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가 실패한 원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한 가지가 자본주의에 비해 떨어지는 생산력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똑같은데 과연 의욕이 올라갈까? 저 새끼는 대충 하는데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매우 간사한 동물이다. 누가 바로 옆에서 꿀을 빨면 나도 같이 꿀을 빨고 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물.
그 욕망 덕택에 수없는 '경쟁'을 거쳐 문명을 눈부시게 발전시켰으나 동시에 수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이렇듯 공산주의는 인간 특유의 간사한 마음을 없애지 않는 이상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모두가 공평하지만 모두가 공정하지 않다. 공산주의의 모순점을 제대로 꿰뚫는 말이다.
하지만 드워프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드워프는 '노동자'가 아니라 '공장'이라 칭할 정도로 손재주가 극히 뛰어난 종족.
또한 종족전쟁 이후 3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순 노동만 했음에도 이제야 혁명이 터지는 이유는 그들이 '창작'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수인이 짐승의 본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드워프에게는 기본적으로 창작의 욕구가 심어져 있다.
에인스가 마력 기관을 발명했던 것처럼 한 번 꽂힌 거에 거침없이 파고든다. 돈과 시간만 충분하다면 말이지.
드워프 공장들은 돈은 물론 시간마저 모조리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지만, 종족 단위로 심어진 본능은 억누를 수 없다.
그러니 즉, 인간에게 거의 불가능한 체제인 공산주의가 드워프에게 알맞는 체제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줄 거야. 톱니바퀴마냥 딱딱 돌아가는 부품이 아니라 우리가 그 톱니바퀴를 만드는 거지. 단, 기술을 공유하되 발명가가 모두의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된다면 우리 드워프들은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겠지."
"듣기만 하면 드워프에게 더할 나위가 없는 체제겠군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그 설계도를 사용한다면요?"
사상 및 체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에인스의 설명에 리나가 질문을 던졌다. 에인스의 사상은 드워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인간이 제일 큰 영향력을 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기계공학이 어렵다지만 '재능'의 영역인 마법보다 어려울까.
공학도 재능에 따라 편차가 갈리긴 해도 충분한 교육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확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법은 그딴 거 없다.
따라서 에인스가 혁명에 성공하고 설계도를 뿌린다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마력 기관을 제작할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마력 기관은 석탄으로 마나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 그 메리트 하나만 보고 군침을 흘리는 곳은 곳곳에 널려있다.
"상관없어. 인간이 마력 기관을 제작하는 것조차 미지수인데 더 나은 기술을 발명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거든. 설령 발명한다고 해도 우리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테고."
"··· ···"
실로 오만한 발언이었지만 에인스는 드워프다. 저런 말을 할 자격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리나도 그 부분을 알고 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해할지언정 반박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여러모로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나는 드워프에게 없는 인간만의 장점을 알고 있다. 이에 에인스가 듣지 못하도록 리나의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기······"
"히익?!"
갑작스러운 속삭임에 놀랐던 것일까. 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황녀로서의 품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실로 인간적인 비명 소리. 나는 그 소리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어느새인가 얼굴이 새빨개진 리나가 손으로 귀를 덮은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놀랐는지 두 눈 또한 휘둥그레 떠져 있다. 새침한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 많이 놀랐어? 미안."
"아, 아냐. 큼. 큼."
내가 머쓱한 목소리로 사과하자 리나가 헛기침을 하며 다급히 갈무리한다. 그러면서 드워프의 눈치를 보기까지.
만약 기숙사에 지인들만 있었다면 모를까, 드워프 삼인방까지 있었으니 더 창피할 것이리라.
괜스레 미안해졌으나 일단 알려줄 건 알려줘야지. 나는 리나가 귀를 빌려주자 속삭이듯이 말했다.
"너무 상심할 필요는······"
"흐읍······"
"······?"
뭐야. 이 여자. 나는 또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리나를 쳐다봤다.
입술을 꽉 깨물며 어떻게든 비명을 참는 것 같은 얼굴. 이대로 말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그런 생각으로 가만히 있을 때, 리나는 파들거리는 입술을 억지로 감추며 나에게 말했다.
"계, 계속 말해. 난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아, 아무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봐도 리나는 뻔뻔한 얼굴로 대응했다.
