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80)화 (681/763)

 차기작과 관련된 여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대보다는 의문을 지녔다."

 이미 신화가 멀쩡히 존재하는데 어째서 신화를 적는다는 거지? 대부분 이런 반응들이다."

 하지만 이이상 말했다가는 시작부터 거대한 스포일러를 하는 셈이니 멸망기사의 완결을 기다리기로 정했다."

 로만에게 신화의 비밀을 암시하는 초대형 떡밥을 투척하라고 지시했으니 자연스레 이목을 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해주세요. 신화의 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이제 그걸 말할 시간이 왔구나.""

 내 부탁에 모라가 복잡미묘한 얼굴로 대답했다. 올 것이 왔구나라는 표정에 가깝다."

 피와 강철이 완결되고, 차기작과의 공백을 외전으로 떼울 거지만 그때까지 모라에게 설명을 들을 예정이다."

 다만 모두 알다시피 현재의 모라는 2대째다. 루미너스로부터 기억을 전수받았다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일례로 1대 모라는 유부녀에다가 자식들까지 있었지만 지금의 모라는 아니다."

 그러한 기억을 갖고 있으니 여러모로 괴리감이 심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어.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그러면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무슨 질문?""

 처녀인지 궁금합니다.""

 성희롱적인 질문이지만 나름 진지하다. 모라 같은 경우는 철학적으로도 생각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억이 이전됐다고 해서 같은 존재인가. 내 질문에 흠칫거렸던 모라는 내 진지함을 읽고 떨떠름하게 답했다."

 다, 당연히 처녀지! 애당초 루미너스가 내 아버지이자 오빠라서 사실상 별개의 존재라고 보면 돼.""

 그렇군요.""

 그나저나 굳이 그렇게 질문을 했어야 돼?""

 사실 놀리는 것도 있어요.""

 여성을 놀리면 못 써.""

 얼굴을 붉히며 툴툴거리는 모라. 그녀는 이런 식으로 놀리는 맛이 있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만물의 아버지이자 바다의 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미안하지만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어째서죠?""

 모라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현자도 만물의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려다 실패했다."

 지구의 신들이 그 이름을 들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막았기 때문이다. 이름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다."

 우리 같은 존재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거든. 만일 아버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영향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

 혹시 이 행성의 이름을 히르트로 지으면 안 된다는 것과 같나요?""

 제논 일대기를 집필하던 당시 이 세상의 이름을 히르트로 결정지으려다가 말았다."

 왜 안 되냐고 물으니 히르트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지게 된다고. 대지모신인 히르트조차 거부할 정도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맞아. 더구나 아버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잊혀진 존재이자 만물을 창조한 존재야. 정신력이 약한 자는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지배당하겠지.""

 이상하네요. 그런 거라면 악마 숭배자가 이름을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우니까. 너희 세상도 최고신을 하느님이라던지 다른 명칭으로 높여 부르잖아. 그거랑 비슷해. 무의식적으로 막아버리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종교인들 대부분이 하느님이라 칭하지, 직접적으로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종족을 넘어 피조물 자체에 각인된 특징인 것 같다. "

 그러면 루미너스 님이나 모라 님은요?""

 우리는 최고신 즉, 주신이 아니니까. 주신의 권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을 초월해. 만약 오빠가 정말로 주신으로 승격한다면, 앞으로 루미너스라 직접 칭하지 않고 빛이라고 칭하게 될 거야. 무의식적으로 말이지.""

 ······새삼 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 알 것 같네요.""

 신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따른 힘이 너무 막강해지다보니 이름마저 제대로 부를 수 없는 모양이다."

 크툴루 신화에서도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미쳐버리는 경우가 있던데 그것과 비슷했다."

 모라는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쳐올리며 우쭐거렸다."

 그렇지? 그러니까 앞으로 존경할 수 있도록 해.""

 ··· ···""

 ······너무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모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따로 말은 하지 않겠다."

 그럼 단순히 아버지라고만 칭해야겠네요.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자연이 등장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되겠죠?""

 그정도면 충분하지. 남은 건 다른 신들의 탄생인데······ 이건 오빠에게 들었니?""

 생명의 여신이 바다에서 탄생하고, 루미너스 님과 결혼했다고 들었습니다.""

