기 충분하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내 조국에 대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위치부터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곳을 아십니까? 그곳입니다.""
그곳이었군요. 영토가 많이 작은······""
중국이 강해진다면 중국이 치러 오고, 일본이 강해진다면 일본이 치러 오는 곳이죠. 교두보로 참 적절했습니다.""
영토가 작으면 뭐하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틈만 나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곳인데."
국토의 70% 이상이 산이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사라졌을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다른 나라에게 주권을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중국과 일본에게 나라를 침탈당했다."
나는 잠깐 숙연해진 분위기에 서둘러 화제를 넘겼다. 슬슬 끝내야 될 것 같다."
다른 분은 질문 없으신가요?""
그······ 제논 님의 부모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지금이 아니라 전의 부모입니다.""
평범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랑한 분들이었습니다.""
왜 저 말이 안 나오나 했다. 나는 그리 대답한 후,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선행이 꼭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게 해주셨죠. 아직도 그때 일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 ···""
다행히 이곳에서도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둬야죠.""
이제 나에 대해 얘기할 건 없다. 나는 재료를 다 제공했으니 남은 요리는 저들이 해야 될 것이다."
그렇게 숙연함만 남은 인터뷰를 끝내려던 찰나,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지 어느 한 기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제, 제논 님! 하, 하나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희 세상에서도 피와 강철 같은 전쟁이 터질 거라 예견하십니까? 만약 그리 된다면 정말로 피와 강철 같은 무기가 난립하실 거라고 보십니까?""
꽤 예리한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골똘히 생각했다."
이 세상과 지구의 결정적인 차이는 마나와 마법이다. 이 두 가지로 지구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기꺼이 해낸다."
그러나 지구는 그걸 덮을만한 과학력이 존재하며, 화력만큼은 이 세상보다 더 강하다.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문제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기자 님께서는 2차 종족전쟁을 전제하시는 건가요?""
예, 예. 그렇습니다.""
저는 2차 종족전쟁에서 어떤 무기가 사용될지 모르고, 3차 종족전쟁에서도 무슨 무기가 사용될지 모릅니다. 대신 4차는 알 것 같네요.""
내가 3차를 넘어 4차 종족 전쟁을 예견하자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질문을 한 기자도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뭐죠?""
돌멩이와 나무 막대기입니다.""
······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기자를 두고 좌중을 두리번거렸다."
다들 내 발언으로 넋이 나간 얼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솔직히 저 기자가 질문을 잘했다. 마음 같아서는 소정의 선물을 지급해주고 싶을 정도다."
제가 살던 세계는 인간의 악행이 너무 심한 나머지 멸망을 겪었습니다. 신들께서 직접 천벌을 내리신 거죠.""
··· ···""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신들께서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인간들이 스스로를 멸망시킬 테니까요.""
이윽고 나는 빙긋 웃으며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꺼냈다."
여기라고 다를 게 있겠습니까?""
차기작 떡밥이었다."
******"
기자 회견이 끝난 뒤 하루가 흐르고."
[제논은 세상의 모든 비극을 겪은 자다.]"
기자들이 아주 맛있게 요리해줬다."
미리 말했다시피 나는 재료만 툭툭 던져줬을 뿐이다. 요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줬다."
또한 대한민국이 정상과 거리가 먼 것도 한몫하고 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자면 정말 기이한 나라라고."
만약 적국이 국경선에 병력을 배치하고, 시시때때로 도발한다면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온갖 비극을 겪을대로 겪은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제논 일대기 속에 등장한 비극들 또한 제논이 직접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본래 문학은 난세에서 빛을 발휘하는 법이다.]"
[더이상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결과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등장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얘기했음에도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그러더라. 덕분에 좀 더 편해졌다."
게다가 후속작에 대한 떡밥도 시원하게 날린 참이다. 내가 맨 마지막에 했던 멘트."
[제논이 말했다. 이 세상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냐고. 그리고 제논은 자신의 세상이 신의 천벌로 멸망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신께서 인류에게 천벌을 내린다는 것인가?]"
[제논의 예언으로 혼란스러워진 각 교단들.]"
지구가 신의 천벌로 멸망했다는 것과 이 세상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는 내 발언."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합쳐지는 바람에 일종의 '종말론'이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다. 신권이 강한 세상이다보니 신의 선택으로도 세상이 오락가락하니까."
루미너스와 모라 입장에서는 응? 내가 왜? 라는 의문만 나오겠지. 그래서 종말론은 얼마 가지 않아 점차 수그러들었다."
비록 모라가 부재 중이지만 세실리가 대신 말을 전달하면 끝이다. 신의 말씀을 직접 전달하는 거라서 개연성도 부족하지 않았다."
[종말론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단지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경고?]"
[제논의 과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온갖 비극을 겪은만큼 염세적인 사상이 많을 것.]"
[그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어째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인가?]"
그렇다고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이것 또한 신의 존재가 확실한지라 어쩔 수 없다."
마야 제국이 기원후 2012년에 세계가 멸망할 거라고 예언을 때린 거랑 비슷하다."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 일주일만에 신간이 발매되었다.]"
[혹시 제논이 말한 종말론은 이것인가?]"
공교롭게도 멸망기사의 신간이 발매되어 더 큰 이목을 끌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판매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여유 시간을 얻은 건지 로만도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그래도 너무 빨리 나와서 조금 의문스럽다."
'어디 갇혀서 글만 쓰고 있나?'"
이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넘어갔다. 진짜로 갇혀서 글을 쓰는 거라면 정체도 들켰겠지."
소재 자체가 매운맛을 넘어서 각 교단의 발작 버튼이다. 들키는 순간 케이트가 직접 나서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탄력을 받고 온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안하니 이런 서신을 보냈다."
[로만 작가님. 만약 어디 갇혀 계시다면 맨 마지막 페이지에 당근을 그려주세요.]"
로만은 원고를 출판사로 직접 보내지 않고 나를 거치는 편이다. 내가 편집자 역할을 대신 하는 셈이다."
중간중간 오타를 검수할 겸 추가적인 보충 설명도 할 겸 겸사겸사 하는 거다."
그래도 재능이 재능이다보니 어지간해서는 곧장 출판사로 보내는 편이다."
'장난식이기도 하고.'"
당근을 그려달라는 건 칭찬의 개념에 가깝다. 어디까지나 지구 기준으로 말이다."
과연 로만이 이 농담을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답장이라도 하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앞일을 계획했다."
'테르스 왕국은······ 별 일 없는 건가?'"
우선적으로 테르스 왕국, 정확히는 라오스 왕태자의 동태다."
마리아 여왕도 라오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것인지 나와 협업 아닌 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지난번 테르스 왕국의 언론사가 개지랄을 했을 당시에도 라오스가 뒷배라는 소문도 있었으니."
다만 그런 것치고는 악마 숭배자가 직접 언론사 사장을 조져버려서 심증마저 애매하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그동안의 앙심이 풀렸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말이다."
'일단 마리아 여왕을 믿어야지.'"
마음 같아서는 적당한 구실을 두고 방문하고 싶다. 그러나 괜히 아델리아에게 영향을 끼칠까 쉬쉬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자도 잡힌 마당에 라오스가 뭘 할 수 있겠냐만은. 당장 현자의 주거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스타비르크의 주거지가 아니라 진짜 주거지. 그러니까 다양한 기밀이 존재하는 곳 말이다."
[제논의 차기작은 1차 세계 대전도 냉전도 아닌 신화. 신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했으니 히르트, 루미너스, 모라 이 세 명과 깊은 연관이 있을 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