그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 나는 한동안 그녀를 응시하다가 다시 귓가에 입을 갖다 댔다.
"아무튼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어. 너도 알다시피 드워프는 손재주가 좋아도 기초적인 학문이 떨어지는 편이니까. 그러니 학문을 만들어서 교육을 시킨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이론에 기반한 창작은 정교함이 매우 높은 반면 위험성이 떨어져."
기계공학이든 인체공학이든 그 놈의 빌어먹을 '물리학'과 '수학'은 항상 포함돼 있다. 솔직히 저 두 학문은 안 끼는 곳이 없다.
만약 인간에게 마력 기관이 도입된다면 학문들은 폭발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그 학문들로 하여금 좀 더 정교한 기계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워프가 중공업 위주라면 인간은 경공업 혹은 첨단 산업에 특화될 것이다. 물론 드워프가 학문에 파고든다면 이야기가 다르겠다만 꽤 오래 걸리겠지.
마키나는 생산에만 치중한 나머지 교육 기관도 거의 없는데다 마법처럼 복잡한 분야는 엘프에게 부탁했으니.
"그, 그래? 네가 그리 말하니 신뢰성이 높네. 휴우······"
리나는 내 말이 끝나자 손부채질을 하며 열을 가라앉혔다. 겨우 귓속말 가지고 이런 반응이라니 색다른 느낌이다.
"좋았어?"
"조, 좋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그냥 귀가 간지러워서 그런 거야."
"그래? 이상하네. 황녀 정도라면 귓속말은 많이 들었을 텐데······ 혹시 그런 거 아니지?"
"너 정말······!"
물론 장난기가 많은 세실리가 놓칠 리가 없다. 마리도 옆에서 거드는 걸 보아하니 약점을 제대로 잡힌 모양이다.
나는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그들에 피식 웃었다가 다시 드워프 삼인방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여자들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는지 진지한 얼굴 그대로였다.
"설계도를 뿌려서 모든 드워프가 공평하게 창작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고 하셨죠?"
"그렇지."
"그러면 여기서 질문을 할게요. 만약 어느 한 드워프가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반인륜적인 행위를 시도한다면, 그것도 용납할 건가요?"
에인스가 설명한 체제는 공산주의적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동시에 자유주의도 적절히 섞여있다.
창작은 자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행동. 하지만 자유가 너무 심하면 무법이 되고, 그 무법은 결국 재앙을 낳기 마련이다.
"으음······ 그건 생각치도 못 했군. 그것 말고도 생각할 거리는 많겠어. 기아스?"
"야이. 씹······"
"허허. 이 친구가 왜 이러나. 5년만 참아달라니까?"
"너 때문에 기껏 남아있던 머리마저 다 빠지겠어."
기아스가 한숨을 내쉬면서도 받아들인다. 보아하니 정치적인 분야는 대부분 기아스가 도맡은 모양이다.
에인스는 그런 기아스의 어깨를 두드린 뒤, 아까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 봤다.
털복숭이 드워프가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썩 이상했지만, 체구가 체구다 보니 묘하게 귀엽다.
"그럼 다른 주의점은 없나?"
"주의점이라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모두가 동등한 조건이지만 모두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죠. 원래 성공이라는 게 무수한 실패를 거듭해서 꽃피우는 거니까. 에인스 씨도 그렇지 않았나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실패가 쌓이고 쌓여 데이터가 된다면, 성공으로 향하는 확률은 커지기 마련이다.
만약 혁명이 성공하고 에인스가 설계도를 뿌린다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다양한 창작을 시도할 터.
그 창작이 바로 성공한다면 모를까, 처음에는 대부분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쓰레기 더미에 지나지 않겠지.
따라서 다시 일어날 기회를 정부 혹은 기관에서 지급해야 된다. 이게 가장 핵심이다.
'실패자'들이 존재할지언정 '낙오자'는 없도록.
"그랬지. 그때는 이 놈들도 나를 괴짜로 취급했으니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라······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하겠어."
"또 한 가지. 창작에 매달릴 필요는 없어요. 드워프라 해서 모두가 창작을 좋아하는 건 아닐 테니까. 창작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기회를 주는 거죠."
"음. 음. 그리고 또?"
