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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81)화 (582/763)

Chapter 580 - 독소전쟁(3)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약간의 의문을 느꼈다. 이 세상은 왜 이리 순한 것 같냐고.

중세면 중세답게 인권 같은 건 바닥을 치고, 왕 혹은 영주들의 욕심으로 전쟁이 판을 쳐야 정상이지 않냐고.

이외에 노예매매라던가, 인륜 따위는 저버린 실험이라던가, 고문이라던가, 야만적인 행위라던가 등등.

지구는 그런 것들이 수두룩한 걸 넘어섰으며 비교적 근대인 2차 세계 대전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공장 단위로 돌아가는 학살 체제, 홀로코스트도 그 잔재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우생학을 보여주는 대학살극.

단, 홀로코스트는 비교적 근대에 발생했던 사건이라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우수한 기술력이 그런 곳에 가동됐으니 충격을 받을만 하지.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배제해도 이 세상에는 지구와 맞먹는 사건이 거의 없다.

기껏 해야 세이비어의 마족 학살과 종족 전쟁 당시 인간의 수인 학살 정도랄까.

마족 학살은 악마를 향한 혐오감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던 점도 있었고, 수인 학살은 전쟁의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다 따져도 지구에 비해서 한참 모자라다. 틈만 나면 전쟁이 터지던 곳인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심지어 인신공양을 주로 하던 아즈텍 문명이나 벨기에의 콩고 착취와 비교했을 때 지극히 약과다.

신들의 관리를 받는 세계와 방임주의로 내세운 세계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세이비어의 마족 학살도 루미너스가 중간에 제지했다고 기록돼 있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루미너스의 쌍둥이 여동생, 모라는 마족을 직접적으로 보호했다.

그 보호 아래에서 탄생한 국가가 바로 헬리움. 헬리움이 없었더라면 마족은 현재까지도 심한 차별을 받았겠지.

나라의 보호를 받는 민족과 그렇지 못한 민족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 세상이 보기에 지구는 마계 그 자체이지 않을까?'

역사의 반이 전쟁으로 채워져 있고, 틈만 나면 세계구급 대사건이 터지는데다가 악마나 할 짓을 거리낌없이 행하는 세상.

이 세상은 신들이 언어를 비롯한 철학을 전수했기에 비교적 빠르게 성숙해질 수 있었으나 지구는 그딴 거 없다.

일단 상대방의 대가리를 쪼개고 나서야 '사람은 머리를 치면 죽는구나'라고 기록하는 세상이다.

이런 미친 짓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으니 그만한 발전을 이룩한 것이기도 하고.

"······해서, 미리 말하는 거야. 앞으로 충격 받지 말라고."

"··· ···"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서 마리와 세실리에게 미리 스포일러했다.

2차 세계 대전이 얼마나 끔찍한 지, 그리고 나치 독일이 앞으로 유대인을 비롯한 슬라브 민족에게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

내 이야기를 들은 마리와 세실리의 반응은 서로 비슷했다. 서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특히 유대인과 마족을 서로 융화시키고 있던 세실리는 벌어진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하고 있었다.

'미리 알려줘서 다행이네.'

원래는 서프라이즈 형식으로 책으로 알려줄 계획이었다. 여태까지 나에게 장난을 친 거에 대한 복수랄까.

하지만 최근 노스가 언론에 내보낸 기사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노스의 충격적인 예상 전개. 과연 저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상상이란 말인가?]

[저건 악마 숭배자는 물론 악마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인권은 상승하고 있다. 노예매매가 정식적으로 폐지된 것도 그 이유.]

[그러나 저건 사람이 아니라 아예 가축 취급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병든 가축을 폐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피와 강철의 연재가 재개되면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노스의 어그로성 전개 예측.

그는 나치 독일의 학살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한 예측을 내놓았다.

노예매매 형식으로 데리고 간 후 노동력으로 사용하다가 망가지면 폐기하는 식으로.

굳이 노동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 끝은 폐기로 끝났다.

폐기의 형식도 꽤 잔인한 편이었는데, 커다란 구멍이를 만들어서 그곳으로 던진다던가 아니면 간단하게 총살시킨다던가 등.

나름대로 정답(?)에 가까운 전개 예측이었지만 사람들은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며 무시무시한 비난을 쏟아부었다.

'세실리가 당장 잡으러 가자고 노발대발했으니.'

당연하게도 유대인에게 깊은 몰입을 하고 있던 세실리가 화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이건 사람을 가축이나 도구 취급을 하는 걸 넘어서서 그냥 벌레 취급하는 게 아니냐고.

이런 짓을 했다가는 신이 절대 용서치 않을 거라는 등. 여러모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원하게 진실을 알려준 것이다. 혹여 독단적인 행동을 펼칠 수 있는데다가 마족 전체가 들고 일어날 것 같았으니.

"······아이작."

"응. 마리."

"나치 독일은 국가 단위로 악마가 살던 나라였어?"

세실리보다 비교적 충격이 덜한 마리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세실리가 아닌 그녀에게 알려준 이유는 다름아닌 뱃속의 내 아이 때문이다.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떨어지는 낙엽조차 조심해야 할 시기.

