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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93화 (494/763)

드워프 삼인방은 하루도 되지 않아 마키나로 귀국했다. 계속 머물렀다가 부르주 5세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이들의 운명은 끝나니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미네르바 제국과 마키나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다 이들은 마력차까지 끌고 온 상황이다.

설령 연료가 될 석탄이 없더라도 마나를 쥐어짠다면 어찌저찌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 터.

혁명은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급하게 진행한다면 모래 위에 쌓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본래 시위를 비롯한 혁명은 중심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금방 무너지는 법. 성공한다면 '국부'가 될 것이요, 실패한다면 '사형'이다.

그렇다면 드워프 삼인방에게 조언을 해준 내 입장은 어떻게 될까? 마키나에서 정식으로 항의를 할까, 아니면 신변을 요청할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부르주 5세가 노발대발하던 간에 나는 멀쩡하다.

악마 숭배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세상을 구해준 성자. 신들이 어여삐 여기는데다가 히르트의 순수한 축복까지 받은 자.

과연 이런 사람에게 겨우 '왕' 따위가 뭐라고 할 처지가 될까? 불가능하다.

반대로 내가 '저 놈은 해로운 왕이다'라고 지목한다면 부르주 5세의 모가지가 뎅겅- 날아가겠지.

이른바 책임 없는 쾌락인 셈이다. 나는 그냥 조언만 몇 번 던져주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상황.

대신 마키나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서 드워프 삼인방이 처형당한다면 죄책감이 일겠지. 하지만 혁명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미 불만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인데 내전까지 돌입하는 순간 마키나의 운명은 결정돼 있다. 왕이 끌어내려지는 것으로.

나는 혁명이 끝날 때까지 유유히 글만 쓰면 끝이다. 다만 마키나에서 본격적으로 혁명이 발발하면 종이 생산이 중단될 테니 여유를 가져야겠지.

"정말이지 누구 덕분에 날이 지날 때마다 머리가 아파. 어떻게 하면 이 두통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에게는 아니지. 그녀는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분명 웃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지 않다. 깊은 빡침을 표현하는 그녀만의 방식이다.

드워프 삼인방이 마키나로 귀국한 이후, 리나는 테이블 앉아 본인의 불만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알븐하임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더니 테르스 왕국 다음으로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던 애니머즈는 민주주의를 도입시켜서 단합하게 만들고, 이제는 마키나에 혁명까지 일으키네?"

"··· ···"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니 내가 저지른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리나의 불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아델리아가 타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우아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얘들아. 너희들도 이 말을 듣지 않았니? 정말 쓸데없이 잘생긴 빨간머리가 자기는 세상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지? 나 그거 자주 들었던 거 같은데."

"많이 들었지."

"나도 들은 적 있어."

리나가 의견을 구하자 마리와 세실리가 각각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과거의 내가 저런 말을 한 건 나도 기억하고 있다.

아니, 과거도 아니지. 최근에도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걸로 안다. 피와 강철을 집필하고나서 유명무실해졌지만.

만약 적당히 유명해졌다면 모를까, 내가 똥을 싸도 박수를 칠 경지에 올라왔다. 아예 예언이라고 칭송하겠지.

해결책을 하나 턱- 던져주면 그걸 현자의 예언이랍시고 부풀리는 건 물론이요, 나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그래도 나는 좋아. 그 빨간머리 덕분에 우리 마족이 구원 받았는 걸? 그리고 내면의 악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도와줬지. 난 그 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거야."

긍정적인 영향의 대표자이자 마족의 공주, 세실리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두 손을 꽉 잡으며 칭송했다.

그러면서 은근한 시선으로 나를 힐긋거리는 것이, 구원받은 마족으로서의 존경심과 연인을 향한 사랑이 뚝뚝 묻어나왔다.

괜스레 낯뜨거워지는 기분이라 헛기침을 했다. 세실리의 저런 태도는 아마 평생동안 유지되겠지.

"나도 뭐······ 딱히 신경 쓸 것도 없어서 상관없는 걸? 머리 아픈 건 리나 너 혼자겠지."

"호호호."

이어서 마리가 본인은 상관없는 일이라 선을 긋자 리나가 우아한 웃음을 흘렸다. 뭔가 해탈에 가까운 웃음처럼 들린다면 착각일까.

