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79 - 독소전쟁(2)
사상 최악의 전쟁이라 평가받는 독소전쟁. 이 전쟁은 다른 전쟁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눈에 띄는 편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은 많고 많지만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건 다 똑같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영토, 노동력, 자금, 긍지 등등.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그것도 독소전쟁은 여타 전쟁과 양상이 많이 다르다.
우선 괴물과 괴물의 대결이라는 수식어처럼 유례 없는 대규묘 병력 동원, 대규모 기동전, 미친듯한 화력.
마지막으로 국가의 모든 힘을 쏟아붓는 총력전까지.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특징들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말 그대로 한 명의 독재자를 위해 국가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쟁.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나치 독일의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전쟁이다. 히틀러의 소원 '레벤스라움'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던 전쟁.
보통 전쟁에서 노동력은 매우 귀중한 자원이자 자산이다. 전쟁에서 얻은 노동력을 어딘가에 굴리기만 하면 전쟁이 좀 더 쉬워지니까.
그러나 나치 독일은 그러지 않았다. 폴란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련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게르만 민족이 살 땅을 확보한다는 명분 하에. 진짜 밑도 끝도 없이 학살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병력 동원. 이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일반 병사들을 양성하는 건 수 개월이 소요되지만, 피와 강철 속의 병사는 한 달이면 충분하다.]
[저들은 '교육'을 받은 병사일 뿐, 기사처럼 단련된 게 아니다. 그렇기에 대규모 병력 동원이 가능한 것.]
사람들은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허무하게 제압당하는 소련과, 200만을 훌쩍 넘는 병력을 보며 경악했다.
기사들의 시대가 저물지 않은 이 세상은 병력을 긁어모아야 100만을 겨우겨우 찍는다. 이것도 미네르바 제국만 가능하다.
심지어 가능하다는 거지, 이 병력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보장도 없다. 애당초 이 정도 긁어모았다는 건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는 뜻이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소련. 대숙청의 영향으로 멀쩡한 지휘관이 없다.]
[스탈린이 내린 후퇴 금지 명령은 비극으로 바뀌었다.]
[소련마저 나치 독일이라는 악에게 무너지는 것인가?]
바르바로사 작전은 소련의 쓰레기 같은 상황과 맞물려 어마어마한 결과를 내놓았다.
여기에 스탈린의 훌륭한 어시스트까지 합쳐진 덕분에 추축국의 대승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술적인 승리지, 전략적인 승리는 아니다. 이때부터 히틀러의 트롤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이건 차차 전개를 하면서 보여줄 것이며 아직은 독소전쟁 초반부다. 나치 독일이 기세 좋게 밀고 나가던 시기.
[레벤스라움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민족을 절멸시키는 나치 독일. 이 행보를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나치 독일은 명백한 악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악.]
[폴란드 침공부터 낌새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소련 침공으로 그 절정을 달리기 시작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포로는 살리는 게 상식이다. 허나 나치 독일은 단지 민족을 위한다는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겸사겸사 학살을 밥 먹듯이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학살극으로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없이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비난했다.
본인의 민족을 위해 다른 민족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민족주의 및 극단주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전체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는 애국자.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며 히틀러는 '십새끼'로 승격 아닌 승격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소련을 응원하겠다. 악마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괴물이 되기를 택하겠다.]
[히틀러는 어쩌다 이런 악마가 되었는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는가?]
[애국자가 타락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본인의 능력으로 강력한 힘을 얻었으며, 무너지던 조국까지 일으켰다.]
당연하게도 히틀러를 욕하는 사람들이 대거 속출했다. 응원하던 사람들조차 단번에 돌아설 정도로.
팬들이 전부 안티팬이 되었으나 오히려 좋다. 본래 악역은 비난과 비난, 그리고 야유로 먹고 사는 존재니까.
평범한 왕도물(?)이었던 피와 강철은 어느새 장르가 피카레스크로 변질됐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만약 뜬금없이 타락했다면 작품 자체에 욕을 먹었겠지만, 그 과정이 짜임새 있게 구성된 덕분에 히틀러만 욕하고 있다.
