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78 - 독소전쟁(1)
불안 요소가 군데군데 존재했던 제논 축제는 성황리에 끝마쳤다.
제논 일대기와 피와 강철이 적절하게 섞였으며, 그 둘을 위한 공연들도 무난하게 진행됐다.
여기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함은 기사와 나치 독일 병사가 서로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던 상황.
무언가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풍겼던지라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으니 됐지.
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제논 일대기 영화. 원작부터가 30권을 훨씬 웃도는 양을 자랑하다보니 영화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초반에는 카이르에게서 구타를 빙자한 훈련을 받는 제논과 초보 모험가 시절을 보여주기에 그닥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다.
[제자야. 눈을 감아보렴. 뭐가 보이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이제 곧 별이 보일게다.]
[예? 뜨헑!]
아니더라. 새삼 스칼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 지 절감할 수 있었다.
원작에 없던 내용이었지만 카이르와 제논 간의 관계를 제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웃음 요소까지 꽉 잡았다.
사크란의 최후를 공연으로 보여줬을 때도 어느 정도 각색을 거쳤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원작자인 나마저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캐릭터 해석을 보여준 감독이다.
"스칼 감독에게 네가 보여줬던 영화 기법을 알려줘도 될까? 그러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서."
"음······ 이대로도 상관없긴 한데 도움이 된다면야. 대신 스칼 감독이 꾸준히 책임자가 됐으면 좋겠어."
"그거야 당연하지. 스칼 감독만한 사람도 세상에 몇 없을 걸? 지금도 제논 일대기를 몇 번 씩 정독하고 있다던데."
원작을 사랑하는 감독, 그것도 나라 단위로 지원을 받고 있는 감독이 좋은 결과물을 만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만약 실력이 없다면 냉정하게 판단해서라도 갈아치웠겠으나 스칼 감독은 현재까지 세계 최고의 극단 감독이라 불리는 인물.
마법을 연극에 사용할 정도로 열정적인 인물이며 영화 산업 역사에 큰 획을 그을 게 분명하다. 제논 일대기가 첫 작품인 것도 있고.
이렇듯 제논 일대기 영화를 종지부로 제논 축제는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말만 공식적이지, 그 여파는 지금까지 오래 가고 있다.
영지에 독일 군복 및 제복을 착용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전차 한 대를 기념으로 둬도 되냐고요?"
"그렇소. 전차는 우리 혁명의 상징이자 작품이기도 하지. 우리는 전차를 작품으로 가지고 왔을 뿐, 그 어떤 의도도 없소."
이 놈들의 드워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 아닌 문제를 남기더라.
나는 가이스트의 일원이자 연설 및 정치를 담당하는 드워프, 기아스의 말을 듣고 황당을 금치 못했다.
전차 한 대가 아닌 여러 대를 이끌고 축제에 참여한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우려했던 음주 운전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가동을 중지한 전차들을 기사들이 직접 지킴으로서 해결했으니.
나머지 한 대는 천천히 끌고 다니다가 사람들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하며 즐겼다.
나치 독일 코스프레를 한 사람과 맥주를 마시던 모습은 가히 장관을 넘어선 가관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영지에 전차 한 대를 '작품'으로 남겨달란다.
"알겠습니다. 대신 사고 자체를 방지하도록 마력 기관은 분리해주세요."
"물론이오."
이건 못 참지. 누가 훔쳐간다면 모를까, 전차의 운행법은 드워프밖에 모른다.
하물며 마력 기관을 떼어간다면 가동조차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작품'으로서의 면모만 남는다는 것이다.
전차는 육군의 상징 그 자체. 외관상으로도 나름 멋있으니 도시에 어울린다. 혼종이 되긴 하겠지만 차차 익숙해지겠지.
"관리해야 될 건······"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오. 우리 마키나 쪽에서 지원을 보낼 테니. 원한다면 마력 기관을 설치해서 전차에 탑승시켜줄 수도 있소."
"······혹시 지금 한 번 타도 될까요?"