아마 착각이 아니겠지. 지금 리나의 머릿속은 번잡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당장 드워프 삼인방의 혁명뿐만 아니라 애니머즈의 동태도 살펴봐야 하고, 악마 숭배자 문제도 남아있다.

말 그대로 전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 제국의 황녀에게 너무 막중한 과업이다.

"나도 빨리 황녀 직위 때려치우고 결혼하고 싶네. 그냥 다 하기 싫어."

"넌 결혼해도 제국의 공무는 신경 써야 될 걸? 아, 물론 나는 아니지만."

"너 잠깐만 이리로 와. 한 대 때리게."

"싫은데~"

연이은 마리의 꼽주기에 결국 참다 못한 리나가 폭발했다. 이에 마리는 나와 팔짱을 끼면서도 그녀를 놀려댔다.

리나도 마리가 나를 방패로 세우는 모습에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차를 마셔 속을 달래는 것뿐.

옛날이었다면 서로 간의 앙금이 남아있어서 어색했을 텐데 이제는 스스럼 없이 장난을 치고 있다.

당하는 건 죄다 리나였지만 말이다. 물론 그녀도 만만치 않아 가끔 반격하지만 '취향'을 가격하면 금방 무너진다.

"후우······ 정말이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느낌이야. 뭐만 하면 세상을 변화시키니."

"응? 판도라의 상자?"

그거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도구 아닌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을 표했다.

이곳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존재할 일은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위그드라실이라든지, 홀름강이라든지, 발할라라던지 등등.

북유럽 신화와 똑같은 칭호도 있는 마당에 판도라의 상자라는 단어가 없으리라는 법은 또 없다. 조금 의문이 들 뿐이지.

"판도라의 상자가 왜? 뭐 걸리는 부분이 있어?"

"아니. 그냥······ 내가 살았던 곳에도 비슷한 단어가 있어서. 열면 안 되는 상자를 열었을 때 쓰이는 말이지?"

"응."

리나의 대답을 들으니 내가 알던 판도라의 상자가 맞다. 나는 좀 더 궁금해져 질문을 날렸다.

"그게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 알아?"

"글쎄?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흠······"

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언급된 적은 없다. 이건 역사뿐만 아니라 신화도 마찬가지.

대신 단어의 의미를 보았을 때 전생의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게 어디서 전승되었는지 모른다는 게 흠이지.

어차피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니 넘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알았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앞으로 마력 기관에 어떤 자원이 사용될지 알려줘. 석탄 말고."

"혁명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의외라면 의외다. 아까 전에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리나는 혁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던 모양이다.

리나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해탈에 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혁명이 성공한다면 미네르바 제국에도 이득이니까. 특히 마력 기관의 설계도를 뿌린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시무시한 메리트야. 안 그래도 마력 기관의 소유권이 부르주 5세에게 돌아간 마당에 그걸 얻으려면 또 골치 아파져. 차라리 혁명이 성공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다는 말은······"

"물밑에서 지원해줘야겠지. 그 드워프들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돈과 재료가 없다면 만들지도 못 할 테니까. 네가 말한 그 전차라는 거, 듣기만 해도 값이 높을 것 같거든. 어쩌면 도와줬다는 명목으로 전차의 설계도도 얻을 수 있겠지."

"너도 전차를 고평가하는 거야?"

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려한 금발이 고개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전차를 고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담긴 기술을 고평가하는 거지. 그만한 무게를 움직이려면 필시 개량된 마력 기관이 필요하겠지. 그 말은 즉, 무거운 물건을 쉽게 옮길 수 있다는 거야. 대표적으로 소가 끌어야 할 쟁기를 전차가 끌 수도 있다는 거지."

무언가 앞뒤가 뒤바뀐 것 같다만 맞는 말이다. 실제로 본래 전차의 엔진은 트랙터의 엔진을 갖다가 사용한 거다.

드워프가 워낙 물건을 잘 만든 탓에 생긴 언밸런스함이다. 원래 트랙터가 먼저 나와야 되는데 전차가 등장했다.

심지어 전차가 포탄뿐만 아니라 마법까지 발사한다. 그런데 기관총은커녕 머스켓조차 발명되지 않았다.

판타지답다면 판타지답다고 할 수 있는 상황. 나는 그런 기묘함에 얕은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 내 말이 이상해?"