 잘 들었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생명이 있다면 으레 '죽음'도 존재하지. 죽음은 어디서 탄생했을까?""

 모라가 손가락 하나를 펴며 질문을 던졌다. 꽤 깊이 생각해볼만한 질문이다."

 모라는 어둠, 안식, 평화 등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여기에 죽음은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죽음의 신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일 터. 나는 전생의 신화를 곱씹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혹시 생명의 여신과 쌍둥이라던가 그런 건가요?""

 땡. 아냐.""

 그러면요?""

 이 세상을 넘어 우주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는 없어. 죽음을 집행하는 존재라던가, 죽은 자를 거두는 존재면 몰라도.""

 알쏭달쏭한 말이다. 생명의 신은 존재하는데 사신은 존재하지 않다니."

 내가 눈을 끔뻑이며 의아해하자 모라는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자 순리라는 거야. 모든 생명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약속받거든.""

 생명의 여신이 존재하는 이유는요?""

 단순해. 태어났으니까. 생명은 다양하지만 죽음은 하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그냥 넘어가. 우리도 죽음을 모르는 마당에 너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죽음에 대해 깊이 파고들 필요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다는 말인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하데스도 죽은 자의 세상을 관조하지, 죽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굳이 있다면 타나토스 정도랄까. 그러나 그건 의인화한 존재라 상징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이게 얼마나 큰 깨달음인지 알았으면 좋겠네. 지구의 어느 한 신이 이걸 토대로 윤회라는 깨달음을 전파했거든. 누구인지는 대충 알겠지?""

 필멸자의 몸으로 거기까지 깨달은 셈이니 대단한 거네요.""

 단순히 대단하다고 볼 수준을 한참 넘어섰지.""

 겸사겸사 지구의 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깨달았다. 여래신장을 날렸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

 신화의 시대이니 필멸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셨죠? 그에 대한 에피소드도 듣고 싶네요.""

 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 대표적으로 수인과 드워프의 창조에 대한 거야. 수인과 드워프가 어떤 식으로 창조됐는지 아니?""

 당연히 모르죠.""

 그전에 내 형제들부터 알려줘야겠다. 수인과 드워프를 창조한 신들은 내 형제자매들, 그러니까 아버지의 자식들이야.""

 이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라도 입담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덕분에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게 모라로부터 신화 시대에 듣고 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기사의 원고가 우리 저택으로 전송됐다."

 처음에는 로만이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지만······"

 ······당근?""

 원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당근이 그려져 있는 걸 보고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잡혀계시다면 당근을 그려주세요."

 전생에서 고생하거나 고생하고 있을 법한 사람들에게 장난식으로 하는 말이다."

 특히 편집 혹은 그림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편인데, 이럴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진짜 열심히 했다고 인정 받아 기뻐하거나, 아니면 진짜로 기계처럼 갈리고 있거나."

 이곳은 아직 그런 장난이 없으니 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로만이 이 장난을 알고 있을 확률은 극도로 적다."

 '진짜 어디 붙잡힌 채로 글만 쓰고 있는 건가?'"

 그런 거라면 당장 로만을 찾아야 된다. 하지만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전개 자체가 크게 모나지 않고 제대로 이어졌으니까. 전개가 이상하게 흘러갔다면 진지하게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개도 멀쩡하고 특유의 암울하면서도 흡입력이 강한 문장력도 그대로다. 전보다 더 암울해진 것 같긴 해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편지를 다시 보냈다.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니까 어디 잡혀있다면 당근을 그려달라고. 나에게 확신을 달라고 말이다."

 아이작. 원고가 왔어.""

 벌써? 요즘 일 열심히 하시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새 원고가 도착했다. 나는 아델리아로부터 원고를 건네받고 검수에 나섰다."

 혹시 몰라 맨 마지막 페이지부터 확인했다. 헌데 이번에는 당근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뭐야. 진짜 장난이었어?'"

 조금 안심이 된다. 단순히 영감이 무럭무럭 차올라 탄력이 붙었던 모양이다."

 이에 늘 그랬던 것처럼 오타 검수부터 들어갔다. 솔직히 로만은 철두철미한 성격인지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꼬박꼬박 하는 편이 낫다. 중간에 원고가 뒤섞였을 수도 있었으니."

 음?""