나와 에인스가 서로 대화하는 동안 기아스는 옆에서 열심히 필기하고 있다. 한다이도 마찬가지로 필기 중에 있고.
반면 세실리와 리나는······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다. 마치 우리에게는 왜 그런 거 안 알려주냐는 표정이랄까.
조금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에인스가 설파할 사상은 이상적이면서도 위험성이 너무 컸으니까.
'잘못하면 어느 게임에 나올 법한 해저 도시가 될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책임과 죄책감은 내가 전부 떠맡겠지. 부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부분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혁명이 성공한다면 그대가 가르쳐 준 걸 기반으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겠지."
"저는 그저 주의할 점만 알려준 것뿐이에요. 누누이 언급하지만 공산주의의 가장 큰 적은 부정부패라는 것. 위쪽에서 돈을 쓸어담을수록 나누어 줄 예산이 부족해질 테니 이걸 척결하는 게 관점일 거예요."
"부르주아 놈들이 했던 짓거리를 우리가 다시 반복할 일은 없을 거야."
과연 그럴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실제로 스탈린도 그렇지 않았는가. 그 사람은 재력이 아닌 권력을 탐했다는 게 차이점이나 결과는 비슷했다.
다행히 편집증과 의심병을 달고 있어도 소련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었다는 것.
히틀러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이나 소련을 최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사후에도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전차에 대한 것도 알려줄 수 있겠나? 이건 혁명이 성공했을 때나 통하는 거지, 지금 우리에게는 전차가 가장 중요해서."
"아. 물론이죠. 우선은······"
나는 말을 하기 전, 드워프들을 내려다봤다. 특유의 짜리몽땅한 신체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제약을 받고 있을 터.
물론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전차를 만들 때부터 고려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그건 다름아닌 총, 그러니까 기관총이다. 본래 전차에는 주포뿐만 아니라 기관총도 탑재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관총은커녕 머스켓조차 발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비슷하게 하려면······
"혹시 연발 석궁 그런 건 없나요?"
"그것도 달아야 해?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일일이 장전하는 게 아니라 방아쇠만 당기면 화살들이 줄줄이 나가는 식으로요."
"그걸 어떻게 만들어?"
역시 판타지여도 현실은 현실이구나. 재장전 없는 연발 석궁은 꿈에도 못 꾸는 모양이다.
"그럴 바에 마법 물품을 사용하고 말지. 매직 애로우를 사용하면 돼."
"마법은 사용하지 못 한다면서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우리가 매직 애로우를 쓸 일이 있어? 간단한 마법인만큼 기계화시키는 것도 쉽고, 마력 기관이 있으니 마나가 부족할 일도 없지. 아니다. 차라리 파이어볼을 넣어볼까?"
"··· ···"
아니구나. 역시 판타지는 판타지구나.
전차에서 총탄 세례를 퍼붓는 게 아니라 마법 세례를 퍼붓는다. 불도 발사되고, 마법 화살도 발사되고, 번개도 쏘아지고 등등.
어쩌면 현실의 전차보다 더 괴랄한 물건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위급 마법은 마나가 부족한데다가 공식도 복잡해서 모른다는 것.
반대로 말하자면 마나가 충분하고, 공식만 알고 있다면 그 마법을 펑펑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고 있는 거야.
"······아무튼 다른 것도 설명해드릴게요. 어떤 거냐면······"
이후에 360도 회전하는 포탑이라든지, 전차 운용에 필요한 인원이라든지, 전차장이 명령을 좀 더 원활하게 내릴 수 있는 무전기라든지 등등.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알려줄 건 다 알려줬다. 물론 세상이 다르다 보니 이게 전부 통할지는 미지수다.
"역시 예언자가 맞다니까."
"그럼. 그럼."
"예언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지식을 알 리가 없지."
쓸데없는 착각을 넣은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이제부터 남은 건 전부 드워프들의 몫이다.
그들이 과연 혁명에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부디 멀쩡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개량해야 될 부분이 꽤 있군. 정말 고마워. 목숨을 걸 가치가 충분히 있었어."
"부디 잘 해결하기를 빌게요. 아, 그런데 이름은 정했나요?"
"당연히 정했지."
에인스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더니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이름을 밝혔다.
"오우거."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될 전차의 이름.
"오우거 1호 전차."
정말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