약간의 충격조차 방지하고 싶던 나로서는 응당 알려줄 의무가 있다.

"악마라기보다는······ 영웅의 탈을 쓴 악마를 추종하던 나라였지. 히틀러는 나치 독일의 영웅이고, 유대인들을 향한 혐오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으니까."

"한 사람의 이상을 위해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건······"

"맞아. 신이 용납하지 않겠지. 하지만 우리 세상은 신이 현세에 간섭하지 않아."

수많은 매체에서도 나치와 악마는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나치 죽이는 게임이 존재할 정도이니 말 다했지.

죽어도 싼 놈들이지만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다.

"······처벌은 받았어?"

충격이 어느 정도 갔는지 세실리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분노와 씁쓸함 감정이 뒤섞여 있는 오묘한 표정. 홀로코스트의 행각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유대인의 비극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독자들은 피와 강철을 어디까지나 가상의 이야기로 취급하고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실리가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마족은 한때 유대인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지 않았는가.

"응. 나치 독일은 완벽하게 패망해. 그리고 나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처벌을 받았지. 고위급은 대부분 사형으로 직결됐고."

"그 후에 유대인들이 세계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을 건국했구나?"

"기억하고 있네. 맞아."

"··· ···"

세실리는 내 대답을 듣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수에 젖어있는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나치 독일 전체가 유대인 학살에 동조했어?"

세실리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마리가 속삭이며 나에게 질문했다. 아무래도 실제 역사다보니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그건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치에 동조한 건 맞지만, 양심이 존재하던 사람이 있었거든.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오스카 쉰들러야."

"······오스카 쉰들러?"

"응."

"어디서 들어봤는데······ 누구였더라······"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 떠올렸다. 하지만 금방 떠올리기는 힘들 것이다.

피와 강철에서도 알음알음 언급됐지만 오스카 쉰들러는 부패한 기업인이라는 묘사가 항상 따라붙었다.

폴란드 침공 당시에도 한탕 벌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고, 나치당에까지 가입한데다가 매우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쉰들러에 대해 모른다. 단지 '지나가던 엑스트라' 취급을 하고 있을 뿐이지,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그 사람 부패한 기업가라고 묘사됐던 걸로 아는데?"

그러다 세실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의문을 드러냈다. 역시 기억력이 비상한 마족답게 전부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부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맞아. 원래는 그랬지. 하지만 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시작했어. 나치 독일의 행패를 보고 뭔가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러니하네.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광기에 빠져들어가는데 정작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인간적으로 변해간다니."

"그 사람에 대한 것도 쓸 거야?"

세실리의 감평 이후로 뭔가 눈치챈 마리가 재빠르게 질문했다. 나는 그 질문에 단지 미소를 지어주는 걸로 화답했다.

오스카 쉰들러는 2차 세계 대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의인이다. 쉰들러를 제외하고 다른 의인들도 많았으나 그는 독특한 케이스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었던 기업가가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내며 유대인을 보호한다. 말만 들으면 그게 가당키냐하냐고 비웃겠지.

이때문인지 훗날 쉰들러를 폄훼하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유대인을 보호하다가 파산했다는 것만으로 전부 반박할 수 있다.

"쉰들러뿐만 아니야. 어쩌면 세실리 누나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도 있거든."

"내가 좋아할만한 이야기?"

"응. 유대인 학살에 일조하다가 이후 도망쳤지만, 결국 그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사형당하는 나치 당원. 참고로 이것도 실화야."

"한 번 알려줄 수 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했던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자기 종족에 한해서는 감정을 정말 쉽게 드러냈다.

나는 어차피 홀로코스트까지 밝힌 거,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도 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그녀에게 알려줄 이야기는 복수혈전 혹은 권선징악에 어울리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

홀로코스트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이후에나 등장하겠다만 스포일러를 했으니 상관없겠지.

"어떤 이야기냐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세실리의 반응은 딱 한 가지 정의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그딴 쓰레기가 멀쩡히 살아있었으면 못 잤을 것 같아."

속 시원하다라고.

이렇듯 홀로코스트의 등장이 점차 다가오고 있을 때, 피와 강철의 전개는 급변을 맞이하고 있었다.

독일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던 소련이 기어코 모스크바까지 후퇴한 것이 첫번째 이유.

소련에게 땅을 뜯겼던 핀란드가 나치 독일에 합류한 것이 두번째 이유.

마지막으로 당대 12월에 발생했던······

[도라! 도라! 도라!]

[일본이 기어이 상식을 깨부수다.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에게 공습을 가하다!]

[일본은 과연 미국이라는 거인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인가?]

[대체 왜?]

미국을 빡돌게 만들었던 진주만 공습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했던 전개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세상은 이상하게 흘러가는 법.

[대체 그 놈의 석유가 무엇이길래 일본이 무리를 한 것일까?]

['검은 물'이라며 천대 받은 석유. 혹시 검은 물이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연료가 되는 것인가?]

[석탄과 검은 물의 공통점은 화력이 높다. 제논은 분명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석유가 점차 대두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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