[사적으로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게 그의 무서운 점이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학살해도 동물, 특히 개는 끔찍하게 사랑하는 인간.]
[이런 상황인데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광기이지 않을까?]
실제로 히틀러는 사적으로는 상당히 유연하고 부드러운 인물이다. 미친 짓을 연달아 저질러서 문제지.
특유의 악센트를 넣던 연설조차 일종의 연기에 가깝다. 실제 목소리는 꽤 낮은 편이다.
아무튼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며 현재 히틀러는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십새끼'로 취급받고 있었다.
악인이긴 해도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간승리의 표본이었으며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나는 히틀러를 끝까지 응원하겠다. 그의 잘못을 옹호할 생각은 없으나 최후가 어떤지 보고 싶다.]
[히틀러의 최후가 궁금하다. 과연 모든 잘못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끝까지 악당으로 남을 것이냐.]
[히틀러가 죽어야 피와 강철 세계관이 평화로워질 것이다.]
독소전쟁이 시작되면서 히틀러는 명백한 악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악당으로서의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덤.
비난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캐릭터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내가 우려했던대로 히틀러가 다스 베이더로 변하고 있었다. 악당임에도 특유의 매력으로 인지도를 끄는 등장인물.
[차라리 히틀러가 완전한 악당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중간에 멈춘다면 캐릭터성이 더 망가질 것.]
[나치 독일에게 있어서 히틀러는 영웅이나 대외적으로는 명확한 악당이다.]
[그의 광기를 멈출 정의의 사도는 누가 될 것인가? 영국? 소련? 미국?]
또한 기류도 바뀌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최종 보스'로 변하면서 그를 상대할 국가를 찾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의 라이벌이라함은 당연하게도 소련을 지목하겠지만 현재 소련은 신나게 털리는 상태.
미국도 바다를 건너야 했기에 당장은 무리였으며 영국은 여전히 빌빌거리고 있다.
진짜로 나치 독일을 상대할만한 국가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말이다.
[나치 독일의 동맹인 일본이 미국을 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저런 예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미쳤다고 일본이 미국에게 선제 공격을 가하겠나? 현재 일본은 중국만으로도 벅차다.]
[중국뿐만 아니라 나치 독일과 동맹인 이상 소련과의 승부도 예측해야 할 판.]
[일본이 미국을 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전부 말도 안 된다며 묵살당했다. 어디까지나 '상식적으로' 따진다면 일본이 미국을 치는 건 미친 짓거리다.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은 무기대여법 즉, 렌드리스를 통해 미국의 능력을 일부나마 파악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으로 전세계의 경제가 흔들거렸다. 이는 세계 경제를 미국이 꽉 쥐고 있다는 소리와 같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미국을 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나치 독일의 문제점은 광기다. 광기는 적들을 만드는 법.]
[보급과 날씨도 변수가 될 것이다. 세상에 무적은 없다.]
이러한 이유들로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약점을 열심히 파고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괴물을 토벌할 수 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나치 독일은 쓰러지지 않는 '괴물'로 취급받았다. 적어도 악마까지는 아니다.
학살극을 많이 일으키긴 했으나 전쟁이라는 특수성이 어느 정도 덮어버렸다.
하지만 이것조차 얼마 가지 않겠지. 곧 있으면 진짜 악마가 도사릴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래서 이런 걸 그리라고요?"
"네."
"진짜 그립니까?"
"네. 그리세요."
내 훌륭한 노······ 아니, 삽화가 칼즈.
그는 내가 스케치한 '일부' 그림들을 보면서 번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스케치뿐만 아니라 그림에 관한 내용들로 함께 있었는데, 그래서 더 충격이라는 반응이다.
"아이작 님."
"말씀하세요."
"차라리 구덩이에 사람을 밀어넣고 생매장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칼즈가 내 스케치를 보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그런 야만적인 방법은 진작에 하고도 남았을 놈들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치 독일은 말이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적어도 이건 그냥······ 아뇨. 됐습니다."