전차에 탑승하는 것도 모자라 포탄까지 발사했다. 세상에 전차라니. 이걸 어떻게 참냐고.
때마침 아버지도 전차에 호기심이 있던지라 함께 탑승했다. 내부가 좁을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넓어서 가능하다.
뒤이어 포탄까지 발사한 후에 아버지가 이런 평가를 남기셨다.
"오우거도 이걸 제대로 맞았다간 뼈도 못 추릴 게다. 마키나가 정말로 괴물을 만들었구나."
아버지 입장에서도 전차는 괴물이었다. 대신 무적은 아니고 다양한 약점들이 산재해 있다고.
하지만 전차는 기동성이 뛰어난 대포임과 동시에 엄폐가 가능한 요새다.
저 둘만으로도 전쟁의 양상이 크게 바뀌는데 아예 합쳐졌으니 많은 게 변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당장 변하지는 않을 게다. 아무래도 기준이 드워프다 보니 따라하는 것조차 벅찰 테니까."
"기사의 시대가 저물까요?"
"완전히 저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특히 몬스터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기사의 시대가 저물 일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전차가 오우거에게도 효과가 있는 건 아버지가 직접 말씀하신 사실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지만 오우거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전차의 위력을 지닌 무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예산도 예산일 뿐더러 전차를 가동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한데 기사는 그런 게 필요없다. 몸과 무기만 있으면 끝.
전생처럼 사람만 있다면 모를까, 여러모로 변수가 될 법한 몬스터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중론이다.
'비행기가 발명돼도 비행 몬스터 때문에 애를 먹을 거고.'
이 세상에 과연 몬스터가 사라지기는 할까. 자연의 여신 히르트의 간섭조차 통하지 않는 마물들.
없어져도 아마 세상이 멸망할 때나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인류고 뭐고 사이좋게.
물론 이 부분이 내가 생각할 게 아니다. 내가 할 건 한 가지, 피와 강철의 연재밖에 없다.
"아리엘. 앞으로 장난식으로라도 아빠한테 그런 식으로 인사하면 안 돼. 알겠지?"
"왜?"
"그거 나쁜 놈들이 하는 인사야."
겸사겸사 아리엘의 교육도 하면서. 도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나치식 인사법을 아리엘에게 듣다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현재 나치 독일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인사 자체가 독특하다. 컬트적인 인기를 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다가 나중에 사람들이 전부 나치식 인사를 하는 게 아닐까 두렵다.
"나쁜 놈들이 하는 인사?"
"응. 정말 나쁜 놈들이 하는 거니까 하면 안 돼."
"그럼 아빠도 나쁜 놈이야? 아빠가 만든 거라며."
"··· ···"
결국 아리엘을 설득하는 데에만 하루를 할애했다. 얘가 장난치는 건지 아닌지 약간 헷갈렸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거 독소전쟁이 시작되도 이 기류가 옅어질까?'
동시에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면 자연스레 '홀로코스트'가 동반될 터.
굳이 홀로코스트가 아니더라도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 무수한 유대인들이 학살될 예정이다.
특히 폴란드는 이틀만에 3만명이 학살될 정도로 끔찍한 대우를 받겠지. 본격적인 광기가 시작될 에정이다.
'일말의 용서 가치가 없는 악이라며 더 환호하는 건 아니겠지?'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유사하다는 다스 베이더도 그렇다. 다스 베이더는 행적으로만 따진다면 둘도 없는 악당이다.
하지만 다스 베이더의 인기는 주인공보다 높다. 외관도 외관일 뿐더러 무력과 지휘 능력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그리 될까봐 약간 두렵다. 히틀러도 행적으로만 본다면 조국을 위해 온 몸을 바친 애국자다.
그런 애국자가 천천히 타락하여 기어이 조국마저 멸망시킨다는, 서사 하나는 끝장나는 인물이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자결로 '깔끔하게' 끝맺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서사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진짜 답이 없는 놈으로 묘사해야 된다.'