"아니. 다름이 아니라 내가 살던 세상은 전차보다 네가 말한 기계가 먼저 나왔거든. 네 말처럼 그 기계만 있다면 농사가 한결 편해질 거야."

"그래? 내 생각이 맞다니 다행이네. 그럼 그것도 석탄으로 움직이는 거야?"

"석탄이 아니라······"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북부 지역, 정확히는 그 지역에서 난다는 '검은 물'을 떠올렸다.

정말로 내가 아는 석유가 맞는지 모르겠다만 설명에 따르자면 완벽히 일치한다.

허나 석유 정제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달된 건 19세기 무렵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이제 막 산업 시대로 넘어갈 예정이다.

과연 이걸 알려준다고 해서 쓸모가 있을까. 살짝 고민되긴 했지만 미래를 위한 자원이라 생각하면 되겠지.

"북부 지역에서 난다는 검은 물 알아?"

"그 쓸데없이 불에 잘 타는 물? 설마 그게 자원이야?"

"일단은 그렇긴 한데 지금 기술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그래도 검은 물, 그러니까 석유 때문에 무역 분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지."

"그렇구나. 이건 필시 따로 연구해야겠네."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였다.

"검은 물? 땅을 조금 깊게 파면 나오는 액체 말이야?"

"음?"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던 세실리가 끼어들었다. 이에 나는 물론 리나도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세실리는 붉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우리에게 좀 더 정확한 설명을 꺼냈다.

"땅 파서 나오는 검은 물이라면 그거야? 불에 잘 타는데다가 걸쭉한 것도 있고 부드러운 것도 있는 거 맞지?"

"어······ 아마도? 헬리움에서도 석유가 나와?"

"응. 쓸데없이 너무 잘 나와서 건국에도 애를 먹을 정도였거든."

세실리의 설명을 이렇다. 헬리움의 선조들은 건국할 땅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겨우겨우 찾은 게 지금의 헬리움이다.

그러나 헬리움은 당시에 말 그대로 '똥땅'이라 부를 정도로 터가 좋지 못 했다. 남쪽과 서쪽이 사막에다가 환경 자체도 척박했다고.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못한 땅이 많았으며 살만하다 싶은 곳은 조금만 파도 석유가 나왔다고.

그걸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었지만 석유는 '마법'이 아니라 '기술'의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자원. 마족조차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행히 농사를 지을 때마다 마법으로 번개를 내려칠 수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멸망하고도 남았을 거란다.

'소련이 아니라 중동이었구나.'

헬리움의 가치가 또다시 급증하는 순간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석유를 연료로 쓰는 순간부터 급부상할 것이다.

"그게 그렇게나 중요한 거였다니 신기하네. 그런데 우리 마족은 과학보다는 마법에 치중돼 있어서 상관없으려나?"

"··· ···"

아무래도 헬리움은 국제 무대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자원'의 중요성을 모르는 모양이다.

여태까지 자원으로 깡패질을 한 적이 없을 뿐더러 마법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으니 당연한 일일 터.

나는 입에 검지 손가락을 대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리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

너무 다양한 감정이 실려있어서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리나?"

"으, 응?"

"나쁜 생각은 안 돼."

"내, 내가 뭘?"

사기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

드워프 삼인방이 마키나로 귀국하고 대략 일주일 정도가 흘렀을 때쯤이었다.

나에게서 조언을 받고나서 본격적인 혁명 활동을 시작했으니 내 귀로 알음알음 소식들이 들어왔다.

예를 들어 드워프 삼인방이 새로운 조직을 '창당'했다던지. 드워프 공장들이 파업을 하는 시도가 대폭 증가했다던지. 부르주 5세가 군대를 일으켰다든지 등등.

이때까지만 해도 부디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책임 없는 쾌락이지만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치 못한 부분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혁명으로 멈춘 마키나의 공장들. 그로 인해 물가가 점점 상승하고 있으며······]

[혁명이 길어지면서 단절된 공급망. 미네르바 제국의 상회들은 마키나로부터 물자를 받지 못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물자난. 이 현상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임금을 아끼기 위해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들.]

[미네르바 제국에서 발생한 침체로 다른 나라들 또한 피해를 입기 시작해······]

미네르바 제국발 공황이 터져버렸다.

"할 말 있어?"

"······미안?"

"미안하다면 다야? 빨리 알고 있는 지식 토해내. 당장!!"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리나의 격노를 맞이했다.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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