 그러다 첫 페이지부터 오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본래 '살'이라 써야 할 단어가 '잘'로 적혀있다."

 탄력을 받았던만큼 실수를 범한 모양이다. 나는 그 부분에 체크하고 넘겼다."

 '또 오타네.'"

 얼마 가지 않아 또 오타가 나왔다. '려'로 적혀야 할 부분이 '여'로 적혔다."

 다시 그 부분을 체크하고 원고를 넘겼다. 이후에도 오타는 간간이 존재했다."

 그래도 오타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수정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잘 -> 살]"

 [여 -> 려]"

 [두 -> 주]"

 [제 -> 세]"

 [오 -> 요]"

 여태까지의 오타를 종합하니 명백한 SOS 사인이 드러났다. 이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로만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어디에 갇혀서 글만 쓰고 있는 걸까."

 당최 무슨 상황인지 구분하기 어려워도 일단 이 사람을 찾는 것부터 우선이다."

 오타를 이용해 암호까지 쓴 걸 보면 정신적으로 몰린 게 확실하다."

 케이트 추기경 님께서는 현재 교황청에서 근무하고 계십니다.""

 아직 여기에 없어요?""

 네.""

 신전으로 찾아가 케이트를 찾았으나 부재 중이라는 소식만 들렸다."

 듣자하니 교황청으로 돌아가 근무 중이라고 하던데, 지난번에 그런 소리를 하고 떠났긴 했다."

 다만 그정도로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바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연락책이 없는 건 아쉽다."

 '루미너스 님에게 부탁해야 되나······'"

 단순 심부름을 신에게 부탁하자니 그것도 마음에 걸린다. "

 [마음에 걸린다고 하지 않았니?]"

 때로는 양심을 팔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물론 마음에 걸린다는 거지, 실행은 별개의 문제다. 문지방을 넘는 건 어렵지 않다."

 애당초 사람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되지 않겠는가."

 루미너스는 내 대답에 침묵을 고수하더니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현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다."

 [그냥 가만히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금 사람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으음······]"

 내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반박하자 루미너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보아하니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루미너스의 말을 듣는다면 로만에게 별 이상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가 보내준 SOS 신호는 결코 쉬이 넘길 수 없다."

 애당초 나에게 그 암호가 도착한 이상 좌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것까지 무시한다면 로만이 깊은 배신감을 느끼겠지."

 루미너스도 더이상 반박할 거리를 못 느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아이를 부르도록 하마.]"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대신 너무 혼내지는 말아주렴. 이건 나도 도움을 준 거라서.]"

 알고보니 루미너스도 한패였구나.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어이가 없어졌다."

 도대체 로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신마저 협조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지."

 혼내지 말아달라고 한 걸 보면 케이트가 사고 아닌 사고를 친 모양이다. 그 사건 이후 정신을 차린 줄 알았는데."

 [정신을 못 차렸다기보다는······ 다소 성급했다고 봐야겠구나.]"

 루미너스 님은 뭐하셨나요?""

 [난 그 아이를 응원했단다. 단지 네가 이렇게 나설 줄은 전혀 몰랐을 뿐.]"

 ······일단 케이트 씨와 직접 만나서 얘기하겠습니다.""

 루미너스마저 이러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곧장 신전 밖으로 나와 케이트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그동안 모라로부터 신화 시대에 있던 일에 대해서도 듣고, 피와 강철 외전도 틈틈이 적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사흘 정도가 흘렀을 때쯤, 케이트가 우리 저택에 도착했다."

 케이트 씨.""

 네. 아이작 님.""

 지금 로만 씨는 어디에 계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 ···""

 로만의 위치에 대해 묻자 케이트가 흠칫거렸다. 포커페이스인지 몰라도 온화한 미소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뒤이어 그녀는 미소처럼 온화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로만 형제께서는 현재 죄를 저질러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형벌이요?""

 네. 아이작 님께서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알고야 있다. 로만은 교황의 아들이자 이단심문관이기도 한 사람."

 그런 자가 신들의 몰락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썼으니 충분히 죄라고 할만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시대를 기준으로 두었을 때다. 내 입장에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거나 다름없다."

 로만 형제께서는 신들의 몰락을 주제로 소설을 썼죠. 루미너스 님을 모시는 몸으로서 그런 소설을 쓰는 건 엄연한 죄입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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