나치 독일이든 히틀러든 그레이트 십새끼를 넘어선 무언가로 묘사해야 된다. 그래야만 기류가 슬금슬금 사라지겠지.
이렇게 했는데도 열렬히 빨아준다면? 나중에 죽었을 때 하느님에게 빌고 빌어야지.
그나마 다행히도 히틀러라는 캐릭터 자체에 인기를 끌고 있을 뿐, 그의 사상을 진심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도 히틀러만큼 인기를 끌만한 사람이 있긴 있지만······'
훗날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정의의 나라, 미국. 미국도 실상을 파고들면 정의와 거리가 멀지만 추축국에 대항하니 정의로 치자.
그리고 그 미국에 단연 독보적으로 튀는 장군이 한 명 있다.
오죽하면 중세에 태어날 사람이 잘못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구가하는 인물.
'조지 패튼.'
이 사람은 행적 하나하나가 비범하다.
멕시코 내전에서 전차에 시체를 효수하고 복귀한다던가. 툭하면 음주운전에 불륜소동을 일으키고, 전차를 무슨 기병마냥 돌격시키는 등.
이런 미친 기행을 벌였음에도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건 능력이 끝장나게 좋았기 때문이다. 능력도 안 좋은데 저러면 잘리고도 남는다.
특히 기행을 벌일 때마다 그의 상관이었던 아이젠하워가 뒷목을 잡았다. 이후에는 커버도 불가능해서 포기했을 정도고.
아무튼 미국측 주인공으로 적합한 게 바로 조지 패튼이다 이 말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이탈리아처럼 약방의 감초에 가깝지만······'
미친 존재감이라고, 패튼의 존재감은 그 어느 감초보다 뛰어날 것이다. 히틀러가 너무 특출난 인물이라 어쩔 수 없다.
내 잘못이자 내 업보다. 하필이면 세계 최고의 악역이 지구에 존재했고, 나는 그런 악역의 이야기를 써버렸다.
세상은 때로 영화보다 현실이 더 하다는 말이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여기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허허허허허."
멘탈이 나갈 것 같아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히 집무실에는 나 혼자여서 아무도 이 모습을 못 봤다는 것.
마리가 봤다면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냈겠지. 현재 그녀는 다른 애인들과 신나게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다.
'그래. 한 번 뚫어봐야지.'
독소전쟁과 홀로코스트까지 썼는데도 지금과 같다면 깔끔하게 받아들이자. 그나마 핵폭탄이 이를 덮을 수 있겠네.
하지만 나는 이런 업보를 맞이하기 싫다. 자존심은 물론이요 양심도 무너지는 느낌이다.
자존심은 히틀러 따위가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양심은 실제 있던 일이 가상의 이야기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제논 일대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히틀러가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존심이 충분히 상할만한 일이다.
'차라리 진짜 다스 베이더를 만들고 말지.'
SF를 쓴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에 비견되는 또다른 캐릭터를 제작하고 싶다는 것이다.
다음 차기작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냐고? 통조림에 한 번 들어가고 말지 뭐.
히틀러가 사라질 수 있도록, 내 한 몸 고생시켜 좋은 캐릭터를 만들고 만다.
'일단 지금은······'
콧수염부터 다 뜯어놓자. 나는 독소전쟁 시작 파트 즉, 바르바로사 작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칼즈와 함께 통조림에 지내면서 태평양 전쟁까지 적은 상태. 지금은 퇴고를 거치는 중이다.
'이 정도면 문제가 없고······'
그러면 발매해야겠지. 축제가 끝나고 며칠이 흘렀으니 슬슬 작품이 생각날 때다.
이에 지체없이 출판사로 원고지를 보냈고.
"반송했다고요?"
"그래. 편지까지 있는데 한 번 읽어보겠니?"
"예."
알 수 없는 이유로 반송당했다. 편지 하나와 함께.
나는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은 후 천천히 읽었다. 편지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머스크였다.
편지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이렇다.
[악마 숭배자가 중간에 수를 쓴 것 같아 회신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 ···"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