결국 생각하기를 포기한 칼즈. 그는 한동안 스케치를 빤히 쳐다보더니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이 뭡니까? 이건 제목을 따로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제목이야, 정한 게 있죠. 에피소드의 제목이기도 하고."
어쩌면 가장 유명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
홀로코스트의 알파이자 오메가.
"죽음의 수용소."
죽음의 수용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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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파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피와 강철에 흠뻑 빠졌다.
특히 주인공이라 굳게 믿고 있던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악당으로 변하면서 평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전작의 제논 일대기조차 큰 충격을 선사했는데 피카레스크라는 새로운 장르마저 구축했으니까. 그야말로 문학계에 역사를 남기는 중이다.
물론 이런 행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제논 일대기 이전 문학계의 거장이었던 노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노스는 피와 강철을 폄훼함과 동시에 상식과 어긋나는 전개를 내보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관심을 끌면 자연스레 아이작도 관심을 가질 테고, 그걸 통해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허나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전개가 죄다 맞아떨어졌다는 것. 노스는 물론 그의 뒤를 봐주는 단체조차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과거의 명성을 약간이나마 회복시킬 수 있었으나 목적과 동떨어졌기에 노스로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독소전쟁이 발발한 지금,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이 새끼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지?"
상상력의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반쯤 포기한 채 피와 강철을 정독하는 노스.
그는 심심하면 학살을 저지르는 나치 독일의 악행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아이작의 상상력을 감탄했다.
이제는 슬슬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본인이라면 이딴 생각조차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냥 격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세계를 하나 창조한 건 그렇다 쳐도, 지나칠 정도로 생생한데······'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정밀하게 짜여진 설정이다.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각각의 나라와 지도자들 모두 포함해서.
어그로를 끌기 위해 미친 소리를 저질렀던 것마저 '개연성' 있게 진행되다보니 이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제논 일대기를 폄훼했던 것도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어서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그렇다고 완전히 굽힌 건 아니다. 노스는 남아있던 자존심마저 굴복하려는 순간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뒤이어 그는 언론에 내보내기 위한 종이와 펜을 각각 준비했다.
피와 강철의 연재가 시작됐으니 자신의 활동도 재개해야 된다. 이건 뒷배와 맺었던 계약 중 하나였으니.
어떻게든 아이작을 바깥으로 끌어내야 된다. 제논 축제 당시에는 마이샬 영지에 박혀있던 탓에 만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된다. 헛소리가 아닌 정공법으로.'
나치 독일의 목표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레벤스라움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민족을 철저하게 짓밟을 터.
그리고 노스는 생각했다. 그 방법을 최대한 잔인하게 예측한다면 되지 않을까라고.
나치 독일이 이미 완벽한 악역으로 바뀐 이상 뭐가 됐던 간에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노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넘어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라고 경악해야 된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전부 밀어넣을까? 아니. 이걸로 약해. 아니면 참수 대결? 이거는 실제 있던 일이고.'
참수 대결은 과거에 있던 학살극 중 하나다. 중세답다면 심히 중세답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최대한 잔인하게 생각해야 된다. 그러면서도 학살을 진행시켜야 하니······'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어진 탓일까. 어떻게든 '창의성'을 발휘하려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노력이 노스의 창작력을 더욱 발전시켰으나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
'본인의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을 학살시켜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렇지! 노예들! 과거에 진행된 노예매매를 빌리면 될 거야.'
노스의 상상력은 아이작마저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다. 실제 홀로코스트도 노예매매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것도 여기까지다. 노스의 상상력은 뛰어났으나 그는 지극히 '정상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 노예들을 노동력으로 쓸 테고, 그걸 기반으로 나치 독일은 더 강력해질 터.'
정말 상식적인 생각이다.
'이러면 소련이 나치 독일을 이길 수나 있나? 불가능할 텐데?'
그 상식이 모조리 무너지는 것이 2차 세계 대전이자 독소전쟁이었고.
"스읍······ 아무리 내가 봐도 너무 잔인한데? 이거면 그 놈도 소름이 끼치겠지."
인간의 광기를 과소평가하던 노스는 싱글벙글하며 편지를 고이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